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3

2017.04.12

영주 닐슨의 글로벌 경제 읽기

‘사드’로 뺨 맞은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

美 트럼프 정부 지정하면 원화 절상 등 피해 …  국제 금융시장의 ‘정글의 법칙’

  •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Ynielsen@skku.edu

    입력2017-04-12 1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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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다양한 이슈로 세계 여러 국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환율’ 이슈다. 당선 전부터 중국을 ‘the grand champion’이라고 일컬으면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환율조작국’으로 매도했다. 한국 정부 역시 4월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까 봐 우려하고 있다.

    환율조작국이란 중앙은행이 환율을 조작하는 국가를 말한다. 환율은 통화의 가격이다. 따라서 수요가 많으면 가격은 올라간다.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나가 자국 통화로 미국 달러를 엄청 사들인다면 자국 통화 대비 달러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중앙은행이 환율시장에 개입(intervention)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무역수지(trade balance) 때문이다.

    한국 원화가 달러 대비 ‘평가절하’(달러당 원화가 더 필요한 상황)된다면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이 환율조작국을 걸고넘어지려는 것이다. 환율조작국 지정이 마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한 이후 생긴 특별한 일 같지만, 사실 6개월에 한 번씩 하는 환율조작국 심사와 그에 대한 조치는 ‘BHC법안’에 따라 미국 재무부가 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러니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 해도 트럼프 정부 마음대로 바로 45% 관세를 부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여러 제재와 감시가 뒤따른다. 심할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의 감시와 제재까지 따를 수 있다. 미국의 다음 환율조작국 발표는 4월 15일에 있을 예정이다.

    그럼 어떤 기준으로 환율조작국을 지정할까.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이 된다. 미국 상대 무역흑자가 20억 달러(약 2조2400억 원)를 넘어서고, 이 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이면서 중앙은행의 순달러 매수 총액이 GDP의 2% 이상에 달하는 경우다. 현재 한국은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





    특별한 방안 없는 트럼프 정부


    이 세 가지 조건을 고려할 때 가장 유력한 나라는 중국, 대만, 한국, 독일, 스위스다. 일본의 경우 미국 대선 전후로 트럼프 대통령이 근거 없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먼저 중국 이야기를 해보자. 중국의 위안화 환율 자체가 아주 좁은 범위에서만 움직이도록 돼 있기 때문에 중국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없을 수가 없다.

    2000년대에 가격경쟁력 하나로 성장해온 중국 위안화가 당시 말도 안 되게 평가절하됐다는 사실은 전 세계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가 아닌 평가절상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 유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래프’에서 보듯 중국 경제가 나빠지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줄고 있다.

    위안화가 평가절하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대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더는 개입할 수 없게 하면 중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더 강화돼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과는 정반대 결과가 나올 공산이 크다.

    일본 역시 2003~2004년 시장 개입을 통해 엔화의 평가절하를 시도했지만, 그 효과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정책이 실패한 것이다. 그 후 일본은 시장 개입을 시도한다는 증거들을 보이지 않았다. 해도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제로(0)인 이자율에, 최근 ‘아베노믹스’ 정책으로도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받지만 해외 자금은 일본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이것으로 간신히 현 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의 경우 미국을 상대로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만 보면 독일 통화인 유로화가 말도 안 되게 평가절하됐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통상전문가인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래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는 유럽연합(EU) 내에서 먼저 해결돼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애초 유로화는 EU에서 가장 부자 나라인 독일을 약간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도록 디자인됐다. 독일한테만 뭐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자율이 높아지면 평가절상되는데 유럽중앙은행(ECB) 측에 이자율을 올리라고 압력을 넣을 수 있을까. 만약 트럼프 정부가 지금 이런 말을 한다면 이는 EU를 해체하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럽은 그만큼 이자율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제 많은 독자에게 의외일 수 있는 나라 스위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스위스 중앙은행 역시 시장 개입을 엄청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통해 세계에서 제일 비싼 스위스프랑을 현 수준으로 싸게 유지해왔다. 이런 이유로 금융위기 당시 투자자들이 자금을 대피시키는 곳으로 기능해왔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스위스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면 세계 금융 사회가 트럼프의 모든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만만한 한국과 대만

    그럼 이제 남은 건 만만한 한국과 대만이다. 미국을 상대로 한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8%나 되는 한국이지만, 위로하자면 대만과 싱가포르는 각각 15%, 19%이다. ‘한국 경기가 좋지 않고 미국이 이자율을 올리면서 외국 자본이 이탈해 원화가 더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들인데 무슨 엉뚱한 소리일까’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꽤 많을 테다.

    사실 환율조작국 지정 3가지 조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도 꽤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환율 결정이 오로지 경상수지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실효환율 또는 여기에 더해 완전고용과 적정한 순현금흐름을 만족시키는 기초균형환율(fundamental equilibrium exchange rate)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여긴다.

    미국의 유명한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윌리엄 클라인(William R. Cline)의 지난해 11월 리포트를 보자. 리포트의 기초균형환율에 따르면 현재 싱가포르와 대만은 여전히 각각 26%, 27% 저평가된 상태다. 또 일본은 3%, 한국은 6% 저평가돼 있다.

    트럼프 정부가 주장하는 환율조작국 지정은 결국 이치에서 벗어난 얘기인데, 어쨌든 이 협박이 시장에서 먹힌 듯하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한 이후 스위스프랑을 포함한 모든 환율조작국 후보들의 통화가 3~5% 평가절상됐다. 한국 원화도 그중 하나다.
    1988년 이후 한국은 환율조작국으로 세 번 지정됐다.

    이번에 다시 한 번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면 원화는 현재보다 평가절상될 것이다. 그리고 가격경쟁력을 잃은 한국 제품들은 수출에서 현재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고 해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아야 될 뿐이다. 국제경제, 그리고 국제금융시장은 정글과도 같다는 말을 실감하게 될 뿐이다.


     


    영주 닐슨

    •전 헤지펀드 퀀타비움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
    •전 Citi 뉴욕 본사 G10 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J.P.Morgan 뉴욕 본사 채권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Barclays Global Investors 채권 리서치 오피서
    •전 Allianz Dresdner Asset Management 헤지펀드 리서치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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