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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5가지 덕목 갖춘 哲人이 대통령 맡아야”

2000년생 곽효민 양과 대담집 ‘김종인, 대화’ 출간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김종인 “5가지 덕목 갖춘 哲人이 대통령 맡아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지호영 기자]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지호영 기자]

“우리 집에 손님이 와글와글 몰려오고 난리가 났어요. 키우던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인 거예요. 할아버지 표정이 그토록 밝은 것은 처음 봤습니다. 훗날 어른들 말씀을 듣고 내 기억 속 그날이 바로 8·15 광복의 날임을 알았습니다.”(12~13쪽) 

팔순의 노(老)정객이 여섯 살 때 기억을 더듬어 회고한다.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가 기억하는 광복이 궁금하다”던 스무 살 대학생은 그 말을 흥미롭게 경청한다. 

국민의힘 김종인(81) 비상대책위원장의 신간 ‘김종인, 대화: 스물 효민 묻고, 여든 종인 답하다’는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시작된다. 책은 호기심 가득한 대학생 곽효민(20) 씨의 질문에 김 위원장이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5~12월 20여 차례에 걸쳐 대면·비대면으로 만나 대화했다. ‘건국’ ‘이념’ ‘부패’ ‘노동’ 등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16가지 키워드가 대화 주제다. 책은 김 위원장과 곽씨의 대담을 1~4부, 460쪽으로 정리했다.


“과거 단죄보다 긍정을 앞세우자”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신간 ‘김종인, 대화: 스물 효민 묻고, 여든 종인 답하다’.  [동아일보]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신간 ‘김종인, 대화: 스물 효민 묻고, 여든 종인 답하다’. [동아일보]

●가인(街人)의 손자 김종인의 ‘대한민국 긍정론’ 

1부 ‘역사’는 해방 공간의 혼란과 6·25전쟁, 이승만 정부의 혼미(昏迷)를 다룬다. 거물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법조계 태두인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의 손자 김 위원장의 회고담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의 친조부는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선생이다. 선생은 변호사로서 ‘형사공동연구회’를 조직, 일제강점기 법정에서 독립운동의 합법성을 주장한 독립유공자(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다. 1926년 6·10 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 등 독립운동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지사(志士)들을 무료로 변론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다졌다. 일찍 병사(病死)한 아들 대신 김병로 선생이 손자 김종인을 곁에 두고 키웠다.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 긍정파’다.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나라”(24쪽)라고 자부한다. “과거 잘못한 사람(친일파)의 죄상을 밝혀 단죄하는 작업 못지않게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널리 알려 발전의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 긍정을 더 앞세우자는 것”(17~18쪽)이다. 누군지 특정하지 않았으나, 한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말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의 보수·진보는 가짜” 노정객의 ‘깊은 빡침’ 

두 사람은 2부에서 한국 사회의 오랜 쟁점과 마주한다. ‘한국의 보수·진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은 “한국의 보수·진보는 가짜”라고 단언한다. 그는 진보에 대해 “정치 사전 족보에도 없는 말”(137쪽)이라며 “진보라는 이념적 실체도 없는데 그저 자신들이 ‘진보적’이라면서 진보를 참칭하는 세력”(137쪽)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른바 ‘보수주의자’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김 위원장은 “요즘 어떤 사람들은 ‘보수 정당의 정체성’ 운운하면서 더욱더 보수적으로 보이기 위해 안달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보수주의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한다”(139쪽)며 “보수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 방법은 보수적 색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혁적으로 나아가는 것”(141쪽)이라고 말한다.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보수주의란 무엇일까. 그는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국민이 과격 혁명을 일으키기 전 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에드먼드 버크(18세기 영국 보수주의 정치가 겸 철학자)의 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일체의 좌우 구분법 자체가 매우 시대착오적”(134쪽)이라며 “민생에 도움이 되면 좌우파 정책 뭐든 갖다 쓰려는 열린 자세가 중요”(141쪽)하다는 인식이다. 국민의힘 외연 넓히기에 나선 김 위원장의 정치 행보와 오버랩된다.


“진보, 정치 사전 족보에도 없어”

지난해 10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 저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만나 ‘대한민국 보수진영의 현주소’를 주제로 대화했다. [지호영 기자]

지난해 10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 저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만나 ‘대한민국 보수진영의 현주소’를 주제로 대화했다. [지호영 기자]

보수·진보를 논하는 김 위원장의 태도는 시종 격정적이다. 곽씨는 열변을 토한 그의 태도를 요즘 유행어로 ‘깊은 빡침’(매우 분노함)이라고 표현한다. 김 위원장도 “알쏭달쏭하지만 재밌는 표현”이라고 웃으며 수긍한다(143~144쪽). 

●교묘해진 부정부패, 실험 대상 된 국민경제 … 
답답한 한국의 ‘오늘’ 

김 위원장은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가 “나쁜 놈들 전성시대”(241쪽)였다고 꼬집는다. 1960~80년대 군사정권하에서 경제발전 속 관료·재벌·대기업 ‘카르텔’이 형성돼 “경제도 압축 성장했지만 부패도 압축 성장했다”(234쪽)는 것. 3부에서 두 사람은 한국의 답답한 ‘오늘’을 이야기한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부정부패가 한층 더 교묘해졌다고 비판한다. 정권 핵심 인사 연루설이 제기된 사모펀드 의혹을 두고 “부정·비리·부패·뇌물 방식이 과거에 비해 굉장히 정교해졌다. (정권 핵심 인사들이) 과거에 학생운동을 했다는데 운동권과 정치권에서 못된 짓만 잔뜩 배운 것 같다. 검찰이 조사하려고 하니까 검찰개혁을 들고 나왔다”(248쪽)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도 강하게 비판한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김 위원장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임금을 올려 분배 문제를 해결할라치면 어느 정부인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나. 한계가 분명하다. 정부가 할 일을 시장에 떠넘기는 꼴”(280쪽)이라고 꼬집는다. 문재인 정부 경제팀을 두고도 “온 국민을 실험 대상 삼아 경제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았다”(276쪽)고 지적한다. 

●“5가지 자질 갖춘 철인(哲人)”… 
김종인이 내다본 ‘대통령감’ 

그렇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김 위원장은 4부에서 한국의 내일을 크게 두 갈래로 설계한다. 내치에선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기술 발달로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는데 혁신에서 소외된 사람은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면, 그런 사회는 안정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없다”(366쪽)며 기본소득 도입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 아닌 경제정책이다. 일시적 구호(救護)가 아닌 인류의 미래 전반에 걸친 대안을 만들어가는 정책”(366쪽)이라는 것. 

치국의 또 다른 갈래 외교는 어떨까.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이슈는 단연 미국과 중국의 충돌”(388~389쪽)이라는 곽씨의 지적처럼 한국 외교는 미·중 갈등이라는 난제에 봉착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숭미(崇美)·반미(反美)를 넘어선 실리적 계산의 결과다. 김 위원장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이야기다. 껄끄러운 것은 이쪽(미국)에서 얻고 좋은 것은 저쪽(중국)에서 취하는 식의 이기적 친구를 (미국이) 동맹이라고 생각하겠나”(394~395쪽)라고 반문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미국이 혁신의 중심지로 다시금 떠오른 점도 지적한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위상은 갈수록 약화된다. 반면 세계경제의 패러다임 자체를 뒤바꾸는 혁신적 기술은 여전히 미국에서 쏟아져 나온다”(395쪽)는 것이다.


“美, 이기적 친구를 동맹이라고 생각하겠나”

2022년 3월 9일 20대 대선을 치른다. 김 위원장은 미래 대통령에게 5가지 자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개방에 대한 인식 △안보에 대한 관점 △다양성에 대한 이해 △경제에 대한 지식 △교육에 대한 의지(445쪽)다. 그는 플라톤의 ‘철인(哲人)정치’를 거론하며 “모든 준비가 된 사람이 국가를 이끌어도 (국가 운영이) 될동말동하다. 우연한 기회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좌충우돌하는 나라는 미래를 갖고 도박하는 것 아닌지 걱정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자꾸 그런 길로 빠져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457쪽)고 우려한다.





주간동아 1275호 (p10~12)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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