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선보인 드론 쇼. [동아일보]
알고 보니 드론 1218대의 조종사는 딱 한 명이었다. 이 드론들은 각각 지상의 한 점을 기준으로 항상 똑같은 상대 거리 비율을 유지함으로써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날 수 있었다. 이런 드론의 군무는 어쩌면 고질적인 도로 위 자동차 정체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짜증 유발하는 유령 정체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고속도로 정체나 출퇴근길 서울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의 정체는 언급하기도 지겨울 정도다. 도로 정체는 수많은 사람의 시간을 잡아먹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런 도로 정체에 지불하는 사회 비용(교통 혼잡 비용)은 약 30조 원(한국교통연구원)으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8%나 된다.이 짜증 나는 도로 정체를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 교통사고, 교차로 신호 등으로 차가 막히는 일이야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자동차들이 장애물 없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데도 정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가 조금만 많아진다 싶으면 발생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차 막힘을 ‘유령 정체(ghost traffic jam)’라 부른다.
유령 정체가 생기는 원인을 해명하고자 세계 곳곳의 과학자가 나섰다. 일본 니시나리 가쓰히로 같은 과학자는 ‘정체학(停滯學)’이라는 근사한 이름의 책(사이언스북스)까지 냈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찾은 유령 정체의 원인을 살펴보자. 가장 먼저 꼽아야 할 원인은 경사가 낮은 도로의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이다. 구체적으로 100m 나아갈 때 1m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정도의 길이다. 대다수 운전자는 이 정도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은 알아채지 못한 채 주행한다.
경사가 낮은 오르막길에서 자동차 속도가 느려지면 운전자는 비로소 액셀러레이터(액셀)를 밟는다. 하지만 운전자가 액셀을 밟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뒤따라오던 자동차는 줄어든 차 간 거리 때문에 속도를 줄이고자 브레이크를 약하게 밟는다. 그 뒤 자동차도 마찬가지로 브레이크를 밟고, 이런 행동은 계속 뒤로 전파된다.
바로 이 대목이 문제다. 바로 뒤차는 약하게 브레이크를 밟아도 충분하지만, 뒤따르는 자동차는 좀 더 세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차 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1대, 2대 속도가 느려지다 보면 결국 뒤차 수십 대는 영문도 모른 채 멈출 수밖에 없다. 겉보기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유령 정체다.
만약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간 간격이 충분하다면 이런 식의 유령 정체는 생기지 않는다. 맨 앞에 있는 차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져 그 뒤차가 브레이크를 밟더라도 충분한 거리를 두고 뒤따르는 자동차는 영향을 받지 않을 테니까. 보통 차 간 거리가 40m보다 가까울 때, 그러니까 km당 25대 이상 자동차가 있을 때부터 이런 유령 정체가 생긴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도로, 더 막히는 도로는?
지난해 12월 오전 꽉 막힌 서울 강변북로 모습. [동아일보]
착각의 결과는 최악이다. 과학자는 고속도로의 주행 차선과 추월 차선의 교통량을 조사했다. 당연히 차가 안 막힐 때는 추월 차선의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차가 막힐 때는 추월 차선의 속도가 오히려 느렸다. 주행 차선에서 달리던 자동차가 너도나도 추월 차선으로 변경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추월 차선의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차선 변경이 잦다는 것은 각 차선의 운전자들에게 갑자기 장애물이 등장하는 격이다. 그럼 점차 속도를 줄이게 되고 정체는 추월 차선에서 전 차선으로 번진다.
이렇게 유령 정체의 원인을 알면 이런 질문에도 답할 수 있다. 한강을 따라 서울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가운데 어느 쪽이 상습 정체가 더 심할까. 정답은 강변북로다. 비교적 직선으로 뚫린 올림픽대로(1986)와 달리 강변북로(1969)는 경사와 굴곡이 많다. 이런 경사와 굴곡은 앞에서 설명한 유령 정체의 중요한 원인이다.
더구나 강변북로는 진출입로도 안쪽 차선과 바깥 차선으로 뒤죽박죽이다. 도로 설계 자체가 자동차의 잦은 차선 변경을 유도한다. 이 글을 읽은 뒤 강변북로에서 유령 정체가 일어나는 곳을 한번 살펴보라. 안타깝게도 애초 정체가 심할 수밖에 없는 강변북로는 주행 차량 수도 올림픽대로보다 많다.
이제 평창동계올림픽의 일사불란한 드론 군무가 유령 정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답할 차례다. 만약 평창의 드론처럼 도로 위 자동차를 모조리 똑같은 차량 간격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차 간 거리가 정확히 지켜지고 불필요한 차선 변경이 사라지는 만큼 정체가 완화될 개연성이 높다. 나날이 발달하는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술을 염두에 두면 공상만도 아니다.
자동차의 자율주행과 상호통신 기능을 고도화하면 애초 도로 설계가 엉망인 강변북로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비교적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에서는 자동차가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으며 똑같은 간격으로 이동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플래툰 주행’(platoon driving·군집 주행)이라 부른다.
2050년 무렵에는 명절 귀성길 고속도로에서도 평창 개막식 드론의 군무 같은 자동차 군집 주행을 볼 수 있을까. 그것보다, 그때는 귀성 자체가 드문 일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