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7

2014.12.15

“로봇 비서, 커피 한 잔 부탁해”

휴머노이드 로봇 사람과 감정 나누고 교감 훌륭하게 수행

  • 오은지 전자신문 기자 onz@etnews.com

    입력2014-12-15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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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 비서, 커피 한 잔 부탁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12월 1일 네슬레(Nestle) 일본 법인이 운영하는 20여 개 네스카페 매장에 특이한 점원이 등장했다. 소프트뱅크㈜의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다. 네슬레는 내년 말까지 전국 1000개 점포에 페퍼를 들여놓을 계획이다.

    페퍼는 상대방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손님이 오면 커피 머신에 대해 설명하거나, 의향을 파악해 최적화된 제품을 제안하도록 설계됐다. 퀴즈, 게임도 할 수 있어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그동안 ‘휴머노이드(Humanoid)’라고 부르는 인간형 로봇은 두 발로 걷거나 뛰고, 미리 프로그래밍된 악보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는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교감하는 데까지 기술이 발전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6월 페퍼를 소개하면서 페퍼에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키트(SDK)를 공개하기로 했다. SDK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그 제품에 적합한 애플리케이션(앱)을 제작하려고 사용하는 도구로, 일반적으로 제품 제조사가 외부 개발자에게 배포한다. 앱 개발 생태계를 조성해 페퍼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추가하겠다는 계획이다. 다양한 기능이 구현되면 영화 ‘월-E’ 주인공인 월-E 같은 폐기물 수거·처리용 로봇 역시 머지않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과 닮지 않았어도 훌륭하게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 비서도 있다. 로봇청소기는 집 바닥을 돌아다니며 청소한다. 최근에는 문턱을 인식해 넘어 다니고 먼지가 더 많은 곳을 한 번 더 닦는 등 로봇청소기의 지능도 높아졌다. 또 다른 로봇은 공중에 떠 있다. 무인항공기 ‘드론(drone)’이다.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은 드론 배송을 추진하고 있다. 드론은 자체 동력을 갖췄지만 운전하는 조종사가 없는 무인항공기다. 그동안 드론은 군사용, 취미용으로 주로 쓰였지만 조만간 택배 상자를 쥐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 알고 보면 로봇 선진국



    “로봇 비서, 커피 한 잔 부탁해”

    소프트뱅크의 인간형 로봇 ‘페퍼’.

    미국 경영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지난해 1억7200만 달러(약 1903억 원)가 ‘로보틱스(Robotics)’(로봇+공학의 합성어) 분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투자됐다고 발표했다. 2년 전 6000만 달러에 비해 3배 증가한 수치다. 스타트업 초기 투자액이 각 사당 20억 원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에서만 수백 개 로봇 관련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투자를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인터넷 대기업들이 로봇에 관심이 많다. 아마존은 배송에 드론을 도입하는 것뿐 아니라, 창고 로봇을 만드는 키바시스템스를 2012년 7억7500만 달러(약 8591억 원)에 인수했다. 2년 동안 아마존 물류창고에는 이미 로봇 직원 1만5000여 대가 배치됐다. 물류창고의 작업환경은 직원 1명이 하루에 24km를 걸어야 하고, 여름철에는 내부 온도가 37도까지 올라가는 등 열악하다. 로봇을 배치해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고된 노동을 해야 했던 직원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구글은 지난해 로봇 업체 8곳을 사들였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네 발 달린 로봇, 일본 무술 가라테 동작을 하는 로봇 등을 개발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전문업체 샤프트, 영화 ‘그래비티’에서 특수효과를 내는 자동카메라 시스템을 개발한 봇앤돌리 등이 포함된다.

    로봇 전문 시장조사 업체 월드로보틱스는 전 세계 로봇시장이 지난해 148억 달러(약 16조3643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컨설팅 전문 업체 맥킨지는 로봇 산업이 미치는 파급력을 조사해 로봇의 경제 효과가 지난해 1조9000억 달러(약 2106조 원)에서 2025년 6조4000억 달러(약 7094조 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 업계가 로봇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면서 국내에서도 로봇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주로 공장에서 사용하는 제조용 로봇에 치우쳐 있어 일반인의 관심에서는 멀었지만 한국은 전 세계 로봇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국로봇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로봇시장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2조2000억 원이다. 2009년부터 로봇 수출액은 965억 원에서 7376억 원으로 연평균 66%씩 늘었다. 로봇 기업 수는 402개, 종사 인력은 1만1478명으로 집계된다. 특이한 점은 로봇 업계 종사자 중 연구 인력이 24%가량이라는 점이다. 로봇 산업 내 고급 인재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특히 첨단 장비, 부분품 등 산업용 로봇 산업에서는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전 세계 4위권이다. 로봇 종합기술 경쟁력 역시 미국, 유럽, 일본에 이어 4위 수준이다. 조영훈 한국로봇산업협회 이사는 “기구, 지능, 부품·시스템을 총망라한 선진국 대비 기술 격차는 1.8년 정도”라며 “국내 대기업 몇 곳은 휴머노이드 로봇 등 서비스용 로봇 기술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장성 때문에 제품 출시 시기를 늦추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LG전자, 유진로봇 등이 로봇청소기로 세계 시장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던 이유도 기술력을 축적한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경북 구미와 베트남 휴대전화 공장에 무인자동화 설비를 도입하고 있다.

    정부도 투자에 적극적이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약 4865억 원의 정부 출연금을 로봇 업계에 지원한 데 이어 2007년 로봇특별법을 제정했다. 2009년 ‘제1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을 수립해 원천기술과 융합 제품을 개발하고 로봇 보급사업 등을 벌였다. 내년부터는 대형 연구개발(R·D) 과제 등 ‘제2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을 시행한다. 2018년 국내 로봇 생산액을 7조 원으로 끌어올리고 로봇 전문기업 수를 60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다만 대규모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 지역 거점 형성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다. 인천과 경남 ‘마산로봇랜드’ 구축 사업이 삐걱댄다. 로봇랜드는 정부가 로봇 생태계를 한데 모으고 로봇을 활용한 테마파크를 조성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이 로봇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추진한 사업이다. 하지만 5년여를 끌어오면서 마산로봇랜드 공사는 중단됐고 인천은 투자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마산로봇랜드 관계자는 “새로운 투자자를 찾고 있지만 경기 침체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로봇 비서, 커피 한 잔 부탁해”

    중국 저장성 츠시의 한 레스토랑에서 로봇 2대가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일어날까 주목

    로봇이 산업현장을 넘어 일상생활에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애플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대만 훙하이정밀(폭스콘)은 로봇 투자에 적극적이다. 이 회사는 중국에서만 수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은 2011년 “애플, 소니, 노키아 제품의 도색과 용접, 조립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로봇 100만 대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열악한 노동 환경 때문에 직원이 잇따라 자살하는 등 불만이 터져 나오자 직원 수를 줄여 인건비를 삭감하고 노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 마틴스쿨 미래기술영향력프로그램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는 아마존 등 유통 기업 동향을 바탕으로 “드론 때문에 물류 및 수송 분야 일자리는 머지않아 영영 사라진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지는 아직 미지수다. 케네스 F. 브랜트 시장조사업체 가트너 연구이사는 “스마트 기계 제조, 프로그래밍, 유지 및 보수, 로봇 서비스에 필요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며 “실제로 고용을 창출할지 줄일지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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