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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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폭소 하모니 “배꼽 조심”

  • 입력2005-03-18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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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자와 폭소 하모니 “배꼽 조심”
    대학로에서 진정으로 유쾌하고 격조 있는 코미디를 만나기란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때로 TV 코미디를 그대로 옳겨놓은 것 같은 작품들에 관객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몰리긴 하지만 대개 저급한 파스(Farce) 수준이다.

    이상우는 우리 연극계에서 드물게 보는 희극의 귀재다. 그동안 그가 만들었던 ‘칠수와 만수’ ‘늙은 도둑 이야기’ ‘아파트의 류시스트라테’ ‘비언소‘ ‘마르고 닳도록’ 등은 모두 관객들에게 포복절도할 재미와 함께 만만치 않은 현실 풍자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선사했다. 이번에 직접 쓰고 연출한 극단 차이무의 ‘돼지 사냥’(2월11일까지, 바탕골 소극장)에서도 그의 희극적 재능은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연극이 시작되면 어둠 속에서 담뱃불 두 개만이 반짝거린다. ‘서부리’ 마을에서 달아난 씨돼지를 잡으려고 천씨와 방씨가 캄캄한 밤에 산속을 헤매고 있다. 이 마을은 돼지 식육식당들이 몰려 있는 곳이고 달아난 돼지에는 주인 할매의 포상금이 걸려 있다.

    천씨와 방씨는 돼지를 찾던 중에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고 마을 지서에 신고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간 뒤 지서장 앞에 ‘수상한 사람’이 직접 나타나 자신은 서울에서 특수 임무를 띠고 내려온 비밀 요원임을 밝힌다. 여기서부터 이 작품은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물의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이따금 무시무시한 칼을 들고 객석을 누비며 돼지를 찾아내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밀도살꾼 할매의 존재는 공포감마저 조성한다.

    ‘수상한 사람’의 존재와 할매가 극을 팽팽한 긴장으로 끌어당기는 한편으로 군의원 출마를 앞두고 벌어지는 신회장과 구회장의 부끄러운 행각들은 웃음의 기폭제가 되며 극의 흐름을 적당히 이완해준다. 적대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제각기 지서장에게 뇌물 공세를 펼치며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려 한다. 또 티켓 다방 종업원인 ‘가락이’를 사이에 두고 치정관계를 형성하며 이를 이용해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려 한다. 퇴임을 앞둔 대한민국 최고참 만년 경사인 지서장도 가락이의 단골 손님이다.



    ‘돼지 사냥’의 의미는, 일명 돼지로 불리는 할매의 막내아들이 부각되면서 중층화된다. 전과자인 할매 아들이 교도소에 가기 전 엄청나게 큰 가방을 들고 마을에 나타난 적이 있다는 정보는 그 가방이 사라진 돼지 뱃속에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비약적 상상을 낳는다. 할매에게나 천씨와 방씨 모두에게 그 돼지를 찾는 일은 아주 절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맹렬한 돼지 사냥 와중에 뜻밖에도 티켓다방 가락이가 희생된다. 가락이는 지서장이 맡긴 현금을 챙겨 도망가는 중이었다.

    이 연극은 ‘서부리’라는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와 한탕주의를 적절히 풍자하면서 돼지에 걸린 포상금이나 혹시 돼지 뱃속에 들어 있을지 모르는 큰 돈, 또는 뇌물로 모아진 검은 돈 등을 노리는 서민들의 황당한 꿈과 서글픈 현실을 묘하게 접합하고 있다.

    천씨와 방씨역을 맡은 김승욱과 이대연은 군의원 출마자인 신회장과 구회장으로 변신하는 1인 2역을 능란하게 수행한다. 60대 할매와 20대 티켓다방 종업원을 오가는 전이다의 변신도 감쪽같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푸근한 이미지이지만 짭짤한 뇌물도 마다하지 않고 가락이에게 눈물겨운 순정을 바치는 지서장역의 김세동을 눈여겨봐야 한다. 만담처럼 오가는 속도감 있는 대사와 코미디 특유의 적당히 과장된 동작들을 절묘하게 배합해 이상우식 코미디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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