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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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정말 물건인가요

[이학범의 펫폴리] 민법상 물건으로 규정돼 동물학대 해도 솜방망이 처벌

  •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입력2023-07-2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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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여러분이 친구 스마트폰을 망가뜨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똑같은 기종의 스마트폰을 사주거나 그 금액을 돈으로 배상하게 될 것입니다. 손해배상은 물건이 훼손·멸실된 당시 수리비 혹은 교환가격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죠. 놀랍게도 이 원칙은 여러분이 옆집 강아지를 죽게 하거나 다치게 했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학대 여부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 똑같은 견종의 강아지를 사주거나 그에 상응하는 값을 물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충격적이지 않나요. 그 이유는 바로 현행법상 동물의 법적 지위가 ‘물건’이기에 그렇습니다.

    최근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 민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GETTYIMAGES]

    최근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 민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GETTYIMAGES]

    해외에선 물건 아닌 지각력 있는 존재

    반려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 ‘동물=물건’이라니 납득이 잘 안 됩니다. 그럼에도 국민 생활의 근간이 되는 민법에 따라 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법 제98조(물건의 정의)는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有體物)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고 규정하는데요, 반려동물은 이 정의 중 ‘유체물’에 해당하기에 법적으로 물건입니다.

    동물이 물건으로 정의되다 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선 동물학대 범죄가 점점 잔인해지고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지만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입니다. 2017년부터 2022년 3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 4249건 중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는 122명(3%)이었습니다. 절반 가까이가 불기소됐고(46.4%),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에 그친 사례도 많았습니다(32.5%). 2013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로 범위를 넓혀도 기소된 201명 중 82%(165명)가 벌금형이었습니다. 실형 선고가 손꼽을 정도로 적으니 동물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동물의 법적 지위가 물건인 상황에서 가벼운 판결을 내리는 판사만 탓할 순 없어 보입니다.

    두 번째는 동물학대자의 동물소유권을 박탈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동물보호법이 전부 개정됐습니다. 법 조항이 2배 이상 늘어날 정도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는데요. 당시 법안 초안에 담겼다가 논의 과정에서 빠진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동물사육금지처분 명령제도’입니다. “동물보호법상 금지된 동물학대행위를 하다 적발된 경우 사육금지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 통과 과정에서 제외됐습니다. “동물이 법적으로 물건인데, 개인이 물건을 살 수 없도록(동물을 키울 수 없도록) 규제하는 것은 개인의 기본권을 심하게 제한한다”는 이유에서였죠. 결국 동물학대로 처벌받은 사람도 학대한 동물을 계속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학대받는 동물을 소유자로부터 격리할 수는 있지만, 소유자가 돌려달라고 하면 다시 돌려줘야 합니다. 2년 전 쥐불놀이하듯 강아지 목줄을 잡고 공중에서 여러 차례 돌려 학대한 소유자가 격리됐던 강아지를 다시 데려가 엄청난 논란이 됐는데요. 현재도 변한 건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민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미 1988년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체코, 캐나다 퀘벡주 등은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규정했으며 프랑스, 포르투갈, 콜롬비아, 벨기에, 스페인 등도 동물을 단순한 물건이 아닌, 지각력 있는 존재로 구분합니다.



    법무부가 민법 개정안 발의했지만…

    법무부가 발의한 민법 개정안에 신설된 조항.

    법무부가 발의한 민법 개정안에 신설된 조항.

    국내에서도 2021년 10월 법무부가 정부 입법으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하긴 했습니다. 당시 법무부는 브리핑을 통해 “그동안 동물학대에 관한 처벌과 동물피해에 관한 배상이 충분치 않은 근본적 이유가 동물이 법체계상 물건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며 “동물에 대한 비인도적 처우 개선 등 생명 존중 인식이 확산하는 가운데 반려동물 유기행위나 잔인한 학대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밝혔습니다.

    다만 법무부 개정안은 법 개정을 원하는 쪽에서도, 원치 않는 쪽에서도 모두 반발을 샀습니다. 전자는 개정안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는 내용이 담겨 “선언적인 법 개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후자는 법 개정이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현재는 동물생산업, 동물판매업에 따라 동물이 합법적으로 거래되는데 물건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 타인이 반려동물에 위해를 가했을 때 형법상 재산죄(손괴, 절도, 강도, 사기, 공갈, 횡령 등)를 적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도 우려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으며, 4월에는 여야 원내대표가 만나 이달 중 처리하자고 합의까지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우려의 목소리도 일견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민법을 개정한 다른 나라들도 민법 개정 후 추가적인 논의와 입법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해가고 있습니다. 선언적 규정이라 오히려 의미가 있다는 전문가들 주장도 있습니다. ‘2022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서 국민의 94.3%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에 동의했습니다. 이 정도면 사회적 합의는 끝났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9월 정기국회에서 민법 개정안 통과 소식을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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