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터넷 인구가 어느새 1400만명을 넘었다. 국민 3명 중 1명이 인터넷을 쓰는 꼴이다. 바야흐로 진정한 ‘인터넷 대중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또 인터넷의 대중화가 꼭 밝고 긍정적인 미래만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2월에 터진 일련의 굵직굵직한 해킹 사건들, 3월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둘러싼 더블클릭사 소송, 인터넷 접속 시간의 증가가 도리어 소외와 고독감을 심화하는가 하면 심지어 섹스중독자를 낳을 수도 있다는 연구보고서 등은, ‘인터넷 강국’이나 ‘정보사회’라는 희망 뒤에 숨은 절망이다. 온갖 방송과 신문을 타고 흐르는 ‘인터넷 찬가’가 드높을수록, 그 뒤에 숨은 위험성과 음모를 들여다보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인터넷의 뒤안, 디지털 시대의 그늘을 조명했다. 편집자
프라이버시의 종말
인터넷 시대에는 사생활이 없다. 인터넷을 이용하고 싶다면 당신은 당신의 개인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대다수 웹사이트들이 ‘공짜’임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당신의 개인 정보를 지폐나 크레디트카드 대신 받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신의 개인 정보가 ‘사이버 화폐’인 셈이다.
당신은 필요한 뉴스나 정보를 얻기 위해 이름과 나이,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주소와 직업, 수입 규모, 연락처 등을 적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의 막연한 불안감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내 개인 정보를 이렇게 마구 공개해도 되는 것일까. ‘당신의 개인정보를 절대 남용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약속하지만 이를 믿어도 될까. 혹시 내 개인정보가 나도 모르는 새 매매되고 유통되는 것은 아닐까.
그에 대한 대답은, 불행하게도 ‘바로 그렇다’이다. 2000년 1월27일, 캘리포니아주 매린 카운티의 보조 행정직원인 해리엣 저드닉은 인터넷 광고시장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는 더블클릭(www.doubleclick.com)사를 프라이버시 침해와 영업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더블클릭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사생활 정보를 모아 관리했을 뿐 아니라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려 했다는 주장이었다.
더블클릭사는 알타비스타, 오토바이텔 등 1500개 이상의 유명 웹사이트들에 배너 광고를 달아주는 인터넷 최대의 ‘애드-서버’(Ad-Server) 회사다. 미리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광고를 실어주므로 같은 웹사이트에 들어왔더라도 콘텐츠를 제외한 주위 광고들은 접속 이용자마다 다르다. 예컨대, 그가 평소 게임이나 음악 관련 사이트에 관심있다면 주로 신작 게임이나 음반 출시 광고를 보여주고, 재테크 정보에 관심있다면 금융-증권 사이트나 관련 상품 광고를 보여주는 식이다.
이러한 개별 이용자의 접속 행태는 그가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그의 컴퓨터에 자동 저장되는 ‘쿠키’(cookies)라는 이름의 작은 텍스트파일로부터 얻는다. 쿠키는 각 인터넷 이용자들이 어떤 정보나 메뉴를 클릭했는지를 낱낱이 알려주는 일종의 표지(標識)이고 감시카메라다.
더블클릭사는 이러한 쿠키 정보를 이용해 지금까지 약 1억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정보는 인터넷 이용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웹사이트에서 어떤 반응이나 행태를 보이는지,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 어떤 정보나 제품을 사는지 등등을 알려준다. 이 때까지만 해도 개별 이용자의 행태는 실명이 드러나지 않는 디지털 파일(쿠키)에 의해서만 구별됐다.
그러나 더블클릭사는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자사의 온라인 자료를, 실명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DM(회사나 백화점의 직송 광고물) 자료와 결합하고 싶었다. 그래서 1999년 11월 유명 DM회사인 애버커스 디렉트사를 17억달러(약 1조9950억원)나 들여 인수했다. 이는 웹 이용자들에 대한 ‘익명(匿名)의’ 데이터만을 광고주와 일반 기업들에 제공하겠다던 애초 정책을 조용히, 그러나 명백하게 뒤집은 것이었다.
더블클릭사는 쿠키로부터 얻은 ‘익명의’ 웹 이용자 성향과 애버커스 디렉트사의 실명 정보를 비교, 정확도 100%에 가까운 소비자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나갔다.
이는 일반 기업들로서는 가히 ‘꿈의 정보’라고 할 만했다. 누가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그의 취향이나 구매 성향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보다 더 좋은 정보가 어디 있겠는가. 이 정보를 이용하면 광고회사들은 특정 소비자의 이름, 나이, 취향, 구매 성향, 주소, 전화번호까지 속속들이 꿰게 된다. ‘A씨는 1997년형 쏘나타 승용차를 몰고다니는데, 올해 중에 새 차종으로 바꿀 계획이다’라는 식의 구체적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갖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제소자인 해리엣 저드닉이나 여느 개인들에게 이는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 대한 시시콜콜한 정보를 갖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를 다른 회사들과 마음대로 공유하거나 사고판다. 실제로 저드닉은 보험회사, 금융 회사, 소매 회사 등으로부터 전혀 요청하지도 않은 이메일 홍보물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시민단체와 관계자들은 더블클릭사의 행태에 대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필요 이상으로, 종종 탈법적으로 개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으며, 이를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사고팔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포르노 사이트들은 이용자 정보를 공유-남용하는 대표적인 경우. 혹시 어느 한 곳에 이메일 정보만 알려줘도 그는 다음날부터 ‘수신거부’조차 어려운 온갖 포르노 관련 광고 메일에 시달리게 된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온라인 소비자들이 그들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에 대해 해당 인터넷 기업들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입력하게 되는 개인정보가 장차 어떻게, 어느 선까지 이용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온라인 마케팅 회사들의 개인 정보 수집 행위나 그 방법, 적용 범위 등을 이용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고지(告知)토록 하는 법률안을 미 의회에 제안할 계획이다. 미국내 일부 주정부에서도 일반 온라인 소비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법률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온라인의 사생활권 문제는 이미 찻잔 속을 떠났다. 그것은 실제 폭풍이다”고 론 와이든 오리건주 상원의원은 강조한다.
한 직원이 헉헉 대며 들이닥친다. “큰일났어! 우리 웹사이트가 해킹당했어! 파일이 다 날아가 버렸어!” “뭐라고? ‘우째’ 그런 일이… 빨리 FBI에 연락해!” “그래… 가만, 우리가 FBI잖아…!”
한 미국 신문에 실린 만화 내용이다.
예외가 없었다. 야후든 CNN이든 아마존이든 예외없이 2, 3시간씩 옴쭉달싹할 수 없었다. 해커들의 공격에 서버가 마비돼 버린 것이다.
FBI가 수사에 나섰다. 범인을 잡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며칠 뒤, FBI조차 해커들의 제물이 됐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 더욱 한심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인터넷 서비스업체(ISP)임을 선전하던 A사가 미국의 주요 인터넷 기업들을 해킹하기 위한 경유지로 활용돼 온 사실이 밝혀졌다. 언론에 공식 보도조차 되지 않은 B사의 경우는 더 심했다. 사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이메일 계정이 해킹당함으로써 ‘국내 최고의 보안 솔루션업체’라던 자랑이 하루아침에 무색해진 것.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이 자사 컴퓨터가 해킹당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내셔널 컴퓨터 어소시에이츠(ICA)의 컴퓨터 보안 전문가인 사이먼 페리씨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유명 웹사이트가 해킹 때문에 서비스를 중단했던 것에 대해서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수천 대의 다른 컴퓨터들이 본의 아니게 이 해킹에 이용됐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침략 행위는 ‘서로 알지 못하는 시스템에서 원격 조정되는 디지털 미사일’과도 같은 것이다. 당신의 컴퓨터 시스템이 당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원격 미사일의 ‘발사대’ 노릇을 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 2월, 야후 아마존 이베이 바이닷컴 CNN 같은 인터넷의 대표 기업들이 당한 해킹기법은 ‘DoS’였다. 이는 ‘서비스 거부’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Denial of Service’의 약자. 특히 이번 공격은 수십~수백 대의 서버가 특정 시간에 동시에 방대한 양의 신호를 급전송하도록 맞춘 것으로, 공격하는 쪽의 서버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 하나의 공격이 마치 악의가 없는 일반 이용자들의 접근처럼 여겨진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의 컴퓨터 전문가인 롱스태프는 “현재의 소프트웨어 수준으로도 협조된 DoS 공격을 감지할 수는 있으나, 이를 차단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해킹 사건으로 최소한 수백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해커들이 직접 해당 사이트의 핵심부까지 침입한 것도 아니고, 고객 정보라든지 기업 기밀이 도난당한 것도 아니지만, 단지 접속이 1∼3시간 마비된 것만으로도 그 피해는 엄청나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이들 인터넷 대표 기업이 받게 된 이미지 손상이 크다.
해커들에 의한 피해액은 나날이 늘고 있다. 이번 해킹 사건의 주범이 사는 나라로 지목된 독일만 하더라도, 인터넷상의 불법적인 정보 유통과 인터넷 서버에 대한 해킹 등의 피해액이 연간 200억마르크(약 12조원)에 이른다. 독일의 일간지 ‘디 벨트’는 독일 연방범죄수사국(BKA)의 자료를 인용, ‘인터넷 기업에 대한 해커의 침입은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 내용에 따르면 해킹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보다도 인터넷 자체의 취약성에 따른 잠재적 위험성이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 레오 슈스터 BKA 국장은 “미국의 주요 웹사이트들이 마비된 사태는 해킹 문제가 긴급한 사안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미 알려진 보안상의 취약점을 해결하는 데 진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도 정부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해킹을 컴퓨터 전문가의 장난이나 기술 과시가 아니라, ‘사이버 전쟁’으로 불리는 새로운 차원의 전투나 전쟁의 징후로 인식하는 것이다. 루이스 프리치 FBI 국장은 미 의회 증언에서 “이제 테러리스트들은 실제 폭탄을 통한 ‘대량 살상’(Destruction)뿐 아니라 컴퓨터 해킹 등의 방법을 이용한 ‘대량 마비’(Disruption)까지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킹과 사회운동을 결합한 ‘핵티비즘’(Hacktivism)도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뛰어난 해킹 기술을 갖춘 이들 운동가(핵티비스트)는 그들의 해킹 기법을 이용해 특정 웹사이트를 엉망으로 만들거나, 중요 데이터를 손상시킨다. 프리치 국장은 “인터넷 블랙 타이거스라는 핵티비스트들이 DoS공격을 통해 스리랑카 정부의 대사관 서버들을 마비시킨 적이 있으며, 멕시코 반정부군인 자파티스타에 동조한 이탈리아의 핵티비스트들은 멕시코 금융 기관들의 웹사이트를 공격하기도 했다”고 보고했다.
민간의 대응도 활발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웹사이트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60명 정도의 사이버 경찰을 뽑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터넷 관련 법률가, 분석가 등 전문인력도 100여명 더 충원할 계획이다.
“인터넷은 예전에 TV가 그랬던 것보다 더욱 심각하게 개인의 공동체 참여시간을 줄인다. 인터넷은 궁극적으로 ‘고립의 기술’(Isolating Technology)인지도 모른다.”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계량연구소(SIQSS)의 노먼 나이(Norman Nie) 교수가 내린 결론은 이처럼 음울하다.
지난 2월 SIQSS는 2689가구, 4113명의 성인들에 대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인터넷 이용 시간이 많아질수록 ‘진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도리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사 결과를 몇 가지 항목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일주일에 다섯시간 이상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의 4분의 1이, 그로 인해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나 대외 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직장 인터넷 이용자의 25%는 인터넷 때문에 가정에서의 작업 시간이 늘었다고 대답했다. 사무실 근무시간은 그대로였다.
정기적인 인터넷 이용자의 60%가 인터넷 때문에 TV 보는 시간이 줄었다고 대답했고, 30%는 신문 보는 시간도 줄었다고 대답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3분의 2는 매주 다섯시간 미만 인터넷을 이용했는데 이들은 일상 생활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매주 다섯시간 이상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은 달랐다. 이들은 “인터넷 때문에 가족 친구 등 다른 사람과의 대면 접촉 시간이 줄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매일 몇 시간씩 이용하는 중(重)사용자, 다시 말해 ‘헤비 유저’(Heavy users)로 바뀌리라는 사실이다. 나이 교수와 함께 연구에 참여한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루츠 에르브링(Lutz Erbring) 교수는 “네트워크 환경과 이를 활용한 비즈니스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인터넷 이용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 것이고, 결국 이들은 소수에서 다수로 변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 교수는 “인터넷 이용에 할애되는 이른바 ‘인터넷 타임’은 상당 부분 TV 시청 시간에서 나온 것이지만 가족이나 친구와 나누는 전화통화, 또는 직접적인 대화 시간을 희생해 나온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이메일을 이용하고, 이것이 가족이나 친구와의 대화를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메일을 통해 커피나 맥주를 나눌 수도 없고 그들을 정겹게 포옹해줄 수는 더더욱 없다.”
그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은 기본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또는 개별적인 활동이다. “인터넷은 TV와 같지 않다”고 나이 교수는 말한다. “TV는 신경쓰면서 보지 않은 채 단지 배경의 소음으로 방치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용자에게 적극적인 주의와 개입을 요구한다.”
SIQSS의 결론은 명료하다. “인터넷은 고독한 군중을 양산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1950년대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걱정했던 ‘고독한 군중’이, 전세계 인류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줄 것이라던 인터넷에 의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주장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급증하는 것은 인터넷 이용자의 숫자만이 아니다. 포르노 사이트, 음란 채팅 사이트 등의 증가세도 그에 못지 않다. 문제는 이런 사이트들이 섹스 중독자를 양산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섹스 관련 사이트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고 미국 새너제이 섹슈얼리티센터의 알 쿠퍼 박사는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여성, 게이 남성 등 ‘성적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그룹은 특히 인터넷 섹스 중독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 “성적 억압을 느끼는 이들에게 인터넷은 해방공간 노릇을 한다. 원하는 섹스 정보나 상대를 찾기 위해 그런 곳만 뒤지게 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쿠퍼 박사와 다른 두 동료 연구원은 9000여명의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인터넷을 이용한 성 관련 조사로는 1998년의 MSNBC 이후 가장 큰 규모. 그 결과 대부분은 섹스 사이트에 탐닉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적어도 1% 정도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섹스 사이트에 몰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매주 11시간 이상 음란사이트 및 채팅 접속 등 온라인 섹스에 탐닉했다.
언뜻 보기에 1%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수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사람 수로 따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대략 12만명 정도가 ‘섹스 중독증 환자’라는 결론. 그뿐이 아니다. 여성 응답자의 12%, 남성 응답자의 20%가 직장의 컴퓨터를 이용해 음란물을 얻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100명 중 6명 꼴로 “인터넷 접속의 최우선 목적은 섹스 관련 정보를 얻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인터넷 포르노 문제는 심각하다. 안보곤 못배기는 ‘중독자’의 맞은 편에는 우후죽순처럼 새롭게 생겨나는 포르노 사이트들이 있다. 매일 새롭게 선보이는 사이트의 90% 이상이 음란물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성년 자녀들의 인터넷 음란물 접근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막는데 급급하다가는 자칫 ‘표현의 자유’ 문제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필터나 차단벽 설치는 또다른 회피 기술의 발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포르노 문제는 인간의 욕망이 통제되지 않는 한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게릴라전’인지도 모른다.
프라이버시의 종말
인터넷 시대에는 사생활이 없다. 인터넷을 이용하고 싶다면 당신은 당신의 개인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대다수 웹사이트들이 ‘공짜’임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당신의 개인 정보를 지폐나 크레디트카드 대신 받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신의 개인 정보가 ‘사이버 화폐’인 셈이다.
당신은 필요한 뉴스나 정보를 얻기 위해 이름과 나이,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주소와 직업, 수입 규모, 연락처 등을 적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의 막연한 불안감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내 개인 정보를 이렇게 마구 공개해도 되는 것일까. ‘당신의 개인정보를 절대 남용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약속하지만 이를 믿어도 될까. 혹시 내 개인정보가 나도 모르는 새 매매되고 유통되는 것은 아닐까.
그에 대한 대답은, 불행하게도 ‘바로 그렇다’이다. 2000년 1월27일, 캘리포니아주 매린 카운티의 보조 행정직원인 해리엣 저드닉은 인터넷 광고시장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는 더블클릭(www.doubleclick.com)사를 프라이버시 침해와 영업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더블클릭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사생활 정보를 모아 관리했을 뿐 아니라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려 했다는 주장이었다.
더블클릭사는 알타비스타, 오토바이텔 등 1500개 이상의 유명 웹사이트들에 배너 광고를 달아주는 인터넷 최대의 ‘애드-서버’(Ad-Server) 회사다. 미리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광고를 실어주므로 같은 웹사이트에 들어왔더라도 콘텐츠를 제외한 주위 광고들은 접속 이용자마다 다르다. 예컨대, 그가 평소 게임이나 음악 관련 사이트에 관심있다면 주로 신작 게임이나 음반 출시 광고를 보여주고, 재테크 정보에 관심있다면 금융-증권 사이트나 관련 상품 광고를 보여주는 식이다.
이러한 개별 이용자의 접속 행태는 그가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그의 컴퓨터에 자동 저장되는 ‘쿠키’(cookies)라는 이름의 작은 텍스트파일로부터 얻는다. 쿠키는 각 인터넷 이용자들이 어떤 정보나 메뉴를 클릭했는지를 낱낱이 알려주는 일종의 표지(標識)이고 감시카메라다.
더블클릭사는 이러한 쿠키 정보를 이용해 지금까지 약 1억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정보는 인터넷 이용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웹사이트에서 어떤 반응이나 행태를 보이는지,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 어떤 정보나 제품을 사는지 등등을 알려준다. 이 때까지만 해도 개별 이용자의 행태는 실명이 드러나지 않는 디지털 파일(쿠키)에 의해서만 구별됐다.
그러나 더블클릭사는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자사의 온라인 자료를, 실명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DM(회사나 백화점의 직송 광고물) 자료와 결합하고 싶었다. 그래서 1999년 11월 유명 DM회사인 애버커스 디렉트사를 17억달러(약 1조9950억원)나 들여 인수했다. 이는 웹 이용자들에 대한 ‘익명(匿名)의’ 데이터만을 광고주와 일반 기업들에 제공하겠다던 애초 정책을 조용히, 그러나 명백하게 뒤집은 것이었다.
더블클릭사는 쿠키로부터 얻은 ‘익명의’ 웹 이용자 성향과 애버커스 디렉트사의 실명 정보를 비교, 정확도 100%에 가까운 소비자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나갔다.
이는 일반 기업들로서는 가히 ‘꿈의 정보’라고 할 만했다. 누가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그의 취향이나 구매 성향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보다 더 좋은 정보가 어디 있겠는가. 이 정보를 이용하면 광고회사들은 특정 소비자의 이름, 나이, 취향, 구매 성향, 주소, 전화번호까지 속속들이 꿰게 된다. ‘A씨는 1997년형 쏘나타 승용차를 몰고다니는데, 올해 중에 새 차종으로 바꿀 계획이다’라는 식의 구체적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갖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제소자인 해리엣 저드닉이나 여느 개인들에게 이는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 대한 시시콜콜한 정보를 갖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를 다른 회사들과 마음대로 공유하거나 사고판다. 실제로 저드닉은 보험회사, 금융 회사, 소매 회사 등으로부터 전혀 요청하지도 않은 이메일 홍보물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시민단체와 관계자들은 더블클릭사의 행태에 대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필요 이상으로, 종종 탈법적으로 개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으며, 이를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사고팔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포르노 사이트들은 이용자 정보를 공유-남용하는 대표적인 경우. 혹시 어느 한 곳에 이메일 정보만 알려줘도 그는 다음날부터 ‘수신거부’조차 어려운 온갖 포르노 관련 광고 메일에 시달리게 된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온라인 소비자들이 그들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에 대해 해당 인터넷 기업들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입력하게 되는 개인정보가 장차 어떻게, 어느 선까지 이용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온라인 마케팅 회사들의 개인 정보 수집 행위나 그 방법, 적용 범위 등을 이용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고지(告知)토록 하는 법률안을 미 의회에 제안할 계획이다. 미국내 일부 주정부에서도 일반 온라인 소비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법률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온라인의 사생활권 문제는 이미 찻잔 속을 떠났다. 그것은 실제 폭풍이다”고 론 와이든 오리건주 상원의원은 강조한다.
한 직원이 헉헉 대며 들이닥친다. “큰일났어! 우리 웹사이트가 해킹당했어! 파일이 다 날아가 버렸어!” “뭐라고? ‘우째’ 그런 일이… 빨리 FBI에 연락해!” “그래… 가만, 우리가 FBI잖아…!”
한 미국 신문에 실린 만화 내용이다.
예외가 없었다. 야후든 CNN이든 아마존이든 예외없이 2, 3시간씩 옴쭉달싹할 수 없었다. 해커들의 공격에 서버가 마비돼 버린 것이다.
FBI가 수사에 나섰다. 범인을 잡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며칠 뒤, FBI조차 해커들의 제물이 됐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 더욱 한심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인터넷 서비스업체(ISP)임을 선전하던 A사가 미국의 주요 인터넷 기업들을 해킹하기 위한 경유지로 활용돼 온 사실이 밝혀졌다. 언론에 공식 보도조차 되지 않은 B사의 경우는 더 심했다. 사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이메일 계정이 해킹당함으로써 ‘국내 최고의 보안 솔루션업체’라던 자랑이 하루아침에 무색해진 것.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이 자사 컴퓨터가 해킹당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내셔널 컴퓨터 어소시에이츠(ICA)의 컴퓨터 보안 전문가인 사이먼 페리씨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유명 웹사이트가 해킹 때문에 서비스를 중단했던 것에 대해서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수천 대의 다른 컴퓨터들이 본의 아니게 이 해킹에 이용됐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침략 행위는 ‘서로 알지 못하는 시스템에서 원격 조정되는 디지털 미사일’과도 같은 것이다. 당신의 컴퓨터 시스템이 당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원격 미사일의 ‘발사대’ 노릇을 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 2월, 야후 아마존 이베이 바이닷컴 CNN 같은 인터넷의 대표 기업들이 당한 해킹기법은 ‘DoS’였다. 이는 ‘서비스 거부’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Denial of Service’의 약자. 특히 이번 공격은 수십~수백 대의 서버가 특정 시간에 동시에 방대한 양의 신호를 급전송하도록 맞춘 것으로, 공격하는 쪽의 서버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 하나의 공격이 마치 악의가 없는 일반 이용자들의 접근처럼 여겨진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의 컴퓨터 전문가인 롱스태프는 “현재의 소프트웨어 수준으로도 협조된 DoS 공격을 감지할 수는 있으나, 이를 차단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해킹 사건으로 최소한 수백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해커들이 직접 해당 사이트의 핵심부까지 침입한 것도 아니고, 고객 정보라든지 기업 기밀이 도난당한 것도 아니지만, 단지 접속이 1∼3시간 마비된 것만으로도 그 피해는 엄청나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이들 인터넷 대표 기업이 받게 된 이미지 손상이 크다.
해커들에 의한 피해액은 나날이 늘고 있다. 이번 해킹 사건의 주범이 사는 나라로 지목된 독일만 하더라도, 인터넷상의 불법적인 정보 유통과 인터넷 서버에 대한 해킹 등의 피해액이 연간 200억마르크(약 12조원)에 이른다. 독일의 일간지 ‘디 벨트’는 독일 연방범죄수사국(BKA)의 자료를 인용, ‘인터넷 기업에 대한 해커의 침입은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 내용에 따르면 해킹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보다도 인터넷 자체의 취약성에 따른 잠재적 위험성이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 레오 슈스터 BKA 국장은 “미국의 주요 웹사이트들이 마비된 사태는 해킹 문제가 긴급한 사안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미 알려진 보안상의 취약점을 해결하는 데 진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도 정부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해킹을 컴퓨터 전문가의 장난이나 기술 과시가 아니라, ‘사이버 전쟁’으로 불리는 새로운 차원의 전투나 전쟁의 징후로 인식하는 것이다. 루이스 프리치 FBI 국장은 미 의회 증언에서 “이제 테러리스트들은 실제 폭탄을 통한 ‘대량 살상’(Destruction)뿐 아니라 컴퓨터 해킹 등의 방법을 이용한 ‘대량 마비’(Disruption)까지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킹과 사회운동을 결합한 ‘핵티비즘’(Hacktivism)도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뛰어난 해킹 기술을 갖춘 이들 운동가(핵티비스트)는 그들의 해킹 기법을 이용해 특정 웹사이트를 엉망으로 만들거나, 중요 데이터를 손상시킨다. 프리치 국장은 “인터넷 블랙 타이거스라는 핵티비스트들이 DoS공격을 통해 스리랑카 정부의 대사관 서버들을 마비시킨 적이 있으며, 멕시코 반정부군인 자파티스타에 동조한 이탈리아의 핵티비스트들은 멕시코 금융 기관들의 웹사이트를 공격하기도 했다”고 보고했다.
민간의 대응도 활발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웹사이트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60명 정도의 사이버 경찰을 뽑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터넷 관련 법률가, 분석가 등 전문인력도 100여명 더 충원할 계획이다.
“인터넷은 예전에 TV가 그랬던 것보다 더욱 심각하게 개인의 공동체 참여시간을 줄인다. 인터넷은 궁극적으로 ‘고립의 기술’(Isolating Technology)인지도 모른다.”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계량연구소(SIQSS)의 노먼 나이(Norman Nie) 교수가 내린 결론은 이처럼 음울하다.
지난 2월 SIQSS는 2689가구, 4113명의 성인들에 대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인터넷 이용 시간이 많아질수록 ‘진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도리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사 결과를 몇 가지 항목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일주일에 다섯시간 이상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의 4분의 1이, 그로 인해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나 대외 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직장 인터넷 이용자의 25%는 인터넷 때문에 가정에서의 작업 시간이 늘었다고 대답했다. 사무실 근무시간은 그대로였다.
정기적인 인터넷 이용자의 60%가 인터넷 때문에 TV 보는 시간이 줄었다고 대답했고, 30%는 신문 보는 시간도 줄었다고 대답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3분의 2는 매주 다섯시간 미만 인터넷을 이용했는데 이들은 일상 생활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매주 다섯시간 이상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은 달랐다. 이들은 “인터넷 때문에 가족 친구 등 다른 사람과의 대면 접촉 시간이 줄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매일 몇 시간씩 이용하는 중(重)사용자, 다시 말해 ‘헤비 유저’(Heavy users)로 바뀌리라는 사실이다. 나이 교수와 함께 연구에 참여한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루츠 에르브링(Lutz Erbring) 교수는 “네트워크 환경과 이를 활용한 비즈니스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인터넷 이용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 것이고, 결국 이들은 소수에서 다수로 변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 교수는 “인터넷 이용에 할애되는 이른바 ‘인터넷 타임’은 상당 부분 TV 시청 시간에서 나온 것이지만 가족이나 친구와 나누는 전화통화, 또는 직접적인 대화 시간을 희생해 나온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이메일을 이용하고, 이것이 가족이나 친구와의 대화를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메일을 통해 커피나 맥주를 나눌 수도 없고 그들을 정겹게 포옹해줄 수는 더더욱 없다.”
그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은 기본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또는 개별적인 활동이다. “인터넷은 TV와 같지 않다”고 나이 교수는 말한다. “TV는 신경쓰면서 보지 않은 채 단지 배경의 소음으로 방치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용자에게 적극적인 주의와 개입을 요구한다.”
SIQSS의 결론은 명료하다. “인터넷은 고독한 군중을 양산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1950년대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걱정했던 ‘고독한 군중’이, 전세계 인류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줄 것이라던 인터넷에 의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주장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급증하는 것은 인터넷 이용자의 숫자만이 아니다. 포르노 사이트, 음란 채팅 사이트 등의 증가세도 그에 못지 않다. 문제는 이런 사이트들이 섹스 중독자를 양산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섹스 관련 사이트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고 미국 새너제이 섹슈얼리티센터의 알 쿠퍼 박사는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여성, 게이 남성 등 ‘성적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그룹은 특히 인터넷 섹스 중독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 “성적 억압을 느끼는 이들에게 인터넷은 해방공간 노릇을 한다. 원하는 섹스 정보나 상대를 찾기 위해 그런 곳만 뒤지게 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쿠퍼 박사와 다른 두 동료 연구원은 9000여명의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인터넷을 이용한 성 관련 조사로는 1998년의 MSNBC 이후 가장 큰 규모. 그 결과 대부분은 섹스 사이트에 탐닉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적어도 1% 정도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섹스 사이트에 몰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매주 11시간 이상 음란사이트 및 채팅 접속 등 온라인 섹스에 탐닉했다.
언뜻 보기에 1%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수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사람 수로 따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대략 12만명 정도가 ‘섹스 중독증 환자’라는 결론. 그뿐이 아니다. 여성 응답자의 12%, 남성 응답자의 20%가 직장의 컴퓨터를 이용해 음란물을 얻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100명 중 6명 꼴로 “인터넷 접속의 최우선 목적은 섹스 관련 정보를 얻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인터넷 포르노 문제는 심각하다. 안보곤 못배기는 ‘중독자’의 맞은 편에는 우후죽순처럼 새롭게 생겨나는 포르노 사이트들이 있다. 매일 새롭게 선보이는 사이트의 90% 이상이 음란물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성년 자녀들의 인터넷 음란물 접근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막는데 급급하다가는 자칫 ‘표현의 자유’ 문제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필터나 차단벽 설치는 또다른 회피 기술의 발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포르노 문제는 인간의 욕망이 통제되지 않는 한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게릴라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