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5

2017.07.05

커버스토리

최저임금 1만 원, 살림살이 많이 나아지셨습니까

단기적으로 최저시급 1만 원 확정 시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 3가지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7-03 11:13:26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인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간당 1만 원’(최저임금 1만 원)을 두고 노동계와 경제계가 충돌하고 있다. 노동계는 최저생계를 위한 가장 낮은 금액이라 주장하고, 영세상인들은 줄도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최저임금 1만 원 시대가 오면 어떨 일이 벌어질까. 현재까지 진행된 논의와 전문가들의 분석, 최저임금 6470원 상황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엮어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팩션 형식으로 구성해봤다. 최저임금 1만 원 도입 시점을 노동계 주장인 2018년, 정부 공약인 2020년, 정권 말기인 2023년으로 나눠 각각 파장을 예측했다. 예측된 상황은 가상이지만, 예측에 사용한 자료는 팩트다.  



    2018년 최저임금 1만원 낮밤 바뀐 업주, 메뚜기 된 근로자

    # 오후 10시. 편의점 점주인 김모 씨의 출근시간이다. 보통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에야 비로소 편의점으로 나가는 것. 이처럼 김씨의 낮밤이 바뀐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야간(오후 10시~오전 6시)에는 1.5배 시급이 적용된다. 2018년 현재 최저임금이 1만 원이니 야간 근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면 시간당 1만5000원을 지급해야 한다. 편의점 경영으로 한 달에 손에 쥐는 순수익이 250만 원 남짓인 상황에서 인건비를 더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김씨는 주말도 없이 밤마다 8시간씩 카운터에 선다.

    밤 8시간 동안 편의점 카운터를 지키고도 김씨의 일과는 끝나지 않는다. 오늘부터 두 달간 주간에 일할 신입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업무를 가르쳐야 하기 때문. 김씨는 지난해까지는 6개월 단위로 하루에 8시간씩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오른 올해부턴 아르바이트 계약을 2개월 단위로 하루 2시간씩 일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래서 늘 새로 오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



    이처럼 번거롭게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는 이유는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법정수당 때문이다. 2017년에는 하루에 8시간씩 주 5일을 일하는 주간 아르바이트생 1명과 야간 아르바이트생 1명, 또 주말에만 하루 8시간씩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2명을 포함해 총 4명을 채용했고, 인건비로 기본급 310만5600원에 주휴수당 45만6524원과 야근수당 67만6115원을 더해 월 423만8239원이 나갔다. 같은 방식으로 2018년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면 인건비로만 월 653만7200원이 들어간다. 법정 최저임금을 줄일 수는 없으니 결국 수당을 낮출 수밖에 없다. 야근수당이나 주휴수당을 제외하고 최저임금에 따른 기본급만 준다고 가정해도 월 480만 원으로, 2017년 인건비보다 지출이 크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일주일 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이며 한 주 개근한 근로자에게는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이 때문에 김씨는 아르바이트생을 4배로 늘려 한 아르바이트생이 주당 10시간씩 월 40시간 근무하는 식으로 계약을 하고 있다. 이처럼 월 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 채용 기간이 3개월 미만이면 아르바이트생은 단시간 근로자로 분류돼 업주는 4대 보험을 보장해주지 않아도 된다.

    최저임금이 6470원인 지금 주휴수당, 추가근무수당, 야근수당 등 법정 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는 업주가 허다하다. 지난해 11월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아르바이트 근로자 7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주휴수당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전체의 37.9%(293명)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체 관계자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1년 만에 1만 원으로 오르면 작은 규모의 가게나 공장을 경영하는 업주는 법정 수당 지급을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피할 개연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준비되지 않은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는 아르바이트 근로자에게도 고역이다. 업체당 하루에 2시간 남짓 일하는 식으로 여러 업체를 돌아야 하기 때문. 업주 대부분이 김씨처럼 합법적인 방법으로 수당 지급을 회피한다면 하루에 8시간씩 일하던 근로자는 매일 4개 업장을 돌아야 한다.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주머니 사정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아르바이트 근로자가 하루 4개 업장을 돌고 이동시간이 총 1시간가량이라고 가정하면, 하루 근로시간이 8시간이라 해도 이동시간까지 합쳐 9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최저임금 6470원으로 계산하면 하루 9시간, 주 45시간 일할 경우 월급여는 151만7357원. 반면 매일 한 시간씩 이동해가며 하루에 8시간씩 일하고 최저임금 1만 원을 받으면 월급여는 173만7200원이 된다. 최저임금이 1년 만에 54.6% 인상된다 해도 정작 근로자 손에 들어오는 월급은 14%만 오르는 것이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이어지는 폐업에 알바도 취업난

    정부 계획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차차 올려도 업계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연합회가 6월 12~27일 2주간 외식업, 도소매업, 개인서비스업 등 다양한 업종의 소상공인 사업주 총 3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8%(311명)가 ‘2020년에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원으로 인상되면 10~40%의 수익 감소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전체 응답자 중 83.8%(294명)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원으로 인상돼 수익 감소 등 경영환경이 악화되면 종업원 감원이나 폐업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6월 2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인건비 부담액’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매년 인건비 81조5000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중소기업의 줄폐업을 낳을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 2020년 대학에 입학한 정모 씨가 처음 한 아르바이트는 택배 상하차 업무였다. 택배 상하차는 건설현장 일용직만큼이나 힘든 아르바이트로 손꼽히지만 정씨에게는 대안이 없었다. 여름방학을 2주 앞두고 정씨는 학교 인근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 등 실내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탓에 2년 사이 편의점 수가 대폭 줄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커피전문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소형 점포는 아예 아르바이트생 없이 업주가 혼자 손님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형 점포는 커피전문점에서 일한 경력이나 바리스타 등 관련 자격증을 요구했다.

    반면 택배 상하차 같은 일용직 아르바이트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올랐지만 원래 일이 힘들어 급여가 높던 택배 상하차나 건설현장 일용직 같은 직종은 여파가 크지 않았기 때문.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처음 간 날 정씨는 현장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러 찾아간 편의점 점주도 택배 상하차 일을 하러 나온 것이다.

    최저임금이 낮은 지금도 아르바이트 구직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6월 아르바이트 구직자 415명을 대상으로 ‘알바 구직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1.7%가 ‘아르바이트 구직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게다가 중년층도 아르바이트 구직에 나서며 문이 더욱 좁아지고 있다. 아르바이트 소개 사이트 알바몬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2년 40대 이상 아르바이트 구직자 수는 2만9000여 명에 불과했으나 2015년에는 6만4000여 명으로 2배가량 늘어났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아르바이트 근로자가 업주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수입역전 현상이 발생할 개연성도 높다. 통계청과 중소기업청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51.8%가 연매출이 4600만 원에 못 미친다. 월 평균 영업이익은 187만 원으로 집계됐다.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오르면 업주들은 매출이 20% 신장돼야 지금의 평균 이익을 유지할 수 있다. 한편 아르바이트 근로자는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넘게 일하면 월 208만 원 이상을 벌게 된다.

    한 프랜차이즈 본사 측 관계자는 “수입역전 현상이 발생한다고 업주가 가게 문을 닫을 가능성은 낮다. 기존에 투자한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폐업한 업주나 수익이 낮은 업주가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들어 아르바이트 구직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23년 최저임금 1만 원 어차피 올 미래

    # 2016년부터 7년째 중소기업 생산직으로 일하는 박모 씨는 취업 전부터 만나온 여자친구와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입사 초기 결혼은 꿈조차 꾸지 못할 만큼 딴 세상 이야기였다. 월급여가 150만 원에 불과해 생활비에 집세를 내고 나면 수중에 남은 돈은 5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물론 하루에 10시간가량을 직장에서 보내니 돈 쓸 시간도 없었다. 생활비 외 남은 돈은 통장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게 1년간 모은 돈이 500만 원 남짓. 누군가를 위해 할애할 시간도, 돈도 없는 박씨는 입사 1년 만에 결혼을 포기했다.

    그러나 매년 임금이 오르며 상황이 나아졌다. 임금이 오르니 근무시간은 자연히 줄어들었다. 정부의 관리·감독도 강화되면서 재작년부터는 그동안 받지 못했던 야근 및 초과근무수당까지 받았다. 6년 전보다 일은 덜 하지만 2023년 현재 매달 그의 통장에 입금되는 돈은 약 250만 원으로 늘었다.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다녀도 매달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저금할 수 있게 된 것.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지급하는 하청 대금도 올라 회사 재무상태도 많이 나아졌다. 올해부터는 매년 두 번씩 상여금까지 준다. 박씨는 올가을 받을 상여금을 신혼여행 비용으로 쓸 계획이다.

    현 최저임금 인상률만 유지해도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 가능하다. 2000년 1600원에 불과하던 최저임금은 연평균 8.6%씩 인상돼 올해 6470원에 도달했다. 이와 같은 증가세를 유지해 매년 최저임금이 8.6%씩 오른다고 가정하면 2018년 7026원, 2019년 7631원, 2020년 8287원, 2021년 9000원을 거쳐 2022년에는 9774원으로 1만 원에 육박한다. 임기 말인 2023년에는 1만614원이 된다.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끌어올리기보다 점진적으로 노동환경을 변화시키며 임금을 올리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김문겸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원장은 “저소득층을 위해서라도 최저임금 인상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도 중소기업에는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있는 만큼 중소기업의 체질 변화와 정부의 지원 및 근로감독 등 선결해야 하는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공약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3년 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동시에 상가 임대료를 낮추고 대기업의 중소기업 대상 하청 단가를 현실화하는 등 산업분야 체질 개선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