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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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주요 판결 164건 전수 분석… 실체와 인권 중시

DJ 가택연금 재정신청 인용 등 다양한 판결 남겨…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선 검찰과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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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3-09-0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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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8월 29일 서울 서초구의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동아DB]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8월 29일 서울 서초구의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동아DB]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임기 6년의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을 책임지고 사법부를 대표하는 수장이라는 점에서 그의 철학과 판결 성향이 어떠하냐에 따라 앞으로 6년간 사법부가 나아갈 방향이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주간동아는 이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그가 30여 년간 내린 판결 중 의미가 큰 것으로 판단돼 판례심사위원회로부터 공개 결정을 받은 64건과 사회적 주목을 받은 판례 100건 등 총 164건을 전수 분석했다.

    엘리트 판사 모임 민사판례연구회 활동

    이 후보자는 사법부 내 대표적인 ‘보수 정통’ 법관으로 분류된다.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서울남부지법원장, 대전고법원장 등 주요 보직을 맡으며 재판에 매진했다. 그는 보수 엘리트 판사 모임으로 알려진 민사판례연구회에서 활동했는데 양승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여기 출신이다.

    법관으로서 이 후보자는 어떤 족적을 남겼을까. 분석 대상은 법원 종합법률정보에 공개된 판결 64건이다. 법원은 판례심사위원회를 통해 공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확정 판례를 선별해 종합법률정보에 공개하고 있다. 이 후보자가 재판부에 참여한 판결의 경우 대법원에서 확정된 64건이 판례심사위원회로부터 공개 결정을 받았다. 민사 39건, 일반행정 18건, 형사 7건 순으로 많았다. 고등법원 판례가 52건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1심(12건) 판례도 일부 있었다.

    다만 해당 판례만으로 이 후보자의 판결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법원이 ‘모범 판례’ 위주로 선별 공개한 만큼 검증에 제약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주간동아는 종합법률정보 외에도 사회적 관심을 받는 판례들을 모아놓은 민간 판례 검색 서비스 ‘케이스노트’에 공개된 100건을 추가로 분석했다(표 참조). 또 지명 직후 논란을 빚었던 성범죄 관련 판례 등 몇몇 비공개 판결도 다뤘다.

    DJ 가택연금 재정신청 인용

    종합법률정보에 공개된 이 후보자의 판결 중 정치적 성격을 띠는 사건은 많지 않은데, ‘DJ(김대중) 가택연금’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이 눈에 띈다. 이 사건은 1987년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김상대 마포경찰서장 등을 특수감금 및 불법감금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김 전 서장이 별다른 근거 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동교동 자택에 연금하고, 외부인사 출입을 통제한 혐의다. 해당 사안은 이듬해 2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됐으나, 1998년 서울고법 재판부가 재정신청을 인용하면서 되살아났다. 당시 이 후보자는 좌배석 판사로 재판에 참여했다. 이후 2006년 대법원이 김 전 서장에게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마무리됐다.



    가택연금 해제 직후인 1987년 6월 25일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동교동 자택에서 나오고 있다. [동아DB]

    가택연금 해제 직후인 1987년 6월 25일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동교동 자택에서 나오고 있다. [동아DB]

    가택연금 해제 전날인 1987년 6월 24일 경찰들이 동교동 일대에 배치됐다. [동아DB]

    가택연금 해제 전날인 1987년 6월 24일 경찰들이 동교동 일대에 배치됐다. [동아DB]

    서울고법 재판부는 “피의자 측의 일방적인 진술만을 토대로 피의자들의 행위가 사회혼란과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행해진 정당한 직무집행에 해당하거나, 신청인들 주장과 같은 불법감금 사실 자체나 지시·공모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피의자들에 대해 그 혐의가 없다고 단정하고 각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경찰버스와 승합차(일명 봉고차), 사복경찰관 등을 이용해 김 전 대통령의 가택 정문으로 통하는 모든 진입로를 봉쇄한 것을 지적했다. 이외에도 내국인 방문을 일절 허용하지 않은 것과 김 전 대통령의 미사 참석을 거절한 점 또한 판결 근거로 삼았다.

    일반인과 관련된 판결 중에서는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판결이 이목을 끈다. 2019년 서울고법 형사7부 부장판사였던 이 후보자는 해당 사건으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는 구 전 청장에 대해 “집회·시위의 관리에 관한 총괄 책임자로서 주의의무를 위반한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고, 이는 피해자 사망의 결과에 대한 원인이 됐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장이던 이 후보자는 “현장 지휘관의 보고를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거나 현장 지휘체계만 신뢰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집회·시위 현장에서 과잉 살수가 방치되고 있는 원인과 실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의사계 손들어준 놔파계 판결

    이 후보자는 2016년 한의사도 현대 의료기기인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고 판결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의사 이 모 씨가 2010년 자신이 운영하던 한의원에서 뇌파계를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건복지부가 2012년 면허정지 3개월 처분을 내린 사안이었다. 뇌파계는 환자 두피에 전극을 부착해 뇌파를 증폭한 후 이를 컴퓨터로 데이터 처리해 뇌의 전기 활동 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1심은 “뇌파계 사용을 통한 진단은 한의학에 포함되기 어렵다”고 판결했으나, 2016년 이 후보자가 항소심에서 “의사국가시험에서도 뇌파검사 능력 평가는 필기시험만 이뤄질 뿐 임상 경력이 요구되지 않는 만큼 한의사도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 충분히 뇌파계를 활용할 수 있다”며 원심을 뒤집은 것이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가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올해 8월 18일 기존 판결을 인용하면서 뇌파계 다툼은 종지부를 찍었다.

    대한신경과학회는 앞선 판결을 두고 “과학적 근거와 의료 윤리를 무시한 판결”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뇌파 검사는 뇌전증, 의식장애, 수면장애, 뇌사 등 특정 신경학적 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에서 그 유용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됐지만 치매·파킨슨병 같은 복잡한 신경계 질환 진단의 경우 뇌파 검사만으로는 심각한 오진 위험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대통령 친구의 친구’로 알려졌지만 ‘윤석열 검찰’ 당시 검찰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정운호 게이트’ 국면에서 검찰이 현직 부장판사 3명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하자 무죄 판결을 내린 사안이다. 정운호 게이트란 2016년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 사건이 법조 비리로 확산된 사건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관련 대응 방안을 지시하면서 촉발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8년 제출한 임 전 차장의 하드디스크에서 관련 문건이 쏟아지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조의연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성창호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비위 법관에 대한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검찰의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 등을 복사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공무상 기밀누설)를 받았다. 검찰은 신 전 부장판사 등이 검찰 수사보고서, 영장청구서 등 수사 진행과 관련된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넘긴 것을 기밀 누설로 봤다.

    이 사건에는 현 시점에 익숙한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정운호 게이트를 담당한 검사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낸 이원석 검찰총장이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장을 지내며 수사에 관여했다. 윤 대통령 역시 이 기간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지냈다.

    2021년 서울고법 부장판사였던 이 후보자는 2심에서 “피고인들이 검찰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법관 비리를 은폐하려는 의사를 상호 연락하며 공모하지 않았다”며 1심에 이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후보자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받고 있는 법관이 누구이고 그 혐의가 사실인지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하는 것은 정당한 사법행정 사무의 수행일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법행정의 역할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내로남불’ 논란을 지피는 판결도 있다. 이 후보자는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우석제 전 안성시장이 선거관리위원회에 40억 원대 채무를 신고하지 않았다며 그에게 당선 무효형인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후보자는 당시 “재산신고서에 누락된 정도가 중대하다”고 판결했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문제는 이 후보자가 그간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비상장주식 부문 신고를 누락한 것이다. 이 후보자 부부와 두 자녀는 2000년부터 이 후보자 처가가 운영하는 기업들의 비상장주식(약 9억8900만 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후보자는 “세부 규정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해 착오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뉴스1]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뉴스1]

    “틱장애, 불합리한 차별받아”

    대통령실은 이 후보자 지명을 알리며 ‘틱’으로 알려진 투레트증후군을 법률상 장애로 인정한 판결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사안은 경기 양평군이 법률 공백으로 중증 투레트증후군을 앓는 사람의 장애인 등록을 허가하지 않아 불거졌다. 이 후보자는 2016년 이에 대한 1심 판결을 뒤집으며 투레트증후군을 앓는 장애인의 장애인 등록을 거부한 행정처분이 “헌법의 평등 원칙에 위반돼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 후보자는 “틱장애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아니한 행정입법의 부작위로 인해 원고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장애인으로서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후보자의 판결로 장애인에 대한 법률적 이해가 확장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법해석은) 장애를 신체 및 정신에 대한 의학적 판단에만 의존해 사회통합을 위한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회보장급여수급권자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있다”며 “서울고법 판결은 이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이 후보자는 2020년 판결로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미성년자의제강간·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7년으로 감형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이 후보자는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 있고, 개선·교화 여지가 남은 2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라며 감형 이유를 밝혔다.

    이 후보자는 해당 논란에 대해 “범죄와 형벌 사이의 균형, 범행에 상응하는 책임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법관 재직 기간에 선고했던 판결 전체를 균형 있게 살펴봐달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사한 사안에서 1심보다 엄한 형을 내린 판결도 다수 확인됐다. 이 후보자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2019년 돈을 주고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B 씨에 대해 1심보다 형을 높였다. 이 후보자는 “집행유예 기간 중 범행을 저질러 집행유예 선고가 실효되는 사정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징역 8개월을 선고한 1심 판결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이듬해 담당한 특수강간, 특수감금 관련 판결에서 1심 징역 3년형을 파기하고 징역 4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장 후보자의 정치 성향은 논란이 되곤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경우 지명 당시 진보 성향 판사들의 연구단체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맡은 사실이 알려져 보수 정당으로부터 공세를 받았다. 김 대법원장은 또 2021년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에 대해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들통나 “정치권 눈치를 봤다”는 비판도 받았다.

    김명수 대법원장 작심 비판

    이 후보자는 2021년 대전고법 취임사를 통해 “정치권력, 여론몰이꾼, 내부 간섭 등 부당한 영향에 의연한 자세로 용기 있는 사법부를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하며 김 대법원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이 후보자는 같은 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후보자의 지명 사실이 알려지자 “김 대법원장에게 이념 문제를 지적하던 윤 대통령이 보수 성향이 강한 인물을 지명한 것은 아쉽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법원 판사 출신의 한 인사는 8월 31일 기자와 통화에서 “판사 역시 사람이기에 개인마다 정치적 성향이 없을 수는 없다”면서도 “이 후보자는 정치권 눈치를 보거나 이념에 따라 본분을 훼손할 사람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이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요구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이후 국회가 일정을 협의해 9월 중순쯤 인사청문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는 8월 23일 “최근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해 자유와 권리에 봉사하고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국민의 바람직한 법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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