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데이비드 헬펀드 지음/ 노태복 옮김/ 더퀘스트/ 436쪽/ 1만8000원
“과학은 절대적 진리를 찾는 일이 아니라 자연의 반증 가능한 모형을 찾는 사고의 한 유형이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 구절이다. 혹시 ‘반증 가능한 모형’이라는 표현이 어렵다면 최근 사례로 설명해보자.
한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지구 나이가 6000년이라고 답해 실소를 자아냈다. 성경에 근거한 창조과학은 과학적으로 보이는 수많은 증거를 들이대지만 근본적으로 잘못된 모형에 입각해 있다.
바로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 모형이 절대적 진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신의 세계 창조는 반증 가능한 모형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다. 저자도 이 책에서 창조과학의 비과학성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천문학과 교수로 38년간 재직했던 저자는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정보를 무제한 얻을 수 있게 됐지만 그릇된 정보 역시 판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 사고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그릇된 정보는 과학의 탈을 쓰고 교묘하게 파고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과학적 사고로 걸러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사고는 과학적 지식과는 다르다. 지구온난화는 과학적 사고와 정치적 성향이 가장 충돌하는 이슈다. 이산화탄소가 우려스러운 온실가스라든지, 온난화로 해안가 홍수가 빈번해졌다든지 하는 과학적 지식이 비교적 우수한 사람에게 온난화와 관련된 위험 지수를 매겨보라고 하면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이한 답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는 위험 지수를 7점 만점에 6.5점으로, 공화당 지지자는 1.5점으로 매겼다. 과학적 지식이 과학적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잘못된 정책 결정은 과학적 사고의 결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2013년 미국 콜로라도 주는 풍력발전으로 전기 수요량의 10% 이상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그만큼 화력발전을 줄여 이산화탄소 발생을 낮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연구 결과 풍력발전의 증가를 위해 화력발전을 껐다 켰다 하는 과정에서 과거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에너지 생산 체계와 효과에 대한 정량적 분석 없이 목표만 앞세웠다 상황을 더 악화한 사례로 꼽힌다.
가장 큰 문제는 과학을 빙자한 왜곡과 사기다. 199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영국 의학저널 ‘랜싯’에 자폐 등 발달장애아의 첫 증상이 홍역·볼거리·풍진(MMR) 백신을 맞은 뒤 1~14일 사이에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백신이 발달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논문 공저자는 12명이나 됐다. 이 사건으로 백신에 대한 불신이 퍼졌고, 96년 92%이던 백신 접종률이 2003년 78.9%로 떨어졌다.
그 결과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는 홍역이 영국에서 다시 풍토병이 됐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2월 영국 채널4와 ‘더타임스’의 탐사보도로 웨이크필드가 백신 반대 소송 변호사들에게 72만 달러를 받았다는 내용 등을 폭로했고, 2010년 ‘랜싯’은 그 논문을 철회했다. 하지만 아직도 웨이크필드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감춘 채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고, 그를 따르는 사람도 적잖다. 해당 논문이 발표된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 백신 제조사, 과학계의 기득권층이 영웅적 인물을 음해한다는 음모론을 재생산하고 있다. 특정 집단이 사회적 정체성을 고수하고자 과학적 사실을 거부하는 현실은 쓸모없는 사회적 에너지의 낭비를 불러올 뿐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광우병, 세월호 참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핵발전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과학적 사고 대신 특정 집단의 정치적 의도가 앞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원제는 ‘A Survival Guide to the Misinformation Age’.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