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물막국수(왼쪽). 곱게 간 메밀가루와 메밀을 분쇄하는 기계.
막국수는 어느 지역에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메뉴다. 투두둑 끊기는 메밀국수에 채소와 무난한 양념을 넣어 비벼 먹으면 실패한 적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 먹은 막국수 가닥은 진회색이거나 거무스름하고, 까만 알갱이가 점처럼 보이면서 툭툭 끊겼다. 올이 유난히 굵고 색이 짙은 메밀국수가 너무 차지면 전분이나 가성소다를 조금 넣어 반죽했다는 것쯤은 알았다. 문제는 껍질이 들어가지 않은 100% 순메밀국수의 참모습을 몰랐다는 데 있다. 껍질이 들어가지 않은 순메밀국수는 정갈하고 가지런한 데다 보드라우면서 찰기가 있다.
순메밀국수를 만들려면 먼저 짙은 밤색의 메밀껍질을 벗겨야 한다. 국수 반죽에 껍질이 들어가면 식감이 꺼끌꺼끌해지고 반죽의 찰기가 떨어진다. 껍질을 벗기면 연초록색의 메밀 알갱이가 나온다. 쌀의 경우 쌀겨층에 배아가 있기 때문에 영양소 섭취를 위해 백미보다 현미를 선호한다. 하지만 메밀 배아는 메밀 가운데 있어 껍질을 벗긴다고 영양가가 줄지는 않는다.
껍질 벗긴 메밀을 분쇄해 가루로 만든다. 분쇄 시 믹서 등을 이용하면 열이 발생하면서 향이 날아가고 가루도 건조해진다. 가장 좋은 것은 맷돌이다. 맷돌을 돌리는 일은 전기가 하지만 곡물에 열이 가해지지 않아 좋다. 맷돌에 간 가루는 입자 굵기가 일정하지 않고 거칠기 때문에 올 크기가 다른 체 3개에 내려야 한다. 그러면 전분처럼 곱고 뽀얀 가루를 얻을 수 있다.
이 메밀가루로 반죽을 한다. 물 외에 소금이나 다른 재료는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반죽 덩어리를 평평한 곳에 놓은 뒤 늘리고 접고 다시 늘리고 접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 매끈매끈 차진 반죽이 되도록 한다. 힘을 들여 많이 치댈수록 면발의 찰기가 좋아지지만 너무 오래 치대면 반죽이 건조해진다. 계절이나 반죽 상태에 따라 물 양을 조절하고 찰기 정도를 맞추는 일은 숙련된 손끝에서 이뤄진다.
이처럼 손이 많이 가는 국수 반죽을 미리 대량으로 해놓으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반죽하자마자 바로 국수를 뽑아 끓는 물에 삶아야 가닥이 끊기지 않고 먹을 때 부드러우면서 차지다. 반죽에 랩을 씌워 냉장 보관하더라도 30분만 지나면 국수 맛이 달라진다.
껍질 없는 순메밀국수는 국물에 담겨도 쉽게 붇지 않는다. 국수사리가 뭉쳤나 싶어 젓가락으로 풀어보면 가닥가닥 부드럽게 흩어진다. 냉면처럼 생겨 가위를 달라는 이들이 있지만 전분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입으로 톡톡 끊어 후루룩 먹을 수 있다.
손수 맷돌기계를 설계 및 제작하고 알맞은 반죽 비율을 찾아내 100% 순메밀국수를 뽑아내고 있는 식당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춘천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