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자마자 하는 말이 “여보세요?”에서 “어, 왜?”로 바뀌고 있다. 지난 4월1일부터 ‘발신자 전화번호 표시제’가 시범 실시되면서 달라진 풍속도다.
최근 한 TV 드라마에선 중화요리 가게 직원들이 경쟁 가게에 거짓으로 음식배달 주문을 하는 모습이 나왔다. 서울 연희동 중화요리 식당 ‘요리왕’의 한 직원은 “이젠 이런 장난이 어렵게 되었다”고 단정했다. 만우절인 지난 4월1일 서울지역 112 신고센터와 119 신고 접수처에 들어 온 허위신고는 각각 지난해의 30%, 50% 수준에 그쳤다.
발신번호 표시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누가 건 전화인지 미리 알 수 있어 재미있었으며 전화 받을 때 훨씬 느긋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 박인용 팀장은 “상업 전화의 공해 및 전화폭력 방지 효과가 있어 통신 이용자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매스컴은 “9번을 눌러야 하는 구내전화는 발신번호가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며 이 서비스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방향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 이용자가 불과 10여 일 새 수십만 명으로 늘면서, 전혀 관점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발신자이면서 수신자다.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 반대론자들은 “익명으로 전화할 권리, 최소한 수신자가 전화를 받기 전까진 발신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을 권리는 왜 무시하느냐”고 반문한다.
4월13일 대구 본리동 J건설회사 대표 김모씨(32)는 휴대폰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말았다. 공사대금 2억5000만원을 주지 않고 있는 거래업자 이모씨(41)의 휴대폰으로 지난 일주일 내내 전화를 했지만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3월 말까진 이씨와 통화가 가능했다”며 그 탓을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에 돌렸다. “내 전화번호를 상대측 전화기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발신번호 공개제한(일명 블로킹)을 건 뒤 전화해도 소용없었다. 이씨는 자신이 원하는 전화만 받고 있는 것 같다” 며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를 이렇게 마구잡이로 풀어놓은 것은 한마디로 바보 같은 짓”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TLBS의 민사담당 강석희 변호사는 “발신번호 표시서비스는 채무자, 사기꾼, 범죄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걸려오는 전화를 함부로 받을 수 없는 처지여서 통신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는데, 이제 전화를 선별해 받을 수 있어 자신의 조력자들과 마음껏 통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을 속여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이나 업체는 번호를 추적당해 낭패 보는 일 정도는 충분히 피해 갈 수 있다.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제도며 범죄자 검거를 어렵게 할 개연성을 갖고 있다”(강변호사).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의 또 다른 쟁점은 ‘익명으로 전화할 권리의 보호’ 문제다. 서울 소공동 벤처기업 I사 간부 장모씨(35)는 4월12일 기자재 구입을 위한 사전조사 차원에서 한 업체 관계자와 통화했다. 그는 조건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어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날 그 관계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중요한 신상정보인 전화번호가 공개된 것은 솔직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장씨). ‘블로킹을 걸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에 대해 장씨는 “신뢰가 생명인 비즈니스 활동에서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블로킹을 걸어 전화하는 사람을 상대가 신뢰하겠는가. 왜 이런 서비스가 나와 난처하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발신자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비공개할 권리를 인정하는 입장이다. 동서법률사무소 김기중 변호사는 “이런 점에서 이번 서비스는 주객이 전도된 꼴”이라고 풀이했다. “현 방식은 수신자가 원할 경우 발신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발신자 번호를 공개하고 있다. 그러고 난 뒤 발신자는 따로 번거로운 기계적 조작을 하거나 통신회사의 조치를 받아야 번호를 비공개로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객의 전도가 아니냐.”
LG텔레콤은 시험 기간 모든 019 휴 대폰 가입자에게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참여연대 시민권리국 박원석 부장은 “발신자는 물론 수신자의 의사조차 묻지 않은 건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오명문 상담팀장은 “전화로 거래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전화번호가 업체에 알려짐으로써 추후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화 이용자는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를 받을 경우 반대로 자신의 번호에 항상 블로킹을 거는 서비스에선 제외된다. 이를 두고 반대론자들은 발신번호 제한과정을 어렵게 함으로써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의 사용자를 늘리려는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의 근본 취지는 전화폭력 방지에 있다. 박원석 부장은 통신회사들이 선전하는 취지와 실제 벌어지는 양상을 비교해 보라고 말한다. “솔직히 전화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몇이나 되는가. 이번 서비스 실시 이전에도 그들에겐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가 제공되어 왔다. 또한 이 서비스와 함께 실시되는 블로킹 서비스는 전화폭력을 줄이는 효과를 현저히 떨어뜨릴 것이다. 서비스의 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발신자들의 익명보장 권리만 훼손당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의 월 이용료는 2500 ~3500원. 4800만 전화가입자 중 2000만 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7개 통신사업자는 1000억원 이하를 투자하고도 연간 6000억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게 참여연대의 계산이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일본, 대만, 호주, 미국, 유럽 등 외국에서도 이미 시행되는 서비스이며 지난해 충분한 논의를 거친 끝에 입법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많은 시민들이 이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전화를 걸었으면 전화번호를 떳떳이 밝히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우리도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서비스 방식의 변화에 있다. 즉, 발신추적을 안 당하려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현재의 시범 서비스 방식보다는 발신추적 서비스를 받으려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박원석 부장은 “발신자의 익명성을 보장해 달라는 주장은 상대적으로 소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마이너리티’의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 TV 드라마에선 중화요리 가게 직원들이 경쟁 가게에 거짓으로 음식배달 주문을 하는 모습이 나왔다. 서울 연희동 중화요리 식당 ‘요리왕’의 한 직원은 “이젠 이런 장난이 어렵게 되었다”고 단정했다. 만우절인 지난 4월1일 서울지역 112 신고센터와 119 신고 접수처에 들어 온 허위신고는 각각 지난해의 30%, 50% 수준에 그쳤다.
발신번호 표시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누가 건 전화인지 미리 알 수 있어 재미있었으며 전화 받을 때 훨씬 느긋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 박인용 팀장은 “상업 전화의 공해 및 전화폭력 방지 효과가 있어 통신 이용자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매스컴은 “9번을 눌러야 하는 구내전화는 발신번호가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며 이 서비스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방향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 이용자가 불과 10여 일 새 수십만 명으로 늘면서, 전혀 관점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발신자이면서 수신자다.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 반대론자들은 “익명으로 전화할 권리, 최소한 수신자가 전화를 받기 전까진 발신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을 권리는 왜 무시하느냐”고 반문한다.
4월13일 대구 본리동 J건설회사 대표 김모씨(32)는 휴대폰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말았다. 공사대금 2억5000만원을 주지 않고 있는 거래업자 이모씨(41)의 휴대폰으로 지난 일주일 내내 전화를 했지만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3월 말까진 이씨와 통화가 가능했다”며 그 탓을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에 돌렸다. “내 전화번호를 상대측 전화기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발신번호 공개제한(일명 블로킹)을 건 뒤 전화해도 소용없었다. 이씨는 자신이 원하는 전화만 받고 있는 것 같다” 며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를 이렇게 마구잡이로 풀어놓은 것은 한마디로 바보 같은 짓”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TLBS의 민사담당 강석희 변호사는 “발신번호 표시서비스는 채무자, 사기꾼, 범죄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걸려오는 전화를 함부로 받을 수 없는 처지여서 통신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는데, 이제 전화를 선별해 받을 수 있어 자신의 조력자들과 마음껏 통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을 속여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이나 업체는 번호를 추적당해 낭패 보는 일 정도는 충분히 피해 갈 수 있다.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제도며 범죄자 검거를 어렵게 할 개연성을 갖고 있다”(강변호사).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의 또 다른 쟁점은 ‘익명으로 전화할 권리의 보호’ 문제다. 서울 소공동 벤처기업 I사 간부 장모씨(35)는 4월12일 기자재 구입을 위한 사전조사 차원에서 한 업체 관계자와 통화했다. 그는 조건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어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날 그 관계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중요한 신상정보인 전화번호가 공개된 것은 솔직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장씨). ‘블로킹을 걸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에 대해 장씨는 “신뢰가 생명인 비즈니스 활동에서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블로킹을 걸어 전화하는 사람을 상대가 신뢰하겠는가. 왜 이런 서비스가 나와 난처하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발신자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비공개할 권리를 인정하는 입장이다. 동서법률사무소 김기중 변호사는 “이런 점에서 이번 서비스는 주객이 전도된 꼴”이라고 풀이했다. “현 방식은 수신자가 원할 경우 발신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발신자 번호를 공개하고 있다. 그러고 난 뒤 발신자는 따로 번거로운 기계적 조작을 하거나 통신회사의 조치를 받아야 번호를 비공개로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객의 전도가 아니냐.”
LG텔레콤은 시험 기간 모든 019 휴 대폰 가입자에게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참여연대 시민권리국 박원석 부장은 “발신자는 물론 수신자의 의사조차 묻지 않은 건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오명문 상담팀장은 “전화로 거래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전화번호가 업체에 알려짐으로써 추후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화 이용자는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를 받을 경우 반대로 자신의 번호에 항상 블로킹을 거는 서비스에선 제외된다. 이를 두고 반대론자들은 발신번호 제한과정을 어렵게 함으로써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의 사용자를 늘리려는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의 근본 취지는 전화폭력 방지에 있다. 박원석 부장은 통신회사들이 선전하는 취지와 실제 벌어지는 양상을 비교해 보라고 말한다. “솔직히 전화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몇이나 되는가. 이번 서비스 실시 이전에도 그들에겐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가 제공되어 왔다. 또한 이 서비스와 함께 실시되는 블로킹 서비스는 전화폭력을 줄이는 효과를 현저히 떨어뜨릴 것이다. 서비스의 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발신자들의 익명보장 권리만 훼손당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의 월 이용료는 2500 ~3500원. 4800만 전화가입자 중 2000만 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7개 통신사업자는 1000억원 이하를 투자하고도 연간 6000억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게 참여연대의 계산이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일본, 대만, 호주, 미국, 유럽 등 외국에서도 이미 시행되는 서비스이며 지난해 충분한 논의를 거친 끝에 입법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많은 시민들이 이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전화를 걸었으면 전화번호를 떳떳이 밝히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우리도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서비스 방식의 변화에 있다. 즉, 발신추적을 안 당하려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현재의 시범 서비스 방식보다는 발신추적 서비스를 받으려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박원석 부장은 “발신자의 익명성을 보장해 달라는 주장은 상대적으로 소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마이너리티’의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