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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흑인 청년 쏜 백인 경찰 미국 치부도 건드렸다

마이클 브라운 사망 사건 최강대국 민낯 드러내며 파문 확산

  • 이승헌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

흑인 청년 쏜 백인 경찰 미국 치부도 건드렸다

2014년 8월 미국 미주리 주 소도시 퍼거슨 시에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백인 경찰 대런 윌슨의 총에 맞아 숨진 10대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 사건으로 퍼거슨 시 일대가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면서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 차별, 과도한 경찰 공권력 남용, 연방정부의 무능한 사후 대처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흑인 관련 최대 이슈로 기록될 이번 사건에도 가족과 함께 한가롭게 2주간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어 미국 사회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8월 9일(현지시간) 퍼거슨 시에서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 총격에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논란이 된 건 브라운이 비무장 상태의 10대 흑인 청소년이었다는 것. 이 소식이 알려진 뒤 흑인 사회는 사건 경위를 경찰 측에 물었지만 경찰은 누가 무엇 때문에 브라운에게 총격을 가했는지 일절 함구했다.

그러나 유족 측이 사건 당시 증언을 모아 브라운은 총을 갖고 있지 않았고 경찰 지시에 따랐는데도 돌연 총격을 받았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유족과 친구 중심의 시위대는 퍼거슨 시 흑인 사회가 동참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일부 백인까지 가세하며 사회적 이슈로 번졌다. 결국 경찰은 여론에 밀려 브라운 총격 사망 사건의 일부를 밝히기로 했다. 그러나 이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

토머스 잭슨 퍼거슨 시 경찰서장은 사건 발생 후 엿새 만인 8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브라운에게 총을 쏜 경찰이 6년 차 경관인 대런 윌슨이라고 발표했다. “근무 경력상 윌슨에게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두둔한 잭슨 서장은 이와 함께 브라운이 친구 도리언 존슨과 사건 당일인 9일 오전 상점에서 담배를 훔치는 모습을 담은 폐쇄회로(CC)TV 화면을 공개했다. 잭슨 서장은 이들 중 한 명이 절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윌슨 경관을 경찰차로 밀어 넣은 뒤 경찰 총을 놓고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총성이 울렸다고 밝혔다.



‘제2 로드킹 사건으로 번지나’

윌슨 경관 등 경찰이 ‘담배 절도 용의자’인 브라운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양 물 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사건 당시 브라운과 함께 있었던 존슨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브라운과 함께 길을 걷던 중 경관의 지시를 받았고, 그대로 했는데도 경관이 브라운의 목덜미를 붙잡아 경찰차에 집어넣으려 했다”고 반박했다.

현지 언론이 경찰의 짜 맞추기 수사 의혹을 제기하자 경찰은 회견 몇 시간 뒤 “절도 사건과 총격 사건은 무관하다”고 발을 뺐다.

브라운 사건이 전국적 이슈로 확산하는 순간이었다.

제이 닉슨 미주리 주 주지사는 퍼거슨 시 치안 담당을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찰에서 주고속도로 순찰대로 넘기며 시위대 해산을 유도했다. 흑인에다 퍼거슨 시 출신인 로널드 존슨 순찰대장은 시위대와 악수도 나누는 등 사태는 진정 기미를 보였다. 그런데 경찰의 물 타기 기자회견이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시위대는 남녀 가릴 것 없이 거리로 나와 “손들었다, 쏘지 마(Hands up, Don’t shoot)”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는 브라운이 비무장 상태로 경찰 총격을 받았음을 표현하기 위한 시위대의 공식 구호. 일부 10대 청소년은 브라운이 절도한 장소로 알려진 ‘퍼거슨 마켓 앤드 리커’ 등을 비롯해 상점 여러 곳을 약탈하기에 이르렀다.

닉슨 주지사는 8월 1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퍼거슨 시 일대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 통행금지를 명령했다. 통행금지 기간은 17, 18일 0시부터 오전 5시까지였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센 비를 맞으면서 통행금지를 어기고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가스와 연막탄을 발사했고, 이 과정에서 한 주민이 심한 부상을 입기도 했다. 결국 닉슨 주지사는 주정부 차원에서 18일 주방위군을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이 사건 진상을 왜곡하고 있다고 본 유족 측은 결국 브라운의 시신을 자체 부검해 진상을 밝히기로 했다. 유족 측은 뉴욕 시 검시관을 지낸 베테랑 법의학자 마이클 베이든 박사에게 부검을 타진했고, 베이든 박사는 퍼거슨 시까지 날아와 부검에 응했다. OJ 심슨 재판 등에서 증언대에 서기도 한 베이든 박사는 부검료 1만 달러도 받지 않고 이 ‘역사적 부검’에 응했다.

2차 부검을 실시한 베이든 박사는 “두 발은 머리에, 네 발은 오른팔에 맞았다. 몸에 탄약가루가 묻어 있지 않은 만큼 총알이 가까이에서 발사된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총알이 멀리서 발사됐다는 대목은 경찰이 비무장 상태인 10대 소년을 조준 사격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부검 사실을 먼저 확인한 ‘뉴욕타임스’가 이 소식을 인터넷판을 통해 긴급 보도하자 시위는 기다렸다는 듯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시내에는 화염병이 등장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대응했다. 현지 언론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뿌리 깊은 흑백 갈등 재확인

퍼거슨 시 소요 사태 소식을 휴가지인 매사추세츠 주 마서스비니어드에서 접하던 오바마 대통령은 8월 19일 잠시 백악관으로 돌아와 에릭 홀더 법무부 장관을 20일 현장으로 보냈다.

브라운이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 총격을 받은 게 거의 확실해지면서 흑백 사회의 반응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브라운 총격 사망 사건으로 대런 윌슨으로 상징되는 백인 사회가 지나치게 비판받고 매도당한다고 본 백인 사회 중 일부가 결집하고 나선 것이다.

퍼거슨 시에서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숨진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 사건이 ‘인종적 문제를 제기했느냐’는 질문에 인종에 따라 2배, 정치적 성향에 따라 3배 정도 인식 차를 드러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브라운 총격 사망 사건 발생 후인 8월 14~17일 18세 이상 미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흑인 응답자 80%는 총격 사망 사건과 이에 따른 시위 사태가 ‘논의가 필요한 중요한 인종문제를 제기했다’고 답했다. 반면 백인 응답자는 37%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인구 2만1000여 명 중 65%가 흑인인 퍼거슨 시 주민들은 이번 사건이 소수 백인이 주도하는 소도시에서 흑인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퍼거슨 시 경찰 가운데 흑인 비율은 6%에 불과하고 흑인의 실업률은 9%이며 21% 가구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 사건이 필요 이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한 흑인 응답자는 18%인 반면, 백인 응답자는 47%였다. 이 응답에 정치적 성향에 따른 인식 차는 더 컸다. 응답자 중 민주당원 68%는 ‘중요한 인종적 문제를 제기했다’고 여기는 반면, 공화당원은 22%만 이에 동의했다. 반대로 공화당원 61%, 민주당원 21%는 ‘필요 이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에서 흑인 응답자 65%는 ‘브라운 사망 이후 경찰 대응이 도를 넘었다’고 답했지만 백인은 33%만 ‘그렇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문제는 연방정부를 넘어 오바마 대통령이 해결 열쇠를 쥐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먼저 오바마 대통령 지시로 8월 20일 현장에 급파된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법무부 장관 에릭 홀더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평소 인권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왔던 홀더 장관은 가족사까지 꺼내며 이 문제에 천착해왔다. 홀더 장관 아버지는 중남미 섬나라 바베이도스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려다 백인들만 탄 기차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는 11월 중간선거는 물론 레임덕(권력 누수) 시점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952호 (p56~57)

이승헌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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