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군사전략이 바뀐다. 10여 년 만에 처음 손대는 것이다. 취약점만 보완하는 부분적인 땜질이 아니다. 국방과 해외 군사전략의 근본을 뜯어고치는 것이다. 클린턴 정권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공화당 부시 정권의 야심작이고, 냉전 이후 10여 년 동안 큰 틀의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하던 군사 전략을 통째로 뒤집는 대역사이며, 미국이 겨냥하는 21세기 세계 군사전략의 밑그림이다.
부시 대통령은 국방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역시 입만 열면 ‘다시 검토하겠다’라고 했다. 이제 그 검토작업은 끝이 났다. 언론을 통해 새 전략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고, 5월25일 해군사관학교에서 있을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통해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2025년 인도가 러시아보다 더 중요”
미 군사 전략가들과 군사 전문가들은 펜타곤 대변혁의 뒤에 숨어 있는 막후의 한 인물을 주목한다. 1970년대 초반 민간인으로 펜타곤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올해 79세의 노인이며,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수십 년 지기 친구이자, 펜타곤 고위관리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냉전의 펜타곤을 지킨 유일한 인물, 앤드루 마셜(Andrew Marshall)이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는 부시 행정부의 새 군사정책의 막바지 검토작업이 진행중이던 지난 4월16일 ‘앞날을 내다보는 80세 노익장’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앤드루 마셜을 이렇게 평했다.
“오늘날 미국의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앤드루 마셜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이 전설적인 인물을 국방장관의 사정평가 작업 고문으로 임명해, 미 군사분야를 뜯어고칠 검토작업의 핵심적인 자리에 앉히자 펜타곤 장교들이 벌벌 떨었다. 그는 이제 80세가 될 사람이지만, 신선한 사고를 하는 데는 누구도 그를 따를 자가 없다.”
이만하면 극찬이다. 그는 펜타곤에서 구태의연한 구석이 없는 참신한 사색가로 불린다. 그만 하니 미 군사전략의 원대한 구상을 맡겼을 것이다. 럼스펠드 장관이 그에게 임무를 맡긴 것은 지난 2월6일이었다. 럼스펠드가 앤드루 마셜에게 군사전략 검토안을 맡겼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펜타곤은 벌집 쑤신 꼴이 되었다. 럼스펠드가 앤드루 마셜을 곁에 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대변혁의 신호탄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부시는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99년 9월 대통령 선거운동의 하나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미 국방정책과 관련해 이런 연설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은 새로운 세기의 도전에 대응하기보다 냉전시대의 위협에 대처하도록,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전쟁보다는 공업화 시대의 작전에 맞게 짜여 있다. 병력 구성에서부터 전략, 무기 구입의 우선 순위 등 미 군사정책에 대한 즉각적-전면적인 재검토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이 연설문의 대부분은 당시 부시 캠프의 국방정책을 자문하던 리처드 아미티지 현 국무부 차관과 육군 장교 출신으로 월스트리트 사람이 된 존 힐렌의 작품이었다. 아미티지는 지난 여름 펜타곤 강의에서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싫든 21세기로 진입해야 한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부시와 아미티지의 이 발언의 뼈대가 바로 앤드루 마셜의 구상이고, 100일이 갓 지난 부시 행정부가 내놓을 신 군사정책의 핵심이다. 군사정책에 관한 한 바야흐로 앤드루 마셜의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부시, 럼스펠드, 아미티지와 같은 선상에 있긴 하지만 마셜은 보수파로 분류되기보다는 급진적인 개혁주의자로 불린다. 펜타곤 관리들과 격렬하게 부대끼면서도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평판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세 가지이다. 먼저 그는 미국의 군사전략이 지나치게 유럽에만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아시아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며, 지리적으로나 군사비 지출의 우선 순위로나 아시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셜의 주장은 한마디로 ‘아시아의 위협’이다. 이 개념은 마셜과 깊숙이 관련한 1999년의 한 연구보고서에서 이미 이렇게 선을 보였다. ‘유럽은 미국의 국익에 결정적인 분쟁의 위협이 보이지 않는 곳인데도, 대부분의 미군 장비와 재산은 유럽에 가 있다. 위협은 아시아에 있다.’ 이 보고서는 또 2025년에는 인도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러시아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는 미 공군의 신형 F-22 전투기 도입 반대론자이기도 하다. F-22는 비행거리가 너무 짧아 21세기의 새로운 전략 환경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F-22 무용론은 단순히 F-22를 도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에만 국한한 것이 결코 아니다. F-22 무용론에는 미 군사전략의 핵심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앞으로는 미군이 적국 근처에 기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장거리 작전을 펼 것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
마셜은 또 육군의 중장비 탱크와 해군의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전략도 비판하고 나선다. 북한이나 이라크 같은 제3세계 국가들이 순항미사일과 정밀무기들로 무장을 한 상황에서 탱크나 항모는 주저앉은 오리 신세밖에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군사전략의 미래를 꿰뚫어본다는 마셜이 바라보는 미래의 공군은 미사일 방어와 장거리 폭격기가 중심이 된다. 이 둘은 모두 현재 미 공군이 구매하지 않은 것들이다. 또한 마셜의 구상대로 해군을 재편한다면, 머지 않은 장래의 미 해군은 항모 같은 해상 함대가 대폭 축소되는 대신, 지상공격용 미사일을 탑재한 ‘병기선’(arsenal ship)과 잠수함 중심으로 재편된다.
육군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즉 소규모의 기동 전투대와, 기술력은 낮지만 대규모의 평화유지 부대 및 소규모 전쟁 파견군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마셜의 주장이다. 또한 각 군은 이제부터는 미 본토에서 분쟁지역까지의 장거리를 빠른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어야 하며, 이동군은 각자 연료와 장비를 수송함으로써 해외 기지에서 군수품을 공급받는다는 기존의 보급 개념도 바꾸어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마셜의 핵 전략 역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 이제는 펜타곤이 미사일 공격과 미사일 방어라는 두 가지 개념을 모두 염두에 둠으로써 핵 전략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마셜은 핵 분쟁 전문가이기도 하다. 1949년 랜드(LAND)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당시 핵심 현안은 원자탄을 사용한 핵전쟁이었다.
미래주의자로 마셜이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1980년대 초에 그는 이미 소련의 붕괴를 예견했다. 그가 소련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소련의 인구와 환경지수였다. 소련의 붕괴 가능성은 미국에 대한 소련의 핵 공격을 우려하게 하였고, 마셜은 미국의 핵 방어력 증강을 주장했다. 1980년대에 미 지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핵전쟁 대비용 벙커 구축비와 신종 이동통신 차량 생산비로 무려 90억 달러를 지출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마셜의 이런 지적 때문이었다.
냉전이 끝나자마자 마셜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비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의 가상 분쟁에 대비한 전쟁 연습에 몰두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소련을 대체하는 새로운 적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는 진보측 인사들의 매서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주당 정권 때 마셜은 찬밥신세였다. 클린턴 행정부의 첫 국방장관이던 애스핀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마셜은 이에 맞섰다. 탱크, 함선, 비행기 등은 공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이행해야 할 군을 짓누르는 ‘맷돌’이라고 몰아붙인 보고서를 펜타곤에 배포했던 것이다.
두 번째로 펜타곤을 맡은 윌리엄 페리가 마셜에 꽤 동정적인 눈길을 보내긴 했으나, 보스니아와 하이티 등 계속 불거져 나오는 현안으로 마셜의 손을 잡아줄 기회가 없었다. 공화당 사람인 세 번째의 코언 장관은 아예 마셜을 무시하였고, 한때는 경비 절감 차원에서 그를 펜타곤에서 내쫓으려 한 적도 있었다.
마셜은 일반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펜타곤의 터줏대감이지만 일부 펜타곤 사람들은 말썽 많은 문제의 인물로 지목하기도 한다. 공군 무기 구매계획의 꽃이라 할 수 있는 F-22를 눈 하나 깜짝 않고 무용지물이라 들이대는 것도 그렇고, 육군의 중탱크와 해군의 항모를 ‘죽음의 덫’이라 몰아붙이면서 21세기의 기병대로 푸대접받기 전에 하루 빨리 처분하라고 으름장을 놓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에서 마셜을 평가하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먼저 그는 국가미사일 방어를 부추기는 인물이다. 의회 보수파들처럼 드러내놓고 몰아붙이지는 않지만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소련 붕괴와 중국 부상을 예견한 것을 예로 들어 마셜을 소련과 중국 전문가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마셜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와 함께 일을 하던 인사들조차 마셜에게서 특별한 구석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폄하한다. 미래의 전략을 검토하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펜타곤 사람들은 태만하고 현장 유지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현재의 무기 시스템은 장차 위험하리라는 믿음에 집착하는 것이 마셜의 기본 생각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눈여겨볼 만한 전략적 사고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셜의 신전략 검토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마셜의 구상이 반대파들의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셜은 든든한 배경이 겹으로 있다. 럼스펠드와의 오랜 친분이 그렇고, 그에 대한 부시의 지지 또한 절대적이다.
뿐만 아니라 마셜은 국가안보분야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통한다. 우선 그는 행정부 내의 장수파 고참이며, 행정부뿐만 아니라 학계와 방위산업계 내의 인맥 또한 두텁다. 1949년 랜드 연구소에서 핵 전략가로 이력을 쌓기 시작해 73년 펜타곤에 들어간 이후 그는 닉슨 대통령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펜타곤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그는 과묵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말 한마디 없이 하루를 보내기가 예사다. 과묵한 기질답게 그의 이름은 부시 진영의 군사-안보 정책 전문가들의 이름이 들먹여질 때에도 겉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공화당 정권 출범과 함께 시작한 미국의 새로운 군사정책의 밑그림은 그의 손에서 그려진다.
신선한 사고를 하는 데에는 마셜을 따를 자가 없다고 했던 윌리엄 새파이어는 ‘뉴욕 타임스’의 칼럼에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미래파 앤드루 마셜의 새로운 전략을 무엇이라 부를 것이냐는 물음에 럼스펠드 장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부시 독트린이라 해도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제2의 마셜 플랜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국방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역시 입만 열면 ‘다시 검토하겠다’라고 했다. 이제 그 검토작업은 끝이 났다. 언론을 통해 새 전략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고, 5월25일 해군사관학교에서 있을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통해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2025년 인도가 러시아보다 더 중요”
미 군사 전략가들과 군사 전문가들은 펜타곤 대변혁의 뒤에 숨어 있는 막후의 한 인물을 주목한다. 1970년대 초반 민간인으로 펜타곤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올해 79세의 노인이며,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수십 년 지기 친구이자, 펜타곤 고위관리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냉전의 펜타곤을 지킨 유일한 인물, 앤드루 마셜(Andrew Marshall)이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는 부시 행정부의 새 군사정책의 막바지 검토작업이 진행중이던 지난 4월16일 ‘앞날을 내다보는 80세 노익장’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앤드루 마셜을 이렇게 평했다.
“오늘날 미국의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앤드루 마셜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이 전설적인 인물을 국방장관의 사정평가 작업 고문으로 임명해, 미 군사분야를 뜯어고칠 검토작업의 핵심적인 자리에 앉히자 펜타곤 장교들이 벌벌 떨었다. 그는 이제 80세가 될 사람이지만, 신선한 사고를 하는 데는 누구도 그를 따를 자가 없다.”
이만하면 극찬이다. 그는 펜타곤에서 구태의연한 구석이 없는 참신한 사색가로 불린다. 그만 하니 미 군사전략의 원대한 구상을 맡겼을 것이다. 럼스펠드 장관이 그에게 임무를 맡긴 것은 지난 2월6일이었다. 럼스펠드가 앤드루 마셜에게 군사전략 검토안을 맡겼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펜타곤은 벌집 쑤신 꼴이 되었다. 럼스펠드가 앤드루 마셜을 곁에 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대변혁의 신호탄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부시는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99년 9월 대통령 선거운동의 하나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미 국방정책과 관련해 이런 연설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은 새로운 세기의 도전에 대응하기보다 냉전시대의 위협에 대처하도록,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전쟁보다는 공업화 시대의 작전에 맞게 짜여 있다. 병력 구성에서부터 전략, 무기 구입의 우선 순위 등 미 군사정책에 대한 즉각적-전면적인 재검토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이 연설문의 대부분은 당시 부시 캠프의 국방정책을 자문하던 리처드 아미티지 현 국무부 차관과 육군 장교 출신으로 월스트리트 사람이 된 존 힐렌의 작품이었다. 아미티지는 지난 여름 펜타곤 강의에서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싫든 21세기로 진입해야 한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부시와 아미티지의 이 발언의 뼈대가 바로 앤드루 마셜의 구상이고, 100일이 갓 지난 부시 행정부가 내놓을 신 군사정책의 핵심이다. 군사정책에 관한 한 바야흐로 앤드루 마셜의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부시, 럼스펠드, 아미티지와 같은 선상에 있긴 하지만 마셜은 보수파로 분류되기보다는 급진적인 개혁주의자로 불린다. 펜타곤 관리들과 격렬하게 부대끼면서도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평판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세 가지이다. 먼저 그는 미국의 군사전략이 지나치게 유럽에만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아시아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며, 지리적으로나 군사비 지출의 우선 순위로나 아시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셜의 주장은 한마디로 ‘아시아의 위협’이다. 이 개념은 마셜과 깊숙이 관련한 1999년의 한 연구보고서에서 이미 이렇게 선을 보였다. ‘유럽은 미국의 국익에 결정적인 분쟁의 위협이 보이지 않는 곳인데도, 대부분의 미군 장비와 재산은 유럽에 가 있다. 위협은 아시아에 있다.’ 이 보고서는 또 2025년에는 인도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러시아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는 미 공군의 신형 F-22 전투기 도입 반대론자이기도 하다. F-22는 비행거리가 너무 짧아 21세기의 새로운 전략 환경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F-22 무용론은 단순히 F-22를 도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에만 국한한 것이 결코 아니다. F-22 무용론에는 미 군사전략의 핵심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앞으로는 미군이 적국 근처에 기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장거리 작전을 펼 것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
마셜은 또 육군의 중장비 탱크와 해군의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전략도 비판하고 나선다. 북한이나 이라크 같은 제3세계 국가들이 순항미사일과 정밀무기들로 무장을 한 상황에서 탱크나 항모는 주저앉은 오리 신세밖에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군사전략의 미래를 꿰뚫어본다는 마셜이 바라보는 미래의 공군은 미사일 방어와 장거리 폭격기가 중심이 된다. 이 둘은 모두 현재 미 공군이 구매하지 않은 것들이다. 또한 마셜의 구상대로 해군을 재편한다면, 머지 않은 장래의 미 해군은 항모 같은 해상 함대가 대폭 축소되는 대신, 지상공격용 미사일을 탑재한 ‘병기선’(arsenal ship)과 잠수함 중심으로 재편된다.
육군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즉 소규모의 기동 전투대와, 기술력은 낮지만 대규모의 평화유지 부대 및 소규모 전쟁 파견군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마셜의 주장이다. 또한 각 군은 이제부터는 미 본토에서 분쟁지역까지의 장거리를 빠른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어야 하며, 이동군은 각자 연료와 장비를 수송함으로써 해외 기지에서 군수품을 공급받는다는 기존의 보급 개념도 바꾸어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마셜의 핵 전략 역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 이제는 펜타곤이 미사일 공격과 미사일 방어라는 두 가지 개념을 모두 염두에 둠으로써 핵 전략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마셜은 핵 분쟁 전문가이기도 하다. 1949년 랜드(LAND)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당시 핵심 현안은 원자탄을 사용한 핵전쟁이었다.
미래주의자로 마셜이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1980년대 초에 그는 이미 소련의 붕괴를 예견했다. 그가 소련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소련의 인구와 환경지수였다. 소련의 붕괴 가능성은 미국에 대한 소련의 핵 공격을 우려하게 하였고, 마셜은 미국의 핵 방어력 증강을 주장했다. 1980년대에 미 지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핵전쟁 대비용 벙커 구축비와 신종 이동통신 차량 생산비로 무려 90억 달러를 지출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마셜의 이런 지적 때문이었다.
냉전이 끝나자마자 마셜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비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의 가상 분쟁에 대비한 전쟁 연습에 몰두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소련을 대체하는 새로운 적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는 진보측 인사들의 매서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주당 정권 때 마셜은 찬밥신세였다. 클린턴 행정부의 첫 국방장관이던 애스핀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마셜은 이에 맞섰다. 탱크, 함선, 비행기 등은 공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이행해야 할 군을 짓누르는 ‘맷돌’이라고 몰아붙인 보고서를 펜타곤에 배포했던 것이다.
두 번째로 펜타곤을 맡은 윌리엄 페리가 마셜에 꽤 동정적인 눈길을 보내긴 했으나, 보스니아와 하이티 등 계속 불거져 나오는 현안으로 마셜의 손을 잡아줄 기회가 없었다. 공화당 사람인 세 번째의 코언 장관은 아예 마셜을 무시하였고, 한때는 경비 절감 차원에서 그를 펜타곤에서 내쫓으려 한 적도 있었다.
마셜은 일반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펜타곤의 터줏대감이지만 일부 펜타곤 사람들은 말썽 많은 문제의 인물로 지목하기도 한다. 공군 무기 구매계획의 꽃이라 할 수 있는 F-22를 눈 하나 깜짝 않고 무용지물이라 들이대는 것도 그렇고, 육군의 중탱크와 해군의 항모를 ‘죽음의 덫’이라 몰아붙이면서 21세기의 기병대로 푸대접받기 전에 하루 빨리 처분하라고 으름장을 놓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에서 마셜을 평가하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먼저 그는 국가미사일 방어를 부추기는 인물이다. 의회 보수파들처럼 드러내놓고 몰아붙이지는 않지만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소련 붕괴와 중국 부상을 예견한 것을 예로 들어 마셜을 소련과 중국 전문가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마셜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와 함께 일을 하던 인사들조차 마셜에게서 특별한 구석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폄하한다. 미래의 전략을 검토하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펜타곤 사람들은 태만하고 현장 유지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현재의 무기 시스템은 장차 위험하리라는 믿음에 집착하는 것이 마셜의 기본 생각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눈여겨볼 만한 전략적 사고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셜의 신전략 검토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마셜의 구상이 반대파들의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셜은 든든한 배경이 겹으로 있다. 럼스펠드와의 오랜 친분이 그렇고, 그에 대한 부시의 지지 또한 절대적이다.
뿐만 아니라 마셜은 국가안보분야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통한다. 우선 그는 행정부 내의 장수파 고참이며, 행정부뿐만 아니라 학계와 방위산업계 내의 인맥 또한 두텁다. 1949년 랜드 연구소에서 핵 전략가로 이력을 쌓기 시작해 73년 펜타곤에 들어간 이후 그는 닉슨 대통령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펜타곤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그는 과묵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말 한마디 없이 하루를 보내기가 예사다. 과묵한 기질답게 그의 이름은 부시 진영의 군사-안보 정책 전문가들의 이름이 들먹여질 때에도 겉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공화당 정권 출범과 함께 시작한 미국의 새로운 군사정책의 밑그림은 그의 손에서 그려진다.
신선한 사고를 하는 데에는 마셜을 따를 자가 없다고 했던 윌리엄 새파이어는 ‘뉴욕 타임스’의 칼럼에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미래파 앤드루 마셜의 새로운 전략을 무엇이라 부를 것이냐는 물음에 럼스펠드 장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부시 독트린이라 해도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제2의 마셜 플랜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