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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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내가 만난 그 사람, 조석래

소탈함, 꼼꼼함, 글로벌감각 두루 갖춘 ‘호학이재(好學理財)’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2017-07-25 14: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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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를 극복하려면 일자리를 가진 사람을 후대하기보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요즘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일자리 만들기’와 관련된 언급인 것 같지만 2009년 금융위기 여파가 심각할 때 조석래(82) 전 효성 회장,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이 한 말이다. 그는 당시 위기 속에서도 구조조정 대신 임금을 동결하고 그 돈으로 신입사원을 뽑는 ‘잡 셰어링’을 통해 고용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 조 전 효성 회장을 회고하는 지인들의 기고를 담은 책 ‘내가 만난 그 사람, 조석래’가 나왔다. 효성 전·현직 임원은 물론 정계, 재계, 언론계, 해외 유명 인사 등 그를 가까이 접한 80여 명이 참여했다. 원래 2014년 팔순을 기념해 만들었지만 건강과 검찰수사 문제 등으로 미뤄졌다 올해 조현준 회장 취임을 계기로 세상에 나왔다.

    경영인으로서 51년을 포함해 인생 80년을 망라한 책이니 당연히 좋은 얘기 위주이지만, 그 속에는 겉치레 칭찬만이 아닌 조 전 회장의 성품과 경영철학을 드러낸 일화도 적잖다. 일화를 정리하면 소탈함, 꼼꼼함, 책임감, 글로벌감각 등을 갖췄고 할 말은 하는, 실용적인, 늘 공부하는 성품의 소유자라고 압축할 수 있다.

    조 전 회장은 전경련 회장, 한미재계회의 한국위원장, 태평양경제협의회 국제회장, 한일경제협회장, 한국경제연구원장 등 굵직한 소임을 맡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크게 기여하는 등 민간 경제외교에도 힘썼다. 또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등 세계 일류 제품을 개발해 효성을 굴지의 화학기업으로 일궜다. 이 책에서 문재인 정부 유럽연합(EU) 특사인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조 전 회장과 국제 정세, 경제정책 등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눈 인연을 소개하며 “대한민국 기업인 중 조 회장님처럼 국제정세 움직임에 정통하면서 미국, 일본의 정치, 사회, 경제를 잘 꿰뚫고 계신 분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외환위기(IMF) 당시 국가와 국민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하지 않으려고 모든 부채를 스스로 해결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키워드로 책에 나온 일화를 정리해봤다.









    소탈함
    경비실에 찾아온 미스터 조(정철 전 효성물산 전무) 홍콩에 있을 때 경비실에서 ‘미스터 조’라는 사람이 찾는다며 연락이 왔다. 누군지 의아해하며 내려가 봤더니 조 전 회장이 가방을 들고 혼자 서 있었다. 조 전 회장은 해외 출장을 다닐 때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았고 일본에서는 종종 전철을 타고 다녔다. 

    일본 여관에서 함께 목욕(이재훈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온누리교회의 일본 전도집회인 ‘러브소나타’에 조 전 회장 부부가 참석했다. 행사 전날 행사 장소 근처의 온천여관에서 묵었다. 아주 작은 여관인 것도 민망했는데 남자 온천탕은 혼자 들어가기에도 비좁을 정도였다. 하지만 조 전 회장은 불편한 기색 없이 탕에 함께 들어가자고  했고, 좁은 탕 안에서 여러 대화를 나눴다.

    꼼꼼함과 책임감
    실무에 능한 ‘조대리’(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전경련과 일본 경단련의 상호교류 행사로 도요타자동차 공장 견학을 했다. 다른 분들은 인솔자 설명을 들으며 따랐는데 조 전 회장은 뒤에 처져 기계를 만져보고 두드려보며 마치 실무 담당자처럼 견학했다. 조 전 회장의 사내 별명은 이처럼 매사를 꼼꼼히 챙기고 실무에 능하다고 해서 ‘조대리’다. 조 전 회장도 알고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할 말은 당당히 한다(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1990년대 초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꺾기 관행’이 심각했다. 당시 국회 재무위원회가 전경련을 찾았는데 선뜻 나서 속 시원히 애로사항을 털어놓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조 전 회장이 마이크를 잡더니 직격탄을 날렸다. “얼마 전 산업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적금, 예금으로 떼이고 나니 정작 손에 쥔 것은 절반도 안 된다.” 다음 날 신문에 크게 기사가 났고 담당 은행은 감독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효성그룹도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 텐데 조 전 회장은 의연했다.

    5분 연설에도 최선 다해(박대식 국제경영원 고문) 조 전 회장은 간단한 연설문도 꼼꼼히 챙겼다. 한미재계회의 20주년 기념행사가 워싱턴에서 열렸을 때 5분 연설을 위해 20년간 한미재계회의 역사를 조사하게 하고 그 내용을 반영했다. 한 번은 한중재계회의 연설문을 작성하는데 지적재산권, 노사, 환경 등 중국이 예민해할 문제를 언급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중국 정부에 거슬리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경련 임원들의 반대 의견에도 그 뜻을 관철했다. 조 전 회장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하기 힘든 얘기를 단체장이 나서서 해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호학이재
    젊은 학자들과 토론을 즐기다(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대기업 회장 가운데 조 전 회장처럼 지식인을 사랑하고 각종 포럼에 나와 토론한 분도 찾기 어렵다. 2004년 미국과 일본을 중시하는 지식인을 모아 의견을 나눠보자며 ‘한미일 포럼’을 만들었다. 한 달에 한두 번 모여 토론을 거듭했다. 연사로는 문정인 당시 동북아시대위원장,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등 진보적 지식인을 주로 모시고 토론했다.

    새로운 사업에 과감히 도전(구창남 전 동양나이론 사장) 효성이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로 성공한 뒤 조 전 회장은 장래성 높은 합성수지인 폴리에스터에 도전했다. 하지만 국내에 선발주자가 있고, 기술력과 원료 구입선이 없어 회사에선 다들 만류했다. 조 전 회장은 한 미국 기업이 탈수소공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생산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위험에도 용단을 내렸다. 결국 큰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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