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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누가 괴물을 만들었나 02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공포 바이러스 물리치는 방법은 신속 정확한 정보 공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메르스 여파로 임시 휴업이 결정된 학교 교문 앞에 어린이들이 모여 있다.

6월 4일 보건복지부(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운영하는 공식 트위터 계정(@KoreaCDC)이 비공개로 전환됐다. 첫 화면에는 ‘승인된 팔로워만 트윗을 볼 수 있다’는 안내문이 올라왔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 과정에서 빚어진 정부와 시민 간 불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6월 4일 현재 우리나라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35명. 5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5일 만의 일이다. 그사이 2차 감염과 3차 감염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환자 수가 크게 늘었고, 이 가운데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메르스로 인한 격리자도 1600명을 넘었다. 시민 사회에서는 공포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임시로 문을 닫는 초·중·고교가 속출하고, 동물원과 공연장 등 공중시설 이용자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무지에서 비롯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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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뒤 운영을 중단한 한 병원의 인터넷 홈페이지. 인터넷을 통해 이미 많은 정보가 떠돌고 있지만 정부는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는 메르스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6월 3일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메르스 긴급 상황점검 회의’를 열고, 민간 전문가가 대거 참여하는 ‘메르스 종합대응 컨트롤타워’를 구성했다. 메르스 위험이 과장돼 있으며,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게 정부 발표 요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유포되는 이른바 ‘메르스 괴담’을 적극 단속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이러한 혼란을 부추긴 것이 바로 정부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감염질환 전문가는 현재 상황에 대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로 볼 때 메르스는 중증으로 진행되기 전에는 감염력이 높지 않다. 201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발견된 뒤 현재까지 확진자가 1100여 명에 불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며 “그런데 우리 정부는 메르스 환자를 방치해 감염력을 극대화하고, 거기에 감염된 2차 감염자를 또 놓쳐서 3차 감염까지 일으켰다. 일부러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을 해낸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초동대응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국면마다 “메르스는 전염성이 낮다”거나 “3차 감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등 부정확한 내용을 발표했다 번번이 뒤집히면서 오히려 공포를 조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교수는 “예방의 기본은 단 1% 위험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예방 조치를 철저히 취해야 할 때 스스로 ‘별것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 예측이 어긋나니 국민 사이에서 ‘정부가 사태를 전혀 모르고 있다’거나 ‘우리 정부에 메르스 대처 능력이 없다’는 불안이 확산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메르스 확진자 발생 병원과 초기 발생 지역조차 공개하지 않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안한 국민들은 ‘알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6월 2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8명(82.6%)이 메르스에 대비하기 위해 해당 병원과 지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미 인터넷과 SNS 등을 중심으로 부정확한 정보가 돌면서 혼란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일부 병원은 해당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자가 나와 병동 일부가 폐쇄됐다는 등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올린 누리꾼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6월 4일까지도 ‘공개 불가’ 방침을 바꾸지 않고 있다. 병원 운영 차질, 환자 혼란 가속화 등이 이유다. 복지부 관계자는 “감염자가 나온 의료기관 이름이 공개되면 병원들이 경제적 피해를 우려해 환자 발생 사실을 감추거나 의심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 있다. 이러면 메르스 대처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유승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중앙대 교수)은 “정부 발표는 한마디로 국민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모든 공포와 불안은 무지에서 온다.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도 얼마든지 국민 협조를 구할 수 있는데, 이미 다 돌아다니는 정보를 확인해주지 않으면서 ‘정부를 믿으라’고만 하니 괴담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또 정부가 ‘메르스 괴담’ 유포자를 수사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지금 정부가 잡을 건 괴담이 아니라 바로 메르스”라며 “사태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지 말고, 좀 더 확실한 대책을 내놓는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비말감염 vs 공기감염

전염병의 전파 경로는 크게 비말(飛沫)감염과 공기감염으로 나뉜다. 비말은 날아다니는 물방울이라는 뜻으로, 비말감염은 질병이 감염자의 침이나 콧물 등을 통해 전파되는 방식을 뜻한다. 이때 바이러스를 운반하는 물방울 지름이 5μm(100만 분의 1m) 이상으로 무겁기 때문에 감염 범위가 1~2m 이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공기감염은 작은 입자가 공기 중의 먼지와 함께 떠다니다 사람 폐로 들어가는 감염 방식이다. 결핵, 홍역, 수두, 사스 등이 이에 해당하며 전염력이 비말감염에 비해 훨씬 강하다. 메르스는 현재 비말감염 질환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비말감염과 공기감염이 항상 뚜렷이 구분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치사율 40%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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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인 메르스 바이러스(위)와 메르스의 한국 내 급속 확산을 보도한 ‘사이언스’ 기사.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사람들은 대부분 첫 기억을 오래 가져간다. 첫사랑, 첫인상, 첫 경험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이유”라며 “정부는 초동대응에 실패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메르스 공포를 각인시킨 책임이 있다. 이제라도 정확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불필요한 오해와 공포를 줄이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다행히 전문가들은 초동대응 실패에도 메르스가 지역사회에서 무차별적으로 전파되는 대유행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지난 2주간 국내에서 유행한 양상을 볼 때 메르스는 공기전염이 되지 않는 게 확실하다”며 “이런 감염의 경우 환자 격리를 통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상자기사1 참조).

사회활동이 많은 젊은 층에서 상대적으로 감염률이 낮은 것도 메르스가 급속히 확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보탠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 연구진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5월 발생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르스 환자 425명 중 14세 이하 환자는 14명으로 전체의 3%에 불과했다. 반면 60세 이상 환자가 135명(31.7%)으로 가장 많았다. 현재까지 국내 확진 환자 중에선 28세 간호사가 최연소다.

치사율도 예상보다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메르스 초기 증상은 일반 독감과 유사하다. 다만 증상이 전개됨에 따라 폐뿐 아니라 신장 기능까지 망가뜨리는 게 차이점이다. 이런 증상은 특히 고령자와 만성질환자에게 쉽게 나타난다. 현재까지 발생한 국내 메르스 사망자도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이미 앓고 있었다. 반면 건강한 사람에게는 타격이 크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재갑 한림대 의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고령자의 경우 치사율이 40%를 넘을 수 있지만 건강한 사람은 10% 이내, 의료진은 4% 이내다. 치사율에 대한 걱정은 많이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과 SNS 등에서는 메르스의 치사율이 40%에 이른다는 정보가 널리 유포되고 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가 5월 30일 발표한 자료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세계에서 확인된 메르스 환자 1172명 가운데 479명이 사망해 치사율은 약 41%이다. 특히 메르스가 처음 확인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확진자 1010명 가운데 442명이 사망해 치사율이 43.7%에 이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확실한 정보이긴 하나 이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3월 ‘중동 지역에서 메르스에 걸린 사람 중 다수는 병원에 가지 않고 치유됐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치사율은 10% 미만일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은 것 등을 근거로 삼는다.

이 기사에 따르면, 2012~2013년 사우디아라비아인 1만여 명의 혈액 샘플을 조사한 결과 15명에게서 메르스 바이러스 항체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에 기초해 사우디아라비아 인구 2700만여 명 중 4만 명 이상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고된 메르스 확진 환자 수는 930여 명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상당수 환자가 메르스를 가볍게 앓고 지나갔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사이언스’는 이 기사와 함께 2013년 1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월별 메르스 환자 발생 수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싣고 ‘빙산의 일각(tip of the iceberg)’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치사율이 한 자릿수라고 해도 계절독감(0.1%)이나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0.07%)에 비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2002~2003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스 치사율이 약 9.6%였다. 그러나 메르스의 경우 현재까지 비말감염 바이러스로 알려진 만큼, 전문가들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면 메르스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상자기사2 참조).

정부의 감염병 대응 능력 의심

다만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감염병 대응 능력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스 유행 당시 환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대응했던 정부가 불과 10여 년 만에 총체적 부실에 빠지게 된 데 대한 반성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직 복지부 공무원 출신의 한 전문가는 “메르스와 사스는 둘 다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고 초기에 발열, 기침, 오한 등의 증상을 보이다 급속히 악화되며 예방백신과 치료제가 없다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대응 능력에 큰 변화가 생긴 건 한마디로 정책 실패”라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연금개혁 등 복지 쪽에만 총력을 기울이면서 보건 쪽 역량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사스 때는 한국인이 마늘을 많이 먹어서 바이러스에 강하다는 말이 나오더니, 이번엔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메르스에 취약한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마디로 블랙코미디 같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막연한 공포에 시달리며 ‘바셀린을 코에 바르면 안전하다’거나 ‘마늘을 많이 먹으면 좋다’ 같은 속설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정부의 전문성 부족, 초동대응 실패, 비밀주의가 바이러스 메르스를 대한민국을 삼킬 괴물로 만들었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메르스를 예방하는 개인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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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말감염 질환을 예방하려면 일단 환자와 2m 이내에서 대화하는 걸 피해야 한다. 환자의 침이나 콧물 등 분비물에는 바이러스가 다량 섞여 있는데, 이것이 그대로 우리 호흡기로 들어오거나 얼굴이나 손 등에 묻으면 질병이 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스크를 쓰는 것이다. 일반 마스크로도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단 동일한 마스크를 여러 번 사용하면 안 된다.

수시로 손을 닦아 간접 감염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바이러스는 계면활성제인 비누로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다. 다만 손을 씻을 때 비누로 충분히 거품을 낸 뒤 손가락 사이와 손끝, 손등, 손금 등을 40초 이상 꼼꼼히 문지르고 흐르는 물에 닦아내야 한다.

메르스는 아직 예방제와 치료제가 없다. 이 질병을 이기려면 철저히 개인위생과 면역력에 기대야 한다. 단백질과 비타민 등을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다.




주간동아 2015.06.08 991호 (p15~17)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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