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핵 협상 이탈 굳히려다 美 역린 건들여

이란 군사령관 솔레이마니 제거로 미-이란 전면전 위기… 중동 전체 ‘불바다’ 될 수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0-01-06 14: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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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혁명수비대의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Tehwran Times]

    이란 혁명수비대의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Tehwran Times]

    알 쿠드스(Al Quds). 예루살렘을 아랍어로 부르는 말이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특수전과 해외작전을 맡고 있는 최정예부대의 이름도 ‘알 쿠드스’다. 혁명수비대는 1979년 2월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후 두 달 만에 창설됐다. 이슬람 혁명을 주도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슬람 혁명을 수호하고 신정(神政)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규군과는 다른 별도의 군사조직으로 혁명수비대를 만들었다. 혁명수비대가 페르시아로 ‘수호군’을 뜻하는 ‘파스다란’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초 혁명수비대는 육·해·공군과 민병대 조직인 바시즈 등으로 출범했다. 혁명수비대는 1980년 이슬람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이끌던 이라크와의 전쟁이 벌어지자 중동 지역의 시아파를 규합해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조직하고 예루살렘을 해방시키겠다는 명분으로 내세워 쿠드스라고 명명했다.

    가장 비밀스런 특수부대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외공작을 담당하는 알 쿠드스 대원들. [iranbriefing. net]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외공작을 담당하는 알 쿠드스 대원들. [iranbriefing. net]

    쿠드스군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이란의 각종 해외 공작과 비밀 작전을 수행해왔다. 쿠드스 군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런 특수부대이다. 이 부대의 활동은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 번도 대외적으로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다. 현재 이 부대의 해외 조직이 있는 곳은 이라크는 물론 레바논 팔레스타인 요르단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터키 등과 수단 등 북부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및 유럽 지역이다. 병력은 1만~2만 명으로 추정되며, 일당백의 전사들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 부대는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명령만을 따른다. 미국은 2007년 쿠드스군을 테러 단체로 지정했다. 

    쿠드스군을 1998년부터 22년간 이끌어온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63)이 1월 3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인근 도로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미군 무인공격기(드론) MQ-9 리퍼가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폭사했다. 당시 공습으로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시신이 산산조각 나는 바람에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보고 신원이 겨우 확인됐다. 솔레이마니는 하메네이 다음으로 이란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2인자’라는 말을 들어온 실세다. 솔레이마니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등 중동의 친이란 무장 단체에 각종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군사 작전까지 지휘해온 사실상의 ‘우두머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2015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리아에서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 퇴치 작전을 직접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79년 혁명수비대에 입대한 이후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며 승승장구해 20대 후반에 사단장이 되기도 했다. 그는 1990년대 이란 남동부의 케르만 지역을 관할하는 혁명수비대 지역 사령관을 거쳐 1998년 쿠드스군 사령관으로 취임했다. 하메네이는 2011년 그를 준장에서 소장으로 직접 진급시키면서 ‘살아있는 순교자’라는 칭호를 붙이기도 했다. 그가 소장에서 더 이상 승진하지 않은 것은 쿠드스군을 계속 지휘하겠는 의지 때문이었다.

    수니파 국가 상대로 ‘그림자 전쟁’ 수행

    이란 국민들이 수도 테헤란에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애도하고 있다(왼쪽). 이란 국민들이 수도 테헤란에서 미국에 대한 보복 공격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ISNA, Anadolu]

    이란 국민들이 수도 테헤란에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애도하고 있다(왼쪽). 이란 국민들이 수도 테헤란에서 미국에 대한 보복 공격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ISNA, Anadolu]

    그는 그동안 중동 지역을 제 집 드나들듯 옮겨 다니며 각종 분쟁에 개입해 작전 지시를 내리는 등 야전 사령관으로 활약해왔다. 이 때문에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아프리카를 휩쓸고 다니던 나치 독일의 전쟁 영웅 에르빈 로멜 장군에 빗대 ‘이란의 로멜’이란 별명으로 불려왔다. 게다가 그는 각종 테러 공격과 암살, 드론 공습, 해킹 등 사이버전 등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을 상대로 ‘그림자 전쟁’을 수행해왔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오만해 유조선 피격 사건과 같은 해 9월 사우디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핵심 석유시설 드론 공습 등을 그의 ‘작품’으로 추정해왔다. 그는 2011년 각종 테러 공격을 사주한 혐의로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알 자지라 방송은 “솔레이마니가 1998년 쿠드스군 사령관 자리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미국 등 서방 정보기관은 물론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시도한 숱한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눈엣가시’였던 그를 이번에 제거한 것은 무엇보다 이란이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를 이용해 미군에 대한 공격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는 지난 두 달간 미군을 겨냥한 로켓포 공격이 최소 열 차례나 발생했다. 시아파 민병대 중 하나인 카타이브-헤즈볼라는 지난해 12월 27일 미군이 주둔해온 북서부 키르쿠크의 정부군 기지에 로켓포 30여 발을 발사해 미국 민간 용역회사 직원 1명이 사망하고 미군 4명이 부상했다.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지난해 12월 29일 카타이브-헤즈볼라의 근거지인 이라크 북부 3곳과 시리아 2곳을 F-15 전투기로 폭격해 25명이 죽고 55명이 부상했다. 그러자 반미 시위대는 지난해 12월 31일 수도 바그다드의 미국 대사관을 습격해 경비 초소 등을 불태우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솔레이마니의 의도는 시아파 민병대를 앞세운 공격을 통해 미군을 철수시켜 이라크를 친이란 국가로 만들려는 것이다. 현재 이라크에는 5000여 명의 미군이 이슬람 국가(IS)와의 전투를 위해 주둔해왔다. 미국 국방부가 “솔레이마니는 미국과 동맹군 수백 명의 사망과 수천 명 이상의 부상에 책임 있다”며 “이번 타격은 이란의 향후 공격 계획을 저지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중단을 위한 것”

    (왼쪽부터)이란 시아파 성지 콤시의 잠카런 모스크에 보복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걸려 있다. 미육군 제82공수사단의 신속 대응부대가 이라크 행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외공작을 담당하는 알 쿠드스 대원들. [사진출처=이란 국영방송, US Army, iranbriefing. net]

    (왼쪽부터)이란 시아파 성지 콤시의 잠카런 모스크에 보복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걸려 있다. 미육군 제82공수사단의 신속 대응부대가 이라크 행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외공작을 담당하는 알 쿠드스 대원들. [사진출처=이란 국영방송, US Army, iranbriefing. net]

    특히 주목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제거를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다. 올해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적으론 하원의 탄핵소추안 통과에 이어 상원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는데다, 대외적으론 이란과 북한에 대한 외교 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는 공습이라는 카드를 통해 핵 협상을 거부해온 이란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향후 대선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는 미국 외교관과 군 요원에 대해 임박하고 사악한 공격을 꾸미고 있었다”며 “(그를 제거한 것은) 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중단을 위한 것이었다”면서 자신의 결단과 리더십을 강조했다. 이란과 전면전을 각오한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도박은 국내정치적으로 볼 때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벵가지 테러’의 교훈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벵가지 테러는 2012년 9월 11일 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무장 시위대가 미국 영사관을 습격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미국 대사와 외교관 3명이 숨진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힌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솔레이마니를 없애야 한다는 군부와 정보기관의 주장을 승인하지 않았던 것은 이란과의 전면전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했었기 때문이다. 이란은 미국에 대한 보복 공격을 감행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시아파 성지인 이란 중북부의 종교 도시 콤의 잠카런 모스크 돔 정상에는 1월 4일 붉은 깃발이 게양됐다. 시아파에서 붉은 깃발을 거는 행위는 원수를 반드시 갚겠다는 뜻을 의미한다. 하메네이는 “그가 흘린 순교의 피를 손에 묻힌 범죄자들에게 가혹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다”라고 천명했다. 이란은 미사일과 드론, 로켓포 등을 비롯해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할 순교부대까지 보유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유조선 등도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란은 솔레이마니가 견고하게 구축해온 중동 지역의 시아파 무장조직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을 비롯해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을 타격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란 정부는 1월 5일 핵합의를 더 이상 이행하지 않겠다고 밝혀 2015년 7월 주요 6개국과 체결한 핵 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을 탈퇴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보복에 대비해 미국은 이란의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 지점으로 정해놨다”고 경고했다. 52곳의 목표물은 1979년 이란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의 외교관과 직원 52명을 444일간 억류했던 것에 따른 것이다. 미국과 이란이 정면충돌할 경우 자칫하면 중동 전체가 ‘불바다’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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