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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국 사태의 본질은 ‘교육세습’…  러시아 특권층 노멘클라투라가 돼버린 386

20대 서울대생 임명묵에게 듣는 한국 사회의 계층 격차

조국 사태의 본질은 ‘교육세습’…  러시아 특권층 노멘클라투라가 돼버린 386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기자는 임명묵(28) 씨를 지인으로부터 카카오톡으로 받은 그의 글 ‘조국 사태를 지켜보며’로 처음 알았다. 지인은 임씨의 페이스북 팔로어인데 20대라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통찰력과 문장력이 뛰어나 40, 50대 팔로어 사이에서 ‘아재돌’(중년들이 좋아하는 아이돌)로 불릴 정도라고 소개했다. 실제 임씨는 페이스북 팔로어만 8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임씨는 현재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으로 중동지역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그는 ‘조국 사태를 지켜보며’라는 글에서 한국의 386세대를 과거 러시아 특권 계층인 노멘클라투라에 빗대면서 ‘교육세습’을 비판했다. 그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무엇보다 20대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떤 점에 분노하고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명절 연휴 전날인 9월 11일 저녁 그를 만났다.


한국민의 원초적 감정을 건드린 조국 사태

임씨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 여부를 떠나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이유는 여야나 좌우 진영의 싸움이 아니라 한국민의 원초적 감정인 ‘입시’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본다”며 “이념을 떠나 기득권층의 교육세습이 백일하에 드러난 사건”이라고 했다. 

“해방 이후 70여 년간 발전해온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차원에까지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딸이 한영외고를 거쳐 고려대,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탈법, 불법적 요소가 없었다 해도 평범한 부모나 학생은 도무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아니 듣도 보도 못 했던 교수들 간 ‘자녀 스펙 품앗이’ 자체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말로는 죽창가로 민족주의 폭풍을 불러일으키려 했던 사람이 자녀 둘을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교육시켰다는 것 또한 팩트다. 그래 놓고 ‘이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는 필요 없다’고 선언하는 조 장관의 모습에서 17세기 후반 러시아에 형성된 정치 특권 계층인 노멘클라투라들이 겉으로는 사회주의와 유토피아를 얘기하면서 뒤로는 노동자와 유리된 삶을 살며 자녀들을 어떻게든 좋은 자리에 꽂으려 했던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는 “본래 대학에서 러시아사를 전공하고 싶어 고교생 시절부터 러시아에 빠져들었고 책도 정말 많이 봤다. 새로운 체제 건설과 산업화에 이어 국가 자체가 붕괴되는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했다. 그 과정에서 사회 핵심을 구성하는 엘리트층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러시아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중심으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100여 년 전 러시아는 17세기 이후 최대 혼란을 겪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혁명, 내전으로 수백만 명이 전쟁에서 죽거나 아사(餓死)했다. 공산화가 두려웠던 엘리트, 귀족, 중산층은 대거 나라를 떠났다. 세계 최초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지만 폐허 속 잿더미였던 것이다. 하지만 파괴는 건설의 자양분이기도 하지 않은가. 볼셰비키 혁명가들은 ‘구체제 타파’라는 제약 조건 없이 온갖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기득권층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난다. 소련 사회는 쟁기를 든 문맹 농민의 사회에서 베어링, 프레스, 발전기를 돌리는 엔지니어 사회로 바뀌며 거대한 기득권층의 교체가 일어났다.” 

양상이 어땠나. 

“기존 기득권층이던 귀족, 군인, 학자, 실업인, 의사 등이 대거 쓸려나간 자리에 국민 교육의 수혜를 받은 도시 노동자, 빈농의 아들딸들이 기술 인력으로 유입됐다. 이들은 1930년대 이후 ‘붉은 엔지니어’로서 체제의 핵심이 됐고, 당과 스탈린 체제에 충성하며 ‘개천에서 용’이 된 자신들이야말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사회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산증인들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 흘러 사회가 정체되면서 역동성을 잃게 됐다는 점이다. 러시아 신(新)엘리트는 대략 1900~1920년대생으로 혁명 이후 핵심 교육을 받았고, 대규모 숙청과 이민으로 쓸려나간 선배 세대 자리를 빠르게 메웠다는 점에서 생각이 매우 동질적인 집단이었다. 특정 세대, 특정 그룹이 사회 핵심부를 장악하고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해 오랜 기간 국가와 당을 주무르는 집단적인 힘이 된 것이다. 금속노동자 아들로 태어나 40대 때 정계에 진출해 죽을 때까지 나라를 통치했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대표적인데, 이런 사례는 한도 끝도 없이 많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소련 체제를 건설한, 이른바 산업화 세대 아닌가. 

“그렇다. 체제 건설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근대화와 전쟁 승리에 이바지했다. 나는 그들이 제때 물러나지 않아 악(惡)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자신들만의 성을 쌓아갔고 권력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는 세습화를 진행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처음에는 간부 명단을 의미했는데 나중에는 공산당 간부 전반을 일컫는 단어가 된 ‘노멘클라투라’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당 권력을 사유화하고 체제 붕괴를 가속화하는 독버섯이 됐다. 이들은 겉으로는 반미(反美)를 외치고 레닌 어록을 줄줄 외웠지만, 뒤로는 자본주의 사치품을 수입하고 즐기는 데 몰두했다. 1991년 나라가 망하는 와중에도 국가 재산을 외국에 팔아치우거나 헐값에 인수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어떤 사람은 그 돈으로 미국이나 영국으로 이민을 갔고, 자식들을 서유럽과 북미의 고급 사립학교에 유학 보냈다. 이들 가운데 특출난 거물은 ‘올리가르히’라는 새로운 특권층으로 변모했다. 인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삶을 살아가야 했던 체제 전환기에 말이다.”


대학에 들어간 ‘86’과 그렇지 못한 ‘6’

체제와 경험이 다른 러시아를 한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비약이 있다고 본다. 어떻든 이번 ‘조국 사태’를 노멘클라투라가 연상될 정도로 젊은 세대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 놀랍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조 장관을 이른바 ‘386세대 대표자’로 설정하고 50대를 통째로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그건 아니다. 열심히 살아온 386세대가 어떻게 비판의 대상의 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정치 세력화된, 특권화된 386세대다. 그리고 386이 1960년대생, 1980년대 학번을 의미하는데 50대가 모두 386세대는 아니라는 점도 짚고 싶다. 1980년대 대학 진학률은 30%에 불과했다. 나머지 70%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우리 부모만 해도 학번이 없다. 1990년대생인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대학에 들어갔던 ‘86’들과 그렇지 못한 ‘6’의 부모 사이에 태어난 아들딸들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 완전히 다른 경험과 인식을 갖게 될 정도로 격차가 커져버렸다는 점이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우리도 17세기 후반 러시아처럼 모두 가난한, 극단적으로 평평한 사회였다. 이후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가 뒤따르는 과정에서 20~30%밖에 되지 않던 25% 인구집단이 ‘386’을 형성했고 박정희 시대 근대교육의 수혜를 입었다. 이들의 부모는 노동자나 빈농이었어도 공교육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졸업 후에는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대기업 간부가 돼 성장을 견인하면서 중산층이 됐다. 

대학을 나오건, 나오지 않건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누리고 향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현상을 보자는 거다. 386이라는 동질적 집단으로 주도된 계층 고착화도 사회 발전에 따른 필연적 결과였다. 하지만 지금 부작용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볼 때 전문직, 대기업 종사자, 대도시 공무원 부모 밑에서 자란 1990년대생 중에는 외고, 과학고, 영재고, 자사고, 국제고 등 수많은 특목고(특수목적고교)나 8학군 명문고 진학에 조기 유학 기회까지 잡을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1990년대생들이 받은 사교육은 ‘단과학원’ ‘보습학원’ ‘공부방’ 정도였고, 그마저도 아니면 PC방이나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할 수 있나. 

“내가, 그리고 내 주변 친구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내게 ‘조기 유학’이라는 단어는 영어 발음을 잘하려면 혀를 일부러 늘려야 한다는 말처럼 기이하게 들렸던 별세계 이야기였다. 나 역시 특목고, 자사고(자율형사립고)에 지원했지만 ‘당당히’ 떨어졌다. 막상 서울대에 들어가고 나서야 내가 살던 지역(조치원)의 부모들이 1960년대생, 1980년대 학번 부모들에 비해 자녀 교육에 신경 쓸 만한 자원, 정보, 의지가 떨어졌고 결과는 당연히 자녀들의 학업성취도 차이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조치원에서 자라며 만난 이들이나 친구들과 서울대에서 만난 친구들은 완전히 다른 별에서 태어나 살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신입생 환영회 때 출신 학교와 지역을 소개했는데 거의 외고 선후배들로 동질감이 대단했다. 서울대에 입학한 조치원 고등학교 출신은 나를 포함해 세 명이었는데, 개교 이래 최대였다. 지방의 일반계 고등학생의 삶과 외고생의 삶은 너무 달랐다. 나는 줄곧 모의고사 1등을 했는데도 책만 읽는다고 선생님께 맞아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마침내 그렇게 동경하던 서울에 입성했고 나도 ‘그들처럼’ 교양 있는 대도시 중산층에 잘 녹아들고 싶었지만 적응을 잘 못 했다. 특목고나 자사고 출신 친구들을 비난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들도 각자 노력을 통해 정당하게 학교에 들어왔다. 다만 상층과 하층 두 집단을 모두 본 나로서는 모종의 위화감을 느꼈다는 얘기다.”


“서울과 지방의 20대는 같은 세대가 아니다”

[GettyImages]

[GettyImages]

그는 서울대에 농어촌특별전형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기자가 이 대목에서 “그런 위화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그 사실을 밝히는 게 창피하지 않나”라고 묻자 그는 “전혀!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지 않은가”라는 답이 바로 나왔다. 

보통의 경우 좋은 부모 만나 꽃길을 걷고 있는 듯한 동급생을 마주하면 시기, 질투, 신세 한탄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는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객관화해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사회를 보는 자신만의 눈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 대견해 보였다. 

“아버지가 인천에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자였는데 외환위기로 공장이 파산해 신용불량자가 됐고 충북 음성으로 내려가 닭장 운반, 음료수 대리점 배달 등 온갖 육체노동을 했다. 엄마가 마이너스통장 3000만 원으로 2003년 조치원역 앞에서 ‘김밥천국’을 시작했는데 주 7일 밤낮으로 일한 덕분에 지금은 안정적인 자영업자가 됐다. 휴학하고 다시 조치원으로 가 엄마의 삶, 단골손님들과 아줌마들의 삶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삶에서 한국 사회의 격차를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계속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충남 천안에서 PC방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죽 때리고’ 있는 내 또래 20대 초중반 청년을 많이 만났다. 부모가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성장기를 보낸 사람들이었다. 삶의 희망? 목표? 그런 거 없었다. 미래에 대한 꿈과 계획, 희망으로 부모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는 서울대 또래 친구들과 일자리도 없고 일할 의지도 없는 그들을 어떻게 같은 20대라고 할 수 있겠나. 기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새로운 시대는 누가 만들까

그래도 부모 도움 없이 서울대에 들어가지 않았나.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은 영 아니었고 내신을 잘 받은 건데, 나를 받아준 서울대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교육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도 꾸준히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차가 현실에 엄존하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거다.” 

사회가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면 계층 고착화 문제는 불가피하지 않을까. 

“그 점이 매우 민감한 대목이다. 설령 조 장관에게 문제가 있다손 쳐도, 중산층이 막대한 교육 투자로 자식들에게 네트워크와 정보를 제공하는 걸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 역시 엄마 덕분에 친구들이 주야간으로 공장에 다닐 때 편하게 공부했다. 노멘클라투라도, 386세대도 최대한 자녀를 지원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평등은 구성원 간 공동체 의식과 연대 의식이 기반이 되는 것인데, 격차가 누적되면 사회 안정성 자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요즘 대학에 들어오는 후배들 간 격차는 우리보다 더 클 거다. 서로를 다른 종(種)으로 보는 상황이 곧 오지 않을까.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격차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어떤 집단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 누가 좀 소상히 밝혀줬으면 좋겠다.” 

격차를 좁히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뭘까. 

“현재로서는 ‘모르겠다’는 답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기대가 있다면 386세대도 아니고, 386세대가 만들어준 레일 위만 달려온 청년도 아닌, 다른 누군가들이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3시간여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길, 기자의 마음은 복잡했다. 

‘조국 사태’를 개인 비리나 정권의 도덕성 문제가 아닌 386세대 특권 계급의 개념으로 접근한 그의 구조적·역사적 인식이 독특했다. 

돌이켜보면 386세대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산물이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을 거쳐 성장하다 노무현 시대에 이르러 기득권층으로 등장하기까지 386세대는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민주주의 확장을 위해 기여했지만, 임씨의 지적처럼 정치 세력화된 386세대는 기득권에 빠져 부패 세력으로 변질돼왔다. 

그렇다면 새로운 정치 세력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임씨가 언급한 ‘다른 누군가들’은 공정과 정의를 뼛속 깊이 무장하고 디지털 감수성과 디지털 시대 비전을 가진 20, 30대에서 나오지 않을까. 아직 앞은 보이지 않지만 희망을 걸어본다.






주간동아 2019.09.20 1206호(창간기념호②) (p10~14)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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