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베센트 키스퀘어그룹 창업자가 8월 14일(현지 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의 선거 유세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조지 소로스의 오른팔
트럼프는 11월 22일(이하 현지 시간) 베센트를 재무장관으로 내정하면서 “베센트는 미국 경쟁력을 높이고, 무역 불균형을 막고,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내 정책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무장관은 연방정부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로 세금과 국가부채, 경제제재 등 다방면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그간 트럼프 2기 재무장관 후보로는 ‘월가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 폴슨앤드컴퍼니 창업자, 하워드 러트닉 캔터피츠제럴드 최고경영자(CEO)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마지막 순간 트럼프가 손을 들어준 이는 베센트였다. 트럼프는 베센트를 “월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한 바 있다. 투자은행(IB), 학계 등에서 활약하던 인물이 주로 맡았던 재무장관에 헤지펀드 창업자가 내정되면서 파격적 인사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베센트는 ‘조지 소로스의 오른팔’로 불릴 만큼 월가에서 인정받는 베테랑이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으로 예일대(정치학)를 졸업한 그는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 아래서 인턴을 지내며 금융투자업계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1991년 소로스펀드에 합류했고, 2011~2015년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소로스펀드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로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이상 벌었는데, 당시 베센트의 영국 주택시장 분석 보고서가 단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센트는 2015년 소로스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7900억 원)를 투자받으며 독립했고, 이때 설립한 것이 키스퀘어그룹이다.
당초 시장에는 트럼프 2기에 대한 우려가 적잖았다. 트럼프가 내놓은 공약들이 도리어 미국 경제를 부실하게 만들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로 세수가 감소해 미국 부채 문제가 심화할 수 있고, 관세 인상이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로 대선 기간 트럼프 지지율이 오를수록 미국 국채금리 역시 따라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가 당선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심화돼 미국 기준금리가 쉽게 인하되지 않으리라고 전망한 것이다.
3-3-3 정책으로 경제 성장
하지만 베센트의 등장으로 시장 우려도 다소 진정되는 분위기다. 베센트 역시 관세 인상으로 대표되는 트럼프 공약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관세가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베센트는 10월 1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자유무역주의자”라면서 “긴장감을 높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전략으로 (고율 관세 부과를 공약한 것이며) 실제 협상 과정에선 세율이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향후 무역 상대국과 협상에 따라 관세 수준이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선 직후 이뤄진 CNBC와 인터뷰에서도 “관세를 점진적으로 부과하는 방안을 제언한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베센트가 정부 부채 문제에 관심이 크다는 사실도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요소다. 베센트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에서 정치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미국이 엄청난 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트럼프에게 ‘3-3-3 정책’을 제안하며 부채 문제에 대응할 것을 요청한 상태다. 해당 정책은 연 3%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를 3% 수준으로 낮추며, 일일 석유 생산량을 300만 배럴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추구한다. 경제성장을 촉진해 세수를 늘리고, 이를 통해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접근법이다. 이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세 개의 화살’ 정책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 개의 화살 정책은 금융·재정·성장 정책을 동시에 펼쳐 일본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아베 전 총리의 국정 운영 구상이었다. 베센트는 이외에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축소 등을 통해 재정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베센트에게 힘이 실리면서 향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는 파월 연준 의장을 껄끄러워하고 있으나, 2026년 5월 예정된 그의 임기까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베센트는 트럼프에게 파월 의장의 후임자를 서둘러 지명하는 이른바 ‘그림자 연준 의장’ 방안을 제시했다. 후임자로 하여금 경제 현안에 대해 일찌감치 목소리를 내게 해 파월 의장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후 “연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자 베센트는 “더는 추진할 가치가 없다”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향후 베센트는 상원 인준을 받아 본격적으로 재무장관으로 활동할 전망이다. 그럼 ‘공화당 내각의 첫 성소수자 각료’가 탄생하는 기록도 생긴다. 베센트는 동성애자로 뉴욕시 검사를 지낸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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