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사람들은 영어를 잘한다. 그러나 사용하는 영어가 왠지 엉터리인 것 같은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게 하는 말인데도 그들이 사용하는 말이 영어인지 중국어인지 아리송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앤 덴 유 캔 파인라…”(…and then, you can find la…), “놀라~”(No la…). 싱가포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이같은 영어가 바로 싱글리시(싱가포르식 영어)다.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75%를 차지하고 말레이계와 인도계가 소수민족을 구성하는 다민족 도시국가다. 그러나 놀랍게도, 싱가포르의 국어는 중국어가 아니라 말레이어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함께 영국식민지였고, 한때는 말라야 연방에 속했다. 1965년 말라야 연방에서 축출돼 독립하면서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말레이인들에게 둘러싸인 지정학적인 위치를 감안하여 말레이어를 국어로 삼았다.
그러나, 정작 싱가포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자기 종족의 언어와 영어이다. 말레이어는 공식적인 국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말레이계 싱가포리안들 사이에서나 사용된다. 다민족국가인 싱가포르에서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다. 그러나, 다민족국가답게 이들이 사용하는 영어는 이른바 스탠더드 잉글리시와는 거리가 있다. 중국어, 말레이어, 인도어의 억양과 발음이 혼합된 괴상한 영어를 사용한다.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만큼 영국식 영어를 그 골간으로 하고, 말레이어식 억양에 인도식 발음, 그리고 중국방언의 영향으로 중국어의 어조사가 혼합돼 ‘싱글리시’라고 하는 퓨전(?) 잉글리시를 형성했다.
“고우 투 파살라” 무슨 뜻인지?
“…고우 투 파살라” 외국인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싱글리시는 “…go to pasar la”이다. 여기서 파사(pasar…·인도네시아어 발음으로는 파사르)란 시장을 의미한다. 또 ‘la’ 는 중국 남방에서 습관적으로 쓰는 방언의 어조사다. 따라서 “…고우 투 파살라”는 “… 시장에 가 라”는 의미다.
이처럼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가 뒤범벅이 된 싱글리시는 싱가포르뿐 아니라 인접국인 말레이시아에서도 사용된다. 차이가 있다면 싱가포르인들의 영어실력이 좀 더 우위라는 점이다. “오! 유 아 스테잉 인 싱가푸라. 유 골라!”(Oh! you are staying in Singapore, you go la)는 “오! 너 싱가포르에 거주하는구나. 가봐!”라는 뜻이다.
얼마 전 고촉통 싱가포르총리는 싱글리시가 싱가포르를 망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싱글리시가 국가 경쟁력에 걸림돌이 된다며 싱가포르인들이 영어실력을 더욱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뉴스를 접하고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인들의 영어를 우습게 안다면 그야말로 난센스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인들의 영어는 특히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싱글리시를 쓰는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인들은 싱글리시로 자신의 의사를 막힘 없이 표현해 낸다. 자막 없는 영어방송도 알아듣는다. 발음과 억양이 이상하다고 해서 영어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가 는 그야말로 큰코 다친다. 싱가포르는 말할 것도 없고, 말레이시아의 캄퐁(시골)에 사는 ‘촌사람’도 간단한 영어는 구사한다.
싱글리시는 본토영어를 쓰는 사람에게도 괴상한 영어로 받아들여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혀를 굴리면 영어가 유창한 것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정확한 영어를 하지 못해 무안을 당하게 된다. 싱글리시는 고촉통 총리의 말대로 싱가포르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높여온 주요 요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