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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번개’는 바람 가르고 ‘미녀새’는 또 날고…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놓치면 후회할 ‘빅4 이벤트’

  • 전영희 스포츠동아 기자 setupman@donga.com

‘번개’는 바람 가르고 ‘미녀새’는 또 날고…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8월 27일 개막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이하 세계육상선수권)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로, 올해 가장 큰 스포츠 대회다. 대회 기간(8월 27일~9월 4일)에 세계인의 이목은 대구로 쏠린다. 이번 대회의 누적 시청자 수만 60억 명으로 추산될 정도다. 팬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세계적인 육상 스타들이 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은 슈퍼스타가 총출동하는 별들의 전쟁터이기도 하다.

01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사나이, 번개’ 우사인 볼트

육상은 기록으로 말하는 스포츠다. 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의 흥행과 성공은 ‘세계기록이 얼마나 나오느냐’와도 관련 깊다. 2007년 오사카세계육상선수권에서는 단 하나의 세계기록도 나오지 않았지만, 2009년 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이하 베를린대회)에서는 ‘번개’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 등이 3개의 세계기록을 세웠다. 100m와 200m에서 세계기록을 작성하는 순간, 볼트는 베를린대회의 상징이 됐다.

대구를 빛낼 최고의 스타 역시 볼트다. 그는 세계적으로 상업적 가치가 가장 높은 선수로 꼽힌다. 다국적 스포츠 브랜드 푸마는 2010년 볼트와 4년간 2억5000만 달러(3000억 원) 규모의 초특급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사나이일 뿐 아니라 쇼맨십과 스타성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볼트는 “100m에서 최종적으로 9초4대를 찍고 싶다. 단거리를 평정한 다음 400m와 멀리뛰기 올림픽 금메달에도 도전하겠다”며 거침없이 목표를 밝혔다.

볼트의 메이저대회(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 출전 역사는 곧 단거리 세계기록의 역사였다. 공식대회 4번째 100m 도전이던 2008년 6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리복그랑프리대회에서 세계기록(9초72)을 세운 것이 새 역사의 시작이었다. 두 달 뒤 베이징올림픽에서 볼트는 100m(9초69)와 200m(19초30)는 물론, 400m계주(37초10)에서도 연거푸 세계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1년 뒤 베를린대회에서 또다시 100m(9초58)와 200m(19초19) 세계기록을 갈아 치웠다. 단거리 역사상 100m와 200m 세계기록을 동시에 보유한 선수는 볼트뿐이다. 키 196cm에 몸무게 94kg으로 스프린터로서는 다소 큰 체격인 볼트는 스타트 반응 속도가 느린 편이다. 그렇지만 긴 다리를 이용해 중반 이후 폭발적인 스퍼트로 이를 만회한다. 그래서 200m에서 더 강점이 있다는 평도 듣는다. 볼트의 100m 결승은 8월 28일 오후 8시 45분, 200m 결승은 9월 3일 오후 9시 20분에 열린다.



02 부활의 날갯짓 ‘미녀새’ 이신바예바

‘번개’는 바람 가르고 ‘미녀새’는 또 날고…

여자 장대높이뛰기를 단숨에 세계 육상의 인기 종목으로 만든 옐레나 이신바예바.

장대높이뛰기는 한동안 금녀의 종목이었다. 남자 장대높이뛰기는 제1회 세계육상선수권(1983년 헬싱키)부터 정식 종목이었지만, 여자경기가 추가된 것은 7회 대회(1999년 세비야)에서다. 뒤늦은 출발에도 여자 장대높이뛰기는 세계육상의 인기종목으로 발돋움했다. 가장 큰 공로자가 바로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다. 조각 같은 몸매와 깊고 파란 눈, 팬을 대하는 친절한 태도까지 더해져 이신바예바는 2000년대 최고의 여성 육상스타 자리를 지켜왔다. 철학서적을 즐겨 읽는 등 미모뿐 아니라 지성도 겸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신바예바는 당초 체조 꿈나무였다. 5세 때 체조를 시작해 15세가 되던 해에는 ‘기계체조의 달인’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하지만 15세 때 갑자기 키가 174cm까지 자라는 바람에 체조선수의 꿈을 접었다. 이때 만난 예브게니 트로피모프 코치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체조로 기른 그의 유연성은 특히 공중동작에서 빛났다. 장대높이뛰기 입문 6개월 만에 1998년 모스크바 월드유스게임에서 첫 우승(4m)을 차지했고, 2003년 영국 슈퍼그랑프리 육상대회에서는 4m82를 넘으며 첫 세계기록을 세웠다. 이후 2004년 아테네올림픽(4m91·세계기록), 2005헬싱키세계육상선수권(5m01·세계기록), 2007오사카세계육상선수권(4m80), 2008년 베이징올림픽(5m05·세계기록) 등 메이저대회 때마다 세계기록으로 우승하며 큰 무대 체질임을 과시했다. 생애 통산 세계기록을 경신한 횟수가 무려 27회(실외 15회·실내 12회)다.

2003파리세계육상선수권 이후 6년간 무패행진을 달렸지만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2009년 베를린대회 직전 영국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해 아나 로고프스카(폴란드)에게 패한 것. 이후 베를린대회에서는 3번 연속 바를 넘지 못해 입상권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베를린 참패’를 당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출전한 IAAF 취리히대회에서 5m06(세계기록)을 넘으며 건재를 과시했다.

슬럼프 때문에 2010년 약 11개월간 휴식기를 보낸 그는 올해 3월 5년간 호흡을 맞췄던 비탈리 페트로프 코치와 결별했다. 이후 자신에게 장대를 쥐어줬던 트로피모프 코치와 함께 대구세계육상선수권을 준비해왔다.

‘2009년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절치부심한 이신바예바는 대구와 인연이 깊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연속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에 출전했고, 2007년 언론과의 회견에서는 “2006년 한국 방문 때가 (해외 원정 중) 가장 인상적인 환영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은 8월 30일 오후 7시 5분에 열린다.

03 일반 선수와 한판 승부 ‘블레이드 러너’ 피스토리우스

‘번개’는 바람 가르고 ‘미녀새’는 또 날고…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세계육상선수권을 흔히 ‘건각(健脚)들의 제전’이라 부른다. 육상선수에게 튼튼한 다리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다. 하지만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는 선천적으로 두 다리의 종아리뼈가 없는 선수가 트랙에 선다. 그의 이름은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4·남아공). 그는 ‘의족 스프린터’ ‘블레이드 러너’ 등으로 불리며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의 종아리뼈가 없었던 피스토리우스는 생후 11개월 때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기형인 다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의족이라도 착용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걸음마 역시 보조기구를 사용하며 배웠다. 하지만 운동신경만큼은 탁월했다. 학창시절부터 럭비, 수구, 테니스 등을 섭렵했다. 그러다 2003년 럭비 경기 도중에 당한 부상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재활 과정에서 육상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탄소 섬유 재질의 보철 다리로 장애인 무대를 평정했다. 2004년 아테네패럴림픽 200m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그의 도전은 전환점을 맞았다. “일반 선수와도 경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도전을 준비하던 그는 큰 걸림돌을 만났다. 그해 1월 IAAF가 “피스토리우스가 기술적 장비인 보철 다리로 일반 선수보다 25% 정도 에너지 경감 효과를 누리고 있다”며 그의 올림픽 출전을 금지한 것이다. 결국 분쟁 끝에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피스토리우스가 보철 다리로 부당한 이득을 얻지 않았다”며 IAAF 결정을 뒤집었다. 그에게는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 출전 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피스토리우스는 베이징올림픽 당시 출전 기준기록(45초55)에 0.7초 모자라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2011년은 피스토리우스의 끈질긴 도전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그는 출전 기준기록을 모두 통과하며 자력으로 대구세계육상선수권 출전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는 메이저 육상대회에서 일반 선수와 경쟁하는 최초의 장애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남자 400m 결승은 8월 30일 오후 9시 45분에 열린다.

04 40억 아시아인의 자존심 ‘황색탄환’ 류샹

수영선수 박태환(22·단국대)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주종목인 남자 자유형이 아시아인에게 불모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수영과 함께 대표적인 기초종목인 육상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단거리 종목은 아시아 선수가 진입할 수 없는 성(城)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 모든 편견을 뚫고 40억 아시아인의 자존심으로 우뚝 선 선수가 있다. 바로 중국의 육상영웅 류샹(28)이다.

1983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류샹은 96년 육상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3년간 높이뛰기 선수로 활약했지만 99년 상하이 제2체육학교에 입학하면서 진로를 바꿨다. 평생의 스승인 순하이핑(57) 코치를 만나면서부터다. 순하이핑 코치는 신체적 조건과 유연성, 스피드 등을 모두 갖춘 류샹이 세계적인 허들선수로 성장할 것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류샹은 예사롭지 않게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2002년 로잔그랑프리대회에서 세계주니어 및 아시아기록(13초12)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이후에도 탄탄대로를 달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허들 110m에서 12초91(당시 세계기록 타이)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단거리종목 세계 챔피언에 오른 것이다. 미국 외의 국적을 가진 선수가 13초 벽을 깬 것 역시 사상 최초였다. 류샹은 2006년 또다시 세계기록(12초88)을 수립했고, 2007오사카세계육상선수권에서도 우승했다. 남자 허들 역사상 세계기록, 올림픽·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모두 거머쥐며 ‘트리플 크라운’을 작성한 선수는 류샹이 유일하다.

기록 행진과 함께 류샹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류샹이 2007년까지 벌어들인 수입이 2300만 달러(250억 원)가 넘을 것으로 평가했고, 한 보험사는 류샹의 다리 가치를 1350만 달러(150억 원)로 산정했다. 하지만 모든 영광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무너졌다. 오른쪽 아킬레스건 통증을 호소하며 기권했고, 광고모델 계약도 줄줄이 끊겼다. 수술대에 올랐던 그는 “다시 12초대를 뛸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 속에 긴 재활의 터널을 지나왔다. 하지만 류상은 보란 듯이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13초09의 기록으로 대회 3연패를 일궜고, 같은 해 6월 미국 유진대회에서는 13초를 찍으며 12초대에 한발 더 다가섰다. 류샹은 “대구세계육상선수권은 물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우승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남자 110m 허들 결승은 8월 29일 오후 9시 30분에 열린다.

‘번개’는 바람 가르고 ‘미녀새’는 또 날고…

중국의 육상영웅 류샹(오른쪽).





주간동아 802호 (p56~58)

전영희 스포츠동아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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