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캐스터들과 해설가들은 재치있는 입담과 반짝이는 비유로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1월27일 홍콩에서 열린 4개국 축구대회 한국-파라과이전을 중계하던 송재익 캐스터도 벤치에서 턱을 괴고 앉아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는 히딩크 감독을 두고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같군요”라며 너스레를 떨어 많은 시청자들을 웃겼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수십년간 한국을 따라다니던 ‘1승 망령’을 쫓아내고 16강, 더 나아가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두기 위해 한 달에 1억원이 넘는 돈을 주고 모셔온 거스 히딩크 감독(55). 그는 항상 진지하게 생각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견지한다. 물론 지금까지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한국 감독들도, 공부하는 감독은 드물었지만 생각하는 감독은 많았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까지의 한국 감독은 혼자 생각할 뿐,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철저하게 ‘생각하는 선수’를 양성하고 있다. 주장 홍명보도 울산 전지훈련이 끝난 뒤 “약 2주간 훈련했는데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플레이를 하다간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기 십상이었다”며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어 준다”고 밝힌 바 있다.
히딩크가 ‘생각하는 플레이’를 지향하는 것은 야생마 같은 자기 자신만의 플레이를 자제하고 팀플레이에 맞춰야 한다는 지론에 따른 것.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은 전 포지션에 걸쳐 매우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인상적이지만 이런 면이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스스로 흥분해 체력을 다 소모하고, 자기 통제가 안 돼 안정된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번 홍콩 4개국 대회(1월24∼27일)를 통해 히딩크는 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우선 한국 선수들의 특성을 심도있게 파악했다. 남발하는 패스미스, 문전에서의 골결정력 부족, 맨투맨 방어에 길들여 있는 수비수 등등.
히딩크는 홍콩 4개국 대회를 위해 출국 직전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울산 훈련을 통해 한국 선수들이 개인기술에 있어선 별로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며 또한 “포백 시스템은 선수들이 각 소속 팀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비수들이 이 시스템에 잘 적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히딩크는 이번 홍콩 4개국대회 두 번의 경기를 지켜본 뒤 이 말들을 다시 주워담고 싶은 마음이 절박했을 것으로 보인다.
빅게임에서 늘 상대 수비수 한 명 제치지 못해 공을 안고 넘어지던 한국 포워드가 히딩크 감독이 부임했다고 시원하게 돌파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또한 한국 프로팀에서 사용하는 포백 시스템이 진정한 공격축구를 위한 시스템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선수들이 포백 시스템의 맛을 안다고도 볼 수 없다.
히딩크는 두 번의 공식 경기를 통해 이런 한국축구의 씁쓸한 한계를 다소나마 경험했다. PSV 아인트호벤과 발렌시아, 레알 마드리드, 네덜란드 대표팀 등 최강의 클럽과 대표팀을 맡아 조련한 그가 한국 축구를 맡은 것은 어떻게 비유하자면 마이클 잭슨이 2류 백댄서들과 한 팀을 이뤄 콘서트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동안 자신보다 더욱 더 자신의 전술을 잘 소화해내는 초특급 선수들과 한 팀을 이뤄 우승을 맛본 그가 한국대표팀을 이끈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감독에게도 그렇고 선수에게도 그렇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축구의 현실을 아는 것이다. 그동안 대표팀과 프로팀에서 많은 외국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안양 LG의 조광래 감독은 “이전의 외국인 감독이 한국 선수들의 한계를 이해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며 “월드컵이 이제 채 5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히딩크가 이런 전철을 반복해선 안 된다. 한국인 코치와 기술위원들이 한국 선수들이 자라온 현실과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해줘야 히딩크가 그 눈높이에서 수위조절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 열악한 아시아 자원을 놓고 판을 짜보지 않은 히딩크 감독에게 현실 인식은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이런 현실 인식의 발판 속에 히딩크가 생각하는 한국형 4-4-2 전술이 조금씩 성숙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히딩크가 그동안 구사해온 4-4-2 전술은 화려한 개인기량을 십분 활용, 공세시 2-4-4로 화끈한 융단폭격을 가하는 모습을 띠어왔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경우에도 양쪽 윙백이 쉴새없이 오버래핑을 나가면서 최전방 공격까지 가담했고 클루이베르트 바로 밑에 위치한 베르캄프와 수비형 미드필더인 ‘핏불’ 다비즈, 시도르프, 데부르 등이 중앙을 완전히 장악하며 경기의 주도권을 틀어쥐었다. 수세시엔 탁월한 중앙 수비수들이 시간을 지연하고 수비형 미드필더가 커버링을 하는 사이 양 윙백들이 빠른 리턴으로 제자리를 찾는 모양새를 보였다.
히딩크의 이런 기본 전술 개념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한국팀은 개인기와 전술 이해능력이 모자란 관계로 양 사이드가 사정없이 뚫리며 노르웨이와의 첫 경기에서 3실점했고 파라과이전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지금까지 히딩크의 전술을 잘 이해하고 나름대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 선수로는 이영표와 고종수 홍명보 등 세 명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빠른 위치 선점과 확실한 개인기, 번뜩이는 두뇌플레이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특히 지난 허정무호에서 퇴출당했던 고종수의 부활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나름대로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관리에 실패했던 고종수는 지금까지 늘 ‘찬밥’이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있는 이상 고종수의 돌출행동도 상당 부분 상쇄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앙팡 테리블’이란 별명도 알고 있고 울산 전지훈련에서 윗창이 없는 실내화를 질질 끌며 훈련버스에 오르는 그의 모습도 눈여겨보았다. 유니폼 통일에서부터 핸드폰 사용 수칙까지 엄격한 규칙을 생명으로 여기는 히딩크 감독의 매서운 카리스마는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사실. 히딩크는 발렌시아 감독 시절 망나니 호마리우가 매번 미팅시간 1분 전에 등장, 기다리는 감독과 주전 선수들을 골탕먹이자 다음 미팅시간엔 자신의 시계를 조작, 자신의 시간보다 늦게 들어온 호마리우를 미팅룸에서 쫓아버리고 경기 멤버에서 제외하는 등 초강수를 두어 호마리우를 ‘거들먹거리는 스타’에서 ‘순종하는 양’으로 만든 일화가 있다.
세계스타를 주무른 그가 한국 선수들을 일관성있게 통솔한다는 것은 어쩌면 ‘빈 골문에 골넣기’보다 더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GK 김병지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후반전 김용대로 바꿔버리는 결단력으로 미뤄보더라도 ‘전술을 확실히 소화해내는 기계적인 강한 선수를 육성한다’는 그의 자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고 포지션의 역량에 맞는 한국형 전술을 빨리 개발,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유기체처럼 모든 선수들이 조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유로 2000에서 예선전에 탈락한 벨기에가 공동개최국인 네덜란드의 선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축제의 주인공’에서 밀려나는 비참함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경기력이 월드컵 성공의 절반을 담보한다. 히딩크호가 빨리 제 색깔을 찾고 곧은 길로 나가야 21세기 스포츠 문화의 첫 봉화대인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는 것이다.
‘더치맨’ 히딩크가 살아야 88올림픽 이후 침체된 세계 속에서의 한국 위상을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1월27일 홍콩에서 열린 4개국 축구대회 한국-파라과이전을 중계하던 송재익 캐스터도 벤치에서 턱을 괴고 앉아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는 히딩크 감독을 두고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같군요”라며 너스레를 떨어 많은 시청자들을 웃겼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수십년간 한국을 따라다니던 ‘1승 망령’을 쫓아내고 16강, 더 나아가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두기 위해 한 달에 1억원이 넘는 돈을 주고 모셔온 거스 히딩크 감독(55). 그는 항상 진지하게 생각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견지한다. 물론 지금까지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한국 감독들도, 공부하는 감독은 드물었지만 생각하는 감독은 많았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까지의 한국 감독은 혼자 생각할 뿐,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철저하게 ‘생각하는 선수’를 양성하고 있다. 주장 홍명보도 울산 전지훈련이 끝난 뒤 “약 2주간 훈련했는데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플레이를 하다간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기 십상이었다”며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어 준다”고 밝힌 바 있다.
히딩크가 ‘생각하는 플레이’를 지향하는 것은 야생마 같은 자기 자신만의 플레이를 자제하고 팀플레이에 맞춰야 한다는 지론에 따른 것.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은 전 포지션에 걸쳐 매우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인상적이지만 이런 면이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스스로 흥분해 체력을 다 소모하고, 자기 통제가 안 돼 안정된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번 홍콩 4개국 대회(1월24∼27일)를 통해 히딩크는 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우선 한국 선수들의 특성을 심도있게 파악했다. 남발하는 패스미스, 문전에서의 골결정력 부족, 맨투맨 방어에 길들여 있는 수비수 등등.
히딩크는 홍콩 4개국 대회를 위해 출국 직전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울산 훈련을 통해 한국 선수들이 개인기술에 있어선 별로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며 또한 “포백 시스템은 선수들이 각 소속 팀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비수들이 이 시스템에 잘 적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히딩크는 이번 홍콩 4개국대회 두 번의 경기를 지켜본 뒤 이 말들을 다시 주워담고 싶은 마음이 절박했을 것으로 보인다.
빅게임에서 늘 상대 수비수 한 명 제치지 못해 공을 안고 넘어지던 한국 포워드가 히딩크 감독이 부임했다고 시원하게 돌파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또한 한국 프로팀에서 사용하는 포백 시스템이 진정한 공격축구를 위한 시스템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선수들이 포백 시스템의 맛을 안다고도 볼 수 없다.
히딩크는 두 번의 공식 경기를 통해 이런 한국축구의 씁쓸한 한계를 다소나마 경험했다. PSV 아인트호벤과 발렌시아, 레알 마드리드, 네덜란드 대표팀 등 최강의 클럽과 대표팀을 맡아 조련한 그가 한국 축구를 맡은 것은 어떻게 비유하자면 마이클 잭슨이 2류 백댄서들과 한 팀을 이뤄 콘서트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동안 자신보다 더욱 더 자신의 전술을 잘 소화해내는 초특급 선수들과 한 팀을 이뤄 우승을 맛본 그가 한국대표팀을 이끈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감독에게도 그렇고 선수에게도 그렇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축구의 현실을 아는 것이다. 그동안 대표팀과 프로팀에서 많은 외국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안양 LG의 조광래 감독은 “이전의 외국인 감독이 한국 선수들의 한계를 이해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며 “월드컵이 이제 채 5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히딩크가 이런 전철을 반복해선 안 된다. 한국인 코치와 기술위원들이 한국 선수들이 자라온 현실과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해줘야 히딩크가 그 눈높이에서 수위조절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 열악한 아시아 자원을 놓고 판을 짜보지 않은 히딩크 감독에게 현실 인식은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이런 현실 인식의 발판 속에 히딩크가 생각하는 한국형 4-4-2 전술이 조금씩 성숙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히딩크가 그동안 구사해온 4-4-2 전술은 화려한 개인기량을 십분 활용, 공세시 2-4-4로 화끈한 융단폭격을 가하는 모습을 띠어왔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경우에도 양쪽 윙백이 쉴새없이 오버래핑을 나가면서 최전방 공격까지 가담했고 클루이베르트 바로 밑에 위치한 베르캄프와 수비형 미드필더인 ‘핏불’ 다비즈, 시도르프, 데부르 등이 중앙을 완전히 장악하며 경기의 주도권을 틀어쥐었다. 수세시엔 탁월한 중앙 수비수들이 시간을 지연하고 수비형 미드필더가 커버링을 하는 사이 양 윙백들이 빠른 리턴으로 제자리를 찾는 모양새를 보였다.
히딩크의 이런 기본 전술 개념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한국팀은 개인기와 전술 이해능력이 모자란 관계로 양 사이드가 사정없이 뚫리며 노르웨이와의 첫 경기에서 3실점했고 파라과이전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지금까지 히딩크의 전술을 잘 이해하고 나름대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 선수로는 이영표와 고종수 홍명보 등 세 명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빠른 위치 선점과 확실한 개인기, 번뜩이는 두뇌플레이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특히 지난 허정무호에서 퇴출당했던 고종수의 부활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나름대로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관리에 실패했던 고종수는 지금까지 늘 ‘찬밥’이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있는 이상 고종수의 돌출행동도 상당 부분 상쇄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앙팡 테리블’이란 별명도 알고 있고 울산 전지훈련에서 윗창이 없는 실내화를 질질 끌며 훈련버스에 오르는 그의 모습도 눈여겨보았다. 유니폼 통일에서부터 핸드폰 사용 수칙까지 엄격한 규칙을 생명으로 여기는 히딩크 감독의 매서운 카리스마는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사실. 히딩크는 발렌시아 감독 시절 망나니 호마리우가 매번 미팅시간 1분 전에 등장, 기다리는 감독과 주전 선수들을 골탕먹이자 다음 미팅시간엔 자신의 시계를 조작, 자신의 시간보다 늦게 들어온 호마리우를 미팅룸에서 쫓아버리고 경기 멤버에서 제외하는 등 초강수를 두어 호마리우를 ‘거들먹거리는 스타’에서 ‘순종하는 양’으로 만든 일화가 있다.
세계스타를 주무른 그가 한국 선수들을 일관성있게 통솔한다는 것은 어쩌면 ‘빈 골문에 골넣기’보다 더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GK 김병지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후반전 김용대로 바꿔버리는 결단력으로 미뤄보더라도 ‘전술을 확실히 소화해내는 기계적인 강한 선수를 육성한다’는 그의 자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고 포지션의 역량에 맞는 한국형 전술을 빨리 개발,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유기체처럼 모든 선수들이 조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유로 2000에서 예선전에 탈락한 벨기에가 공동개최국인 네덜란드의 선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축제의 주인공’에서 밀려나는 비참함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경기력이 월드컵 성공의 절반을 담보한다. 히딩크호가 빨리 제 색깔을 찾고 곧은 길로 나가야 21세기 스포츠 문화의 첫 봉화대인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는 것이다.
‘더치맨’ 히딩크가 살아야 88올림픽 이후 침체된 세계 속에서의 한국 위상을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