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1

2015.08.17

“분노만 응집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정치인 될 수 없어”

듀카키스 전 美 민주당 대선 후보의 2016 미국 대선 전망

  • 김정안 동아일보 기자 jkim@donga.com

    입력2015-08-17 1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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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만 응집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정치인 될 수 없어”
    “리더십의 비밀은 결국 소통이다. 타고나지 않았다면 노력으로라도 습득해야 한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전의 키포인트를 엿보려 마이클 듀카키스(82·사진) 전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던진 “리더의 핵심 조건은?”이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다. 1980년대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이른바 ‘매사추세츠 미러클’로 알려진 경제부흥의 주인공으로 중앙 정치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해 88년 민주당 대선후보까지 올랐던 바로 그 인물이다.

    아버지 조지 H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공세적인 네거티브 선거전에 타격을 입고 고배의 잔을 마신 뒤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그는 여전히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이나 자신의 주지사 시절 부지사로 함께 일했던 존 케리 국무부 장관 등 민주당 리더들과 막역한 사이다. 민주당 내에서 ‘더 듀크(the Duke)’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권위를 앞세우지 않는 특유한 겸손함이 매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듀카키스 전 후보와의 전화 인터뷰는 8월 7일 새벽 이뤄졌다. 봄 학기는 동부 보스턴의 노스이스턴대에서, 가을 학기는 서부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강단에서 정치학을 강의하지만, 방학인 요즘에는 주로 동부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전날 백악관의 비공개 모임에 초청돼 워싱턴에 다녀왔다는 그는 요즘 대선을 앞둔 워싱턴의 화두 역시 ‘전략적 소통(strategic communication)’이라고 말했다. 내침 김에 소통 비법부터 물었다.

    매카시즘도 있었는데 트럼프쯤이야…



    ▼ 소통 달인만의 비법은?

    “그 정답을 알았다면 내가 백악관에 입성하지 않았겠나(웃음). 지금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탄복할 만한 소통의 달인은 당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상대가 누구든 그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우는 각본에 의한 학습과 노력으로 소통의 대가가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마음가짐이고 노력이다.”

    그러나 스피치의 달인으로 알려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소 인색한 평가를 내놨다. 듀카키스 전 후보는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교회에서 있었던 영결식에서 증오범죄에 희생된 이들을 기리며 남긴 추도사는 훌륭했고 그 메시지 또한 비범했다(extraordinary)”면서도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만남이나 소그룹과의 만남에서는 그에 못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화 인터뷰가 이뤄진 전날은 마침 공화당 경선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첫 TV 토론회 데뷔전을 치른 날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트럼프는 막말 논란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듀카키스 전 후보의 평가를 듣고 싶었지만, 그는 “경청할 가치가 없는 후보의 토론회는 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신드롬’에 대해서는 경제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내놨다.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제로(0)’라는 말도 덧붙였다.

    “오랜 기간 경기 침체를 견뎌온 미국인의 소외감과 분노가 도널드 트럼프를 통해 분출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뒤틀린 분노를 조장하는 소수의 보수층 내 불만 세력은 그동안에도 꾸준히 있었다. 매카시즘 등 이해 불가한 정치적 상황도 과거 미국 현대사에 존재한다. 트럼프 신드롬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소외되고 분노하는 일부 계층이 트럼프를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파급력 있는 대선후보라기보다 파급력 있는 공화당의 ‘스포일러(spoiler)’로만 남게 될 것이다.”

    ▼ 무슨 뜻인가.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 승복하지 않고 제3당이나 독립적 대선후보로 뛸 경우 그를 따르는 공화당 표심의 이탈을 초래할 테고, 그럼 공화당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어쩌면 공화당의 대선 승리 가능성 자체를 무너뜨릴 만큼의 파급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비유도 미사일(unguided missile)’ 같은 파괴적 존재다. 화합이 아닌 분노만을 응집하는 정치인은 결코 좋은 정치인이 될 수도, 존경받을 수도 없다.”

    ▼ 트럼프는 한미동맹과 관련해서도 한국을 겨냥해 미국 안보에 ‘무임승차’한다고 주장했다.

    “결혼한 부부도 때로는 싸운다. 한미동맹도 여느 동맹과 같이 완벽할 수는 없다. 의견차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짐을 싸고 집을 나가지는 않지 않나. 트럼프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내가 아는 한 그 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진지한 정치인은 워싱턴에 없다.”

    ▼ 다른 진영은 요즘 어떤가. 민주당의 대세는 여전히 힐러리 클린턴인가.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결국 풀뿌리(grassroots) 단체와 교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선 캠페인 역시 제대로 짜임새 있게 전개되지 못했다. 힐러리가 과거 실수로부터 분명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가 훌륭한 후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단 그 역시 당내에서 내실 있는 경쟁을 통해 맷집을 키운 뒤 후보로 선정돼야 한다.”

    실리적 이상주의자가 돼라

    아픈 과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 같아 망설여졌지만, 대선을 주제로 한 대화가 이어지면서 1988년 대선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듀카키스 당시 민주당 후보는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경쟁자였던 부시 후보를 17%나 앞서고 있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후 공화당 전당대회가 끝날 때까지 황금시간에 그가 주지사로서 업무를 처리하고자 매사추세츠로 잠시 돌아갔던 것은 그러한 자신감의 반영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 측은 듀카키스 후보의 아내가 성조기를 불태웠고 그 역시 국방부의 주요 정책에 반대했다는 식의 사실과 무관한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판세를 뒤집는 데 성공한다. 1988년 선거는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네거티브전이 극심했던 선거로 남아 있다.

    ▼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다르게 했을 것 같나.

    “사실무근의 네거티브 캠페인에 대꾸할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좀 더 공세적으로 대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듀카키스 전 후보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며 미국 정치에 대해 여전한 희망과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는 “주지사, 교수, 변호사, 대선후보까지 다양한 타이틀을 갖고 살았다. 모두 다 마음에 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실수와 시행착오를 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뭔가 배우는 게 있다면 결코 퇴보는 아니다. 미국 정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여전히 실리적 이상주의(pragmatic idealism)를 모토로 삼으라고 가르친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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