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 석탑인 국보 20호 다보탑이 위기에 처해 있다. 특별한 보존조치 없이 방치돼 훼손 상태가 심각한 것. 서기 756년(신라 경덕왕 10년)에 건립돼 1244년 세월을 건너온 다보탑. 대기오염 등으로 인한 피해로 사람으로 치자면 암에 걸린 상태지만 당국의 인식은 안일하기만 하다.
11월24일 오후 경주 불국사를 찾은 관광객들은 다보탑 주변에서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보탑은 기념사진 대상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였다.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다보탑을 세심하게 30여분간 살펴보았다. 탑의 모양은 과거와 같았지만 보존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우선 전체적으로 탑 표면이 매우 거칠었다. 탑 중앙부 곳곳은 표면이 검게 변색돼가고 있었다. 군데군데 표면이 떨어져 나간 흔적도 뚜렷했다. 이끼는 틈을 비집고 창궐하고 있었고, 염분에 의한 피해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탑 상층부에는 잡초들도 자라고 있었다.
다보탑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다고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11월1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약칭 보존과학회) 주최 ‘제12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문화재위원인 서울대 김수진 교수(지구환경과학부)가 ‘불국사 다보탑의 훼손현황과 보존대책’이라는 논문을 통해 “다보탑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던 것. 한국광물학회장 등을 지낸 김교수는 석조문화재보존과학연구회장을 지낼 정도로 석조문화재 보존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여서 그의 주장이 관심을 끈 것은 당연했다.
보존과학회에서 김교수가 발표한 ‘다보탑 훼손현황’은 크게 여덟 가지. △석재 표면에 전반적으로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표면이 고르지 못하다. 빗물을 맞는 부분은 조직이 상당히 이완돼 있으며 강도도 감소돼 있다 △돌기둥, 벽면, 계단 등에 이끼가 살고 있다 △지면 1m 높이까지 수분이 상승해 염분의 침전현상이 관찰된다 △난간 등은 흑색물질로 오염돼 있고, 심한 부위는 표면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기둥 및 벽면에는 화강암에서 생성되는 녹인 수산화철의 띠가 발견된다 △표면이 심하게 흑색으로 오염된 부위 근처는 수분이 포화돼 있다 △표면이 갈라진 부분도 있다 △빗물을 쉽게 맞아서 풍화가 촉진된 부위에는 작은 구멍들이 많이 뚫려 있다 등.
그러나 김교수의 이런 주장은 언론으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문화재위원인 김교수 스스로가 다보탑의 문제점이 언론에 크게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김교수는 다보탑 훼손과 관련해 최근 경주시에 두 차례나 공문을 보냈을 정도로 다보탑에 대한 시급한 보존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태까지 방치 울분 치솟아”
김교수는 “지난 6월 현지를 답사했을 때 ‘이러고도 우리가 문화민족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탑을 이런 상태가 되도록 방치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화도 나고 울분이 치솟았다”고 회고했다. “한눈에 보아도 탑이 썩어들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중병이 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교수에게 다보탑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다. 강 전 관장은 “다보탑 표면이 검게 변색돼 김교수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도 “다보탑이 문제”라는 말을 김교수에게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미 관심 있는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 ‘다보탑의 이상 징후’가 포착됐었다는 얘기다.
다보탑은 건립된 지 1244년이 지났다. 자연적인 풍화가 진행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내리는 산성비다. 김교수와 대학원생들이 탑 주변에 떨어져 있는 잔해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산성비에 의한 훼손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산성비에 들어 있는 황산화물이 다보탑 잔해에 응고돼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 김교수 팀이 나름의 기준으로 경주 지역 산성비 정도를 측정한 결과 기준치인 30을 훨씬 넘어서는 45의 수치를 보였다고 한다. 김교수는 “산성비는 암석을 대단히 빠른 속도로 풍화시키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요망된다”고 말한다.
김교수는 또 탑 중앙부가 검게 썩어들어가고 있는 것은 빗물이 흘러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빗물, 특히 산성비가 암석에 오래 머물면서 난간 아래쪽으로 스며 내려와 암석을 풍화시키고 있다는 것. 암석 자체의 조직이 전반적으로 느슨할 정도로 훼손돼 빗물이 암석 속의 틈을 타고 내려오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난간 아래쪽 중앙부 암석의 내부까지 물로 포화돼 있는 부분이 관찰됐기 때문이다.
괜찮아 보이는 표면도 정말 괜찮은 것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산성비 빗물이 암석 틈으로 들어갈 경우 표면은 단단해지지만 겉과 달리 암석 내부는 계속 구조가 약해진다는 것. 다보탑도 이런 경우에 해당될 수 있어 정확한 원인진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진단연구가 이루어지기 전에 성급하게 오염물 등을 제거하는 세척작업을 한다든지 보존처리를 하는 것은 자칫 훼손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지난해부터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보탑이 약간 기울어진 상태여서 전면적인 해체 보수가 필요하다” “해체할 필요까지는 없다” 등의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교수는 “최악의 경우 내려앉을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라고 강조한다.
논란이 일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8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한국건설안전기술원에 다보탑에 대한 안전진단을 의뢰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경주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다보탑에 대한 안전진단이 예정돼 있다. 진동에 의한 붕괴 위험이 우려될 정도로 심각한 지경은 아니다. 대비 차원에서 감은사지 3층 석탑이나 석가탑 등과 함께 진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관계자는 “토목 건축분야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안전진단을 통해 훼손현황을 조사한 뒤 해체해 보수할지 아니면 그냥 보수할지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도 “무너지기야 하겠느냐”고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불치병이라는 암에 걸려도 초기에 치료를 잘 하면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시기를 놓치면 목숨을 잃게 된다. ‘암에 걸린’ 다보탑의 지금 상태는 국가적 차원에서 토목, 광물, 수질, 대기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총망라한 합동조사를 벌여야 할 지경이다. 상태가 정말 심각하다.
11월24일 오후 경주 불국사를 찾은 관광객들은 다보탑 주변에서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보탑은 기념사진 대상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였다.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다보탑을 세심하게 30여분간 살펴보았다. 탑의 모양은 과거와 같았지만 보존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우선 전체적으로 탑 표면이 매우 거칠었다. 탑 중앙부 곳곳은 표면이 검게 변색돼가고 있었다. 군데군데 표면이 떨어져 나간 흔적도 뚜렷했다. 이끼는 틈을 비집고 창궐하고 있었고, 염분에 의한 피해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탑 상층부에는 잡초들도 자라고 있었다.
다보탑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다고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11월1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약칭 보존과학회) 주최 ‘제12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문화재위원인 서울대 김수진 교수(지구환경과학부)가 ‘불국사 다보탑의 훼손현황과 보존대책’이라는 논문을 통해 “다보탑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던 것. 한국광물학회장 등을 지낸 김교수는 석조문화재보존과학연구회장을 지낼 정도로 석조문화재 보존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여서 그의 주장이 관심을 끈 것은 당연했다.
보존과학회에서 김교수가 발표한 ‘다보탑 훼손현황’은 크게 여덟 가지. △석재 표면에 전반적으로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표면이 고르지 못하다. 빗물을 맞는 부분은 조직이 상당히 이완돼 있으며 강도도 감소돼 있다 △돌기둥, 벽면, 계단 등에 이끼가 살고 있다 △지면 1m 높이까지 수분이 상승해 염분의 침전현상이 관찰된다 △난간 등은 흑색물질로 오염돼 있고, 심한 부위는 표면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기둥 및 벽면에는 화강암에서 생성되는 녹인 수산화철의 띠가 발견된다 △표면이 심하게 흑색으로 오염된 부위 근처는 수분이 포화돼 있다 △표면이 갈라진 부분도 있다 △빗물을 쉽게 맞아서 풍화가 촉진된 부위에는 작은 구멍들이 많이 뚫려 있다 등.
그러나 김교수의 이런 주장은 언론으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문화재위원인 김교수 스스로가 다보탑의 문제점이 언론에 크게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김교수는 다보탑 훼손과 관련해 최근 경주시에 두 차례나 공문을 보냈을 정도로 다보탑에 대한 시급한 보존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태까지 방치 울분 치솟아”
김교수는 “지난 6월 현지를 답사했을 때 ‘이러고도 우리가 문화민족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탑을 이런 상태가 되도록 방치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화도 나고 울분이 치솟았다”고 회고했다. “한눈에 보아도 탑이 썩어들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중병이 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교수에게 다보탑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다. 강 전 관장은 “다보탑 표면이 검게 변색돼 김교수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도 “다보탑이 문제”라는 말을 김교수에게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미 관심 있는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 ‘다보탑의 이상 징후’가 포착됐었다는 얘기다.
다보탑은 건립된 지 1244년이 지났다. 자연적인 풍화가 진행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내리는 산성비다. 김교수와 대학원생들이 탑 주변에 떨어져 있는 잔해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산성비에 의한 훼손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산성비에 들어 있는 황산화물이 다보탑 잔해에 응고돼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 김교수 팀이 나름의 기준으로 경주 지역 산성비 정도를 측정한 결과 기준치인 30을 훨씬 넘어서는 45의 수치를 보였다고 한다. 김교수는 “산성비는 암석을 대단히 빠른 속도로 풍화시키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요망된다”고 말한다.
김교수는 또 탑 중앙부가 검게 썩어들어가고 있는 것은 빗물이 흘러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빗물, 특히 산성비가 암석에 오래 머물면서 난간 아래쪽으로 스며 내려와 암석을 풍화시키고 있다는 것. 암석 자체의 조직이 전반적으로 느슨할 정도로 훼손돼 빗물이 암석 속의 틈을 타고 내려오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난간 아래쪽 중앙부 암석의 내부까지 물로 포화돼 있는 부분이 관찰됐기 때문이다.
괜찮아 보이는 표면도 정말 괜찮은 것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산성비 빗물이 암석 틈으로 들어갈 경우 표면은 단단해지지만 겉과 달리 암석 내부는 계속 구조가 약해진다는 것. 다보탑도 이런 경우에 해당될 수 있어 정확한 원인진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진단연구가 이루어지기 전에 성급하게 오염물 등을 제거하는 세척작업을 한다든지 보존처리를 하는 것은 자칫 훼손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지난해부터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보탑이 약간 기울어진 상태여서 전면적인 해체 보수가 필요하다” “해체할 필요까지는 없다” 등의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교수는 “최악의 경우 내려앉을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라고 강조한다.
논란이 일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8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한국건설안전기술원에 다보탑에 대한 안전진단을 의뢰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경주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다보탑에 대한 안전진단이 예정돼 있다. 진동에 의한 붕괴 위험이 우려될 정도로 심각한 지경은 아니다. 대비 차원에서 감은사지 3층 석탑이나 석가탑 등과 함께 진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관계자는 “토목 건축분야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안전진단을 통해 훼손현황을 조사한 뒤 해체해 보수할지 아니면 그냥 보수할지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도 “무너지기야 하겠느냐”고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불치병이라는 암에 걸려도 초기에 치료를 잘 하면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시기를 놓치면 목숨을 잃게 된다. ‘암에 걸린’ 다보탑의 지금 상태는 국가적 차원에서 토목, 광물, 수질, 대기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총망라한 합동조사를 벌여야 할 지경이다. 상태가 정말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