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7

2015.05.11

“쪽팔리는 가족사를 공개합니다”

인터뷰 | 박태영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가족치료 전문가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5-05-11 09:4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쪽팔리는 가족사를 공개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고위직 공무원이었고, 엄마는 호남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첩의 딸이었다. 아버지는 1950년대 말 미국에서 유학하고 국내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지성인이고, 엄마는 고등학교 중퇴 학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큰 흉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부부 사이에는 지적 성향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에서 아버지의 직업도 번듯하고 자식복도 많아 아들을 넷씩이나 두었다. 딸이 없어 아쉬울 수 있었지만 딸 넷만 있는 경우와는 다르게 모두 얼마나 든든하냐고 부러워했다’(박태영의 ‘가정이 웃어야 나라가 웃는다’ 중에서).

    ‘그’라는 3인칭을 썼지만 이것은 박태영(55·사진) 교수 집안의 이야기다. 사실 여기까지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 아니 오히려 남이 부러워하는 가정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가 들려주는 ‘발가벗은 가족사’는 세상에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가족의 호칭은 4형제 중 막내인 박 교수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발가벗은 가족사

    친척들의 질투를 살 만큼 예뻤던 엄마는 평생 불안증에 시달렸고 신경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쥐고 흔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아버지와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부부싸움을 할 때는 마치 누구 하나가 죽어 나갈 듯이 격렬했다.

    아버지는 가정과 일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고 돌아가신 후에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또 자식들에게는 보통의 아버지보다 120% 아버지 노릇을 했다고 자신할 만큼 성실했다. 하지만 ‘성적(性的) 행동’이 문제였다. 술에 취해 귀가한 날이면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를 건드렸다. 엉덩이를 쓰윽 만지고 껴안는 것은 물론, 새벽마다 가정부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체했다. 엄마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아버지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탄로 나면 가정부는 쫓겨났고 새로운 가정부가 들어왔다. 한 번은 아버지가 엄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엄마는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따귀를 때리며 “네가 인간이냐, 개새끼!”라고 욕을 퍼부었다.

    엄마의 바람기도 친척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정숙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먼 엄마는 자식들이 학교에 간 사이 늘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다. 아들의 가정교사, 담임선생, 자식들이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는 젊은 남자까지 ‘엄마의 남자’는 다양했다. 엄마는 다른 사람과 타협할 줄 몰랐다. 자기 고집대로 해야 선이고 자기 뜻을 어기면 악이었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했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성격인데 엄마는 얼굴을 봤다 하면 잔소리를 하며 사람을 달달 볶다 못해 ‘돌게’ 만들었다.

    “쪽팔리는 가족사를 공개합니다”
    다음은 4형제 이야기다. 엄마는 어려서 폐병을 앓아 몸이 약한 큰형을 편애했고 한 살 터울의 둘째형에게는 매정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쌀밥에 불고기 반찬을 싸서 가정부 손에 들려 큰형의 학교로 갖다 준 반면, 둘째형에게는 보리밥과 김치만 싸줬다. 둘째형은 보리밥이 싫다고 수십 번 도시락을 집어던졌지만 엄마는 끝끝내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그 아들은 성장한 후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큰형과 둘째형을 차별하는 엄마의 방식은 손자들을 대할 때도 똑같았다. 결국 둘째형이 엄마에게 한이 맺힌 것처럼 둘째손자도 할머니에게 한이 맺혔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자식과 손자들을 차별하는 방식은 외할아버지가 사용했던 방식과 똑같았다.

    엄마와 밀착관계였던 큰형은 알코올중독과 도박중독에 빠졌고 여자 문제로 두고두고 속을 썩였다. 둘째형 역시 도박꾼으로 이름을 날리며 재산을 야금야금 날렸다.

    셋째형은 효자이자 보호자이며 엄마의 남편 노릇을 대신했다. 부부싸움을 하면 엄마는 셋째형의 등에 얼굴을 대고 흐느꼈고 남편 흉을 봤다.

    막내아들은 부모의 자랑이자 희망이었다. 박 교수는 자신을 ‘전시용 아들’ ‘엄마의 기쁨조’ ‘마마보이’라고 했다. 딸 없는 집안의 막내인 터라 딸 노릇까지 했다. 엄마의 불안과 그의 불안이 연동돼 엄마의 불안을 감소시켜야 그의 불안도 줄어들었다. 엄마가 빨간색을 파란색이라고 하면 파란색인 줄 알 만큼 무조건 복종했다. 심리학 용어로 ‘자아분화’가 덜 됐다.

    그래서 병적 수준의 간섭조차 엄마의 사랑인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모든 것을 지시했다. 심지어 결혼식을 앞두고 그에게 이런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성관계는 한 달에 한 번만 해라.” “왜?” “왜긴. 넌 몸이 약하니까 그렇지!” 그럼에도 그는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엄마의 지나친 사랑이 그를 돌게 만들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는데 저 집은 더하네’

    박 교수는 인터뷰 내내 ‘엄마’라고 했다. 그는 강의실에서도, 방송에 출연해서도, 책을 쓰면서도 ‘엄마’라고 불렀다. 50대 중반 대학교수인 남성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엄마’라고 하는 것이 낯설게 들렸다.

    “엄마는 부부싸움을 하거나 남자와 헤어진 후 아들인 내게 ‘죽고 싶다’고 했죠. 그로 인해 늘 불안했고 이런 불안을 다스리려고 저는 엄마와 밀착된 관계를 추구하고 과도한 역할을 하게 된 거죠. 결혼해서도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고 팔베개를 하는 아들이었어요. 6년 반의 유학 기간 엄마와 물리적으로 분화되지 않았다면 그런 삶이 계속됐겠죠.”

    그러나 그의 가족이 유학생활을 마치고 다시 ‘엄마 집’으로 들어갔을 때 ‘위기’가 닥쳤다. 아내가 암에 걸린 것이다. 네 식구의 가장이었지만 그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독립할 수 없었고 아내는 시어머니에게 생활비를 타 써야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분가시키려 했지만 엄마가 막았다. 막내아들을 데리고 살고 싶은 욕심이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시어머니의 뜻을 따랐으나 그 대신 위 속에 암세포를 키웠다. 위암 판정을 받던 날 그는 “나 당신이랑 결혼한 거 후회했다” “어머니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꽉 막혀”라던 아내의 말이 하나씩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쪽팔리는 가족사를 공개합니다”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

    가족의 치부를 시시콜콜 털어놓는 박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렇게 다 공개해도 되는 걸까 되레 듣는 이가 머쓱해진다. 그가 쓴 ‘가정이 웃어야 나라가 웃는다’는 더욱 가관이다. ‘가족치료 권위자 박태영 교수의 고백-우리 가정 치유記(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그는 아버지의 화병, 엄마의 고독사, 알코올중독과 도박중독으로 재산을 탕진한 형제,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 그대로 미처 몰랐던 아들의 만성불안증, 그리고 조부모의 내력까지 다 털어놓는다.

    “책이 나온 뒤 형의 원망을 듣기도 했죠. 그러나 수업시간에도 늘 저희 가족 이야기를 사례로 들었기 때문에 책에 쓴 내용이 새로울 건 없어요. 상담 전 제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상대의 마음도 열게 됩니다. ‘나도 그랬는데 저 집은 더하네’라고 위로받는 거죠.”

    스스로 ‘쪽팔리는 우리 가정’이라고 할 만큼 문제 많은 가정에서 성장한 것이 그의 가족치료 연구와 상담 활동에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는 책에서 이런 말도 했다.

    ‘우리 집이 가족치료 교과서에 나오는 집안이고, 교과서에 나오는 엄마가 우리 엄마였구나. 분화가 안 되고 상대편을 완전히 돌아버리게 하는 표현 방식이 우리 엄마의 것이었구나.’

    박 교수가 20년 가까이 가족치료를 하면서 상담한 가정은 1000곳이 넘는다. 4인 가족으로 치면 4000명이다. 문제 원인을 찾으려면 최소한 3대를 봐야 한다는 그의 치료 방식에 따라 친가, 양가 조부모까지 상담하면 그 수는 곱절로 늘어난다.

    가족치료는 평균 15세션(session)으로 이뤄지고 세션당 1시간이 기본이다. 하지만 봇물 터지듯 나오는 내담자의 말을 막지는 않는다. 때로는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 원인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점쟁이 다 됐어요. 이야기를 듣다 중간 중간 질문 몇 개 던지면 딱 원인을 알아요.”

    가족치료의 개념으로 보면 일반적인 가정은 두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하나는 자녀 문제이고 또 하나는 부부 문제다. 박 교수는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정 문제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쉬쉬 하고, 참으라고 강요하고, 그런 것쯤은 문제도 아니라고 덮어버렸다.

    그러나 겉으로 화목해 보이는 가정이라 해도 ‘위기’가 들어오면 잠복해 있던 문제가 드러난다. 행복했던 가정이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가장이 실직하거나 병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을 때, 배우자의 외도가 드러났을 때, 아이의 성적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죽고 싶다고 말할 때 같은 상황은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위기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신체적 질환, 정신적 질환, 반사회적 성격장애 등 3가지 문제적 상황이 벌어진다. 특히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가족 문제가 가족의 어려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가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묻지 마 살인’ 또는 지하철이나 문화재 방화사건 등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바로 반사회적 성격장애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병은 가정에서 시작하고 가족의 아픔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박 교수의 말에 밑줄을 긋는다. 가족치료의 출발점은 우리 가정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