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있는 ‘하림내몽고 맥반석’은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맥반석 찜질방 중 하나다. 1500평이나 되는 넓은 규모로 지난 9월에 문을 열고 성업중이다.
황토와 나무 등 ‘환경친화적’ 재료로 만든 300평 규모의 맥반석 방사(放射)실에 들어가면 군데군데 거대한 철문이 있다. 안내방송으로 “지금 1번 문에서 맥반석이 나오고 있습니다”라는 소리가 나오자 휴게실에서 쉬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서둘러 철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철문이 열리고 레일 위로 벌겋게 구워진 맥반석이 서서히 실려나오자 사람들은 팔을 들어올렸다. 가능하면 원적외선을 많이 쐬기 위해서다. ‘방사복’인 흰색 셔츠와 반바지, 흰색 양말을 똑같이 입고 맥반석을 맞이하는 모습은 사뭇 경건하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땀을 흘리고 있다. 고객의 80% 정도는 여자. 사람들에게 ‘건강’은 새로운 ‘신’(神)이며 찜질방은 새로운 신전과 다름없는 듯하다.
남광영기획홍보실장은 “찜질방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의 새로운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무릎이 아파서 걷지도 못했는데 여기 몇번 와서 많이 좋아졌어요.” 서울 마포에서 왔다는 이모씨 모녀는 이곳에서 밤을 샐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입장료 1만원을 뽑으려면 최소한 6시간은 있어야 한다”며 웃었다.
대형-고급화 추세 … 덤핑 경쟁도
3년전 양산 울산 등에서 시작된 맥반석 찜질방은 부스럼 관절염 성인병 등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과 함께 서울로 북상, 인기를 얻고 있다. 옥, 게르마늄, 황토 등 다른 원적외선 방사체를 이용한 ‘찜질방’ ‘불가마’들도 인기. 일반 대중탕들도 방사체 시설을 추가하면서 찜질방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98년 부산에서 80평 규모의 ‘맥섬석 체험실’을 시작한 정성문씨는 “내가 직접 효과를 봤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건강사업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이름도 ‘체험실’이라고 붙였다. 그러나 1년 사이에 바로 옆에 일곱군데가 생겨 요즘은 현상유지도 어렵다”고 말한다. 아직도 밤 11시 폐장을 고집하는 그는 다른 업소들이 24시간 영업에 400~500평 규모로 대형화`-`고급화한 데다 노래방까지 갖추고 입장료도 7000원에서 6000원으로 내려 덤핑 경쟁에 들어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목욕탕 기능을 겸한 각종 찜질방이 많아지다 보니 전통적인 동네 목욕탕은 빠르게 도태돼 간다. 사단법인 한국목욕업 중앙회 김수철사무국장은 “집에 목욕시설이 없던 시절엔 말 그대로 몸을 씻으러 가까운 목욕탕에 갔지만 요즘 사람들은 찜질방이나 특별한 기능을 갖춘 목욕탕만을 찾는다”고 말한다. ‘땀빼기’는 이제 한국인들의 레저가 된 것이다.
목욕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서울 강남의 경우 140개 남짓한 일반 목욕탕 중 올해 3월까지 1년 동안 7개 업소가 문을 닫았고 10월까지 또 7개 목욕탕이 폐업했다. 대신 목욕탕 안에 25m 수영장을 갖출 정도로 초대형화하거나 각종 찜질방을 갖춘 고급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압구정동의 여성전용 목욕탕 ‘천지연’은 문을 연지 1년밖에 안됐지만 일본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일본 언론에도 자주 소개된 곳. 이곳에는 손목에 ‘안마’ ‘지압’ 등의 예약표를 주렁주렁 건 일본 여성들이 한국 여성들과 반반씩 섞여 맥반석, 옥, 잣 등을 이용한 다양한 방에서 땀을 빼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여성들이 옷을 벗고 땀을 빼는 반면, 일본 관광객들은 꼭 가운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천지연’ 이종인영업부장은 “작년 말부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목욕과 찜질방의 인기로 이어진 듯하다”고 말한다.
강남에서 소위 ‘고급 사교장’으로 이름을 날리는 찜질방이나 목욕탕에는 경락, 지압, 스포츠 등 각종 마사지사와 식당, 네일바는 물론이고 베르사체, 미소니 등 고가의 수입의류를 파는 간이 옷가게까지 갖춰져 있다. 입장료는 대개 1만, 2만원 정도지만 때를 밀고 경락 마사지 등을 2시간 정도 받으려면 쉽게 20만원은 쓴다. 강남의 D목욕탕 단골인 주부 김모씨는 “때를 미는 데 4만원이지만 10만원씩 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찜질방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부분의 업소는 영세한 규모로,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찜질방의 44%가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 남대문에 있는 한 여성전용 옥찜질방은 뜨거운 방에서 나는 페인트 냄새와 담배연기로 눈이 따가울 정도. 작은 엘리베이터 한대가 있는 빌딩에 위치한 이 찜질방은 스프링쿨러도 없어 한눈에도 화재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식 동네 목욕탕 설 땅 잃어
이러한 작은 동네 찜질방에서는 자주 화투판까지 벌어진다. 11월19일 서울 서대문구 주택가에 있는 한 찜질방. 자정이 넘었지만 탈의실에서는 점당 200원의 고스톱판이 끝날 줄 모른다. ‘체험실’의 TV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오자 ‘형님’으로 불리던 중년 여성이 박수를 치며 춤을 추고 다른 여성들도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을 냈다. 옆방에서는 ‘출장 나온’ 맹인 안마사가 지압을 하며 사주를 봐주기도 했다. “난 집에서 남편만 쳐다보고 있으면 병이 나.”
“집에 혼자 있느니 여기 오면 전기세도 아끼고 친구들 만나서 스트레스도 풀지.”
이들은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찜질방과 대형 목욕시설이 번창하면서 영화 ‘억수탕’에 나온 구식 목욕탕들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때가 둥둥 뜬 욕탕의 물을 흘러 넘치게 하려고 물을 틀며 주인 눈치를 봐야 하는 목욕탕, 아이들 울음소리로 귀가 멍멍하긴 해도, 알몸이어도 당당하고 낯선 사람들끼리 등을 밀어주는 그런 목욕탕 말이다. 남녀가 함께 땀을 빼는 찜질방에서는 일단 땀에 젖은 셔츠와 바지에도 신경이 쓰인다. 부부가 만날 수는 있어도 아이들은 출입금지다. 고급 목욕탕에서는 ‘품위 있게’ 가운을 입고 다니며, 마사지사는 늘어진 살집을 보고 “경락마사지 받으라”고 말해 자신의 몸을 부끄럽게 한다.
‘목욕하는 여자들’을 찍은 사진작가 박화야씨의 작품을 통해 평론가들은 우리나라의 대중탕이 가진 ‘장소성’에 주목했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의 말에 따르면 대중목욕탕의 여성은 “해방된 인간”이다. 사진평론가 박신의씨는 “대중목욕탕은 모든 사람이 알몸이면서도 에로틱함이 사라진 독특한 커뮤니티”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목욕탕의 의미도 달라졌다. 오늘날 목욕탕은 자신이 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장소이자 사교장이며 ‘아줌마 문화’의 산실이다. 또한 땀이 날 만큼 육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비된’ 삶을 비추는 곳이기도 하다.
황토와 나무 등 ‘환경친화적’ 재료로 만든 300평 규모의 맥반석 방사(放射)실에 들어가면 군데군데 거대한 철문이 있다. 안내방송으로 “지금 1번 문에서 맥반석이 나오고 있습니다”라는 소리가 나오자 휴게실에서 쉬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서둘러 철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철문이 열리고 레일 위로 벌겋게 구워진 맥반석이 서서히 실려나오자 사람들은 팔을 들어올렸다. 가능하면 원적외선을 많이 쐬기 위해서다. ‘방사복’인 흰색 셔츠와 반바지, 흰색 양말을 똑같이 입고 맥반석을 맞이하는 모습은 사뭇 경건하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땀을 흘리고 있다. 고객의 80% 정도는 여자. 사람들에게 ‘건강’은 새로운 ‘신’(神)이며 찜질방은 새로운 신전과 다름없는 듯하다.
남광영기획홍보실장은 “찜질방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의 새로운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무릎이 아파서 걷지도 못했는데 여기 몇번 와서 많이 좋아졌어요.” 서울 마포에서 왔다는 이모씨 모녀는 이곳에서 밤을 샐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입장료 1만원을 뽑으려면 최소한 6시간은 있어야 한다”며 웃었다.
대형-고급화 추세 … 덤핑 경쟁도
3년전 양산 울산 등에서 시작된 맥반석 찜질방은 부스럼 관절염 성인병 등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과 함께 서울로 북상, 인기를 얻고 있다. 옥, 게르마늄, 황토 등 다른 원적외선 방사체를 이용한 ‘찜질방’ ‘불가마’들도 인기. 일반 대중탕들도 방사체 시설을 추가하면서 찜질방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98년 부산에서 80평 규모의 ‘맥섬석 체험실’을 시작한 정성문씨는 “내가 직접 효과를 봤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건강사업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이름도 ‘체험실’이라고 붙였다. 그러나 1년 사이에 바로 옆에 일곱군데가 생겨 요즘은 현상유지도 어렵다”고 말한다. 아직도 밤 11시 폐장을 고집하는 그는 다른 업소들이 24시간 영업에 400~500평 규모로 대형화`-`고급화한 데다 노래방까지 갖추고 입장료도 7000원에서 6000원으로 내려 덤핑 경쟁에 들어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목욕탕 기능을 겸한 각종 찜질방이 많아지다 보니 전통적인 동네 목욕탕은 빠르게 도태돼 간다. 사단법인 한국목욕업 중앙회 김수철사무국장은 “집에 목욕시설이 없던 시절엔 말 그대로 몸을 씻으러 가까운 목욕탕에 갔지만 요즘 사람들은 찜질방이나 특별한 기능을 갖춘 목욕탕만을 찾는다”고 말한다. ‘땀빼기’는 이제 한국인들의 레저가 된 것이다.
목욕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서울 강남의 경우 140개 남짓한 일반 목욕탕 중 올해 3월까지 1년 동안 7개 업소가 문을 닫았고 10월까지 또 7개 목욕탕이 폐업했다. 대신 목욕탕 안에 25m 수영장을 갖출 정도로 초대형화하거나 각종 찜질방을 갖춘 고급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압구정동의 여성전용 목욕탕 ‘천지연’은 문을 연지 1년밖에 안됐지만 일본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일본 언론에도 자주 소개된 곳. 이곳에는 손목에 ‘안마’ ‘지압’ 등의 예약표를 주렁주렁 건 일본 여성들이 한국 여성들과 반반씩 섞여 맥반석, 옥, 잣 등을 이용한 다양한 방에서 땀을 빼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여성들이 옷을 벗고 땀을 빼는 반면, 일본 관광객들은 꼭 가운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천지연’ 이종인영업부장은 “작년 말부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목욕과 찜질방의 인기로 이어진 듯하다”고 말한다.
강남에서 소위 ‘고급 사교장’으로 이름을 날리는 찜질방이나 목욕탕에는 경락, 지압, 스포츠 등 각종 마사지사와 식당, 네일바는 물론이고 베르사체, 미소니 등 고가의 수입의류를 파는 간이 옷가게까지 갖춰져 있다. 입장료는 대개 1만, 2만원 정도지만 때를 밀고 경락 마사지 등을 2시간 정도 받으려면 쉽게 20만원은 쓴다. 강남의 D목욕탕 단골인 주부 김모씨는 “때를 미는 데 4만원이지만 10만원씩 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찜질방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부분의 업소는 영세한 규모로,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찜질방의 44%가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 남대문에 있는 한 여성전용 옥찜질방은 뜨거운 방에서 나는 페인트 냄새와 담배연기로 눈이 따가울 정도. 작은 엘리베이터 한대가 있는 빌딩에 위치한 이 찜질방은 스프링쿨러도 없어 한눈에도 화재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식 동네 목욕탕 설 땅 잃어
이러한 작은 동네 찜질방에서는 자주 화투판까지 벌어진다. 11월19일 서울 서대문구 주택가에 있는 한 찜질방. 자정이 넘었지만 탈의실에서는 점당 200원의 고스톱판이 끝날 줄 모른다. ‘체험실’의 TV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오자 ‘형님’으로 불리던 중년 여성이 박수를 치며 춤을 추고 다른 여성들도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을 냈다. 옆방에서는 ‘출장 나온’ 맹인 안마사가 지압을 하며 사주를 봐주기도 했다. “난 집에서 남편만 쳐다보고 있으면 병이 나.”
“집에 혼자 있느니 여기 오면 전기세도 아끼고 친구들 만나서 스트레스도 풀지.”
이들은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찜질방과 대형 목욕시설이 번창하면서 영화 ‘억수탕’에 나온 구식 목욕탕들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때가 둥둥 뜬 욕탕의 물을 흘러 넘치게 하려고 물을 틀며 주인 눈치를 봐야 하는 목욕탕, 아이들 울음소리로 귀가 멍멍하긴 해도, 알몸이어도 당당하고 낯선 사람들끼리 등을 밀어주는 그런 목욕탕 말이다. 남녀가 함께 땀을 빼는 찜질방에서는 일단 땀에 젖은 셔츠와 바지에도 신경이 쓰인다. 부부가 만날 수는 있어도 아이들은 출입금지다. 고급 목욕탕에서는 ‘품위 있게’ 가운을 입고 다니며, 마사지사는 늘어진 살집을 보고 “경락마사지 받으라”고 말해 자신의 몸을 부끄럽게 한다.
‘목욕하는 여자들’을 찍은 사진작가 박화야씨의 작품을 통해 평론가들은 우리나라의 대중탕이 가진 ‘장소성’에 주목했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의 말에 따르면 대중목욕탕의 여성은 “해방된 인간”이다. 사진평론가 박신의씨는 “대중목욕탕은 모든 사람이 알몸이면서도 에로틱함이 사라진 독특한 커뮤니티”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목욕탕의 의미도 달라졌다. 오늘날 목욕탕은 자신이 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장소이자 사교장이며 ‘아줌마 문화’의 산실이다. 또한 땀이 날 만큼 육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비된’ 삶을 비추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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