
승봉도는 의외로 순수하고 깨끗하다. 자연의 피조물도 애초 그대로의 모습이고, 주민의 마음씨 또한 슬거움이 엿보인다. 커다란 콘도미니엄과 번듯한 민박집들만 아니라면 다도해의 어느 낙도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마을은 최신식 민박집들로 가득한데도 정취만큼은 여느 섬마을처럼 조용하고 한가롭다. 마을을 벗어나면 이내 조붓한 오솔길이나 솔숲길이 이어진다. 어느 길로 들어서도 바다가 지척이다.

승봉도의 북쪽 해안은 유달리 바위가 많아 풍광이 아주 빼어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절경은 특히 남대문바위. 거대한 바위 하나가 억겁의 세월 동안 파도에 깎이고 비바람에 씻긴 끝에 거대한 문(門)의 형상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바위 위쪽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어 그 운치가 한결 돋보인다. 남대문바위 주변에는 다양한 형상의 갯바위와 크고 작은 돌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외지인에게는 그저 눈맛 좋은 절경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해안이지만, 섬사람에게는 소중한 삶의 터전 가운데 하나다. 바닷물이 빠지면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조개를 캐거나 낙지를 잡는데, 네댓 시간쯤의 한 물때에 캐는 바지락 양은 대략 1만~2만 원어치라 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몇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 일한 대가치고는 아주 박(薄)한 셈이다.

촛대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람의 손가락 같기도 한 촛대바위를 보고 나서는 길을 되돌아와야 한다. 깎아지른 해벽(海壁) 아래 시꺼먼 바닷물이 일렁이기 때문이다.
촛대바위 남쪽의 부두치해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절경이다. 이곳에는 모래와 자갈, 조개껍질이 섞인 백사장에다 썰물 때마다 바닷길이 드러나는 작은 섬 하나가 있다. 그러므로 미리 물때를 알아보고 찾아가야 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부두치해변에서 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은 울창한 솔숲을 지난다. 길바닥에 깔린 솔잎의 푹신한 감촉과 해풍에 실려온 솔 향기가 심신의 여독을 말끔히 씻어주는 숲길이다. 그래서 이 길에 들어서면 지나온 길의 수고로움은 아득히 잊힌다. 오히려 마냥 걷고 싶다는 욕구가 또다시 솟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