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책방에 가면 예사롭지 않다. 신간도서가 놓여 있는 전시대에 많은 책이 꽂혀 있는데 화사한 표지에 비해 제목은 살벌하다. “…죽어야 …산다” “…망해야 …산다” “…절대로 하지마라” “…목숨을 건다” 등 하나같이 거칠기 그지없다. 우리 현실에 대한 수사가 은유와 반어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신세기의 희망을 갖기엔 세기말의 불안이 커서 그럴까? 유럽이나 미국의 독서계에도 여러 종류의 ‘종말론’과 ‘포스트론’이 휩쓸고 있는 것을 보면 사정은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엔 IMF 체제 아래 기대와 절망이 교차하는 폭이 큰 만큼이나 사람들의 속내가 더욱 불편한 것 같다.
무언가 짜릿한 표현으로 독자를 자극하지 못하면 책이 팔리지 않는 우리의 부박한 출판문화에서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읽을 수 있다. 분명 사람들은 상실과 회의에 빠져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평범한 모범답안보다는 비상한 탈출해법을 바란다.
새 정부 들어 2년 가까이 지나면서 도`-`감청문제, 고급옷로비사건, 언론대책문건파동, 조폐공사파업조작 등 크고 작은 스캔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정부가 사실을 호도하는 가운데 진상이 감춰지고 국민 사이에 의혹과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권력의 도덕성 차원의 문제를 넘어 정당성의 부식(腐蝕)과 함께 효율성의 약화로 치달을 수 있다. 공동정권에 대한 불만과 지지철회, 그리고 국정 전반에 걸친 난맥과 정책혼선이 그 증거다.
이렇듯이 급격한 민심이탈의 밑바닥에는 현 정부의 말과 행동이 수시로 바뀐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애초부터 지킬 의사 없이 제시된 내각제 개헌이 권력장악을 위한 정략적 발상이었음을 간파하지 못하는 국민은 이제 거의 없다. 대통령이 집권 전에 약속한 지역차별`-`정치보복`-`정치자금에 관한 이른바 ‘3금법’은 그 형체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편중인사로 인한 지역감정의 악화, 편파사정에 따른 사회 정의의 왜곡, 당리당략에 빠진 정치개혁의 실종이 잘 말해줄 것이다.
국민의 정부에 들어와서 대한민국은 ‘거짓말 공화국’이라는 신뢰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하는 노사정위원회가 좋은 보기다. 정부는 처음부터 노사정위원회를 위기관리를 위한 국면돌파 방편 이상으로 간주하지 않은 것 같다.
그 결과 새로운 노사관계의 제도화를 위한 사회협약의 가능성이 멀어지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문제만 해도, 이것은 이미 정부가 노조와 그 금지조항 개정에 약속한 사안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금 재계의 눈치를 보는 정부와 여야의 태도에서 여전히 열악한 노조의 위상을 본다.
人治보다 法治에 기반한 정치 펼쳐야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은 국정운영 방식에서도 나온다. 국가의 제도와 정책이 법치에 기반한 투명한 절차보다 인치에 입각한 음습한 공작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구시대의 인물들이 권력의 주위에서 ‘노하우’를 제공하는 한 이러한 퇴행적 통치 행태는 바로잡혀지기 어렵다. 사리를 좇는 세리(勢吏)들이 판을 치는데 국익을 위한 이도(吏道)가 바로 설 리 없다. 국가의 중요 공적 정보가 유출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세기 전환의 길목에서 앞으로 가도 바쁜 형편에 뒤로 가고 있는 우리 정치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이번 세밑은 보통 섣달 그믐이 아니다. 10년, 100년, 1000년이 함께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새 천년 맞이라는 말의 성찬에서 체제 쇄신의 실천이 보이지 않는다.
흔히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두 차례에 걸친 민간정부의 집권을 통해 버릴 것을 버리고, 고칠 것을 고치지 못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밝지 않다. 문민정부의 비극이 국민정부의 소극(笑劇)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