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의 김모씨(당시 32세)는 98년 1월 서울 H대학병원에 입원한 지 3개월여 만에 숨졌다. 97년 10월 김씨가 이 병원에 입원한 것은 귀 신경을 압박하는 혹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병원측에서 밝힌 김씨의 최종 사인은 엉뚱하게도 세균성 뇌막염이었다. 뇌에 세균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켰다는 것. 가족들은 김씨의 사인에 강한 의문을 표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측은 자신들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2년간의 지루한 소송 끝에 밝혀진 김씨의 사인은 MRSA(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에 의한 감염사. 혹 제거 수술을 하던 중 수술기구를 통해 맹독성균인 MRSA가 귀 신경을 타고 뇌로 흘러들어간 것. 김씨는 간단한 혹 제거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한 달 만에 식물인간이 됐고 그로부터 석 달 뒤 사망했다.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정말 앞이 막막했습니다. 아는 의사가 없었다면 소송할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김씨의 가족은 김씨가 뇌사상태에 빠진 이후에도 감염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병원이 감염에 대해 일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병원측은 끝까지 감염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5월19일,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은 병원의 감염 책임을 인정해 김씨 가족에게 1억3100여만원의 손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보도를 원하지 않는 가족의 입장에 따라 언론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파장은 종합병원들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병원 내 감염에 대해 법원이 병원의 책임을 물어 배상 판결을 내린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국내 병원 중 내부에서 환자가 병을 얻어 죽거나 불구자가 된다면 속시원히 이를 내부 감염에 의한 것이라고 밝힐 수 있는 병원이 몇이나 될까. 이미지 추락과 소송 부담을 우려한 병원들은 내부 감염을 인정하고 이를 막으려는 노력 대신, 환자들에게 감염에 의한 질병을 합병증쯤으로 얼버무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김씨의 판결 이후 병원 감염에 대한 법원측의 태도가 단호해지면서 병원들의 감염 숨기기 관행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김씨 판결 직후인 지난 6월1일 서울고법은 C대학병원에 피부병 치료를 위해 입원한 뒤, 살모넬라균 감염(세균성 뇌막염)으로 숨진 이모씨 유족에게 원심을 깨고, 병원측이 유족에게 28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비록 감염경로를 입증하지 못해 감염 자체에 대한 배상판결은 할 수 없지만, 병원측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설명의 의무가 부족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지난 11월8일 ‘병원 내 감염, 손해 책임 첫 인정’ 기사로 병원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J병원 신생아 MRSA 감염 소송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미숙아는 쉽게 감염되고 MRSA는 병원내 감염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병원체 중 하나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병원측이 무균조작을 철저히 할 주의 의무를 위반해 감염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3100만원을 환자에게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신생아 김모군(3)은 출산 직후 인큐베이터에서 신생아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병원균에 감염돼 패혈증성 관절염과 골수염 후유증으로 심각한 성장 장애를 겪고 있다.
이씨와 김군의 경우 모두 병원측은 감염에 의한 사고임을 숨겼고, 환자 가족들은 수술과정에서도 합병증인 줄만 알고 있었다. 실제로는 첫 감염 배상 판결이 아닌데도 언론이 ‘처음’임을 강조하며 호들갑을 떤 것도 이들 재판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때문. 감염사고에 대한 병원측의 책임을 환자 입장에서 밝혀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아마 대형병원마다 1년에 100∼150여건 정도가 발생한다고 보면 됩니다.” 의료 전문 신현호 변호사는 병원에서 감염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에 놀랄 것이 아니라 감염 이후 환자에게 이를 공개하고, 얼마만큼 즉각적인 대응을 했는지가 감염문제의 초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염의 은폐는 결국 적극적인 감염치료를 불가능하게 하고, 이는 의료분쟁의 씨앗이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병원내 감염과 관련돼 진행중인 손해배상소송은 30여건, 전체 의료사고 소송 가운데 7∼8%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소송을 해서 승소하는 케이스는 극히 드문 상황이다. 감염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나 변호사가 감염의 경로와 과실부분을 증명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렵다. 서울시 강남구 사당동의 김모씨(53)는 지난해 9월 말 인근 O병원에서 감기몸살 주사를 맞은 뒤 엉덩이가 썩어들어가(괴사) 오른쪽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의 살을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병원감염을 의심해 경찰에 고발했지만, 이 병원은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의 입장은 병원감염을 증명할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의료사고 전문 상담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인체에 치명적인 아시네트 박터세균(일명 바우만세균)에 감염된 사실을 밝혀내고 현재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중이다.
“추석 때가 돼서 아르바이트 의사밖에 없었고, 응급실에 워낙 환자가 많아 주사약도 미리 주사기에 넣어 보관해둔 것 같았어요.” 김씨는 주사바늘을 통해 이 균이 자신의 몸에 묻어 들어왔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병원이 이처럼 병원 내 감염에 대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행 ‘병원감염 관리준칙’이 아무런 법적 강제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준칙은 80병상 이상의 병원에 대해 감염관리위원회와 감염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전반적인 감염예방 활동과 감염사례 보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설치하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병원은 일부 대학병원에 국한된 상태다. 강제력이 없다보니 대학병원의 감염예방 활동은 일과성에 그치고 있는 상태고, 오히려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일부 병원들이 ‘눈흘김’을 당하는 ‘적반하장’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당시 경상대병원 감염관리실이 겪은 ‘해프닝’은 국내 병원감염 관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세상에, 실태를 사실대로 보고했더니 우리 병원이 감염균의 소굴이 되어버렸어요. 솔직하게 보고한 곳은 병원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앞으로 누가 보고를 하며, 감염실태를 공개합니까.”
이 병원 감염관리실 김정숙 간호사(34)는 억울하다 못해 분노까지 느끼고 있었다. 보고 의무가 전혀 없는데도 어렵사리 감염실태를 공개했는데, 나중에 보니 제대로 보고한 병원이 자기네 병원밖에 없더라는 것. 당시 전국 43개 대형 종합병원 중 95년 이후 감염사례가 있다고 보고한 곳은 단 4개 종합병원뿐. 더욱이 충남대병원과 충북대병원, 전북대병원은 6년여 동안 20건 이하의 감염 사례가 있다고 보고했으나 경상대병원은 819건의 감염사례를 보고했다. 한술 더 뜬 보건복지부는 국감자료를 언론에 공개했고 이 병원은 이후 ‘감염병원’이라는 손가락질을 견뎌내야 했다. ‘양심불량’ 병원들이 면죄부를 받으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행태가 벌어진 것이다.
‘감염 은폐’의 속성은 마찬가지지만 병원 내에 감염 관리 전담부서라도 있는 병원들은 상황이 나은 쪽에 속한다. 지난 97년 대한감염관리학회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병원에 감염관리사가 전담 배치된 병원은 전국 139개 병원(30병상 이상) 중 30개 병원에 불과했다. 실제 감염발생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병원은 81개 병원, 수술부위 감염률에 대한 조사기록이 있는 병원도 40개 병원에 그쳤다. 결국 나머지 병원들은 감염에 대한 파악조차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감염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감염예방도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소독하고,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를 알 수가 없으니까요. 복지부에는 감염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전담부서조차 없고, 민간병원들은 협조를 하지 않죠.” 국립보건원 김봉수 병원감염과장은 질병관리센터(CDC) 내의 전담관리 부서를 통해 민관 협조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들며, 정부의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실제로 복지부는 감염관리 업무가 지난해 9월 직제 조정으로 보건관리과에서 의료정책과로 넘어가면서 감염관리에 손을 놓은 상태다. 때문에 감염에 대한 실태조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의원입법으로 의료법에 삽입하려던 ‘병원감염관리’ 개정안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반대로 상정조차 하지 못한 상태. 따라서 상위법의 근거가 없으므로, 복지부의 병원감염관리준칙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병원내 감염사고에 대한 책임은 99% 국가에 있다고 보아도 될 겁니다. 행위별 수가체계를 가지고 있는 현행 의보수가 제도에서 많은 돈을 들여 외국과 같은 소독 시스템과 감염예방 체계를 갖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습니다.”
법의학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민경찬 원장(의학박사·해부학)은 감염 근절을 위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는 한 감염으로 인한 희생자는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의약분업으로 위기에 몰린 대형병원들이 몇만원씩 하는 내시경 소독액을 환자마다 매번 바꾸고, 수천만원을 들여 수술방에 완벽한 소독 시스템을 갖추어 놓는 것은 실질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민원장의 주장이다.
‘신생아 중환자실 K. oxytoca에 의한 집단 감염보고, 중환자실 집단감염 발생,… 신생아실 및 신생아 중환자실에 장염, 설사 유발 바이러스 지속적 발생, 흉부외과 전문의, 전공의에게서 MRSA 유사 균 발견, 이제 더 이상 감염률을 낮출 수 없으므로 전담요원의 확보가 시급…’ 올해와 지난해 전국 각 대학병원들의 감염관리위원회 회의록에서 발견된 병원 내 감염의 실태는 심각하다. 감염 사례가 한 건도 없다며 보고를 기피한 이런 ‘양심 불량’ 병원들의 ‘거짓말’속에 영문을 모르는 환자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2년간의 지루한 소송 끝에 밝혀진 김씨의 사인은 MRSA(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에 의한 감염사. 혹 제거 수술을 하던 중 수술기구를 통해 맹독성균인 MRSA가 귀 신경을 타고 뇌로 흘러들어간 것. 김씨는 간단한 혹 제거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한 달 만에 식물인간이 됐고 그로부터 석 달 뒤 사망했다.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정말 앞이 막막했습니다. 아는 의사가 없었다면 소송할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김씨의 가족은 김씨가 뇌사상태에 빠진 이후에도 감염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병원이 감염에 대해 일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병원측은 끝까지 감염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5월19일,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은 병원의 감염 책임을 인정해 김씨 가족에게 1억3100여만원의 손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보도를 원하지 않는 가족의 입장에 따라 언론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파장은 종합병원들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병원 내 감염에 대해 법원이 병원의 책임을 물어 배상 판결을 내린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국내 병원 중 내부에서 환자가 병을 얻어 죽거나 불구자가 된다면 속시원히 이를 내부 감염에 의한 것이라고 밝힐 수 있는 병원이 몇이나 될까. 이미지 추락과 소송 부담을 우려한 병원들은 내부 감염을 인정하고 이를 막으려는 노력 대신, 환자들에게 감염에 의한 질병을 합병증쯤으로 얼버무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김씨의 판결 이후 병원 감염에 대한 법원측의 태도가 단호해지면서 병원들의 감염 숨기기 관행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김씨 판결 직후인 지난 6월1일 서울고법은 C대학병원에 피부병 치료를 위해 입원한 뒤, 살모넬라균 감염(세균성 뇌막염)으로 숨진 이모씨 유족에게 원심을 깨고, 병원측이 유족에게 28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비록 감염경로를 입증하지 못해 감염 자체에 대한 배상판결은 할 수 없지만, 병원측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설명의 의무가 부족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지난 11월8일 ‘병원 내 감염, 손해 책임 첫 인정’ 기사로 병원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J병원 신생아 MRSA 감염 소송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미숙아는 쉽게 감염되고 MRSA는 병원내 감염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병원체 중 하나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병원측이 무균조작을 철저히 할 주의 의무를 위반해 감염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3100만원을 환자에게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신생아 김모군(3)은 출산 직후 인큐베이터에서 신생아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병원균에 감염돼 패혈증성 관절염과 골수염 후유증으로 심각한 성장 장애를 겪고 있다.
이씨와 김군의 경우 모두 병원측은 감염에 의한 사고임을 숨겼고, 환자 가족들은 수술과정에서도 합병증인 줄만 알고 있었다. 실제로는 첫 감염 배상 판결이 아닌데도 언론이 ‘처음’임을 강조하며 호들갑을 떤 것도 이들 재판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때문. 감염사고에 대한 병원측의 책임을 환자 입장에서 밝혀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아마 대형병원마다 1년에 100∼150여건 정도가 발생한다고 보면 됩니다.” 의료 전문 신현호 변호사는 병원에서 감염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에 놀랄 것이 아니라 감염 이후 환자에게 이를 공개하고, 얼마만큼 즉각적인 대응을 했는지가 감염문제의 초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염의 은폐는 결국 적극적인 감염치료를 불가능하게 하고, 이는 의료분쟁의 씨앗이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병원내 감염과 관련돼 진행중인 손해배상소송은 30여건, 전체 의료사고 소송 가운데 7∼8%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소송을 해서 승소하는 케이스는 극히 드문 상황이다. 감염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나 변호사가 감염의 경로와 과실부분을 증명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렵다. 서울시 강남구 사당동의 김모씨(53)는 지난해 9월 말 인근 O병원에서 감기몸살 주사를 맞은 뒤 엉덩이가 썩어들어가(괴사) 오른쪽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의 살을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병원감염을 의심해 경찰에 고발했지만, 이 병원은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의 입장은 병원감염을 증명할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의료사고 전문 상담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인체에 치명적인 아시네트 박터세균(일명 바우만세균)에 감염된 사실을 밝혀내고 현재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중이다.
“추석 때가 돼서 아르바이트 의사밖에 없었고, 응급실에 워낙 환자가 많아 주사약도 미리 주사기에 넣어 보관해둔 것 같았어요.” 김씨는 주사바늘을 통해 이 균이 자신의 몸에 묻어 들어왔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병원이 이처럼 병원 내 감염에 대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행 ‘병원감염 관리준칙’이 아무런 법적 강제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준칙은 80병상 이상의 병원에 대해 감염관리위원회와 감염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전반적인 감염예방 활동과 감염사례 보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설치하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병원은 일부 대학병원에 국한된 상태다. 강제력이 없다보니 대학병원의 감염예방 활동은 일과성에 그치고 있는 상태고, 오히려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일부 병원들이 ‘눈흘김’을 당하는 ‘적반하장’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당시 경상대병원 감염관리실이 겪은 ‘해프닝’은 국내 병원감염 관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세상에, 실태를 사실대로 보고했더니 우리 병원이 감염균의 소굴이 되어버렸어요. 솔직하게 보고한 곳은 병원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앞으로 누가 보고를 하며, 감염실태를 공개합니까.”
이 병원 감염관리실 김정숙 간호사(34)는 억울하다 못해 분노까지 느끼고 있었다. 보고 의무가 전혀 없는데도 어렵사리 감염실태를 공개했는데, 나중에 보니 제대로 보고한 병원이 자기네 병원밖에 없더라는 것. 당시 전국 43개 대형 종합병원 중 95년 이후 감염사례가 있다고 보고한 곳은 단 4개 종합병원뿐. 더욱이 충남대병원과 충북대병원, 전북대병원은 6년여 동안 20건 이하의 감염 사례가 있다고 보고했으나 경상대병원은 819건의 감염사례를 보고했다. 한술 더 뜬 보건복지부는 국감자료를 언론에 공개했고 이 병원은 이후 ‘감염병원’이라는 손가락질을 견뎌내야 했다. ‘양심불량’ 병원들이 면죄부를 받으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행태가 벌어진 것이다.
‘감염 은폐’의 속성은 마찬가지지만 병원 내에 감염 관리 전담부서라도 있는 병원들은 상황이 나은 쪽에 속한다. 지난 97년 대한감염관리학회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병원에 감염관리사가 전담 배치된 병원은 전국 139개 병원(30병상 이상) 중 30개 병원에 불과했다. 실제 감염발생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병원은 81개 병원, 수술부위 감염률에 대한 조사기록이 있는 병원도 40개 병원에 그쳤다. 결국 나머지 병원들은 감염에 대한 파악조차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감염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감염예방도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소독하고,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를 알 수가 없으니까요. 복지부에는 감염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전담부서조차 없고, 민간병원들은 협조를 하지 않죠.” 국립보건원 김봉수 병원감염과장은 질병관리센터(CDC) 내의 전담관리 부서를 통해 민관 협조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들며, 정부의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실제로 복지부는 감염관리 업무가 지난해 9월 직제 조정으로 보건관리과에서 의료정책과로 넘어가면서 감염관리에 손을 놓은 상태다. 때문에 감염에 대한 실태조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의원입법으로 의료법에 삽입하려던 ‘병원감염관리’ 개정안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반대로 상정조차 하지 못한 상태. 따라서 상위법의 근거가 없으므로, 복지부의 병원감염관리준칙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병원내 감염사고에 대한 책임은 99% 국가에 있다고 보아도 될 겁니다. 행위별 수가체계를 가지고 있는 현행 의보수가 제도에서 많은 돈을 들여 외국과 같은 소독 시스템과 감염예방 체계를 갖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습니다.”
법의학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민경찬 원장(의학박사·해부학)은 감염 근절을 위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는 한 감염으로 인한 희생자는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의약분업으로 위기에 몰린 대형병원들이 몇만원씩 하는 내시경 소독액을 환자마다 매번 바꾸고, 수천만원을 들여 수술방에 완벽한 소독 시스템을 갖추어 놓는 것은 실질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민원장의 주장이다.
‘신생아 중환자실 K. oxytoca에 의한 집단 감염보고, 중환자실 집단감염 발생,… 신생아실 및 신생아 중환자실에 장염, 설사 유발 바이러스 지속적 발생, 흉부외과 전문의, 전공의에게서 MRSA 유사 균 발견, 이제 더 이상 감염률을 낮출 수 없으므로 전담요원의 확보가 시급…’ 올해와 지난해 전국 각 대학병원들의 감염관리위원회 회의록에서 발견된 병원 내 감염의 실태는 심각하다. 감염 사례가 한 건도 없다며 보고를 기피한 이런 ‘양심 불량’ 병원들의 ‘거짓말’속에 영문을 모르는 환자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