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출마 선언 이후 추락을 거듭하던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대세론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을까. 10월 13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CNN과 페이스북이 공동 주최한 민주당 대통령선거(대선) 경선 후보 1차 TV 토론회는 클린턴이 얼마든지 부활의 날개를 펼 수 있음을 보여줬다.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클린턴과 추격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간 양보 없는 공방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클린턴은 백악관 안주인으로 시작해 상원의원, 국무부 장관 등을 지낸 화려한 경륜을 바탕으로 안정감과 관록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동안 e메일 스캔들 등에 가려졌던 클린턴의 진가가 대선정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샌더스에 역공, 노련한 클린턴
샌더스는 월스트리트 재편 등 특유의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자신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마틴 오맬리, 짐 웨브, 링컨 채피 등 다른 주자들은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클린턴과 샌더스는 토론회 내내 총기규제와 중동 군사 개입, 월스트리트 개혁 등 주요 정책현안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시작은 총기규제 이슈였다. 클린턴은 샌더스를 향해 “1993년 당시 신원조회를 통과한 사람만 총기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브래디법’의 통과를 다섯 차례나 반대했는데 총기규제에 너무 미온적”이라고 처음부터 직격탄을 날렸다. 당초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이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를 뒤집고 클린턴이 샌더스에게 오히려 역공을 날린 것. 이에 샌더스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범죄자에게 총기를 파는 제조업체나 총기상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총기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맞섰다.
하지만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중산층 복원을 핵심 어젠다로 제시하는 샌더스는 정작 총기규제에 미온적이고 오히려 관련 업체와 유착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진보 아이콘인 샌더스가 왜 미국총기협회(NRA) 앞에서 유독 약자인지를 클린턴이 정면으로 파고들었기 때문. 샌더스는 토론회 도중 “나는 NRA에 친구가 없다. 나는 NRA로부터 D마이너스 평가를 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오맬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는 “샌더스 의원님, 나는 NRA로부터 F를 받았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총기 문제로 공격을 당한 샌더스는 외교 이슈로 논점을 옮겼다. 그는 클린턴이 상원의원 시절인 2002년 찬성했던 이라크전쟁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외교정책”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이미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버락 오바마 당시 후보와 25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놓고 토론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이후 나를 국무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내 판단을 평가했다”고 일축했다.
샌더스는 이날 토론회에서 아직은 큰 무대 경험이 없음을 드러냈다. CNN이 생중계한 첫 전국 단위 토론회인데도 샌더스는 종종 자기 지지층만을 상대로 연설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월스트리트 개혁 이슈에 대한 토론에서도 샌더스는 왜 월스트리트 개혁이 미국 전체를 위해 필요한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전개하지 못했다. 그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가 금융규제를 완화해 위기가 발생했다”며 클린턴을 공격하는 데 치우쳤다.
그러자 클린턴은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상원의원으로서 은행 구조조정을 주장했다”고 반박하며 오히려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을 문제 삼았다. 그는 “내 이념은 진보적이지만 나는 일이 되도록 만드는 진보”라며 샌더스와의 차별성을 부각한 뒤 “(샌더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은 덴마크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은근히 샌더스의 이념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며 미국 전체를 위해서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음을 부각하려 한 것.
샌더스가 이날 토론회 도중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에 대해 “더는 논의하지 말자”고 한 것은 그가 아직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르거나 이에 필요한 정치적 감각이 충분하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정적의 치명적 약점에 대해 아무런 대가 없이 정치적 면죄부를 줬기 때문. 그는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에 대한 사회자의 질문이 이어지자 짜증 난다는 듯한 목소리로 “지금은 미국 중산층 살리기를 논의해야 한다. 미국인은 ‘빌어먹을 e메일(damn emails)’ 문제를 듣는 데 식상하고 지쳐 있다”고 말했다. 이에 클린턴은 예상외 선물을 받았다는 표정으로 크게 웃으며 “나도 지쳤다(Me too)”를 연발하며 샌더스에게 감사의 뜻으로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샌더스가 아직 클린턴보다 정치적으로 한 수 아래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출마 가능성 더 낮아진 바이든 부통령
e메일 스캔들을 비교적 여유 있게 피해간 클린턴은 이후 더 안정된 모습으로 토론회에 임했다. 다른 주자들은 시간에 쫓겨 할 말을 다 못 할 때 클린턴은 마치 후보가 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지막 발언에서 “아직 미국에는 더 희망차고 밝은 날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겠다(America’s best day is still ahead)”고 말해 방청객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미국 언론들은 대체적으로 클린턴이 특유의 관록을 바탕으로 안정감 있는 대선주자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CNN이 토론회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가 될 가능성은 69%, 샌더스는 15%였다. 의회 전문매체 ‘더 힐’은 ‘클린턴 전 장관이 가장 경험이 많은 토론자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정책 분야의 강점을 잘 살리고 공격을 잘 방어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샌더스에 대해서는 ‘분전했지만 그다지 두드러진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CNN은 ‘샌더스는 아무도 놀라게 하지 못했으며 왜 자신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뽑혀야 하는지 보여주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이와 함께 이번 토론회의 또 다른 패자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클린턴이 토론회를 장악하면서 바이든 대안론이 꺾일 수밖에 없기 때문. 토론회를 주최한 CNN은 그가 막판에라도 토론회에 나온다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그를 위한 연단까지 따로 준비하는 등 공을 들였지만, 바이든 부통령은 이날 고교동창들과 저녁을 먹은 뒤 TV로 토론회를 지켜봤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부통령이 클린턴의 헛발질을 기대했다면 토론회에서 얻은 게 없을 것’이라며 그를 패자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했다.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클린턴과 추격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간 양보 없는 공방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클린턴은 백악관 안주인으로 시작해 상원의원, 국무부 장관 등을 지낸 화려한 경륜을 바탕으로 안정감과 관록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동안 e메일 스캔들 등에 가려졌던 클린턴의 진가가 대선정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샌더스에 역공, 노련한 클린턴
샌더스는 월스트리트 재편 등 특유의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자신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마틴 오맬리, 짐 웨브, 링컨 채피 등 다른 주자들은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클린턴과 샌더스는 토론회 내내 총기규제와 중동 군사 개입, 월스트리트 개혁 등 주요 정책현안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시작은 총기규제 이슈였다. 클린턴은 샌더스를 향해 “1993년 당시 신원조회를 통과한 사람만 총기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브래디법’의 통과를 다섯 차례나 반대했는데 총기규제에 너무 미온적”이라고 처음부터 직격탄을 날렸다. 당초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이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를 뒤집고 클린턴이 샌더스에게 오히려 역공을 날린 것. 이에 샌더스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범죄자에게 총기를 파는 제조업체나 총기상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총기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맞섰다.
하지만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중산층 복원을 핵심 어젠다로 제시하는 샌더스는 정작 총기규제에 미온적이고 오히려 관련 업체와 유착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진보 아이콘인 샌더스가 왜 미국총기협회(NRA) 앞에서 유독 약자인지를 클린턴이 정면으로 파고들었기 때문. 샌더스는 토론회 도중 “나는 NRA에 친구가 없다. 나는 NRA로부터 D마이너스 평가를 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오맬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는 “샌더스 의원님, 나는 NRA로부터 F를 받았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총기 문제로 공격을 당한 샌더스는 외교 이슈로 논점을 옮겼다. 그는 클린턴이 상원의원 시절인 2002년 찬성했던 이라크전쟁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외교정책”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이미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버락 오바마 당시 후보와 25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놓고 토론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이후 나를 국무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내 판단을 평가했다”고 일축했다.
샌더스는 이날 토론회에서 아직은 큰 무대 경험이 없음을 드러냈다. CNN이 생중계한 첫 전국 단위 토론회인데도 샌더스는 종종 자기 지지층만을 상대로 연설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월스트리트 개혁 이슈에 대한 토론에서도 샌더스는 왜 월스트리트 개혁이 미국 전체를 위해 필요한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전개하지 못했다. 그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가 금융규제를 완화해 위기가 발생했다”며 클린턴을 공격하는 데 치우쳤다.
그러자 클린턴은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상원의원으로서 은행 구조조정을 주장했다”고 반박하며 오히려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을 문제 삼았다. 그는 “내 이념은 진보적이지만 나는 일이 되도록 만드는 진보”라며 샌더스와의 차별성을 부각한 뒤 “(샌더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은 덴마크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은근히 샌더스의 이념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며 미국 전체를 위해서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음을 부각하려 한 것.
샌더스가 이날 토론회 도중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에 대해 “더는 논의하지 말자”고 한 것은 그가 아직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르거나 이에 필요한 정치적 감각이 충분하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정적의 치명적 약점에 대해 아무런 대가 없이 정치적 면죄부를 줬기 때문. 그는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에 대한 사회자의 질문이 이어지자 짜증 난다는 듯한 목소리로 “지금은 미국 중산층 살리기를 논의해야 한다. 미국인은 ‘빌어먹을 e메일(damn emails)’ 문제를 듣는 데 식상하고 지쳐 있다”고 말했다. 이에 클린턴은 예상외 선물을 받았다는 표정으로 크게 웃으며 “나도 지쳤다(Me too)”를 연발하며 샌더스에게 감사의 뜻으로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샌더스가 아직 클린턴보다 정치적으로 한 수 아래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출마 가능성 더 낮아진 바이든 부통령
e메일 스캔들을 비교적 여유 있게 피해간 클린턴은 이후 더 안정된 모습으로 토론회에 임했다. 다른 주자들은 시간에 쫓겨 할 말을 다 못 할 때 클린턴은 마치 후보가 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지막 발언에서 “아직 미국에는 더 희망차고 밝은 날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겠다(America’s best day is still ahead)”고 말해 방청객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미국 언론들은 대체적으로 클린턴이 특유의 관록을 바탕으로 안정감 있는 대선주자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CNN이 토론회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가 될 가능성은 69%, 샌더스는 15%였다. 의회 전문매체 ‘더 힐’은 ‘클린턴 전 장관이 가장 경험이 많은 토론자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정책 분야의 강점을 잘 살리고 공격을 잘 방어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샌더스에 대해서는 ‘분전했지만 그다지 두드러진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CNN은 ‘샌더스는 아무도 놀라게 하지 못했으며 왜 자신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뽑혀야 하는지 보여주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이와 함께 이번 토론회의 또 다른 패자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클린턴이 토론회를 장악하면서 바이든 대안론이 꺾일 수밖에 없기 때문. 토론회를 주최한 CNN은 그가 막판에라도 토론회에 나온다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그를 위한 연단까지 따로 준비하는 등 공을 들였지만, 바이든 부통령은 이날 고교동창들과 저녁을 먹은 뒤 TV로 토론회를 지켜봤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부통령이 클린턴의 헛발질을 기대했다면 토론회에서 얻은 게 없을 것’이라며 그를 패자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