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 ·대검찰청 차장검사.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조남관(56)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여권과 정면충돌을 피하면서도 검찰의 독립성을 지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3월 19일 대검찰청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무혐의 처리했다. 조 차장이 주재한 대검 부장회의 결과다.
3월 17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한 전 총리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대검에 검토를 지시했다. 조 차장은 박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되 대검 부장검사(검사장급) 7명 외에도 전국 고검장 6명을 회의에 참여하게 했다. 확대회의를 개최한 이유에 대해 조 차장은 “대검 부장검사만의 회의로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검찰 내외부의 우려가 있었다”고 밝혔다. 주요 안건은 법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하게 위증했다는 혐의를 받은 김모 씨에 대한 기소 여부. 표결 결과는 불기소 10명, 기소 2명, 기권 2명이었다.
현직 A 검사는 “박 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하자 검찰 내에서 ‘총장 직무대행이 수사권을 거부해야 한다’ ‘직을 걸고 저항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았다”며 “대검 부장회의에 고검장을 참석하게 한 것을 보고 차장의 수완이 보통 아니구나 싶었다. 장관에게 노골적으로 저항하지 않으면서도 검찰의 중립성을 지킨 묘수”라고 평했다. 지난해 11월 조 차장은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전 총장의 직무집행을 정지하자 “검찰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한 발 물러나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봉하마을 조문, 인간으로서 도리”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자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조남관 당시 광주지검 부장검사는 봉하마을을 직접 찾아 조문했다.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조 차장은 전주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34회에 합격, 사법연수원 24기를 수료했다. 2006~2008년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마지막 특별감찰반장(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 사정비서관실 소속)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비서관(2005년 1월~2006년 5월), 대통령비서실장(2007년 3월~2008년 2월)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조 차장은 검찰에서 승승장구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근무 경력을 높이 평가한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 차장은 2017년 국가정보원 감찰실장 및 적폐청산TF팀장으로 임명돼 ‘국정원 개혁’을 주도했다. 2018년 검찰 복귀 후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과학수사부장, 이듬해 서울동부지검장에 임명됐다. 2020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서 추미애 당시 장관을 보좌했고, 같은 해 대검 차장(고검장급)이 됐다. 윤 전 총장 사퇴 후 고교 선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과 함께 차기 총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전현직 검사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이라는 키워드로 조 차장을 기억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조남관 당시 광주지검 부장검사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직접 찾아 조문했다. 당시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아내가 ‘지금 같은 비상한 시기에 집에 가만히 있지 현직 검사가 왜 내려가느냐’고 만류했다. 그래도 노 전 대통령 빈소가 있는 봉하마을로 내려가 조문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도리라고 생각한다”는 글도 올렸다. 검찰 출신 B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이프로스에 올린 글로 조 차장을 인상 깊게 본 동료가 많았다. 내심 인간적 의리가 있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흑(黑)은 흑, 백(白)은 백이라고 얘기하는 검사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후 조 차장은 ‘노무현 정권의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성남·안양·순천 등 지청을 전전하고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를 지내기도 했다. 검사들이 보통 한직으로 여기는 자리다. 현직 C 부장검사는 “조 차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순천(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장검사)으로 가거나 고검(서울고검 검사)에서 근무하는 등 오랫동안 중요 보직을 맡지 못했다. 속된 말로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잇단 영전을 두고 검찰 내부에서 우려도 있었다. 조 차장이 상관이던 C 부장검사는 “국정원에서 검찰로 돌아온 후 주위의 의심 섞인 눈초리가 있었다. 이른바 친(親)여권 성향을 갖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면서도 “직접 겪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처리가 공정하고 합리적이었다. (조 차장이) ‘나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전했다.
조 차장과 서울대 83학번 동기인 검찰 출신 D 변호사는 “조 차장이 노 전 대통령, 문 대통령과 인연 때문에 공사(公私)를 구별 못 할 것이라는 우려는 애초에 기우였다”며 “언론이 조 차장에게 ‘민주당 사람’ ‘추미애 장관 측근’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때 의아했다. 내가 아는 조 차장은 대학생 때나 지금이나 바르고 균형감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시절 조 차장은 어땠을까. D 변호사는 “예향(藝鄕) 호남 출신이라 그런지 시를 곧잘 읊고 판소리 비슷하게 시조창(時調唱)도 했다. 친구들이 남관이를 많이 따랐고, 그 자신도 사람과 술을 좋아하는 풍류가 스타일”이라고 평했다. 조 차장의 시조 사랑은 검사 시절에도 이어진 듯하다. 그와 일선에서 함께 근무한 검찰 출신 E 변호사도 “검찰 내에서 행사가 열리면 시조도 잘 읊고 풍류가 있었다”고 말했다. E 변호사는 “검사는 물론 수사관들과도 참 잘 지냈다. 직원들 사이에서 인품이 훌륭하다는 평이 많았다. 수사뿐 아니라 사무실 살림살이도 잘 챙겨 동료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는 조 차장이 대학생 시절 ‘운동권’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데모 몇 번 한 것은 아니고 제법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안다”(B 변호사), “(조 차장이) 학생운동 좀 했다. 당시 운동과 비(非)운동권의 경계선이 불분명하긴 했지만 3학년 때까지는 (학생운동을) 한 것 같다”(D 변호사)는 전언이다.
“균형추 역할한 조남관 … 검찰 그만 괴롭혀야”
조금 다른 시각도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한 한 인사는 “서울대 법대 83학번 중 본격적인 운동권이라고 할 사람은 30명 안팎이다. 조 차장은 그 일원은 아니다”라며 “공개·비(非)공개 서클에 잠시 참여했다 그만둔 사람이 워낙 많아 확언하기는 어려우나 (조 차장은)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이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검찰 안팎에서는 박 장관의 수사지휘를 ‘부드럽게’ 피한 조 차장이 총장 물망에서 제외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 장관은 대검 부장회의 결과를 수용하면서도 “절차적 정의를 기하라는 수사지휘권 행사가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라며 한 전 총리 수사와 모해위증 의혹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합동 감찰을 지시했다.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조 차장의 이번 조치는 검찰 규정에 따라 적법·적합하게 진행됐다. (조 차장이) 지난해 윤 전 총장 징계에 반대한 것에 이어 균형추 역할을 한 셈”이라며 “박 장관이 거론한 감찰은 범죄 혐의, 최소한 징계 혐의가 있을 때 필요한 조치로 진상규명 대상이 아니다. 한 전 총리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통해 이미 판결도 나왔다. 검찰을 더 괴롭힐 필요가 없다”고 평했다. A 검사는 “앞으로 누가 총장이 될지 알 수 없으나, 후배 검사들 사이에서 조 차장의 인망이 높아졌다. 온건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소신 있게 의견을 개진한다는 평이 많다”고 전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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