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상상해보자. 이웃집에 아이언맨이 살고 있고, 나도 될 수 있다면 아이언맨이 될 것인가, 그냥 살던 대로 살 것인가. 아이언맨들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건축 현장에서 날아다니고, 기업가가 되고, 연구자가 된다면 아이언맨이 아닌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
슈퍼휴먼 트렌드의 등장
영화의 판타지 세계가 아닌 곳에서 진지하게 인간 능력 강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에 이어 증강 인간(Augmented Human)에 대해 몇 년 전부터 말해왔는데, 여기서 얘기하려는 슈퍼휴먼은 그것보다 더 넓은 범위다. 증강 인간은 의료, 제조, 국방 등에서 특별한 경우 신체 능력을 강화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슈퍼휴먼은 이들을 포함한 미래 보통 사람의 이야기다. 미래 변화는 사소한 일상의 도구들이 우리를 신체적·지적 능력이 강화된 슈퍼휴먼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2020년은 이 트렌드를 이야기하기 좋은 시기다. 누구나 뻔히 알 만큼 증거가 충분할 때는 너무 늦게 세상의 변화를 읽는 게 돼버릴 테니까 말이다.예를 들어 스마트폰으로 전기를 원격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 플러그라는 상품이 있다. 1만~2만 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만약 내가 겨울철 전기요금 폭등의 가장 큰 원인인 전열기 사용을 고민한다면 스마트 플러그를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내가 잠자는 동안 전기장판을 시간 단위로 켰다 껐다를 반복하는 스케줄링이 가능하다. 적절한 전기장판 온도를 유지하면서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고, 내 시간 활용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또 밤에 쓰지 않는 정수기 전원을 자동으로 끄고 아침에 켜지도록 설정해놓을 수 있다. 모든 제어는 스마트폰으로 한다. 내가 해야 할 고민과 시간 소모를 줄임으로써 내 활동 능력을 향상시킨다.
스마트 플러그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다. 가정 내 이런 제품들을 모두 모으면 점점 ‘핫’해지고 있는 시장 분야인 ‘스마트홈’ 카테고리로 성장한다. 2016년 557억 달러(약 65조2860억 원)였던 글로벌 스마트홈 시장 규모는 2025년 1742억 달러(약 204조1450억 원)로 4배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미국 재무 정보 웹 사이트 마켓워치 조사).
스마트홈 도구들을 인간 능력 강화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노동자 100명이 일하던 공장을 1명이 제어하는 스마트 팩토리처럼 생산 능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기계장치와 프로그램, 네트워크가 내가 해야 할 노동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결과다. 여기에 진화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이 결합하면 1000배, 1만 배 더 일할 수 있다. 주사나 번개 없이도 슈퍼휴먼이 되는 것이다.
자율자동차가 할 일도 인간 능력 강화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사고 역시 줄어들겠지만 이동에 필요한 시간, 다른 일은 할 수 없고 운전에만 집중해야 했던 시간을 자신에게 돌려주면 1000배, 1만 배 더 많은 일을 처리해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기계 날개로 날아다니는 인간
이 정도로 인간의 슈퍼휴먼화가 이뤄진다고? 의문이 생긴다면 좀 더 직접적으로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영역을 살펴보자.스마트폰 앱 가운데 ‘슈퍼 귀’라는 것이 있다. 보청기가 하던 일을 스마트폰이 대신 해주는 것이다. 50m쯤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특정해 듣게 해주는 청각 보조제품도 출시돼 있다. 모두가 잠들었을 밤 시간에 사용하면 아무도 깨우지 않고 혼자 헤비메탈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오큐메틱스 테크놀로지(Ocumetics Technology)라는 기업이 연구 중인 ‘생태 렌즈’는 백내장 수술 정도의 과정을 통해 안구에 넣을 수 있는데, 시력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광각렌즈처럼 인간의 보통 시야각도 확장시킨다. 연구실 수준에서는 인간 시각의 한계인 적외선을 볼 수 있는 눈도 개발 중이다.
가장 최근에 성공한 실험 가운데 놀라운 것 하나는 신경체화설계(neuro-embodied design)다. 인간의 신경·근육을 기계와 연결시키는 기술인데, 놀랍게도 기계가 감지한 것을 우리 신체를 통해 뇌로 직접 전달할 수 있다. 휴 허 미국 MIT 교수의 팀 사이보그 프로젝트는 기계를 신체의 일부처럼 인식할 수 있는 신경체화기술로 의족을 한 사람이 암벽 등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인간의 의지를 기계에 전달하는 것을 넘어 기계의 감각 데이터를 뇌가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앞으로 어떤 기계장치와 연결해도 내 몸처럼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예컨대 기계 날개를 등에 달고 새처럼 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브레인 임플란트를 빼놓을 수 없다. 전기차 시대의 영웅 가운데 한 명인 일론 머스크가 투자한 뉴럴링크 등 여러 회사가 준비하고 있는데, 2020년 인간을 대상으로 시험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뇌에 심은 칩이 뇌신경과 연결돼 뇌의 전기적 신호를 가지고 외부 사물과 소통하거나 사물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사례들조차 빙산의 일각이다. 나는 아직 인공지능이 가져올 인간 지적 능력의 업그레이드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이언맨이 입은 것 같은 외골격 로봇 슈트 분야는 또 어떤가. 교육 분야에서도 슈퍼휴먼을 위한 변화들이 시작됐다. 그들이 사는 집과 도시, 이동수단의 변화는 물론, 그들의 소비와 예술·윤리 분야도 살펴봐야 한다. 거의 모든 인간 활동 영역에서 인간 능력 강화의 조짐들이 관찰되고 있으며, 이것들의 상호작용이 세계를 변화시킬 테다.
흔들리는 인간 가치관
슈퍼휴먼 트렌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가치, 세상의 기준과 상식, 직업과 산업들을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만화 ‘총몽’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알리타 : 배틀 엔젤’(Alita: Battle Angel·2019 개봉)을 보면 2563년 팔이 3개인 사이보그가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이 슥 지나간다. 그러나 이미 현실에서 제이슨 반스(Jason Barnes)라는 드러머가 조지아 공대팀의 지원을 받아 의수에 달린 스틱 2개와 또 하나의 팔로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능력이 강화된 인간이 만든 예술도 예술일까.알파고와 맞붙은 지 4년 만에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은퇴한 것은 상징적이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과 협력하면 보통 사람도 세계 최정상 고수가 되는데, 그때 프로 바둑기사는 어떤 존재로 변화할 것인가. 이제 인간 능력 강화가 가져올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간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