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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땅콩회항 후폭풍

권력과 성공의 틈새로 휴브리스 病 찾아온다

성공한 리더들 오만병 걸려도 치유하려는 노력 드물어

  • 김종식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jongkim2000@gmail.com

권력과 성공의 틈새로 휴브리스 病 찾아온다

권력과 성공의 틈새로 휴브리스 病 찾아온다

‘항공기 회항’ 논란을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수사 중인 검찰이 12월 11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이날 대한항공 본사의 모습.

휴브리스(Hubris·지나친 자만심)는 성공을 경험한 리더들이 자주 걸리는 병(病) 가운데 하나다. 이 병은 감기처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접근한다. 하지만 감기가 심해지면 목숨을 위협하듯이 휴브리스라는 병도 방치하면 개인뿐 아니라 국가나 기업을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다. 휴브리스는 성공으로 인해 형성되는 지나친 자기 과신과 자만심을 의미한다.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이 용어를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하다 오류에 빠지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참으로 많은 사람이 이 병을 경계했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은 “경영자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고난이 시작된다. 따라서 경영자는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미국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당신이 최고 자리에 있거나, 가장 강력한 나라이거나,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이거나, 가장 훌륭한 선수라면 당신의 권력과 성공 때문에 당신이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고 했다. 로마 제정시대 철학자이자 정치가 세네카는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조금만 써야 하느니”라고 권력을 가진 리더들에게 충고했다.

‘땅콩회항’ 국민의 분노 표출

성공한 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은 본인은 예외라는 성공의 병에 종종 걸리기 때문에 이런 현인들의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거나, 들어와도 머물지 않은 채 쉽게 빠져나간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사람들은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휴브리스의 사례는 매우 많지만 휴브리스에 빠진 것을 인식하고 진지하게 그 병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최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땅콩회항’이라는 말로 비난받고 있듯 기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의 큰 관심을 받다 보니 대한항공이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세월호 사고가 기폭제 구실을 했듯, 권력 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의 관계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분출된 것 같다.



이런 국민 정서를 평소 잘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고 일했을 조 전 부사장은 본인의 판단력과 행동의 파급 효과가 이렇게 클 줄은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한 템포 절제력을 발휘하는 훈련이 평소에도 잘돼 있었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가 순간적으로 절제력을 잃었더라도 기장이 회항을 결정하는 대신 조 전 부사장을 차분하게 설득할 수 있었다면 사건은 달라졌을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은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 본인도 이미 충분히 잘못을 인정했으니 이제 그만 그를 놓아줬으면 한다. 왜냐하면 이번 사건의 핵심은 조 전 부사장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해도 된다고 믿었던 잘못된 기업 문화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도 휴브리스라는 병에 걸린 기업 문화의 산물일 수 있고, 그렇다면 그를 그 병의 감염 증세를 보인 환자로 봐야 한다는 관점도 존재할 수 있다. 어쨌든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와 약이다.

사실 대우그룹, 동양그룹, STX, 웅진 등 한때 잘나가던 기업들이 사라지거나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런 대단한 기업을 이끌던 리더들이 바로 휴브리스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성공을 되풀이하면서 리더들은 조금씩 신격화에 취하게 된다. 문제는 리더가 이 병에 걸리면 기업 전체가 감염된다는 데 있다. 즉 기업 문화가 영향을 받게 된다. 1970~80년대 미국에서 월마트보다 더 잘나가던 리테일 사업의 주자가 에임즈였다. 하지만 에임즈도 휴브리스라는 병에 걸려 몰락하고 말았다. GM(제너럴모터스), 모토롤라, 노키아 등 휴브리스 병에 걸려 왕년의 존재감과 리더십을 상실한 기업은 무척 많다.

스티븐 버글러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성공한 중역의 25% 이상은 성공의 희생양이 된다고 한다. 성공이 휴브리스라는 병을 불러오고, 결국 성공을 이룰 때 보여줬던 강점이 오히려 약점이 된다는 것이다.

오만의 치유약은 자기 인식

권력과 성공의 틈새로 휴브리스 病 찾아온다

경영학자들은 대우그룹이나 동양그룹 리더들도 휴브리스 병에 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 자기 인식이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의 강점, 한계, 가치와 동기 유발, 그리고 감정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즉 ‘너 자신을 알라’는 경고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정직하게 분석해 성격이나 능력, 습관 등을 대차대조표처럼 객관화해서 바라보라는 의미다. 조직에서 자기 인식 능력을 계발하지 못하는 중역은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정서적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다 보면 자신에 대한 동기 부여를 저해하게 되고, 주변 사람이나 직원들에게 영감을 주거나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도 상실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부족함을 동료나 직원들에게 도움을 받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헤이그룹은 리더십 요인 가운데 자기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핵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자기 인식 수준이 높은 리더의 92%는 긍정적이면서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근무 환경을 조성하고, 성과가 낮은 조직에 비해 최대 30% 많은 성과를 냈다. 자기 인식 수준이 낮은 리더의 78%는 부정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고 조직의 성과 및 업무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미국의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회사에 10억 원 정도 손해를 끼칠 일이 아니라면 상사에게 굳이 사실을 보고하거나 말하지 않겠다는 직원이 10명 중 6명이라고 한다. 미국처럼 횡적이고 자신의 의견 개진을 독립적으로 하도록 어려서부터 교육받는 문화에서 성장한 직원들이 이럴진대 우리나라처럼 종적이고 위계를 중요시하는 기업 문화에서는 직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기업 풍토에서 오너의 자녀가 임원급 직위에 있는 경우 그 임원의 생각, 판단, 행동에 대해 오너 외에 제동을 걸거나 조언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조직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안다. 그런 행동에 대한 대가나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를 논의하는 ‘이솝우화’ 속 생쥐들의 이야기가 우화라기보다 조직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겪는 현실인 것이다.

아무리 오너나 최고경영자 또는 오너의 자녀들이 “괜찮아, 솔직히 이야기해”라고 웃으며 유도해도 이런 두려움이 깔려 있는 조직 문화에서는 진솔한 대화나 논의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대한항공 KE086편 기장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 데는 이런 두려움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구실이란 주어진 공간의 질서를 유지하고, 승객이나 관제탑, 승무원과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판단력을 발휘해 비행기에 대한 완벽한 물리적 기능을 확보하고 시스템을 통제해 승객 안전을 책임지는 리더십을 말한다.

괌 추락 사고가 보여준 소통 한계

사실 대한항공은 한 기업으로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만큼이나 크게 발전해왔다. 1997년 대한항공 801편이 미국 괌의 악천후 속에서 착륙을 시도하다 승객과 승무원 229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사고 원인으로 기장과 부기장의 유기적인 소통 부재와 상호보완적 판단력의 결여가 지적됐다. 한국적 문화에서 나이가 어리고 후배인 부기장이 기장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 결정을 뒤집는 것은 매우 쉽지 않은 일이다.

1990~99년 발생한 7건의 대한항공 사고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조종실 내에서 기장과 부기장 간 종적인 상하 관계에 따른 소통의 한계가 지적됐다. 비행기가 안전 고도보다 낮거나 연료가 부족하거나 눈이 과도하게 쌓여 있거나 한 위험한 상황에서도 기장 권위에 눌려 조종실의 다른 비행 요원들은 의견 개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1990년대 대한항공은 항공사 가운데 가장 나쁜 안전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당시 사장으로 근무했고 1999년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조양호 회장은 조종실에서 다시 이런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국인을 훈련 및 교육 책임자로 임명해 조종사들의 문화적 관계를 바꾸고 조종실 내 소통을 투명하게 하는 등 시스템과 문화를 바꾸는 데 기여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대한항공은 이후 항공 사고를 겪지 않았고, 전 세계 항공사 가운데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로 변신한 성공 사례가 됐다.

항공사의 서비스는 이런 노력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아직 어리고 검증되지 않은 자녀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짧은 시간 내 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차근차근 배워야 할 경영의 기본들을 건너뛰게 됐을 것이다. 특히 임직원이나 고객을 소중히 대하는 인격과 성품은 이름 난 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조직에서 높은 타이틀을 가질수록 오히려 만들어가거나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에 이번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것이다.

최근 미국의 취업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www.glassdoor.com)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들은 본인이 일하는 기업의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고 한다. 일부 대기업의 조직 문화는 ‘열정은 넘치는데 (과거) 군대 스타일이다. 가족이 아파도 퇴근을 못 한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소리 지르는 일이 다반사고, 무례한 데다 폭력적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다면 하는 문화는 좋다고 느낀다’고 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우리 기업 문화가 아직까지 통제와 지시를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직도 일부 상사는 조직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로 인식되고 있고 직원들은 그 지시에 따르는 무리로 인식된다는 뜻이다. 즉 휴브리스 병에 걸린 조직과 리더가 많다는 얘기다.

휴브리스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매일 세수를 하듯 자기 인식을 되새김해야 한다.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약점을 보완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조양호 회장은 임원회의에서 오너나 경영진에게 ‘노(No)’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자고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한 대표적인 기업이 또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주간동아 2014.12.22 968호 (p30~32)

김종식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jongkim2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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