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의 종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접한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불교? 기독교? 아니면 천주교? 대다수 사람들은 ‘종교가 없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인제 후보는 여러 토론회에 나가 “종교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 지금도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해 11월 말 어느 일요일. 이인제 위원은 서울 송파구 ‘평안교회’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인 이 교회를 이끄는 사람은 이위원의 경복고,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인 정도출 목사. 이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이위원은 거의 주마다 신도 300명 정도인 이 교회에 들러 예배를 봤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때는 신도로 등록하기도 했다.
정목사는 “작년 9월에 별세한 이위원 모친이 ‘꼭 예수를 믿으라’고 유언한 것이 이위원이 교회를 나오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이위원은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했으나 정목사가 감리교회 권사였던 모친의 유언을 따르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인 것 같다고 권유해 교회에 나왔다는 설명이다.
정목사는 “이위원이 기독교 신앙생활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기사만 데리고 겸손한 태도로 예배를 보러 오곤 해서 신자들에게서 좋은 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여기까지 보면 이위원은 기독교 신자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지난 98년 11월, 이위원은 부인 김은숙씨와 함께 경북 영천에 있는 은해사를 찾았다. 조지워싱턴대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하기 3일 전이었다. 이때 이위원 부부는 해인사와 은해사 주지를 지낸 뒤 은해사 조실로 있던 일타 스님에게서 정식으로 보살계를 받았다. 성관(性觀, 이위원), 진여심(眞如心, 김은숙씨) 등 법명도 받았다. 이쯤 되면 불교계에서는 당연히 불 신자로 본다.
이뿐이 아니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난 99년 12월5일 은해사에서는 미국 방문 중 세상을 떠난 일타 스님의 다비식이 치러졌다. 당시 국민회의 당무위원으로 있던 이위원은 이때 일타 스님의 유발상좌(有髮上佐 : 속가에 있는 제자) 대표 자격으로 조사를 했다. 이위원이 당시 다비식에 참석했던 2000여 명의 스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도 이 자리에서였다. 이때부터 불교계에는 “이위원은 불교신자”라는 말이 돌았고, 지금도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불교계의 한 소식통은 “이위원이 불교계와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지난 97년 대선 이후이며 부인 김은숙씨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선에서 낙선한 뒤 실의에 빠져 있던 이위원은 98년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김씨와 함께 서울 시내 큰 절 10여 곳을 돌았는데 신도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는 것. 때맞춰 이위원 주변 사람들도 “다음 대통령 선거는 영남이 관건이고, 영남을 잡기 위해서는 불교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하곤 했다.
어쨌든 최근에 ‘무신론자 이인제, 기독교 신자 되었다’는 기사를 일부 언론이 보도하면서 이위원 진영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 측근은 “불교계에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이위원 종교는 불교”라고 곤혹스러워했다. 또 다른 측근은 “지난 대선 때처럼 종교를 갖지 않고 절도 가고 교회도 가면 문제없는 것 아니냐”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한마디로 측근들도 혼란스런 모습이다.
이위원은 이번 일로 인해 독실한 불교 신자인 부인 김은숙씨와도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안교회 정목사는 “부인 김씨가 ‘교회에 그만 나가는 게 어떠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하며, “이위원은 불교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인제 위원은 대선가도에서만큼은 무신론자가 아닌 다종교론자인 듯하다.
지난해 11월 말 어느 일요일. 이인제 위원은 서울 송파구 ‘평안교회’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인 이 교회를 이끄는 사람은 이위원의 경복고,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인 정도출 목사. 이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이위원은 거의 주마다 신도 300명 정도인 이 교회에 들러 예배를 봤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때는 신도로 등록하기도 했다.
정목사는 “작년 9월에 별세한 이위원 모친이 ‘꼭 예수를 믿으라’고 유언한 것이 이위원이 교회를 나오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이위원은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했으나 정목사가 감리교회 권사였던 모친의 유언을 따르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인 것 같다고 권유해 교회에 나왔다는 설명이다.
정목사는 “이위원이 기독교 신앙생활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기사만 데리고 겸손한 태도로 예배를 보러 오곤 해서 신자들에게서 좋은 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여기까지 보면 이위원은 기독교 신자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지난 98년 11월, 이위원은 부인 김은숙씨와 함께 경북 영천에 있는 은해사를 찾았다. 조지워싱턴대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하기 3일 전이었다. 이때 이위원 부부는 해인사와 은해사 주지를 지낸 뒤 은해사 조실로 있던 일타 스님에게서 정식으로 보살계를 받았다. 성관(性觀, 이위원), 진여심(眞如心, 김은숙씨) 등 법명도 받았다. 이쯤 되면 불교계에서는 당연히 불 신자로 본다.
이뿐이 아니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난 99년 12월5일 은해사에서는 미국 방문 중 세상을 떠난 일타 스님의 다비식이 치러졌다. 당시 국민회의 당무위원으로 있던 이위원은 이때 일타 스님의 유발상좌(有髮上佐 : 속가에 있는 제자) 대표 자격으로 조사를 했다. 이위원이 당시 다비식에 참석했던 2000여 명의 스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도 이 자리에서였다. 이때부터 불교계에는 “이위원은 불교신자”라는 말이 돌았고, 지금도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불교계의 한 소식통은 “이위원이 불교계와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지난 97년 대선 이후이며 부인 김은숙씨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선에서 낙선한 뒤 실의에 빠져 있던 이위원은 98년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김씨와 함께 서울 시내 큰 절 10여 곳을 돌았는데 신도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는 것. 때맞춰 이위원 주변 사람들도 “다음 대통령 선거는 영남이 관건이고, 영남을 잡기 위해서는 불교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하곤 했다.
어쨌든 최근에 ‘무신론자 이인제, 기독교 신자 되었다’는 기사를 일부 언론이 보도하면서 이위원 진영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 측근은 “불교계에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이위원 종교는 불교”라고 곤혹스러워했다. 또 다른 측근은 “지난 대선 때처럼 종교를 갖지 않고 절도 가고 교회도 가면 문제없는 것 아니냐”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한마디로 측근들도 혼란스런 모습이다.
이위원은 이번 일로 인해 독실한 불교 신자인 부인 김은숙씨와도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안교회 정목사는 “부인 김씨가 ‘교회에 그만 나가는 게 어떠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하며, “이위원은 불교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인제 위원은 대선가도에서만큼은 무신론자가 아닌 다종교론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