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에 ‘조선족타운’이 형성되고 있다. 500여m 도로를 따라 중국어로 쓰인 업소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대부분 조선족이다. 수 년 전 구로공단으로 조선족이 몰리면서 조선족의 집단거주지가 된 이 지역은 공단 특수가 시들해진 요즘 국내 체류 조선족의 ‘생활-문화의 중심지’로 바뀌게 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한국에 온 조선족이 처음 찾는 곳이 이곳이며, 한국을 떠나는 조선족이 마지막으로 거치는 곳도 이곳이다. 많은 조선족은 “전국을 떠돌며 돈벌이하지만 ‘자러 오는 곳’은 여기”라며 이 동네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가리봉의 조선족타운은 국내 체류 13만 조선족에게 ‘제2의 옌볜’이 됐다.
조선족 상대 식당·노래방 등 성업
11월22일 밤 11시 가리봉1동 먹자골목 안엔 조선족을 상대하는 30여개 식당, 식료품점, 노래방이 성업중이었다. 식당과 식료품점의 상호는 모두 중국어로 적혀 있어 일반 시민들은 읽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노래방마다 ‘최신 중국가요’를 많이 들여놨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중국노래방’ 주인 민원식씨는 “가리봉동은 안산과 함께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어 조선족타운으로 불리기도 한다”면서 이 동네의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중국식품점에선 옌볜에서 먹던 거의 모든 재료를 구할 수 있다. 우리 집은 단골고객들의 요구로 중국가요를 1800곡에서 4000곡으로 늘려야 했다. 도로를 따라 형성된 옌볜풍 업소들은 한국에선 유일한 조선족을 위한 문화-생활공간인 셈이다. 이 지역의 월세 10만원 안팎 쪽방, 닭장집들은 서울 외곽과 수도권 도시에서 일하는 조선족에겐 좋은 위치와 가격이다. 그래서 업소 배후로 광범위하게 조선족의 거주지가 펼쳐진다.”
민씨에 따르면 비어 있던 쪽방들은 지난 추석 이후 조선족이 몰려오면서 95%까지 방이 찼다고 한다. 그는 “가리봉1동에 1만명, 독산동 일원까지 합치면 대략 3만명의 조선족이 이 일대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가리봉 조선족타운엔 집게로 인형을 끄집어내는 게임기나 트로피오락실들이 한 집 건너 한 곳씩 있다. 특별한 여가생활이 없는 조선족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인근 가리봉시장엔 조선족의 주식인 깐떠우부(건두부)를 파는 상인들이 많다. 공단5거리를 사이에 두고 ‘중국동포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식품점 주인은 “이 동네 조선족은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조선족만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조선족타운의 생활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자는 ‘풍무뀀점’이라는 음식점에서 조선족과 자리를 함께했다. 자정 무렵임에도 식당은 조선족 손님들로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옌볜에서 먹던 그대로 ‘양러우촤’(양꼬치구이)나 ‘뉴티찔’(소굽요리) 안주에 ‘코우뻬이’(컵술)를 걸치는 게 이곳 손님들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조선족 주인 허람윤씨(여·31)가 말했다. 조선족은 “함께 모여 살면 두 가지 큰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으며, 같이 고생하는 동향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주인 허씨가 대표적 사례다. 그녀는 이 동네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중의학과를 졸업한 뒤 선양에서 의사로 일했던 그녀는 98년 한국으로 건너와 국제결혼-이혼의 과정을 거치며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3년여 간 식당종업원생활을 전전하다 지난 9월 가리봉동 조선족타운에서 식당을 열었다. 두 달이 지난 요즘 그녀의 식당은 이곳에서 ‘사랑방’ 역할을 한다. 한국에 첫발을 내딛는 많은 조선족이 이 식당에 찾아와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 “오랜 한국생활 끝에 자립한 ‘노하우’를 얻고 싶어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서울에서 방을 얻는 방법도 몰라 숙소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혼자 떨어져 사는 것보다 가리봉동에서 다른 조선족과 함께 사는 게 낫다고 권한다.”(허씨)
이 동네의 대다수 조선족 대상 업소들은 이처럼 ‘컨설턴트’ 역할을 겸한다.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90%는 불법체류자들이다. 불법체류 조선족을 유료 회원으로 받아 의료서비스를 해주는 기관이 서울시내에 두 군데 있지만 조선족은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려 잘 찾지 않는다. 허씨는 중국에서 배운 ‘의술’로 조선족을 알음 알음으로 치료해 주고 있는데 호응이 좋다고 한다. 그녀는 가게 종업원, 요리사를 모두 조선족으로 채용했다. 이 동네 노래방 종업원들도 대부분 조선족이다. 조선족 장모씨(35)는 “건설현장, 공장 등에서 무리를 지어 일하는 조선족의 특성상 정보와 사람이 모이는 가리봉동에 있으면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가 수월하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조선족 김모씨(28)는 조선족타운에서 난생 처음 ‘미팅’을 해봤다. 한 조선족이 옌볜에서 온 여성들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 김씨 일행은 이곳의 조선족이 자주 찾는 인근 독산동 K나이트클럽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고 한다. 김씨는 자신의 미팅 상대와 최근 영등포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불안한 불법체류생활의 와중에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직 꿈만 같다. 그는 아내와 함께 고향에 다시 돌아갈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그는 “가리봉동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대다수 조선족의 생활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절대 다수가 임시직에 종사하는데 월 평균 수입은 대략 80만원에 그친다. 그나마 사기를 당해 떼이거나 요즘엔 일을 하지 못해 공치는 날이 많다. 이처럼 사정이 어려우므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미 한국에 올 때 많은 돈을 쓴 상황이어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건설업체, 제조업체의 불황은 일용직 근로자생활을 주로 하는 조선족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고 있다. 한 조선족은 “근거는 가리봉동에 두고, 일감을 찾아 하루는 용인의 아파트 공사현장으로, 다음날은 의정부로, 시화공단으로 쫓아다닌다. 그러나 요즘엔 일자리가 없어 술만 마시는 날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 여성 진모씨(30)는 독산동 단란주점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가리봉동에 사는 조선족 여성 대부분이 유흥업 종사자”라고 단언했다. 진씨에 따르면 서울 시흥대로변을 따라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유흥가에 조선족 여성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다. 특히 시흥네거리 주변 술집에선 조선족 접대부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접대부 하겠다는 여성은 없다. 그러나 서울에서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결국 그런 길로 빠진다.”(진씨)
이 지역을 관할하는 가산파출소 관계자는 “조선족은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가리봉동에서 불법체류자 검거활동이 강화되는 것과 같은 특별한 조치는 나오지 않는다. 조선족은 이 점에 대해 “한국정부에 고맙다”는 말을 한다. 허람윤씨는 “대다수 조선족은 지역 여론이 나빠지면 단속이 강화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한다”고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가리봉동의 조선족타운에선 거리를 지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두 ‘영화처럼 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 있다. 조선족 진씨는 “극적으로 잡히지는 않았지만 황해를 건널 때 굳게 지녔던 꿈은 어디로 갔는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추위 탓인가, 오늘따라 유독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가리봉동 거리엔 각박한 현실이 주는 긴장과 고향을 향한 향수만이 흐르고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한국에 온 조선족이 처음 찾는 곳이 이곳이며, 한국을 떠나는 조선족이 마지막으로 거치는 곳도 이곳이다. 많은 조선족은 “전국을 떠돌며 돈벌이하지만 ‘자러 오는 곳’은 여기”라며 이 동네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가리봉의 조선족타운은 국내 체류 13만 조선족에게 ‘제2의 옌볜’이 됐다.
조선족 상대 식당·노래방 등 성업
11월22일 밤 11시 가리봉1동 먹자골목 안엔 조선족을 상대하는 30여개 식당, 식료품점, 노래방이 성업중이었다. 식당과 식료품점의 상호는 모두 중국어로 적혀 있어 일반 시민들은 읽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노래방마다 ‘최신 중국가요’를 많이 들여놨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중국노래방’ 주인 민원식씨는 “가리봉동은 안산과 함께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어 조선족타운으로 불리기도 한다”면서 이 동네의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중국식품점에선 옌볜에서 먹던 거의 모든 재료를 구할 수 있다. 우리 집은 단골고객들의 요구로 중국가요를 1800곡에서 4000곡으로 늘려야 했다. 도로를 따라 형성된 옌볜풍 업소들은 한국에선 유일한 조선족을 위한 문화-생활공간인 셈이다. 이 지역의 월세 10만원 안팎 쪽방, 닭장집들은 서울 외곽과 수도권 도시에서 일하는 조선족에겐 좋은 위치와 가격이다. 그래서 업소 배후로 광범위하게 조선족의 거주지가 펼쳐진다.”
민씨에 따르면 비어 있던 쪽방들은 지난 추석 이후 조선족이 몰려오면서 95%까지 방이 찼다고 한다. 그는 “가리봉1동에 1만명, 독산동 일원까지 합치면 대략 3만명의 조선족이 이 일대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가리봉 조선족타운엔 집게로 인형을 끄집어내는 게임기나 트로피오락실들이 한 집 건너 한 곳씩 있다. 특별한 여가생활이 없는 조선족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인근 가리봉시장엔 조선족의 주식인 깐떠우부(건두부)를 파는 상인들이 많다. 공단5거리를 사이에 두고 ‘중국동포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식품점 주인은 “이 동네 조선족은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조선족만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조선족타운의 생활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자는 ‘풍무뀀점’이라는 음식점에서 조선족과 자리를 함께했다. 자정 무렵임에도 식당은 조선족 손님들로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옌볜에서 먹던 그대로 ‘양러우촤’(양꼬치구이)나 ‘뉴티찔’(소굽요리) 안주에 ‘코우뻬이’(컵술)를 걸치는 게 이곳 손님들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조선족 주인 허람윤씨(여·31)가 말했다. 조선족은 “함께 모여 살면 두 가지 큰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으며, 같이 고생하는 동향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주인 허씨가 대표적 사례다. 그녀는 이 동네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중의학과를 졸업한 뒤 선양에서 의사로 일했던 그녀는 98년 한국으로 건너와 국제결혼-이혼의 과정을 거치며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3년여 간 식당종업원생활을 전전하다 지난 9월 가리봉동 조선족타운에서 식당을 열었다. 두 달이 지난 요즘 그녀의 식당은 이곳에서 ‘사랑방’ 역할을 한다. 한국에 첫발을 내딛는 많은 조선족이 이 식당에 찾아와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 “오랜 한국생활 끝에 자립한 ‘노하우’를 얻고 싶어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서울에서 방을 얻는 방법도 몰라 숙소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혼자 떨어져 사는 것보다 가리봉동에서 다른 조선족과 함께 사는 게 낫다고 권한다.”(허씨)
이 동네의 대다수 조선족 대상 업소들은 이처럼 ‘컨설턴트’ 역할을 겸한다.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90%는 불법체류자들이다. 불법체류 조선족을 유료 회원으로 받아 의료서비스를 해주는 기관이 서울시내에 두 군데 있지만 조선족은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려 잘 찾지 않는다. 허씨는 중국에서 배운 ‘의술’로 조선족을 알음 알음으로 치료해 주고 있는데 호응이 좋다고 한다. 그녀는 가게 종업원, 요리사를 모두 조선족으로 채용했다. 이 동네 노래방 종업원들도 대부분 조선족이다. 조선족 장모씨(35)는 “건설현장, 공장 등에서 무리를 지어 일하는 조선족의 특성상 정보와 사람이 모이는 가리봉동에 있으면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가 수월하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조선족 김모씨(28)는 조선족타운에서 난생 처음 ‘미팅’을 해봤다. 한 조선족이 옌볜에서 온 여성들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 김씨 일행은 이곳의 조선족이 자주 찾는 인근 독산동 K나이트클럽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고 한다. 김씨는 자신의 미팅 상대와 최근 영등포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불안한 불법체류생활의 와중에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직 꿈만 같다. 그는 아내와 함께 고향에 다시 돌아갈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그는 “가리봉동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대다수 조선족의 생활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절대 다수가 임시직에 종사하는데 월 평균 수입은 대략 80만원에 그친다. 그나마 사기를 당해 떼이거나 요즘엔 일을 하지 못해 공치는 날이 많다. 이처럼 사정이 어려우므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미 한국에 올 때 많은 돈을 쓴 상황이어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건설업체, 제조업체의 불황은 일용직 근로자생활을 주로 하는 조선족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고 있다. 한 조선족은 “근거는 가리봉동에 두고, 일감을 찾아 하루는 용인의 아파트 공사현장으로, 다음날은 의정부로, 시화공단으로 쫓아다닌다. 그러나 요즘엔 일자리가 없어 술만 마시는 날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 여성 진모씨(30)는 독산동 단란주점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가리봉동에 사는 조선족 여성 대부분이 유흥업 종사자”라고 단언했다. 진씨에 따르면 서울 시흥대로변을 따라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유흥가에 조선족 여성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다. 특히 시흥네거리 주변 술집에선 조선족 접대부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접대부 하겠다는 여성은 없다. 그러나 서울에서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결국 그런 길로 빠진다.”(진씨)
이 지역을 관할하는 가산파출소 관계자는 “조선족은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가리봉동에서 불법체류자 검거활동이 강화되는 것과 같은 특별한 조치는 나오지 않는다. 조선족은 이 점에 대해 “한국정부에 고맙다”는 말을 한다. 허람윤씨는 “대다수 조선족은 지역 여론이 나빠지면 단속이 강화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한다”고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가리봉동의 조선족타운에선 거리를 지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두 ‘영화처럼 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 있다. 조선족 진씨는 “극적으로 잡히지는 않았지만 황해를 건널 때 굳게 지녔던 꿈은 어디로 갔는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추위 탓인가, 오늘따라 유독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가리봉동 거리엔 각박한 현실이 주는 긴장과 고향을 향한 향수만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