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칠레간에 맺기로 한 자유무역협정(FTA)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농민단체들도 반발하고 있고 농민들의 이해를 외면할 수 없는 정치권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옆걸음질치고 있는 FTA 협상을 지켜보는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칠레 협상뿐만 아니라 이 문제가 앞으로 계속될 FTA 협상의 시금석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칠레와 자유무역협정 옆걸음질
한국이 첫번째 FTA 파트너로 칠레를 택한 이유를 들어보면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측이든 연구기관에서든 남미의 칠레를 파트너로 택한 것은 협정 체결에 따른 국내산업의 충격이 가장 작은 국가라는 점에서였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로 지리적 대칭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농수산물 중에서도 계절적으로 겹치는 분야가 비교적 적고 무역 규모도 우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가장 쉬운 스파링 파트너를 골라 연습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연습 경기를 치르기가 이렇게 버거워서야 본 경기를 어떻게 치르겠느냐는 게 통상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한-칠레 FTA 타결 이후에도 일본, 태국, 싱가포르 등 FTA 추진이 논의되고 있는 국가가 줄서서 대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수입 관세 철폐로 인해 손해를 보는 생산자 단체나 유관 부처의 반발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근 부시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한미 통상 현안에 대해서도 정부의 대응 능력은 아직 미지수다. 3월28일 정부 대표로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한미통상장관회담을 갖기로 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16일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미 무역대표부(USTR) 바버라 와이젤 부대표보 일행도 외교통상부뿐만 아니라 재경부 농림부 산자부 등 경제부처는 물론 식품의약품안전청까지 방문해 통상 관련 예비 현안을 샅샅이 훑었지만 정작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는 각 부처 면담 내용이나 현안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한 미대사관에서 각 부처별로 일정과 토의 주제를 통보하거나 협의하는 바람에 외교통상부가 세부 사항까지는 알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부대표보 일행의 방한을 준비한 주한 미대사관측은 이들의 일정에 대해 비공개 원칙을 고수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이 ‘통상업무의 산자부 이관론’을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산자부는 최근 반도체나 철강 분야에서 발생하는 통상 문제에 적극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통상협상팀을 태스크포스 형태로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최근 통상 현안과 관련한 일부 난맥상에 대해 통상전문가들은 외교통상부의 조정 기능을 의문시하고 있다. 통상 이슈는 워낙 많은 부처가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정부 내에서의 조정 기능이 중요시되는 분야다. 자동차나 조선, 반도체 분쟁 등은 산업자원부에서 관할해야 하고 쌀이나 과일 등 농산물 분야에 관한 한 농림부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서비스 분야나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는 정보통신부나 문화관광부도 예외일 수가 없다. 이렇게 많은 부처가 관련되는 문제인 만큼 실제 통상 분쟁이 발생하거나 관련 협상을 진행할 때 각 부처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대표단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 관례다. 정부부처간의 팀워크가 중요하고 주무 부처의 조정 기능이 협상의 성과를 좌우한다는 말이다.
현재 통상교섭본부장은 대외적으로는 통상장관(Minister for trade)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급여나 국무회의 참석 여부 등에서 타 부처 장관과 같은 레벨로 보기 어려워 부처간 현안에 조정 권한을 갖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황두연 신임 통상교섭본부장은 “통상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경제정책조정회의가 열리고 정무직 장관급에 해당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통상교섭본부장의 직급 때문만은 아니지만 정부 부처 내에서도 통상교섭본부의 리더십이 다른 부처들에 먹히고 있다고 보는 시각은 별로 없는 편이다. 심지어 통상교섭본부 주변에서는 “통상 현안과 관련한 관계부처 회의를 소집하면 과장급이나 사무관급도 제대로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간 통상전문가들은 이를 통상교섭본부의 리더십으로 연결해 해석하고 있다. 이화여대 최병일 교수(경제학)는 “통상 문제를 특정부처에 맡겨 놓으면 생산자 논리에 따라 통상 이슈가 왜곡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조정기능을 갖는 통상교섭본부를 둔 것인데 현재는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박노형 교수(통상법)도 “정부 부처는 부처끼리 딴 소리를 내고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판단만 앞세우는 상황에서 통상문제에 대한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부분의 통상 전문가들은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한미간 통상 현안을 놓고 ‘냄비식’으로 대처하는 것보다는 다자 차원의 통상 마찰 대응에 주력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박노형 교수는 통상 이슈가 국내에서 ‘정치화’하는 것을 우려했다. 박교수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을 예로 들어 “국가간 통상협상에서는 농업과 공업, 서비스 등 전체를 봐야 하는데 특정 분야에만 집착하면 실익을 얻지 못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국대 마재신 교수(국제경제학)도 “WTO 출범 이후 통상 이슈가 힘의 논리를 기초로 한 양국간 정치적 파워게임에서 다자간 규범에 의한 해결로 옮겨진 만큼 대미 로비 등이 중요시되던 90년대 초반까지의 상황과는 달리 규범 위주의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칠레 FTA에 초반부터 참여해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인교 박사는 “대외적인 협상보다도 국내의 단일 협상안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는 말로 통상분야에 대한 정부의 대응태세에 손발이 맞지 않는 현상을 지적하기도 했다. 정박사는 “전례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어렵게 추진되었던 한-칠레 FTA가 무산되면 앞으로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상 현안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다룰 국내 전문가들이 부족한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당초 통상 업무를 외교부로 일원화하면서 통상교섭본부를 만들 당시 외교부 내에는 변호사, 학자 등 12명의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법률지원팀이 구성돼 활동했으나 대부분의 민간 전문가들이 열악한 대우 등을 견디지 못하고 계약기간만 채우고 나가버려 현재는 5명만 남아 있는 형편이다. 통상교섭본부는 ‘범정부 차원에서 민간 전문가들에 대한 급여 체계 등이 재검토되어야만 해결될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 통상 전문가는 “민간 전문가들이 외교부 내 공무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소외돼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부족이라는 지적에 대해 통상교섭본부측은 “본부와 재외공관의 서기관급 이상 경제-통상 인력이 산자부-재경부 전입 인력을 포함해 90여명에 이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민간 통상 전문가들은 외교부 내에서 정무 분야와 통상 분야를 오가기도 하고, 특히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고질적 인사 패턴 때문에 통상 전문 인력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통상 마찰이 정치적 논리가 게재된 양국간 협상의 무대를 떠나 WTO와 같은 다자간 협상의 무대로 확산될수록, 정확한 국제 규범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 무대에서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칠레와 자유무역협정 옆걸음질
한국이 첫번째 FTA 파트너로 칠레를 택한 이유를 들어보면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측이든 연구기관에서든 남미의 칠레를 파트너로 택한 것은 협정 체결에 따른 국내산업의 충격이 가장 작은 국가라는 점에서였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로 지리적 대칭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농수산물 중에서도 계절적으로 겹치는 분야가 비교적 적고 무역 규모도 우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가장 쉬운 스파링 파트너를 골라 연습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연습 경기를 치르기가 이렇게 버거워서야 본 경기를 어떻게 치르겠느냐는 게 통상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한-칠레 FTA 타결 이후에도 일본, 태국, 싱가포르 등 FTA 추진이 논의되고 있는 국가가 줄서서 대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수입 관세 철폐로 인해 손해를 보는 생산자 단체나 유관 부처의 반발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근 부시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한미 통상 현안에 대해서도 정부의 대응 능력은 아직 미지수다. 3월28일 정부 대표로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한미통상장관회담을 갖기로 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16일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미 무역대표부(USTR) 바버라 와이젤 부대표보 일행도 외교통상부뿐만 아니라 재경부 농림부 산자부 등 경제부처는 물론 식품의약품안전청까지 방문해 통상 관련 예비 현안을 샅샅이 훑었지만 정작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는 각 부처 면담 내용이나 현안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한 미대사관에서 각 부처별로 일정과 토의 주제를 통보하거나 협의하는 바람에 외교통상부가 세부 사항까지는 알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부대표보 일행의 방한을 준비한 주한 미대사관측은 이들의 일정에 대해 비공개 원칙을 고수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이 ‘통상업무의 산자부 이관론’을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산자부는 최근 반도체나 철강 분야에서 발생하는 통상 문제에 적극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통상협상팀을 태스크포스 형태로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최근 통상 현안과 관련한 일부 난맥상에 대해 통상전문가들은 외교통상부의 조정 기능을 의문시하고 있다. 통상 이슈는 워낙 많은 부처가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정부 내에서의 조정 기능이 중요시되는 분야다. 자동차나 조선, 반도체 분쟁 등은 산업자원부에서 관할해야 하고 쌀이나 과일 등 농산물 분야에 관한 한 농림부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서비스 분야나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는 정보통신부나 문화관광부도 예외일 수가 없다. 이렇게 많은 부처가 관련되는 문제인 만큼 실제 통상 분쟁이 발생하거나 관련 협상을 진행할 때 각 부처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대표단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 관례다. 정부부처간의 팀워크가 중요하고 주무 부처의 조정 기능이 협상의 성과를 좌우한다는 말이다.
현재 통상교섭본부장은 대외적으로는 통상장관(Minister for trade)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급여나 국무회의 참석 여부 등에서 타 부처 장관과 같은 레벨로 보기 어려워 부처간 현안에 조정 권한을 갖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황두연 신임 통상교섭본부장은 “통상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경제정책조정회의가 열리고 정무직 장관급에 해당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통상교섭본부장의 직급 때문만은 아니지만 정부 부처 내에서도 통상교섭본부의 리더십이 다른 부처들에 먹히고 있다고 보는 시각은 별로 없는 편이다. 심지어 통상교섭본부 주변에서는 “통상 현안과 관련한 관계부처 회의를 소집하면 과장급이나 사무관급도 제대로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간 통상전문가들은 이를 통상교섭본부의 리더십으로 연결해 해석하고 있다. 이화여대 최병일 교수(경제학)는 “통상 문제를 특정부처에 맡겨 놓으면 생산자 논리에 따라 통상 이슈가 왜곡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조정기능을 갖는 통상교섭본부를 둔 것인데 현재는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박노형 교수(통상법)도 “정부 부처는 부처끼리 딴 소리를 내고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판단만 앞세우는 상황에서 통상문제에 대한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부분의 통상 전문가들은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한미간 통상 현안을 놓고 ‘냄비식’으로 대처하는 것보다는 다자 차원의 통상 마찰 대응에 주력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박노형 교수는 통상 이슈가 국내에서 ‘정치화’하는 것을 우려했다. 박교수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을 예로 들어 “국가간 통상협상에서는 농업과 공업, 서비스 등 전체를 봐야 하는데 특정 분야에만 집착하면 실익을 얻지 못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국대 마재신 교수(국제경제학)도 “WTO 출범 이후 통상 이슈가 힘의 논리를 기초로 한 양국간 정치적 파워게임에서 다자간 규범에 의한 해결로 옮겨진 만큼 대미 로비 등이 중요시되던 90년대 초반까지의 상황과는 달리 규범 위주의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칠레 FTA에 초반부터 참여해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인교 박사는 “대외적인 협상보다도 국내의 단일 협상안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는 말로 통상분야에 대한 정부의 대응태세에 손발이 맞지 않는 현상을 지적하기도 했다. 정박사는 “전례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어렵게 추진되었던 한-칠레 FTA가 무산되면 앞으로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상 현안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다룰 국내 전문가들이 부족한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당초 통상 업무를 외교부로 일원화하면서 통상교섭본부를 만들 당시 외교부 내에는 변호사, 학자 등 12명의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법률지원팀이 구성돼 활동했으나 대부분의 민간 전문가들이 열악한 대우 등을 견디지 못하고 계약기간만 채우고 나가버려 현재는 5명만 남아 있는 형편이다. 통상교섭본부는 ‘범정부 차원에서 민간 전문가들에 대한 급여 체계 등이 재검토되어야만 해결될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 통상 전문가는 “민간 전문가들이 외교부 내 공무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소외돼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부족이라는 지적에 대해 통상교섭본부측은 “본부와 재외공관의 서기관급 이상 경제-통상 인력이 산자부-재경부 전입 인력을 포함해 90여명에 이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민간 통상 전문가들은 외교부 내에서 정무 분야와 통상 분야를 오가기도 하고, 특히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고질적 인사 패턴 때문에 통상 전문 인력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통상 마찰이 정치적 논리가 게재된 양국간 협상의 무대를 떠나 WTO와 같은 다자간 협상의 무대로 확산될수록, 정확한 국제 규범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 무대에서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