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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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국가 제창 그럼에도 투지 다졌다

한일전 정신무장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lunapiena7@naver.com

    입력2011-09-26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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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당한 국가 제창 그럼에도 투지 다졌다

    6월 19일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축구 아시아 예선 1차전에 앞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선수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가 너무 멀어 아침마다 등굣길이 괴로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교 가는 길이 흥이 나기 시작했다. 바로 등굣길에 듣게 된, 한 중학교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 때문이었다. 그 학교에선 등교하는 학생을 위해 아침마다 ‘라데츠키 행진곡’(요한 슈트라우스1세 작곡), ‘경비병 서곡’(주페 작곡), ‘위풍당당행진곡’(엘가 작곡) 같은 행진곡을 틀어줬다. 신나는 행진곡 덕에 오전 수업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음악에는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해 감성을 장악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에 가면 경쾌하고 단순한 리듬의 음악을 틀어주는데,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은 박자에 맞춰 행동이 빨라지게 된다. 고객으로 붐비는 주말에 이 같은 음악은 사람을 신속히 이동시켜 판매량을 증가시킨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효과다.

    국가 대항 축구경기에선 선수단 입장과 동시에 양쪽 관중석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때 그 긴장감을 가슴속 깊이에서 솟아오르는 애국심과 버무려 정신적으로 무장시키는 것이 바로 국가 연주다. 8월 10일 일본 삿포로 돔에서 열린 한일 축구 평가전에서 한국은 3대 0으로 참패했다. 그 원인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왔지만 필자는 일본 선수의 정신무장이 남달랐음에 주목했다.

    정신무장에 대한 힌트는 국가 연주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의 애국가는 한세대 최종우 교수가 불렀다. 반면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는 록그룹 ‘아쿠아 타임즈’의 보컬리스트 후토시가 불렀다. 그가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포켓치프까지 갖춘 정장을 입고 삿포로 돔에 모습을 드러내자 경기장은 떠나갈 듯한 환호로 가득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불안했다. 무반주에다 긴장한 탓인지 첫 음을 여자가수 키에 맞춰 너무 높게 잡았다. 곡이 진행될수록 가수답지 않게 찢어지는 목소리가 나오고 음정은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일본 선수들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모두 어깨동무를 한 채 국기를 응시했다. 그들에게는 유명 대중가수가 경기 전에 엉터리로 기미가요를 부른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고 일본을 상징하는 노래가 지금 울려 퍼진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 그들은 일반인과 달리, 음악이 가진 정서적 영향력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정신무장이 돼 있었다. 자기최면에 걸린 것처럼 집중력을 발휘해 빈틈이 없어 보였다. 그동안 한국 선수들은 한일전을 앞두고 “다른 팀에는 져도 일본에는 결코 질 수 없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지고 오면 현해탄에 몸을 던져라”라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발언은 한일전이 열릴 때마다 두고두고 세간에 회자됐다. 아픈 굴곡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며 축구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의미로 정신무장을 강조했던 것이다.

    황당한 국가 제창 그럼에도 투지 다졌다
    하지만 이번 경기만큼은 일본 선수의 정신무장이 한국 선수를 앞선 듯하다. 그래서 일본이 우리를 이기지 않았을까. 일본 매스컴에선 기미가요를 부른 가수의 가창력을 의심하는 기사가 줄을 이었고, 그 밑에는 수많은 댓글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그런 해프닝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황당한 국가 제창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투지를 다지던 일본 선수들의 정신무장이었다.

    *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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