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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진화는 고기 불판 앞에서 시작됐다

[궤도 밖의 과학] 130~200도에서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에 삼겹살 맛 UP!

  • 궤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nasabolt@gmail.com

인류 진화는 고기 불판 앞에서 시작됐다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기 않다. [GETTYIMAGE]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기 않다. [GETTYIMAGE]

고깃집 근처를 지날 때마다 ‘지글지글’ 하는 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를 참기 힘들다. 특히 돼지 갈비뼈 옆에 붙어 있는 삼겹살은 그 풍미가 예술이다. 살코기와 지방이 여러 번 겹쳐진 부위가 삼겹살 말고도 또 있지만, ‘돼지고기’ 하면 대번에 삼겹살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사실 삼겹살은 세 겹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껍질을 빼도 네 겹이 겹쳐진 형태다. 하지만 ‘4’자를 싫어하는 동아시아권 문화로 인해 사겹살이 아닌 삼겹살로 불리게 됐다. 껍데기를 벗기지 않아 쫄깃한 한 겹이 추가된 돼지고기 오겹살은 실제로 다섯 겹이라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다.

종종 삼겹살은 ‘금겹살’로 불리며 물가 상승 지표로 활용된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음식이지만 과거에는 대우가 좀 달랐다. 중국에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조선에서 온 사신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아 쇠고기나 양고기를 대접해야 했다. 일단 돼지를 기르는 농가 자체가 적었고, 돼지고기 소비도 많지 않았다. 인분을 먹던 돼지를 거쳐 사람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생충 때문에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나 어린아이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속설도 있었다. 충분히 익혀 먹으면 문제가 없음에도 돼지고기가 이렇게 냉혹한 평가를 받은 진짜 이유는 ‘가성비’가 떨어졌기 때문. 돼지 한 마리에서 1㎏ 고기를 얻기 위해 들어가는 사료는 4㎏이 넘었다. 반면 닭은 2㎏이면 충분했다. 같은 비용의 사료로 2배나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소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먹는 양만 따지면 돼지보다 2배는 많지만, 소 자체가 고가 자산이라는 점에서 우월성을 지녔다. 특히 성실한 일꾼으로 묵묵히 밭을 가는 소와 먹고 놀기만 하는 돼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농사일에 첨단 농기계가 도입되면서 소는 직업을 잃고 돼지와 똑같은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오직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가축 수가 늘어나면서 돼지고기 역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소는 9개월에 걸쳐 새끼를 한두 마리밖에 낳지 못하지만 돼지는 4개월마다 평균 10마리를 낳는다.

우리나라 돼지고기 소비량은 소나 닭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늘어났다. 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을 보면 돼지고기가 27㎏으로 압도적 1위다. 특히 구이 부분에서 돼지고기 위용은 대단하다.



삼겹살 먹을 때 꼭 과식하는 이유

고기를 익혀 먹은 덕분에 인류는
진화할 수 있었다. [GETTYIMAGES]

고기를 익혀 먹은 덕분에 인류는 진화할 수 있었다. [GETTYIMAGES]

우리 조상은 고기를 어떻게 먹었을까. 아마 불에 직접 굽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기생충을 완전히 제거하고 고기의 풍미와 식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화구이를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고기를 구워 먹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가장 오랫동안 길들여진 고기 맛은 바로 직화구이 맛이다. 고기 맛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 고기 원재료의 품질이나 유통 기간, 숙성 정도도 중요하지만 고기를 굽는 과정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1912년 프랑스 화학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는 고기 맛을 내는 중요한 현상이 적힌 3장짜리 짧은 논문을 발표했다. 아미노산과 당을 고온에서 반응시키면 신기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2년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그는 군의관으로 입대하게 됐다. 이 논문은 종전 후 발표된 수많은 다른 논문들 틈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나 미국 화학자 존 호지는 마이야르가 발견한 화학반응의 정확한 메커니즘을 찾아냈고, 이것이야말로 요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현상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마이야르 반응’이 세상에 나왔다. 이 반응은 130~200도 사이에서 주로 일어나며, 구워진 표면의 색이 갈색으로 변하고 고소한 향과 맛이 난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무리 유명한 요리사가 고기를 물에 넣어 끓이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구이의 풍미는 따라가기 힘들다. 제대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려면 직화로 굽거나 충분히 달군 그릴에서 구워야 한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의 기본 온도가 180도로 설정돼 있는 것도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는 온도와 무관하지 않다.

어쨌든 삼겹살은 맛있다. 삼겹살 불판 앞에서 과식하는 것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약물연구소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몸속에서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화합물로부터 오는 신호가 지방 섭취를 조절한다. 이 화합물은 몸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마약을 투여할 때와 유사한 반응을 일으킨다. 중독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일단 한 번 지방을 섭취하면 체내에서 지방이 활발하게 분비되면서 지방을 더 먹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유전이나 환경적 요인 등으로 만들어진 복잡한 뇌의 반응일지도 모른다.

삼겹살과 관련된 유사과학도 종종 등장한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삼겹살을 먹어야 한다거나,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기 전후에 삼겹살을 먹어야 부작용이 없다”는 얘기도 나돈다. 삼겹살에는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고, 체내 흡수율이 높아 피로 해소에 그 나름 효과가 있긴 하다.

火食으로 인류는 똑똑해졌다

인간과 비슷한 침팬지는 하루 12시간 이상 뭔가를 씹고 있다. [GETTYIMAGES]

인간과 비슷한 침팬지는 하루 12시간 이상 뭔가를 씹고 있다. [GETTYIMAGES]

맛있는 고기가 어디 삼겹살뿐인가. 같은 돼지에서 나오는 항정살이나 갈매기살도 부드럽고, 우직한 토마호크나 티본스테이크도 입에서 살살 녹는다. 구운 고기는 인류 진화에도 이바지했다. 우리가 지금처럼 똑똑한 호모 사피엔스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고기를 구워 먹었기 때문이다. 인류 진화의 결정적 전환점은 불을 발견하고 불로 음식을 요리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동물이 있다. 인간처럼 무리를 지어 사회를 구성하고 협동하며 살아가는 동물도 있고, 도구를 사용해 사냥하는 동물도 있다. 하지만 불로 음식을 익혀 먹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이 차이는 엄청나다. 우선 우리와 비슷한 침팬지의 경우를 보자. 침팬지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늘 뭔가를 씹고 있다. 별로 씹을 것이 없는 과일을 먹기 위해 하루에 6시간 이상을 소비한다. 하지만 인간은 음식을 익혀 먹음으로써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먹기 위해 소비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남는 시간이나 소화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를 다른 활동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질긴 생고기를 씹는 데 필요한 커다란 턱이나 날카로운 이빨도 필요 없어 구강구조도 변했다. 이 과정에서 뇌가 커질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생겼고, 언어가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 결국 인류는 화식(火食)을 하면서 점점 똑똑해질 수 있었다.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나타난 변화가 지금의 인류를 만들어낸 것이다.

운동보다 식욕 조절이 중요

여기엔 사실, 덧붙일 이야기가 있다. 화식만으로 진화했다고 보기에는 시기적으로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현생 인류의 분류학상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는 직계조상인 ‘호모 에렉투스’가 있었다.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뇌가 커진 시점은 150만 년 전이다. 하지만 화식을 시작한 시점은 50만 년 전에 불과하다. 두 가지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100만 년 이상 차이가 있었다. 과학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면 화식과 인류의 진화는 그다지 연관이 없었을까. 물론 아니다. 아마 화식 전에는 다른 방법을 통해 유사한 형태의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답은 석기였다. 석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시기가 바로 150만 년 전이다. 특히 호모 에렉투스는 손도끼 장인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수준의 석기를 사용했다. 그들은 불을 사용하기 전부터 저미거나 두들기는 방법으로 고기를 소화시키기 좋도록 부드럽게 만들어 먹으면서 진화를 시작했고, 화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진화를 마무리했다.

다이어트가 국민적 움직임으로 번지고 있는 시기다. 여전히 식사는 두렵고, 운동은 훌륭하며 숭고하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비만은 몸을 사용하는 활동량보다 섭취하는 열량과 더 높은 관련성을 갖는다. 어쩌면 더 많은 운동보다 식욕을 조절하는 게 중요할지도 모른다. 지방은 맛있지만, 열량이 높고 포만감을 느끼기 어렵다. 반면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물종은 단백질 섭취량을 스스로 조절하는 작용원리를 갖고 있기에, 고단백 식사를 하면 금방 수저를 내려놓게 된다. 그래서 고기를 많이 먹는 국가일수록 비만율이 낮다. 마이야르 반응으로 한결 맛있어진 고기를 먹을 때마다 인류의 진화를 되새겨보자.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1291호 (p58~60)

궤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nasabo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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