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3

2015.04.13

사랑의 주관성, 상처의 단독성

네드 벤슨 감독의 ‘엘리노어 릭비 : 그남자 그여자’

  • 강유정 영화평론가 · 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04-13 13: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랑의 주관성, 상처의 단독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외로운 영혼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모든 외로운 영혼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비틀스의 노래 ‘Eleanor Rigby’는 외로운 영혼에 대한 노래다. 영화 ‘엘리노어 릭비 : 그남자 그여자’(엘리노어 릭비)의 주인공은 바로 그 비틀스 노래에 등장하는 외로운 영혼의 현현이라 할 수 있다. 노래 가사 속 외로운 영혼이 스크린을 휘적휘적 걸어 다닐 때 우리는 외로움이라 부르던 추상적 감정을 구체적 이미지로 목도하게 된다. 그렇다. 영화 ‘엘리노어 릭비’의 여주인공 엘리노어(제시카 채스테인 분)는 우리가 종종 고백하곤 하는 그 외로움을 감각적 실체로 보여준다.

    남녀의 사랑을 그린 작품 가운데 그 남자 혹은 그 여자라는 부제를 단 작품이 꽤 많다. 사랑은 둘이 나누는 것이지만 그 감정은 홀로 감당해내야 한다. 그 남자, 그 여자라는 말이 상징하는 간극은 사랑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인 셈이다. 함께하는 순간의 충족감은 찰나적이며, 황홀감조차 혼자 겪을 수밖에 없다.

    원래 이 작품은 ‘엘리노어 릭비 : 그 여자’ ‘엘리노어 릭비 : 그 남자’로 각각 만들어졌다. 서로 다른 프레임 속에서 양자는 자기 생각을 성실히 보여줄 수 있을 뿐 서로에게 감정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듯, 그렇게 독립된 작품으로 마주 선다. 개봉작 ‘엘리노어 릭비’는 이 두 마주 선 이미지를 교차편집으로 이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감정은 릴레이로 연결된다. 두 작품을 따로 봤을 때보다 개체적 구체성은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엘리노어 릭비’는 사랑의 주관성과 상처의 단독성에 대한 순도 높은 이해를 보여주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두 남녀는 부부다. 그들은 하나를 잃었다. 아내가 잃은 것은 바로 남편이 잃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잃은 것이 같다고 통증의 정도나 상실감까지 같을 수는 없다. 김애란이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쓴 것처럼 고통은 단수다. 고통은 공유될 수 없고,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개인마다 다르다.



    사랑의 주관성, 상처의 단독성
    이 영화의 원제는 ‘엘리노어 릭비의 사라짐’이다. 엘리노어는 고통에서 헤어나려고 사라짐을 택한다. 스스로를 세상에서 지우려 한다. 그랬던 엘리노어가 서서히 세상의 좌표에 자신을 다시 그려나가는 것, 이는 우리가 자기 치유라 부르는 행위이기도 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세상엔 늘 외로운 영혼이 있다. 제시카 채스테인, 제임스 매커보이는 훌륭한 배우라면 어떤 식으로 이들의 내면을 그려야 할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채스테인이 허공을 바라볼 때나 망연자실 넋을 잃고 앉아 있을 때, 매커보이가 그의 뒤를 밟을 때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망설일 때 등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외로움의 구체적 표정이 돼 다가온다. 훌륭한 연기는 공감을 넘어 위로를 준다. 외로움을 만나 외로움이 치유되는 영화, ‘엘리노어 릭비’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