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밤 11시 40분쯤 경기 이천시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는 불꽃이 쏘아 올려졌다. 매년 7월 마지막 일요일 밤 하늘을 밝히는 이 불꽃은 페스티벌 애호가에게는 여름의 절정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다.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밸리록)이 그렇게 끝났다.
2009년 시작된 밸리록은 규모 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록페스티벌이다.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상징하는 많은 팀이 멀다면 먼 이천까지 대중을 끌어모았다. EDM(일렉트로닉댄스뮤직)이 트렌드가 된 것을 반영하듯 지난해엔 제드, 올해는 메이저 레이저가 사흘 중 하루의 헤드라이너를 차지했다.
올해 마지막 날의 대미를 장식한 건 고릴라즈였다. 오아시스와 더불어 1990년대 브릿팝계를 양분했던 블러의 데이먼 알반이 이끄는 고릴라즈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멋진 무대를 보여줬다.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공연은 그들의 팬은 물론, 일반 록 팬들도 몸과 마음으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97년 블러의 내한공연 이후 20년 만에 한국을 찾은 알반도 한국 팬의 반응에 놀랐는지 수시로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과 스킨십을 아끼지 않았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객원 보컬들의 카리스마는 알반의 나른한 목소리에 거대한 불꽃을 더하는 연료와도 같았다. 두 명의 드러머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비트를 기반으로 힙합과 록, 레게와 가스펠이 어우러졌다.
그 시간 동안 무대 앞에선 내내 거대한 춤판이 벌어졌다. 모든 노래가 연주될 때마다 펜스를 잡은 열혈 팬이 주도하는 ‘떼창’의 향연이 펼쳐진 건 말할 것도 없다. 고릴라즈가 최고 히트곡 ‘Damage, Inc.’를 들려주지 않은 게 아쉬웠을 뿐, 그 외엔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완벽한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서울로 오는 길, 만감이 교차했다. 2001년 고릴라즈 데뷔 앨범이 나왔을 때가 떠오른 것이다. 고릴라즈는 당초 알반의 사이드 프로젝트였다. 블러가 제2 전성기를 누린 후 휴식기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미국에서 림프 비즈킷, 린킨파크 등이 등장하고 영국에서는 콜드플레이, 뮤즈 등이 새로운 스타덤을 향해 질주하던 시절이다. 대중음악계에서 록의 헤게모니가 강고하던 때다. 그런 와중에 알반이 힙합 비트라니? 게다가 가상의 캐릭터를 내세운 카툰 밴드 형태라니? 의아하고 떨떠름했던 게 사실이다. 상업적, 비평적으로 가장 성공한 2005년 2집에 이어 2010년 3집이 나왔을 때도 고릴라즈보다 블러의 새 앨범을 더 기다린 게 솔직한 심정이다.
요즘 세계 주요 음악시장에서 록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할 바 없이 추락했다. 한국 장르 음악시장에서도 록은 힙합과 EDM에 크게 밀린다. 연주자 절대 다수를 흑인으로 채우고 비트 대부분을 힙합으로 꾸민 고릴라즈, 즉 알반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 나갔는지를 이번 공연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물론 새로운 시도가 그만의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과감한 시도를 선보이는 대부분이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결과물을 내놓는 걸 떠올려보자. 고릴라즈의 공연이, 그리고 데이먼 알반의 행보가 더욱 특별하게 여겨진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