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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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에 스러지는 팔레스타인 어린 영혼

對 이스라엘 분쟁 희생자의 3분의 1… 병원마다 어린 부상자 수두룩

  •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5-01-26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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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탄에 스러지는 팔레스타인 어린 영혼
    지난해 9월 말에 시작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희생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 말 현재 희생자는 팔레스타인 403명, 이스라엘 76명, 그리고 이스라엘`-`아랍인(시민권 소지자) 13명 등으로 모두 500명에 이른다. 일곱 달 동안 하루 평균 2.5명꼴로 희생자가 생겼다. 이들 희생자 가운데 18세가 채 안 되는 팔레스타인 미성년자가 무려 70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다.

    사망자 통계는 엇갈린다. 팔레스타인 당국과 이스라엘 당국의 집계방식이 다른 까닭이다. 팔레스타인 쪽 주장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420명을 넘어섰고, 그 가운데 3분의 1이 어린이들이다. 이스라엘 쪽에서도 숫자는 적지만 어린이 희생자들이 생겨났다. 유대인 정착촌의 10개월 된 아기가 팔레스타인 전사가 쏜 총탄에 맞아 죽기도 했다. 중동 땅에서의 해묵은 이민족 간의 갈등이 어린이들을 날마다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아리엘 샤론 현 이스라엘 총리가 야당 지도자로 있던 지난해 9월 말 동예루살렘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해 유혈충돌이 빚어진 지금의 대 이스라엘 항쟁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티파다’(봉기)라고 한다. 1987년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티파다!’를 부르짖은 적이 있다. 93년까지 무려 6년 동안 이어진 그때의 1차 인티파다는 67년 6일 전쟁 뒤 20년 동안 이스라엘군의 지배를 받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와 좌절의 분출이었다.

    지금의 2차 인티파다와 1차 때를 비교하면, 무엇보다 희생자 숫자가 크게 차이 난다. 1차 때는 비교적 강력한 투쟁이 펼쳐져 그만큼 희생자가 많았던 처음 2년 반 동안 사망자가 670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불과 7개월 동안 500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이같은 차이는 팔레스타인 쪽에서 총으로 무장해 이스라엘 군과 총격전으로 맞서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하다. 이 총격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많은 어린이들이 희생되었다.

    특히 야간 총격전에서 집안에 있던 어린이들이 많이 죽고 다쳤다. “우리는 총알이 날아오는 쪽으로 응사할 뿐이다.” 이스라엘군의 판에 박힌 대답이다. 이스라엘측은 아울러 “그들(팔레스타인 어른들)이 충돌현장의 맨 앞으로 아이들을 몰아내었다”고 주장한다. 어린이들이 죽고 다치는 것은 다름 아닌 팔레스타인 쪽 책임이란 얘기다. 이스라엘의 이런 주장은 누굴 만나더라도 한결같다. 전 유엔대사를 지낸 도어 골드(현 샤론 총리 고위 보좌관)를 만났을 때 그는 “어린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전술”이라는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소년들의 안타까운 죽음 두 가지 사례. 지난 4월30일 밤 서안지구 라말라의 한 2층으로 된 아파트에서 강력한 폭탄이 터졌다. 이 바람에 건물 자체가 내려앉았다. 이스라엘 쪽에서 몰래 폭탄을 설치하고 원격장치로 터트린 것인지, 아니면 사제폭탄을 만들다가 잘못해 터진 것인지 분명치 않은 이 사건으로 두 어린이가 죽었다. 이들의 아버지 하산 카디(24)는 아라파트의 정치조직인 파타(Fatah)의 무장요원이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 가운데 하나인 가자지구의 칸 유니스 난민수용소. 지난 4월22일 이곳 공동묘지에선 이스라엘 쪽의 로켓탄 발포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중 죽은 한 팔레스타인 경찰의 장례식을 치렀다. 무하나드 므하레브 소년(11)은 그 장례식을 구경하러 나왔다가 이스라엘 정착촌 쪽에서 조객들을 향해 마구 쏴댄 총알에 머리를 맞았고, 그 다음날 그 자신이 공동묘지에 묻히는 처지가 되었다. 그날 장례식에 참석했던 조객 가운데 11명이 총상을 입었다. 무하나드 소년의 어머니 알람은 “무하나드는 학교에서 공부도 잘했다.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는데, 이젠 영영 가고 말았다”며 슬픔에 잠겨 있다.

    “알라우 아크바르!” 중동 현지 취재를 갔을 때 날마다 듣던 “알라신은 가장 위대하다!”라는 구호다. 팔레스타인 소년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며 이스라엘 병사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한다. 이들 소년들이 지닌 무기래야 작은 돌을 끼워넣어 쏘아대는 V자형 나뭇가지 새총이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 군이 쏘아댄 고무총탄에 다쳐 응급차로 병원에 실려간다. 부상은 그나마 다행이다. 고무총탄이 가슴에 바로 맞으면 심장마비로 죽기 십상이다.

    서안지구 라말라, 나불러스 두 곳에서 치러진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들은 얘기로는, 두 사람의 사망원인은 모두 고무총탄이 심장을 때렸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을 잘 알면서도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이스라엘군에 맞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한마디로 태생적으로 응어리진 적개심의 분출이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그리고 67년의 6일 전쟁은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낳았다. 국제연합(UN)의 집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난민 숫자는 400만 명에 이른다.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점령당했다가 지난 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일부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으로 돌려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그리고 이웃 레바논, 요르단 곳곳엔 난민수용소들이 즐비하다.

    지금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상당수는 난민수용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밤마다 들려오는 총소리에 놀라 잠이 깨 울부짖는 아이들에게 모든 걸 잊고 공부만 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베들레헴의 한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한 팔레스타인 가장은 그렇게 탄식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총성과 죽음을 지켜보며 자란다. 장례식의 절규,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 병사들의 총소리가 낯설지 않다. 수업시간에도 창너머 들려오는 총소리를 들으며 공부하는 형편이니,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팔레스타인에는 대학이 모두 7개 있다. 다행히 공부를 잘해 대학을 어렵사리 마친다고 해도 취직이 쉽지 않다. 그들을 받아들일 일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의 실업률은 50%가 넘는 형편이다. 그러니 “공부해 봐야 소용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막연한 좌절감이 어린 소년들을 거리의 투쟁으로 내몬다. 이스라엘군에게 돌멩이를 던짐으로써 대물림해 온 분노를 뱉어내는 상황이다.

    시위현장에서 돌멩이를 던지는 것은 그들의 자연스런 생활이 되었다. 망설임이란 있을 수 없다. 부모들도 그들을 말리지 못한다. 반항심리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 하마스(Hamas) 같은 과격 무장단체에 가입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가자지구의 젊은이 가운데 10∼20%쯤이 하마스 단원으로 알려져 있다(가자지구의 60%, 243 km2 안의 좁은 지역에 12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몰려 사는 반면, 나머지 40% 땅에서 불과 6000명의 유대인 정착민들이 이스라엘군 보호 아래 살고 있다).

    강경파인 이스라엘 총리인 아리엘 샤론은 “팔레스타인 쪽에서 무력도발을 그칠 때만 평화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심리구조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총격은 이제 그만”이라는 야세르 아라파트의 명령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이스라엘군도 과잉대응 탓에 이미 국제사회의 비난을 거듭 받은 바 있다. 어린이들의 희생은 그래서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심리학자 이야드 알 사라이 같은 이들은 정신건강 측면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장래를 걱정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 집이 파괴당하거나 부모형제를 잃고,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거나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온 어린이들은 나중에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온다 해도 마약과 폭력에 스스로를 내맡기기 쉽다는 진단이다.

    지난 1차 인티파다 기간(1987∼1993) 중 유년기를 보낸 소년들은 그들의 형과 아버지가 이스라엘군과 정착민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두드려 맞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충고와 자제를 말할 시기는 이미 지난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은 좀처럼 낫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trauma)를 지닌 채 일생을 살아간다는 게 정신의학 전공자들의 우려다. 이스라엘 감옥에서 때로는 고문을 당하며 살다가 집으로 돌아온 가장은 그의 분노와 좌절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쏟아붓기도 한다. 그래서 인티파다 기간 중 가정폭력도 더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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