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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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한국 전세의 대안으로 떠오른 미국 ‘기업형 임대주택’

임차인 주거 안정성 높은 게 장점… 국내 도입 시 임대료 인상 최소화 장치 마련해야

  •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입력2023-08-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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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에서 한 행인이 매물 가격을 들여다보고 있다. [뉴스1]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에서 한 행인이 매물 가격을 들여다보고 있다. [뉴스1]

    최근 들어 미국 주택시장에서 ‘가격 바닥론’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주택 가격을 분석할 때 자주 인용되는 ‘케이스쉴러 지수(Case-Shiller Index)’는 최근 6개월 동안의 하락세를 멈추고 전고점을 향해 다시 상승하고 있다. 민간 연구기관 미국기업연구소(EIA)는 미국 주택 가격이 올해와 내년 각각 6%대, 7%대 상승률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상승 전망의 주된 배경은 수급 불균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 주택 착공이 줄어든 반면, 재택근무가 늘면서 주택 수요는 늘었다는 것이다. 임대주택 공실률이 기록적으로 낮아지자 임대용 단독주택을 확보하고 나선 기업들의 수요도 미국 집값 하락세가 끝난 원인으로 지목된다.

    “올해 美 주택 가격 상승률 6%” 전망도

    국내에서도 특정 지역의 집값이 반등하고 있다. 국내 부동산시장에서는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하락하는 추세가 상당 기간 이어졌는데, 이는 집값 관련 통계가 본격적으로 작성된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주택 가격 하락으로 줄어든 매매 수요는 임대 수요로 전환돼 전세가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하락기에는 전세가와 매매가가 동시에 하락해 역전세와 전세사기 문제가 대두됐다.

    문제는 이처럼 전세와 관련된 여러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세 제도는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시장 분위기가 이어질 때는 영속성을 갖기 어렵다.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는 매매가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맡기고 2년 동안 거주할 권리를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다.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한다면 주택 가격과 전세보증금의 격차가 줄어들어 전세 제도의 소구력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은 아파트에 비해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높은 연립·빌라·다세대주택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런 유형의 주택은 보유 수요보다 거주 수요에 의해 시장이 움직이는데, 여전히 소비자들이 느끼는 전세사기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에도 지금까지 전세 제도가 생명력을 유지한 이유는 월세보다 저렴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빠르게 인상된 지난해에는 전세보다 월세 거래가 많았다. 올해 들어 대출금리가 하향하는 모습을 보이자 전세 거래가 다시 증가했다. 국내 주택시장의 전세자금 총량은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지만, 통상 1000조 원 규모라는 것이 통설이다. 최근 다시금 몸집을 키운 전세시장은 연간 주택매매 거래액 300조 원 시대에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필자는 전세 제도를 한국 주택시장의 ‘회색 코뿔소’라고 표현하고 싶다. 회색 코뿔소라는 용어는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미셸 부커 당시 세계정책연구소 대표가 처음 언급했다. 코뿔소는 몸집이 커서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방향을 틀거나 멈추기 어렵다. 이런 코뿔소에 부딪친 사람이 크게 다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예측 가능한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일상에서 배제하기 어렵고, 파급력이 큰 경제 리스크가 바로 회색 코뿔소다.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사실상 예측 불가능한 변수인 ‘검은 백조’와 비교된다. 전세 제도는 1000조 원에 달하는 보증금 반환 의무를 사실상 집주인의 경제력과 양심에 의존하고 있다.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지는 시장 상황에서 정부는 임차인 보호를 위해 집주인 관련 규제를 완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바뀐 美 주택시장

    그런 점에서 전세의 대안으로 기업형 임대 제도를 주목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전세보다 월세가 주를 이루고 임대사업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기업형 임대가 일반화됐다. 미국은 예전부터 한국 아파트에 해당하는 콘도(condo)나 다가구주택(multi-family home) 개발을 대체로 주택임대 기업이 도맡고 있다. 이런 유형의 주택은 개발 후에도 상당수가 임대주택으로 쓰인다. 일본도 주택임대 기업이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주택시장에서는 전문 리츠가 중심이 돼 임대주택을 개발하거나, 토지 소유자의 토지신탁을 통한 임대주택 개발 사업이 활발히 이뤄진다.

    미국 단독주택 단지. [GETTYIMAGES]

    미국 단독주택 단지. [GETTYIMAGES]

    최근 들어 미국에서는 주택임대 기업의 활동 반경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미국 소비자가 선호하는 단독주택까지 기업형 임대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기존 단독주택 임대는 소규모 개인 임대인(mom-and-pop), 쉽게 말해 다주택자 영역이었다. 이들은 월간 임대료 수익과 자산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주택에 투자했다. 그러나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미국 단독주택 임대시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돈을 빌린 이들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한 집이 대거 경매에 나왔다. 경기 악화 여파로 입찰자가 자취를 감춰 시장의 또 다른 리스크가 됐다. 결국 미 당국은 쏟아지는 부실 자산을 감당하고자 기관투자자에게 취득세와 양도세를 감면해주고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등 혜택을 줬다. 이 같은 노력 끝에 수백만 채에 달하던 부실 자산을 해결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기관들의 단독주택 임대사업이 본격화된 계기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주택담보대출 부도가 심각했던 애틀랜타주를 비롯한 선벨트 지역에서 임대사업이 활발하다. 특정 지역에서는 전체 주택의 60% 이상이 임대형 단독주택일 정도다.

    개인 임대인에 비해 기업형 임대주택의 가장 큰 장점은 신뢰와 안정성이다. 임대주택 매입과 개발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기업은 사업을 유지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따라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마련인데, 이는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으로 이어진다. 기업형 임대주택은 각 업체의 전략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결국 임차인의 주택 선택권이 넓어질 수 있다.

    기업형 임대주택의 단점은 임대료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월세 비율이 80%가 넘어 ‘세입자의 천국’으로 불리던 독일 베를린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베를린도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이 보편화된 곳인데, 외국인 근로자 유입 등으로 주택 수요가 늘어난 결과 임대료 폭등 사태를 겪었다. 이에 따라 기업의 무분별한 임대료 인상이 지탄을 받으며 기업형 임대주택을 모두 국유화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바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기업들이 임대형 단독주택 매입에 나서면 수요 확대에 따른 가격 상승 가능성이 있다. 자산 이득을 노린 기업이 주택을 대량 매입·매도할 경우 집값 등락이 심해진다는 의견도 있다.

    ‘임대료 폭등’ 베를린 반면교사

    2021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민간 임대기업이 소유한 주택을 몰수하자는 시위가 열렸다. [GETTYIMAGES]

    2021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민간 임대기업이 소유한 주택을 몰수하자는 시위가 열렸다. [GETTYIMAGES]

    따라서 국내에 기업형 임대주택을 본격 도입한다면 먼저 임대료 인상으로 야기되는 입주민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현재 등록임대사업자에게 허용된 임대료 인상률이 적정한지 여부를 떠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임차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행태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임대주택이 매매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려면 기업에 주는 혜택도 섬세하게 설계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 같은 안전핀이 충분히 마련된다면 기업형 임대주택 모델은 ‘회색 코뿔소’ 전세 제도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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