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영수증 의무발급 위반 건, 해마다 증가
통계청에서 발표한 9월 고용통계에 따르면 자영업자 수는 559만3000명으로 경제활동인구 2712만9000명의 20.6%를 차지한다. 자영업자는 통상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를 국세청에 신고하고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최씨의 경우와 같이 일부 자영업자는 할인을 미끼로 현금결제를 유도하고 있다. 이들이 이중장부를 작성하는 식으로 소득을 은폐해 세금 산정에 누수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9월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에게 제출한 ‘현금영수증 발급의무 위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가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아 과태료를 낸 건수는 2011년 1018건에서 2013년 2040건으로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업종별로는 의료업이 1019건으로 전체의 50%를 차지했고 변호사 등 전문직이 249건, 부동산중개업 149건 순으로 적발됐다. 건당 과태료 부과액만 보면 유흥주점이 1억1400만 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은 원가가 정해지지 않은 서비스업이 대부분이라 공시 가격을 부풀려놓고 현금결제 시 할인을 해주는 식으로 현금영수증 의무발급을 위반해오다 발각됐다.
정부는 이같이 자영업자의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위반 건수가 해마다 늘자 지난해 7월부터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지정업종을 규정하고 위반 시 불이익을 강화했다. 의무발급 지정업종으로는 △사업 서비스업(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보건업(종합병원, 한방병원 등) △숙박 및 음식점업(유흥주점, 관광숙박시설 등) △교육 서비스업(교육학원, 운전학원 등) △그 외 업종(골프장, 예식장, 부동산중개업소, 산후조리원 등) 등이다. 이들이 10만 원 이상 거래에 대한 의무발급 규정을 어기고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은 경우 적발 시 미발급 금액의 50% 과태료가 부과되고, 발급을 거부할 경우 거부 금액의 5% 가산세가 부과되며, 허위 발급한 경우에도 그 금액의 2% 가산세가 부과된다.
정부가 자영업자들의 세금 탈루를 막는 데 앞장서고 있지만 고소득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기획세무조사에서 거둬들이는 부과세액은 해마다 증가하는 실정이다. 국세청이 8월 내놓은 ‘지난 5년간 고소득 자영업자 세무조사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적발된 고소득 자영업자 870명의 소득적출률(탈세액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3.1%, 부과세액은 5413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직전년도에 비해 342억 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영세 자영업자의 과세 부담을 덜기 위해 마련된 간이과세제도가 탈세의 온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내 상가 건물로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일반과세자는 10% 세율이 적용되는 반면, 매입세금계산서에 기재된 부가가치세인 매입세액 전액을 공제받을 수 있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 있다. 반면 간이과세자는 0.5~3%의 낮은 세율이 적용돼 부가가치세 부담은 적지만 매입세액의 5~30%만 공제받을 수 있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 없다. 주로 소비자를 상대하는 업종으로 연간 매출액 4800만 원 미만일 것으로 예상되는 소규모 사업자의 경우 간이과세자로 등록한다. 원칙적으로는 간이과세자로 사업자등록을 했다 해도 1년 환산 매출액이 4800만 원 이상이면 다음 과세 기간부터 일반과세자로 전환된다. 간이과세제도는 1997년 김영삼 정부가 도입했다.
간이과세, 세금 부담 경감? 탈세의 온상!
그런데 간이과세자 가운데 매출 규모를 속여 지위를 누리는 이른바 짝퉁 영세업자가 많은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된 간이사업자 수는 167만2075명으로 전체 자영업자의 30% 수준이었는데, 이 가운데 88만6699명은 연매출 1200만 원이 넘지 않아 세금을 전액 면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공제된 세액의 규모는 2600억 원이 넘는다.
한국세무사회에 따르면 매출을 속여 간이과세자 지위를 유지하는 짝퉁 영세업자가 3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6년 차인 심규환 세무사는 “간이과세제도는 허점투성이다. 세금계산서 발행 의무가 없기 때문에 간이과세자는 매출을 얼마든 숨길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영원히 간이과세자로 남을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간이과세를 결정하는 매출액 기준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져보면 정말 영세한 자영업자도 많지만 수도권에서 장사하는 경우 임대료, 인건비를 제외하고 연매출 4800만 원으로 흑자를 내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다. 매출액 기준이 18년 전 마련돼 지금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2013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법안심사소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간이과세자 기준 금액을 상향 조정하는 부가세법 개정안과 간이과세제도 폐지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법안이 지하경제 양성화 기조에 역행하고, 간이과세자를 확대하면 탈세가 늘어 일반과세자와의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하기보다 점진적으로 간이과세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는 뜻을 드러냈고 결국 이 법안은 계류됐다.
고소득 자영업자, 영세 간이과세자 외 개인사업자와 법인의 경계에 놓인 이들에 대한 과세제도에도 문제점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인에 대한 비과세·감면제도나 면세 혜택이 많아 일반과세자 지위를 유지하는 것보다 일정 매출액 이상 넘어가는 경우 법인 전환을 하는 것이 세금을 덜 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심규환 세무사는 “일반과세자의 경우 매출액 4600만 원을 넘기면 24%, 8800만 원을 넘기면 35% 세율이 적용된다. 그런데 법인의 경우 매출액 200억 원까지 20%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통상 매출액 5000만 원을 넘긴 개인사업자는 법인 전환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법인으로 전환할 경우 수익은 법인의 돈이 되기 때문에 개인사업자일 때처럼 수익을 마음대로 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심 세무사는 “그런 불편한 점 때문에 법인 전환을 하지 않으려는 이도 있지만 극히 일부다. 매출이 늘어날수록 세금도 증가하기 때문에 자금운용에 제약이 따르더라도 법인 전환을 선택하는 쪽이 더 많다”고 말했다.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금 탈루 문제는 국세청의 꾸준한 세무조사에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 예식장 모습.
자영업자의 세금 탈루 문제는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실시해 가산세를 물리는 ‘사후약방문’식으로 해결되고 있다. 국세청 조사과 관계자는 “매년 개인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통계를 발표하고,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기획조사를 실시해 가산세 추징 결과도 공지하고 있다. 또한 국세청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사업자 차명계좌, 거짓 세금계산서 수수,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 수입 누락 등을 제보받아 이를 토대로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에 이를 방지할 제도적인 개선 방안에 대해 묻자 “논의되는 개선 방안은 없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납세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사후 적발로 가산세를 내는 것보다 자진신고를 통해 성실납세를 하는 게 이득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현행 세무조사가 세금 탈루를 방지할 수 있을 만큼 힘을 갖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금 탈루 문제는 정부의 의지와 관련돼 있다. 현행 제도는 적발되면 가산세를 내는 것으로 끝인데 처벌 수위가 약해서 죄를 뉘우치게 할 만큼은 되지 못한다. 몇 년간 사업 자격을 정지한다든지, 투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실시한다든지 더 엄격한 처벌 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세무조사도 특정 대상으로 한정해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랜덤하게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학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지출성과관리팀 팀장은 “현재 세무조사는 국세청에서 여러 지표를 보고 탈루 가능성이 높은 사업자부터 실시한다. 그러다 보니 ‘재수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정상 납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심증이 있건 없건, 특정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전체를 대상으로 랜덤하게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래야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의식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간이과세제도가 탈세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학수 팀장은 “사실 간이과세제도 폐지는 정치적 문제인데 야당에서는 혜택 범위를 확대해 탈세를 양성화할 방안으로 간이과세 기준을 매출액 1억 원으로 상향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기준을 올린다고 탈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간이과세제도 자체를 없애지 못한다면 기준 상향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우철 교수 역시 “오늘날 매출액 4800만 원은 간이과세자의 기준이 아니라 폐업의 기준이 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간이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영업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간이과세제도 폐지가 논의될 때마다 영세업자의 반발로 정치권이 손을 대지 못하자 지금은 사실상 방치됐고, 그러다 보니 탈세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하고 외국 사례를 토대로 면세제도 도입을 논의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우리나라 과세체계가 전산화되고 신용카드 사용률이 높아진 데다 현금영수증 발급도 보편화되면서 과거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세금 탈루 문제는 일정 부분 해소됐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자영업자들이 의도적으로 소득을 은폐하고 있어 제도개혁을 통해 양성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학수 팀장은 “이론적으로는 개인사업자의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과세도 정확하게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이를 모니터링할 방법도 예산도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근원적으로 납세자의 신뢰 기반이 확대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기관에서 납세의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세금이 어떻게 걷히고 쓰이는지에 대한 교육도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