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9

2014.10.20

세상에 하나뿐인…‘셀프웨딩’ 뜬다

가족 모두가 참여 새 출발 축복과 남들에게 없는 추억 만들기

  • 정주희 ‘셀프웨딩의 모든 것’ 저자 instylewed@naver.com

    입력2014-10-20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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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프웨딩이란 말이 요새 부쩍 쓰인다. 처음에는 예비 부부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찍는 웨딩사진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DSLR 카메라 보급이 일반화되면서 남들과 똑같은 웨딩사진을 굳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찍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젊은 커플들이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거리로, 공원으로, 카페로 나와 웨딩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다 웨딩드레스도 직접 준비하기에 이른다. 요새는 기술을 배워 직접 드레스를 만드는 예비 신부도 늘었고, 서울 청담동 고급 드레스숍이 아니어도 합리적이고 저렴한 가격에 웨딩드레스를 대여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많이 생겨났다. 부케와 액세서리까지 하나하나 직접 만드는 젊고 팔팔한 예비 신랑과 신부가 늘어난 것이다. 결혼식 장소부터 식순, 사회와 주례 형태까지 예비 신랑 신부 혹은 양가 가족이 직접 결정하는 결혼식도 많아졌다.

    지난해 결혼한 가수 이효리의 웨딩사진이 단연 화제였다. 이효리는 톱스타이면서도 제주 자택에서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웨딩사진 속 그는 원피스 느낌의 하얀 드레스에 자연스러운 머리, 생화로 만든 화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결혼식장인 집으로 가고 있다. 신랑(가수 이상순)도 한껏 힘을 준 턱시도 대신 하늘색 재킷을 입고 활짝 웃었다. 그의 결혼식에서는 재력이나 명성, 셀러브리티로서의 파워보다 결혼식을 앞둔 사랑스러운 부부의 설렘과 가족이 함께 하는 결혼식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엿보였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예식장 문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시대 결혼식은 집안의 부와 명성, 파워를 자랑하는 과시의 장이다. 그래서 일반인이라도 정재계 요직에 있었거나 있는 사람을 주례로 모시기를 원하고, 예식 장소도 특급 호텔이나 호텔급 예식장을 선호한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예식 장소일수록 최소 8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식장을 잡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우리나라에만 예식장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최근에는 한국에서 라오스로 진출한 사업가가 그곳에 예식장을 지어 돈을 벌었다고 하고, 대만이나 아시아 곳곳에 예식장이 하나 둘 생긴다고는 하지만 전문적으로 결혼식만 하는 예식장 사업이 한국처럼 발전한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다. 예식장은 짧은 시간 동안 손님을 대접하고 신랑 신부도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결혼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단순히 효율성만을 따져봤을 때 얘기다.

    결혼식이 꼭 효율적이야 할까. 생각해볼 문제다. 결혼식은 사랑하는 남녀가 가족을 이루는 시작점이기도 하지만, 어린 줄만 알았던 소중한 딸이나 아들이 성인이 돼 가정을 이루는 자리기도 하다.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그러니까 효율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가족 모두가 참여해 만드는 결혼식은 어떨까.

    웨딩플래너로 일하면서 이름만 대면 누구든 알 만한 명문대 교수 자제의 결혼식을 진행한 적 있다. 이 교수는 직접 식순을 만들고 주례 없이 결혼식을 진행했다. 사회는 큰삼촌이 보고 주례사 대신 교수가 나서 가족 역사를 들려줬다. 하객 수를 철저히 제한해 정말 딱 가족, 친지, 친한 친구 몇 명만 모여 결혼식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하객 모두가 교수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여기저기 눈물을 훔치는 분도 보였다.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양가 집안과 가족의 역사를 공유한 것이다. 누군가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을 물어오면 주저하지 않고 이 결혼식을 꼽는다.

    세상에 하나뿐인…‘셀프웨딩’ 뜬다
    결혼식 콘셉트를 봄 소풍으로 잡은 커플이 있었다. 그들은 캠핑장을 몇 시간 빌려 결혼식을 했다. 청첩장은 봄 소풍 초대장이 됐다. 청첩장 그림은 예비 신랑이 직접 그렸다. 친구들과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운 결혼식을 만든 부부는 캠핑카를 빌려 2주 동안 전국일주를 하는 소풍 같은 허니문을 떠났다.

    예식장에서 결혼하지만 두 사람이 가족이 되는 첫 순간만큼은 의미 있게 만들기를 원했던 커플도 있었다. 그들만이 아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결혼식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은 친정아버지가, 주례사 덕담은 시아버지가 맡았다. 웨딩플래너로서 주로 예비 신랑 신부를 도와줬는데, 이 결혼식에서는 아버지를 도와 축사를 대신 작성한 기억이 난다. 결혼식 날, 중요한 임무를 맡은 양가 아버지는 턱시도를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나비넥타이까지 매고 식장에 들어섰다.

    이런 결혼식은 준비 과정도 번거롭고 비효율적일 수 있다. 부모는 축사에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고민의 나날을 보내는 한편, 요란하게 결혼식을 하자고 하는 아들, 딸이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양가 부모를 설득해 자질구레한 식순부터 하나하나를 준비하던 예비 신랑 신부의 마음도 비슷할 거다. 괜스레 일을 벌였나 싶었을지도 모른다.

    결혼식을 치러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가족의 큰 행사, 그것도 형제자매나 자식 혹은 내 결혼식이 끝나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번의 명절을 지내는 동안 그 얘기를 얼마나 하는지 말이다. 만나면 결혼식 얘기에, 눈만 마주치면 결혼식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그날의 패션부터 하객, 누군가의 실수, 음식까지. 그런데 그때 예식장에서 짜놓은 식순대로 2시간 동안 몇천, 몇만 쌍과 이름만 달리해 식을 올린 경우와 가족이 머리를 맞대 고민하고 협의해 식순을 짜고 부모가 함께 참여해 결혼식을 만든 경우 그 의미는 얼마나 다를까.

    가족을 이루는 의미 있는 시간

    먼저 추억의 양과 질이 완전히 다르다. 혼수와 예단을 어떻게 해왔는지, 집은 얼마짜리를 구했는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축사와 덕담을 어떻게 할지, 누가 어떻게 참여할지에 대해 고민하던 것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셀프웨딩은 말 그대로 스스로 만드는 결혼식이다. 요란하게 튀고 싶은 마음에 철없이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가족을 이루는 시작점에서 진정성을 갖고 의미 있게 공들여 만드는 시간이고, 남들에게는 없는 ‘우리’만의 뿌듯한 추억도 남길 수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번거로움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나 셀프웨딩을 하고 싶은데 부모 반대로 못 한다고 호소하는 예비 부부를 많이 봤다.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의 부모가 아니라 지금보다 딱 30년 젊다면, 아직 인생의 쓴맛을 보지 않아 감각이 무디지 않고, 앞으로의 인생이 반짝반짝 빛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청년이라면 과연 어떤 결혼식을 할 것인가. 살면서 가장 반짝이는 그 순간, 효율성과 편리함만 찾고 싶을까. 추억을 꺼내 보면서 지낼 노년을 생각한다면 더욱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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