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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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만보

가장 현실적인, 가장 환상적인 이야기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2017-11-28 15: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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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416쪽/ 1만4000원 


    1000만 부 이상 팔리며 맨부커상 수상작 가운데 최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파이 이야기’(2002)의 저자가 최근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파이 이야기’도 그랬지만 얀 마텔은 가장 현실적일 것 같은 이야기를 가장 환상적으로 그리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두 소설 모두 인간이 나락으로 떨어져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순간,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1904년 리스본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아버지를 거의 동시에 잃은 토머스가 이런 시련을 준 신에 대한 반항으로 뒤로 걷기를 한다는 설정이다. 2부는 1939년 포르투갈의 높은 산 인근 브라간사에 사는 병리학자 에우제비우가 주인공이다. 미스터리한 사고로 아내를 잃은 그가 새해를 맞던 밤, 죽은 아내와 남편의 시신을 부검해달라는 한 노부인이 잇따라 찾아온다. 3부는 1980년대 캐나다 상원의원이던 피터가 아내와 사별한 뒤 외로움에 시달리다 ‘오도’라는 이름의 침팬지를 사들이고 포르투갈에서 다시 캐나다로 떠나는 이야기다.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졌을 뿐 아니라 모든 환경이 다른 이 세 주인공의 이야기를 작가는 한 땀 한 땀 교묘하게 교차시키면서 산산조각 난 인생이 믿음의 끈을 부여잡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담아냈다.

    솔직히 저자가 깔아놓은 환상의 장치를 다 이해하긴 쉽지않다. 하지만 이야기, 삶, 신, 믿음 모두 그런 것이 아닐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예기치 않은 대상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이 오는 것. 이해하기보단 깨달을 때 우리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극우파들
    장 이브 카뮈 · 니콜라 르부르 지음/ 은정 펠스너 옮김/
    한울아카데미/ 400쪽/ 3만8000원 




    프랑스 ‘국민전선’ 당수인 마린 르펜은 올해 대선 결선투표에서 33%를 득표했다. 네덜란드에서 반이슬람주의를 내건 ‘자유당’은 올해 하원의원 선거에서 득표율 13%를 차지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독일 연방하원 선거에서 12.6% 득표율로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저자들은 이들 극우파의 등장이 최근 경제 · 사회적 위기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혁명 반대파’를 시작으로 나치즘, 파시즘, 스킨헤드, 뉴라이트 등 시대 변화에 따라 각국의 극우주의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계보와 이념을 분석한다.



    이상한 정상 가족
    김희경 지음/ 동아시아/ 284쪽/ 1만5000원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그 사회의 영혼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넬슨 만델라의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한국의 강고한 가족주의를 어린이 시각에서 들여다봤다. 체벌에 관대하고,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공부 스케줄을 강요하며, 자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갖는 등 아이에 대한 한국 가족주의의 폭력성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또 이런 가족주의는 부모-자녀의 핵가족이라는 정상 가족에 속하지 않는 아이를 더욱 차별하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이들의 보호와 양육에 대한 국가 및 공공의 책임이 필요함을 제시한다. 


    그 얼마나 좋을까
    정약용 지음/ 김준섭 옮김/ 한국고전번역원/ 60쪽/ 1만2000원 


    불역쾌재(不亦快哉). ‘그 얼마나 좋을까’라는 구절을 맨 끝에 넣은 다산 정약용의 한시 20편을 김세현의 그림과 함께 엮었다. 예를 들면 ‘여름날 불볕더위에 일순간 벼랑 골짜기에 고드름이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식의 역설적 소원을 담았는데, 정약용의 유쾌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눈길을 끈다. 고즈넉한 그림체도 시의 풍격을 높인다. 함께 출간된 ‘시가 고운 꽃가지에 걸려서라네’는 옛사람들이 좋은 그림을 보고 감상을 표현한 제화시(題畵詩) 16편을 묶었다. 제화시가 묘사한 원래 그림은 없지만 그 느낌을 담아 새 그림을 함께 얹어놓았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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