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 자꾸 수술 받으러 오지 마시고 이번에는 (자궁 내 장치) 끼웁시다.
환자: (머뭇머뭇)
의사: 남편이랑 상의한 뒤 내일 꼭 다시 오세요.
(다음날) 환자: 남편이 넣지 말래요. 뚱뚱해진다고.
의사: 남편이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다 또 임신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환자: 이번에는 남편이 정관수술하겠대요.
의사: 아내에게 중절시키고 미안하니까 그냥 해보는 말이에요. 공약만 남발하고 막상 수술 안 받는 남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또 수술한다고 당장 피임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남아 있는 정자가 완전히 빠질 때까지 3개월은 안심할 수 없어요. 그것도 모르고 아내가 임신하면 바람 피웠다고 울고불고 싸우는 부부도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오늘 장치 넣고 가셨다가 남편이 수술 받은 뒤 3개월 지나 다시 정액 받아 가지고 오세요. 정자가 더 이상 안 나오는 것을 확인한 후 장치 빼드릴게요.
산부인과 의사가 거의 애원하다시피 피임을 권했지만 부인은 남편이 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냥 돌아갔다. 의사는 몇 달 뒤 그 부인이 “아휴, 또 왔어요”라며 다시 산부인과를 찾을 거라고 했다.
한 산부인과 의사가 전하는 한국인의 피임실태는 ‘무지’ 그 자체다. 산부인과 의사의 소원이 출산계획을 세우고 피임법을 상담하러 오는 ‘지극히 정상적인 환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할 만큼. 교복 입은 여고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당당히 “애를 떼달라”고 요구할 때, 해줄 수도 안 해줄 수도 없는 상황도 끔찍하다고 한다. 피임약은 날마다 먹는 게 귀찮아 싫어하고, 루프(자궁 내 장치)는 살이 찐다는 잘못된 상식이 퍼져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이 쉽게 택하는 방법이 자연피임(월경주기에 맞춰 성관계를 조절하는 법)이다. 하지만 절대 믿을 만한 방법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성공률은 75%. 바꿔 말하면 네 번에 한 번꼴로 임신을 한다는 얘기다. 그나마 월경주기가 일정한 여성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지 주기가 들쭉날쭉할 경우 실패율은 더욱 높아진다.
결국 원치 않는 임신을 막기 위해 인공임신중절이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한다. 낙태는 습관이라는 말이 사실이어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한 번 시술 받은 사람이 다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혼전 임신 때문에 수술을 받으러 온 여성에게 결혼 전까지 조마조마하게 지내지 말고 차라리 루프를 끼우라고 말하면 펄쩍 뛰어요. 결혼도 안한 여자가 어떻게 피임을 하느냐고. 그러면서도 두 번, 세 번 중절수술을 받죠”(산부인과 의사 이모씨).
임신을 원치 않으면서도 아예 피임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피임법을 쓰는 등 피임에 무지한 우리의 현실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박사(가족복지인구정책팀장)팀의 ‘2000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 실태조사’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5~44세 기혼여성 6408명을 대상으로 피임수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79.3%가 “현재 피임을 실천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97년 80.5%보다 조금 떨어진 수준이지만 76년 44.2%에 비하면 놀라운 증가세다. 김승권 박사는 “임신중이거나 폐경·자연불임 등의 이유로 피임이 불필요한 상태를 감안하면 80% 전후의 피임 실천율은 100%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단순히 피임 실천율이 높다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경우 피임의 ‘질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즉 나름대로 피임을 했는데 불완전한 방법 때문에 임신이 되고 결국 임신중절로까지 간다.
기혼 여성 가운데 임신중절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9.2%, 2회 이상도 22.1%나 된다. 임신중절의 원인을 보면 절반이 넘는 61.3%가 피임 실패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이것은 97년 38.7%보다 오히려 크게 높아진 수치다. 원인을 보면 가족계획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불임술이 점차 감소하는 대신, 젊은 부부들이 콘돔 및 월경주기법 등 상대적으로 효과가 낮은 피임방법을 선택한 결과다.
앞서 자연피임(월경주기법)의 실패율이 높다는 점은 언급했지만,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는 콘돔의 경우도 실패율이 13.4%나 된다. 불임수술과 자궁 내 장치는 각각 4.0, 3.7%. 그나마 피임약의 실패율이 1.1%로 가장 낮지만 사용자는 피임자의 2.1%로 극히 저조했다. 더욱이 임신을 원치 않으면서도 ‘설마’ 하며 전혀 피임하지 않다가 막상 아이가 생기면 임신중절로 피임을 하는, 황당하게 무책임한 부부도 의외로 많다. 임신중절 케이스의 38.7%가 이런 부부들이다.
김승권 박사는 “임신중절 사례 가운데 19번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이 조사에 반영하지 않은 미혼여성과 10대 소녀들까지 포함한다면 피임 실패로 인한 전체 임신중절 건수는 엄청난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난 6월22일자 ‘여성신문’은 ‘임신은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라는 제목의 한 네티즌이 쓴 칼럼을 게재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밝힌 이 네티즌은 “어제 나는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지우고 왔다”면서 참담한 심정을 다음처럼 토로했다.
“그날 체외사정을 했기 때문에 그의 단순한 성지식으로는 분명 임신이 안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난 그에게 내가 임신했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나보다 어리기 때문에? 피임하지 않은 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배우고 토론했다. 잠자리에서 당당하게 피임을 요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그러나 나는 그날 밤 그러지 못했다. 그와의 성관계가 처음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실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 탓도 있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는 고백은 바로 우리의 현실을 말해준다. 숙명여대 여성학 동아리 SFA의 회장 박현주씨(22)는 “기혼자보다 미혼 여성들에게 피임지식은 더욱 절박하다”고 했다. “한국성문화연구소가 98년 실시한 ‘미혼대학생 성행태 설문조사’ 결과만 봐도 피임교육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학생의 54.5%, 여학생의 18.4%가 성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그 가운데 남학생의 31.3%, 여학생의 16.5%가 각각 임신을 시켰거나 임신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박씨는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 미혼여성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낙태·미혼모·결혼이라는 세 가지밖에 없다고 말한다. 칼럼을 쓴 네티즌은 낙태를 선택했지만, 그 어느 쪽도 미혼여성에게는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남긴다.
“여성이 보다 주체적·능동적으로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야죠.” 그래서 박씨와 여성학 동아리SFA는 지난 5월 대동제 때 ‘피임을 노래한다’는 주제로 피임기구 전시와 설명회를 열었다. “예상외로 호응도가 낮았어요. 콘돔이나 페미돔·피임약 같은 것을 전시하면서 직접 보고 만져보고 사용법도 배우기를 기대했는데 전시대 근처에 오는 것조차 꺼리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순결교육만 받아온 학생들에게는 피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프리섹스주의자 선언처럼 들리니까요”(SFA회원 나서라).
비뇨기과 여의사 1호로 유명한 임필빈씨도 콘돔을 제대로 본 것은 비뇨기과 레지던트 1년차였다고 말한다. “대학시절 콘돔의 용도에 대해 자주 들었지만 사본 적도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약국 가서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지하철 남자 화장실에 있다는데 남자들 우글거리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더 더욱 없었다. 남자 친구들한테 사다 달라고 할 수도,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궁금증을 안은 채 대학을 졸업했다”(성 에세이 ‘아니 여자가 어디 처녀가?’에서). 임씨는 자신의 이야기가 피임의 기본인 콘돔이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은폐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콘돔을 음지에서 양지로”라고 외쳤다.
역시 SFA회원인 김정은씨는 남자친구를 통해 피임을 알게 된 ‘특별한’ 경우다. 어느 날 남자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 친구가 서랍에서 콘돔을 꺼내 보여주었을 때 처음에는 온갖 ‘이상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 자연스럽게 성관계할 때를 생각해 늘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비로소 피임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애인과 서로 다른 성(性) 을 이해하고 피임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 “피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에게 일종의 커밍 아웃이에요. ‘막 가는 여자애’라는 눈길을 감수하고 내 몸의 주인이 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죠”(김정은).
환자: (머뭇머뭇)
의사: 남편이랑 상의한 뒤 내일 꼭 다시 오세요.
(다음날) 환자: 남편이 넣지 말래요. 뚱뚱해진다고.
의사: 남편이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다 또 임신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환자: 이번에는 남편이 정관수술하겠대요.
의사: 아내에게 중절시키고 미안하니까 그냥 해보는 말이에요. 공약만 남발하고 막상 수술 안 받는 남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또 수술한다고 당장 피임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남아 있는 정자가 완전히 빠질 때까지 3개월은 안심할 수 없어요. 그것도 모르고 아내가 임신하면 바람 피웠다고 울고불고 싸우는 부부도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오늘 장치 넣고 가셨다가 남편이 수술 받은 뒤 3개월 지나 다시 정액 받아 가지고 오세요. 정자가 더 이상 안 나오는 것을 확인한 후 장치 빼드릴게요.
산부인과 의사가 거의 애원하다시피 피임을 권했지만 부인은 남편이 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냥 돌아갔다. 의사는 몇 달 뒤 그 부인이 “아휴, 또 왔어요”라며 다시 산부인과를 찾을 거라고 했다.
한 산부인과 의사가 전하는 한국인의 피임실태는 ‘무지’ 그 자체다. 산부인과 의사의 소원이 출산계획을 세우고 피임법을 상담하러 오는 ‘지극히 정상적인 환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할 만큼. 교복 입은 여고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당당히 “애를 떼달라”고 요구할 때, 해줄 수도 안 해줄 수도 없는 상황도 끔찍하다고 한다. 피임약은 날마다 먹는 게 귀찮아 싫어하고, 루프(자궁 내 장치)는 살이 찐다는 잘못된 상식이 퍼져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이 쉽게 택하는 방법이 자연피임(월경주기에 맞춰 성관계를 조절하는 법)이다. 하지만 절대 믿을 만한 방법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성공률은 75%. 바꿔 말하면 네 번에 한 번꼴로 임신을 한다는 얘기다. 그나마 월경주기가 일정한 여성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지 주기가 들쭉날쭉할 경우 실패율은 더욱 높아진다.
결국 원치 않는 임신을 막기 위해 인공임신중절이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한다. 낙태는 습관이라는 말이 사실이어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한 번 시술 받은 사람이 다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혼전 임신 때문에 수술을 받으러 온 여성에게 결혼 전까지 조마조마하게 지내지 말고 차라리 루프를 끼우라고 말하면 펄쩍 뛰어요. 결혼도 안한 여자가 어떻게 피임을 하느냐고. 그러면서도 두 번, 세 번 중절수술을 받죠”(산부인과 의사 이모씨).
임신을 원치 않으면서도 아예 피임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피임법을 쓰는 등 피임에 무지한 우리의 현실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박사(가족복지인구정책팀장)팀의 ‘2000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 실태조사’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5~44세 기혼여성 6408명을 대상으로 피임수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79.3%가 “현재 피임을 실천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97년 80.5%보다 조금 떨어진 수준이지만 76년 44.2%에 비하면 놀라운 증가세다. 김승권 박사는 “임신중이거나 폐경·자연불임 등의 이유로 피임이 불필요한 상태를 감안하면 80% 전후의 피임 실천율은 100%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단순히 피임 실천율이 높다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경우 피임의 ‘질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즉 나름대로 피임을 했는데 불완전한 방법 때문에 임신이 되고 결국 임신중절로까지 간다.
기혼 여성 가운데 임신중절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9.2%, 2회 이상도 22.1%나 된다. 임신중절의 원인을 보면 절반이 넘는 61.3%가 피임 실패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이것은 97년 38.7%보다 오히려 크게 높아진 수치다. 원인을 보면 가족계획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불임술이 점차 감소하는 대신, 젊은 부부들이 콘돔 및 월경주기법 등 상대적으로 효과가 낮은 피임방법을 선택한 결과다.
앞서 자연피임(월경주기법)의 실패율이 높다는 점은 언급했지만,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는 콘돔의 경우도 실패율이 13.4%나 된다. 불임수술과 자궁 내 장치는 각각 4.0, 3.7%. 그나마 피임약의 실패율이 1.1%로 가장 낮지만 사용자는 피임자의 2.1%로 극히 저조했다. 더욱이 임신을 원치 않으면서도 ‘설마’ 하며 전혀 피임하지 않다가 막상 아이가 생기면 임신중절로 피임을 하는, 황당하게 무책임한 부부도 의외로 많다. 임신중절 케이스의 38.7%가 이런 부부들이다.
김승권 박사는 “임신중절 사례 가운데 19번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이 조사에 반영하지 않은 미혼여성과 10대 소녀들까지 포함한다면 피임 실패로 인한 전체 임신중절 건수는 엄청난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난 6월22일자 ‘여성신문’은 ‘임신은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라는 제목의 한 네티즌이 쓴 칼럼을 게재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밝힌 이 네티즌은 “어제 나는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지우고 왔다”면서 참담한 심정을 다음처럼 토로했다.
“그날 체외사정을 했기 때문에 그의 단순한 성지식으로는 분명 임신이 안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난 그에게 내가 임신했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나보다 어리기 때문에? 피임하지 않은 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배우고 토론했다. 잠자리에서 당당하게 피임을 요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그러나 나는 그날 밤 그러지 못했다. 그와의 성관계가 처음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실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 탓도 있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는 고백은 바로 우리의 현실을 말해준다. 숙명여대 여성학 동아리 SFA의 회장 박현주씨(22)는 “기혼자보다 미혼 여성들에게 피임지식은 더욱 절박하다”고 했다. “한국성문화연구소가 98년 실시한 ‘미혼대학생 성행태 설문조사’ 결과만 봐도 피임교육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학생의 54.5%, 여학생의 18.4%가 성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그 가운데 남학생의 31.3%, 여학생의 16.5%가 각각 임신을 시켰거나 임신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박씨는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 미혼여성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낙태·미혼모·결혼이라는 세 가지밖에 없다고 말한다. 칼럼을 쓴 네티즌은 낙태를 선택했지만, 그 어느 쪽도 미혼여성에게는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남긴다.
“여성이 보다 주체적·능동적으로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야죠.” 그래서 박씨와 여성학 동아리SFA는 지난 5월 대동제 때 ‘피임을 노래한다’는 주제로 피임기구 전시와 설명회를 열었다. “예상외로 호응도가 낮았어요. 콘돔이나 페미돔·피임약 같은 것을 전시하면서 직접 보고 만져보고 사용법도 배우기를 기대했는데 전시대 근처에 오는 것조차 꺼리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순결교육만 받아온 학생들에게는 피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프리섹스주의자 선언처럼 들리니까요”(SFA회원 나서라).
비뇨기과 여의사 1호로 유명한 임필빈씨도 콘돔을 제대로 본 것은 비뇨기과 레지던트 1년차였다고 말한다. “대학시절 콘돔의 용도에 대해 자주 들었지만 사본 적도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약국 가서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지하철 남자 화장실에 있다는데 남자들 우글거리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더 더욱 없었다. 남자 친구들한테 사다 달라고 할 수도,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궁금증을 안은 채 대학을 졸업했다”(성 에세이 ‘아니 여자가 어디 처녀가?’에서). 임씨는 자신의 이야기가 피임의 기본인 콘돔이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은폐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콘돔을 음지에서 양지로”라고 외쳤다.
역시 SFA회원인 김정은씨는 남자친구를 통해 피임을 알게 된 ‘특별한’ 경우다. 어느 날 남자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 친구가 서랍에서 콘돔을 꺼내 보여주었을 때 처음에는 온갖 ‘이상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 자연스럽게 성관계할 때를 생각해 늘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비로소 피임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애인과 서로 다른 성(性) 을 이해하고 피임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 “피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에게 일종의 커밍 아웃이에요. ‘막 가는 여자애’라는 눈길을 감수하고 내 몸의 주인이 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죠”(김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