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버티기는 성공할까. 현대가 5월28일 정주영 명예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 및 핵심 계열사 경영진 교체 등을 거부한 채 서산농장 담보 등을 내세운 유동성 확보 대책만을 내놓자 시장의 관심이 온통 현대의 버티기 전략이 성공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의 유동성 부족으로부터 불거진 ‘현대 사태’가 주말을 거치면서 ‘버티기 전략’이라고 표현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측이 정몽구-몽헌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드러난 기업지배구조의 난맥상을 이 기회에 제거하려는 정부의 압박에 맞서 시간 확보 전략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일요일 밤 부랴부랴 발표된 자구대책 이후 열린 월요일 금융시장에서도 시장은 일단 현대의 대응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결국 현대의 버티기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고 이에 따라 지금처럼 어정쩡한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지난번 경영권 파동의 후유증을 딛고 전면에 나선 정몽헌회장이 맞닥뜨린 첫번째 시련이라는 점에서 현대측이 이번 사태에 임하는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한 것 같다. 경영권 파동에 대한 비난 여론이 워낙 비등한 상황이라 정부와 채권단의 ‘명예회장 퇴진론’에도 정면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현대그룹 내에서 유동성 위기를 풀기 위한 카드의 하나로 이 문제를 들고나올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형편이다. 그런 만큼 더더욱 현대는 ‘버티기 전략’으로 여론의 관심이 식기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채권은행들이 당좌 대월 한도를 높이고 그룹 차원에서 유동성 확보 방안을 내놓았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 말까지 계속해서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 계열사의 채권 규모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 계열사 채권 규모는 줄잡아 3조∼4조원대. 계열사별로는 현대전자가 1조원대로 가장 많고 이번에 단기유동성 부족으로 홍역을 치른 현대건설은 약 4380억원 정도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이중 12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의 회사채 규모는 무려 1조2000억원이나 된다”고 전했다. 특히 12월 만기가 돌아오는 이들 회사채는 97년 중반 11, 12% 금리로 발행됐던 채권과는 달리 IMF(국제통화기금) 직후 고금리 상황에서 발행돼 회사채 금리가 최고 25% 정도에까지 이른 것들이다. 여태까지는 현대 계열 채권의 경우 금융 기관들이 대부분 차환 발행해 주었지만 현대 사태가 불거지면서 투신사 등에서는 현대 채권을 차환해 주지 않고 있다.
외환은행 등 주채권은행들이 2500억원의 추가 대출 계획을 밝혔고 현대가 주말을 통해 발표한 3조원대의 유동성 확보 방안을 밝혔지만 시장이 신뢰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대측의 유동성 확보 방안에는 현대건설의 자산 및 주식 매각으로 인한 5400억원대의 재원 마련 방안 이외에 투자 축소를 통한 2조2000억원대의 여유자금 마련 방안이 들어 있으나 구체적 조달 방법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대한투신 한동직 채권운용부장은 “유가증권을 매각한다고 해도 대부분이 현대 계열사의 유가증권일텐데 이들이 얼마나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부장은 “현재 현대가 내놓은 대책은 ‘치유’보다는 ‘수혈’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약효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채권시장의 또다른 관계자도 “현대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려면 중공업이나 전자 등 ‘돈이 되는’ 핵심 계열사라도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핵심 계열사 매각은 현대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는 일. 현대전자를 다시 내줄 경우 LG반도체와의 빅딜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난센스라고 현대 관계자들이 비난하고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현대 그룹이 발행하는 채권의 차환 발행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현대 채권의 거래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들이 나타난지는 이미 오래다. 마이다스에셋 백송호 채권 딜러는 “5월초 현대투신 사태 이후 현대 계열 채권 거래가 급격히 감소하다가 이번 사태로 거의 올스톱 상태로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회사채 보유 한도가 폐지됐지만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기 전까지 운용사들이 현대그룹 채권을 적극 편입하는 데 따른 부담은 전혀 가시지 않고 있다. 투신사의 한 관계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차 등이 채권을 발행했고 차환도 가능했지만 현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나마 거래가 끊겨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투자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인수기관들의 요구로 인해 지난 2월 현대건설 현대상선 등 핵심 계열사들은 만기 1년짜리 회사채를 발행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만기가 짧은 기업어음(CP)을 발행해 필요자금을 융통해왔지만 투신 은행 등 기관투자가들의 매수 여력이 약화되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태다. 특히 현대상선의 경우 전반적 현금흐름이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만기가 짧은 기업어음(CP)이 골칫덩어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물론 일부 현대 관계자들조차 현대의 대북사업을 총괄하는 현대아산에 대한 계열사 지분의 운명을 알지 못하겠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현대상선은 현대 계열사 중 가장 많은 40%의 현대아산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 이연재팀장은 “현대상선의 경우도 현대아산에 출자한 금액이나 이를 통해 북한에 송금된 금액 등이 재무제표 상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투자 회수 기간을 기약할 수 없는 데다 현재 현대가 누리고 있는 대북사업 독점권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불안 양상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가장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증시를 주도하고 있는 외국인투자가들의 향방이다. 이미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 자금 편입 비중을 대표하는 모건스탠리지수(MSCI)에서 대만, 말레이시아 주식의 비중은 높아진데 반해 한국의 편입 비율은 하향 조정된 바 있다. 여기에다 현대의 자구책에 대한 외국인투자가들의 반응도 비관적이다. 노무라증권 김철범이사는 “현대가 발표한 자구책 중 단기 유동성을 이른 시일 내에 개선할 수 있는 항목이 별로 없다. 현대가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증시가 회복될 가능성도 별로 없을 것 같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결국 시장도 현대의 대응을 시간 확보 전략으로 풀이하고 있다는 말이다.
시장 신뢰 무너져 ‘현대 리스크’ 오래 갈 듯
물론 현대 계열 상장 주식의 시가총액은 16조원 정도로 전체 시가총액의 6% 정도에 불과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정몽헌회장 스스로도 밝혔듯이 ‘현대식’ 지배구조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이미 무너진 상황이라 금융 시장 전반의 ‘현대 리스크’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한 주말 자구책 발표 시한을 코앞에 두고 정몽헌회장과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이 돌연 출국한 것도 현대 사태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가중시켰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금융시장 전반을 둘러싼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투신권 등 2차 금융 구조조정에 대한 불확실성과 채권시가평가제 실시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심리가 맞물리는 오는 7월 이후 돌아오는 회사채 만기 물량이 금융시장 전반을 위협하는 잠복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에는 ‘때를 잘못 만났다’는 불운도 겹치고 있는 것 같다.
현대건설과 상선의 단기 유동성 부족 사태로 촉발된 현대 위기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매출액 31조원을 자랑하는 한국 최고 기업을 휘청거리게 하는 전반적 경영위기로 번질 것인가. 현대의 버티기 전략이 먹혀들기에는 곳곳에 도사린 ‘악재’들이 너무 많다.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의 유동성 부족으로부터 불거진 ‘현대 사태’가 주말을 거치면서 ‘버티기 전략’이라고 표현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측이 정몽구-몽헌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드러난 기업지배구조의 난맥상을 이 기회에 제거하려는 정부의 압박에 맞서 시간 확보 전략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일요일 밤 부랴부랴 발표된 자구대책 이후 열린 월요일 금융시장에서도 시장은 일단 현대의 대응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결국 현대의 버티기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고 이에 따라 지금처럼 어정쩡한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지난번 경영권 파동의 후유증을 딛고 전면에 나선 정몽헌회장이 맞닥뜨린 첫번째 시련이라는 점에서 현대측이 이번 사태에 임하는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한 것 같다. 경영권 파동에 대한 비난 여론이 워낙 비등한 상황이라 정부와 채권단의 ‘명예회장 퇴진론’에도 정면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현대그룹 내에서 유동성 위기를 풀기 위한 카드의 하나로 이 문제를 들고나올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형편이다. 그런 만큼 더더욱 현대는 ‘버티기 전략’으로 여론의 관심이 식기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채권은행들이 당좌 대월 한도를 높이고 그룹 차원에서 유동성 확보 방안을 내놓았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 말까지 계속해서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 계열사의 채권 규모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 계열사 채권 규모는 줄잡아 3조∼4조원대. 계열사별로는 현대전자가 1조원대로 가장 많고 이번에 단기유동성 부족으로 홍역을 치른 현대건설은 약 4380억원 정도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이중 12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의 회사채 규모는 무려 1조2000억원이나 된다”고 전했다. 특히 12월 만기가 돌아오는 이들 회사채는 97년 중반 11, 12% 금리로 발행됐던 채권과는 달리 IMF(국제통화기금) 직후 고금리 상황에서 발행돼 회사채 금리가 최고 25% 정도에까지 이른 것들이다. 여태까지는 현대 계열 채권의 경우 금융 기관들이 대부분 차환 발행해 주었지만 현대 사태가 불거지면서 투신사 등에서는 현대 채권을 차환해 주지 않고 있다.
외환은행 등 주채권은행들이 2500억원의 추가 대출 계획을 밝혔고 현대가 주말을 통해 발표한 3조원대의 유동성 확보 방안을 밝혔지만 시장이 신뢰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대측의 유동성 확보 방안에는 현대건설의 자산 및 주식 매각으로 인한 5400억원대의 재원 마련 방안 이외에 투자 축소를 통한 2조2000억원대의 여유자금 마련 방안이 들어 있으나 구체적 조달 방법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대한투신 한동직 채권운용부장은 “유가증권을 매각한다고 해도 대부분이 현대 계열사의 유가증권일텐데 이들이 얼마나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부장은 “현재 현대가 내놓은 대책은 ‘치유’보다는 ‘수혈’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약효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채권시장의 또다른 관계자도 “현대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려면 중공업이나 전자 등 ‘돈이 되는’ 핵심 계열사라도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핵심 계열사 매각은 현대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는 일. 현대전자를 다시 내줄 경우 LG반도체와의 빅딜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난센스라고 현대 관계자들이 비난하고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현대 그룹이 발행하는 채권의 차환 발행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현대 채권의 거래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들이 나타난지는 이미 오래다. 마이다스에셋 백송호 채권 딜러는 “5월초 현대투신 사태 이후 현대 계열 채권 거래가 급격히 감소하다가 이번 사태로 거의 올스톱 상태로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회사채 보유 한도가 폐지됐지만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기 전까지 운용사들이 현대그룹 채권을 적극 편입하는 데 따른 부담은 전혀 가시지 않고 있다. 투신사의 한 관계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차 등이 채권을 발행했고 차환도 가능했지만 현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나마 거래가 끊겨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투자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인수기관들의 요구로 인해 지난 2월 현대건설 현대상선 등 핵심 계열사들은 만기 1년짜리 회사채를 발행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만기가 짧은 기업어음(CP)을 발행해 필요자금을 융통해왔지만 투신 은행 등 기관투자가들의 매수 여력이 약화되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태다. 특히 현대상선의 경우 전반적 현금흐름이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만기가 짧은 기업어음(CP)이 골칫덩어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물론 일부 현대 관계자들조차 현대의 대북사업을 총괄하는 현대아산에 대한 계열사 지분의 운명을 알지 못하겠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현대상선은 현대 계열사 중 가장 많은 40%의 현대아산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 이연재팀장은 “현대상선의 경우도 현대아산에 출자한 금액이나 이를 통해 북한에 송금된 금액 등이 재무제표 상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투자 회수 기간을 기약할 수 없는 데다 현재 현대가 누리고 있는 대북사업 독점권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불안 양상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가장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증시를 주도하고 있는 외국인투자가들의 향방이다. 이미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 자금 편입 비중을 대표하는 모건스탠리지수(MSCI)에서 대만, 말레이시아 주식의 비중은 높아진데 반해 한국의 편입 비율은 하향 조정된 바 있다. 여기에다 현대의 자구책에 대한 외국인투자가들의 반응도 비관적이다. 노무라증권 김철범이사는 “현대가 발표한 자구책 중 단기 유동성을 이른 시일 내에 개선할 수 있는 항목이 별로 없다. 현대가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증시가 회복될 가능성도 별로 없을 것 같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결국 시장도 현대의 대응을 시간 확보 전략으로 풀이하고 있다는 말이다.
시장 신뢰 무너져 ‘현대 리스크’ 오래 갈 듯
물론 현대 계열 상장 주식의 시가총액은 16조원 정도로 전체 시가총액의 6% 정도에 불과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정몽헌회장 스스로도 밝혔듯이 ‘현대식’ 지배구조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이미 무너진 상황이라 금융 시장 전반의 ‘현대 리스크’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한 주말 자구책 발표 시한을 코앞에 두고 정몽헌회장과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이 돌연 출국한 것도 현대 사태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가중시켰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금융시장 전반을 둘러싼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투신권 등 2차 금융 구조조정에 대한 불확실성과 채권시가평가제 실시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심리가 맞물리는 오는 7월 이후 돌아오는 회사채 만기 물량이 금융시장 전반을 위협하는 잠복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에는 ‘때를 잘못 만났다’는 불운도 겹치고 있는 것 같다.
현대건설과 상선의 단기 유동성 부족 사태로 촉발된 현대 위기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매출액 31조원을 자랑하는 한국 최고 기업을 휘청거리게 하는 전반적 경영위기로 번질 것인가. 현대의 버티기 전략이 먹혀들기에는 곳곳에 도사린 ‘악재’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