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가 벌써 고교 1학년인데 유학을 보내기에 너무 늦은 것 아닌가요?”
요즘 서울 강남지역 유학원에는 초조한 얼굴로 이런 상담을 청하는 어머니들이 많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조기유학 열풍이 이미 초등학교까지 번진 상황에서, 이대로 두면 우리애만 뒤처진다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학원에서 권하는 가장 적절한 시기는 중학교 1, 2학년이다(‘초말중초’라 해서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1학년 시기를 꼽는 사람도 있다). 이 때 유학하면 미국 중학교를 1, 2년 다니며 영어를 익히고 자연스럽게 좋은 고등학교를 선택해 진학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명문고=아이비리그’라는 공식이 통용되므로 좋은 고교에 입학하는 것이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의 1차 관문이 된다. 또 미국 대학이 입학기준으로 삼는 SAT(학력평가시험)도 현지에서 준비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한국에 조기유학 성공신화를 퍼뜨린 ‘7막7장’(96년 출간)의 주인공 홍정욱씨가 하버드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1년 뒤 그는 명문 초우트 로즈마리 홀 고교에 입학했고 당초의 목표대로 하버드에 진학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 하버드까지’라는 책을 쓴 박혜나씨는 중학교 1학년 때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전문가들은 기왕 유학을 계획했다면 중학교 3학년 여름을 넘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때 출발해야 미국 고교 1학년(9학년)에 입학할 수 있다. 몇 개월 더 지연하면 자의든 타의든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한다.
그러나 서울 대원외국어고등학교가 올해 해외유학준비반(SAP) 1기생 9명을 모두 미국 명문대에 합격시키면서 유학의 적기(適期)에 대해 다른 의견이 제시됐다.
“조기유학의 목적은 대개 영어입니다. 그러나 SAP반 학생들은 토플성적 600점 이상으로, 영어로만 진행되는 강의를 받았습니다. 내신성적도 뛰어나 유학하지 않더라도 국내 주요 대학에 무난히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도피성 유학’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이처럼 기초적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일수록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국내에서 배워야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갖춘 진짜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SAP반을 만든 것은 어차피 대학 진학 후 유학할 학생들이라면 차라리 고교과정에서 준비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학교는 기본적으로 조기유학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김일형·대원외고 교감)
현재 이 학교에서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은 3학년 13명, 2학년 25명, 1학년 34명 등 모두 72명에 달한다. 이들은 방과 후 3시간씩 별도로 토플과 SAT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학은 SAT 성적 외에도 좋은 내신성적과 다양한 활동(봉사, 학생회, 운동, 클럽) 등 팔방미인형을 선호하는데 국내 여건에서는 이를 적절히 안배하기가 어렵다. 내신성적을 유지하면서 SAT 공부를 병행하고 봉사와 클럽활동까지 꾸준히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외국대학만 목표로 삼다가 유학이 좌절됐을 경우, 국내 대학 진학에도 차질을 빚을 위험성이 있다. 다행히 1기생 전원이 미국 명문대에 진학함으로써 학교 분위기는 크게 고무된 상태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에게 대원외고 사례가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유학의 목적과 개인적 특성에 따라 적정시기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의 영어가 목적이라면 당연히 빠를수록 최선이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 고교를 1등으로 졸업한 한 청년은,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미국 일류 법률회사에서 연봉 28만달러를 받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영어가 달린다고 고민한다. 그는 미국에 정착해 방송인이나 변호사로 살아가려면 초등학교 수준에서 유학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의 유학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이들을 속어로 ‘바나나’라고 하는데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미국화된 한국인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학업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정착한다.
그렇다면 가장 흔한 유학 방식인 대학 재학 중 유학과 대학 졸업 후 유학은 어떤 장단점을 갖고 있을까. 유학전문상담기관인 CHI의 김덕환대표는 이렇게 비교 설명했다.
대학 재학 중 유학하는 것은 고교 졸업 직후 떠나는 것과 내용상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미국 대학마다 편입시 한국에서 이수한 학점을 인정하는 범위가 각각 달라 혼란이 생기고, 한 학기 내지 1년간 다시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일도 있다. 대신 국내에 학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할 사람들에게 적절한 방법이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은 대개 영어준비나 전공, 학문적 열정을 모두 갖춘 상태이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작다. 그러나 사고방식이 굳어진 상태여서 문화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유학의 목적이 영어를 배우는 것인지, 아니면 선진국의 선진학문을 제대로 배우러 가는 것인지, 또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현지에 정착할 것인지, 각자의 인생 계획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커리어 플래닝(Career Planning)의 한 단계로서 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헤드헌팅회사인 P&E컨설팅의 홍승녀대표는 “21세기 인재의 조건은 멀티내셔널리티(multinationality)”라면서 “요즘 기업들은 해외에서 성장하여 그 나라 문화를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나 중간에 유학을 했더라도 최소 석사과정까지는 마친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라면 유학은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한다.
그 예로 국내에 진출한 한 다국적 기업이 전문비서를 선발하면서 내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들 수 있다. ‘초-중-고교는 외국에서, 대학은 한국에서 마칠 것. 단 한국 대학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혀야 함. 전공은 파이낸스 이코노미, 영어는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
그러나 조기유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홍대표조차도 고1, 고2인 두 아들을 한국에서 교육시키고 있다. 이유는 자녀의 성격 때문. 소극적인 편인 큰애를 어릴 때 무조건 외국으로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큰애는 대학에 진학하면 단기 해외연수를 보낼 계획이고, 둘째는 가족회의를 거쳐 고3인 형의 입시가 끝나면 유학을 준비하기로 약속했다. 유학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라 해도 누구에게나 맞아떨어지는 정답은 없는 법이다.
올 상반기 중 자비유학이 전면 자율화되면 그동안 ‘불법’이라는 족쇄 때문에 망설이던 사람들까지 속속 유학 대열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녀의 15, 20년 뒤를 내다보고 유학의 목적과 시기를 선택하는 안목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요즘 서울 강남지역 유학원에는 초조한 얼굴로 이런 상담을 청하는 어머니들이 많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조기유학 열풍이 이미 초등학교까지 번진 상황에서, 이대로 두면 우리애만 뒤처진다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학원에서 권하는 가장 적절한 시기는 중학교 1, 2학년이다(‘초말중초’라 해서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1학년 시기를 꼽는 사람도 있다). 이 때 유학하면 미국 중학교를 1, 2년 다니며 영어를 익히고 자연스럽게 좋은 고등학교를 선택해 진학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명문고=아이비리그’라는 공식이 통용되므로 좋은 고교에 입학하는 것이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의 1차 관문이 된다. 또 미국 대학이 입학기준으로 삼는 SAT(학력평가시험)도 현지에서 준비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한국에 조기유학 성공신화를 퍼뜨린 ‘7막7장’(96년 출간)의 주인공 홍정욱씨가 하버드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1년 뒤 그는 명문 초우트 로즈마리 홀 고교에 입학했고 당초의 목표대로 하버드에 진학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 하버드까지’라는 책을 쓴 박혜나씨는 중학교 1학년 때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전문가들은 기왕 유학을 계획했다면 중학교 3학년 여름을 넘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때 출발해야 미국 고교 1학년(9학년)에 입학할 수 있다. 몇 개월 더 지연하면 자의든 타의든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한다.
그러나 서울 대원외국어고등학교가 올해 해외유학준비반(SAP) 1기생 9명을 모두 미국 명문대에 합격시키면서 유학의 적기(適期)에 대해 다른 의견이 제시됐다.
“조기유학의 목적은 대개 영어입니다. 그러나 SAP반 학생들은 토플성적 600점 이상으로, 영어로만 진행되는 강의를 받았습니다. 내신성적도 뛰어나 유학하지 않더라도 국내 주요 대학에 무난히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도피성 유학’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이처럼 기초적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일수록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국내에서 배워야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갖춘 진짜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SAP반을 만든 것은 어차피 대학 진학 후 유학할 학생들이라면 차라리 고교과정에서 준비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학교는 기본적으로 조기유학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김일형·대원외고 교감)
현재 이 학교에서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은 3학년 13명, 2학년 25명, 1학년 34명 등 모두 72명에 달한다. 이들은 방과 후 3시간씩 별도로 토플과 SAT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학은 SAT 성적 외에도 좋은 내신성적과 다양한 활동(봉사, 학생회, 운동, 클럽) 등 팔방미인형을 선호하는데 국내 여건에서는 이를 적절히 안배하기가 어렵다. 내신성적을 유지하면서 SAT 공부를 병행하고 봉사와 클럽활동까지 꾸준히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외국대학만 목표로 삼다가 유학이 좌절됐을 경우, 국내 대학 진학에도 차질을 빚을 위험성이 있다. 다행히 1기생 전원이 미국 명문대에 진학함으로써 학교 분위기는 크게 고무된 상태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에게 대원외고 사례가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유학의 목적과 개인적 특성에 따라 적정시기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의 영어가 목적이라면 당연히 빠를수록 최선이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 고교를 1등으로 졸업한 한 청년은,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미국 일류 법률회사에서 연봉 28만달러를 받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영어가 달린다고 고민한다. 그는 미국에 정착해 방송인이나 변호사로 살아가려면 초등학교 수준에서 유학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의 유학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이들을 속어로 ‘바나나’라고 하는데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미국화된 한국인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학업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정착한다.
그렇다면 가장 흔한 유학 방식인 대학 재학 중 유학과 대학 졸업 후 유학은 어떤 장단점을 갖고 있을까. 유학전문상담기관인 CHI의 김덕환대표는 이렇게 비교 설명했다.
대학 재학 중 유학하는 것은 고교 졸업 직후 떠나는 것과 내용상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미국 대학마다 편입시 한국에서 이수한 학점을 인정하는 범위가 각각 달라 혼란이 생기고, 한 학기 내지 1년간 다시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일도 있다. 대신 국내에 학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할 사람들에게 적절한 방법이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은 대개 영어준비나 전공, 학문적 열정을 모두 갖춘 상태이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작다. 그러나 사고방식이 굳어진 상태여서 문화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유학의 목적이 영어를 배우는 것인지, 아니면 선진국의 선진학문을 제대로 배우러 가는 것인지, 또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현지에 정착할 것인지, 각자의 인생 계획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커리어 플래닝(Career Planning)의 한 단계로서 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헤드헌팅회사인 P&E컨설팅의 홍승녀대표는 “21세기 인재의 조건은 멀티내셔널리티(multinationality)”라면서 “요즘 기업들은 해외에서 성장하여 그 나라 문화를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나 중간에 유학을 했더라도 최소 석사과정까지는 마친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라면 유학은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한다.
그 예로 국내에 진출한 한 다국적 기업이 전문비서를 선발하면서 내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들 수 있다. ‘초-중-고교는 외국에서, 대학은 한국에서 마칠 것. 단 한국 대학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혀야 함. 전공은 파이낸스 이코노미, 영어는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
그러나 조기유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홍대표조차도 고1, 고2인 두 아들을 한국에서 교육시키고 있다. 이유는 자녀의 성격 때문. 소극적인 편인 큰애를 어릴 때 무조건 외국으로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큰애는 대학에 진학하면 단기 해외연수를 보낼 계획이고, 둘째는 가족회의를 거쳐 고3인 형의 입시가 끝나면 유학을 준비하기로 약속했다. 유학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라 해도 누구에게나 맞아떨어지는 정답은 없는 법이다.
올 상반기 중 자비유학이 전면 자율화되면 그동안 ‘불법’이라는 족쇄 때문에 망설이던 사람들까지 속속 유학 대열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녀의 15, 20년 뒤를 내다보고 유학의 목적과 시기를 선택하는 안목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