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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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안녕하신가

내수와 자본시장 취약 외부 충격에 민감…체질 근본적 개선 대책 시급

  • 김상환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 swkim7@chungbuk.ac.kr

    입력2014-05-26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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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 안녕하신가

    환율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1041.4원까지 떨어진 4월 9일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 설치된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인재가 반복되는 현실, 그럼에도 기본 안전관리가 여전히 무시되는 상황에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건 필자만은 아닐 터다. 사고 이후를 지켜보며 경제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든 첫 번째 생각은 ‘과연 한국 경제의 안전관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이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에 대해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경제 분야에서 재난 상황은 어떤 경우일까. 정상적인 상황에서 경제는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순환하며 성장해간다. 정치인 또는 일부 언론은 고용이 크게 줄거나 기업 투자가 부진할 때마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는 그리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경기 불황이 국민에게 경제적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크게 보면 호황 국면에 접어들기 전 재고와 부실이 정리되는 정상적인 경제활동 기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에서 세월호 사고 같은 대형 재난사고는 따로 있다. 1997년 외환위기처럼 대외채무를 갚지 못해 국가부도 사태에 빠지거나, 2008년 미국 금융위기처럼 대형 금융기관 도산으로 신용순환이 막혀 경제가 자생적인 성장 능력을 상실해버린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 처하면 시중 자금의 순환이 경색돼 기업은 줄도산하고, 대형 실업이 발생하며, 자산가격이 폭락하면서 금융기관의 부실이 더 악화하는 국가적 재난에 빠지게 된다.

    5년 전 다짐했던 경제 안전관리 대책

    어느 경제든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자생적으로 빠져나오기란 극히 어렵다. IMF(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금융기구의 자금 지원이나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 등 외부 수혈을 통해서만 위기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회복 과정에서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고 국민은 오랜 기간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게 된다. 수십 년간 한국 경제를 대표했던 대우그룹과 쌍용그룹을 무너뜨린 것이 바로 경제위기였다. 과연 어느 누가 그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모든 국민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경제적 재난인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많은 해양운송 전문가가 선박 안전운행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제안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안전처를 신설해 재난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은 재난을 당한 뒤에야 부랴부랴 마련된 대책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잊히거나 과거의 안이한 자세로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한다. 사실 이러한 염려는 특히 경제문제에서 자주 현실로 나타나곤 했다.

    미국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에 던진 충격파는 컸다. 1800선을 웃돌던 코스피 지수는 970으로 급락했고 국내총생산은 2008년 4분기부터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후 위기 진원지인 미국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달러화를 찍어내면서 위기 극복에 나섰고, 그에 힘입어 한국 경제는 천만다행으로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10년 만에 경제적 재난을 다시 한 번 겪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무렵 국내 언론은 연일 특집기사를 내보내며 우리나라가 다른 신흥국에 비해 유독 심각한 충격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반성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무수히 제시됐다. 아파트 투기 열풍으로 비대해진 부동산 버블과 이 과정에서 늘어난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은행들이 고객 신용도를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아파트 담보만으로 대출을 해주는 관행에 대해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공공부채를 과감하게 줄여 국가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자는 주장도 국민적 동의를 얻은 바 있다. 불과 5년 전 우리가 다짐했던 경제 안전관리 대책들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를 보면 당시 위기를 목전에 두고 쏟아냈던 경제 안전관리 대책들은 옛날이야기나 다름없어 보인다. 버블을 걷어내 거시경제 건전성을 업그레이드하자고 해놓고는 아파트 거래가 부진하다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각종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쏟아냈다. 과도한 가계부채를 가장 큰 걱정거리로 지적해놓고도 돈을 빌려 아파트를 사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주택가격 버블은 크게 해소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거품처럼 부푼 주택가격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그래프 참조), 가계부채도 꾸준히 늘어 1000조 원을 넘어섰다. 이에 더해 선거철마다 정치권이 쏟아낸 각종 선심성 복지 공약들로 정부부채는 496조 원, 공기업부채는 412조 원까지 크게 늘어났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마저 의심받을 만한 수준이다.

    한국 경제, 안녕하신가
    각 경제 주체의 고통 수반

    일각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가계부채나 공공부문 부채가 과도한 수준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내수가 취약한 대신 수출이 성장을 견인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자본시장도 외국인에 의해 좌우되고 있어 외부 충격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수치 비교만으로는 경제 안전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정부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우량하다”며 낙관론을 펴지 않았던가. 외부 충격에 내성을 가질 수 있도록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데 정부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물론 경제 체질을 개선하려는 구조조정 정책에는 각 경제 주체의 고통이 수반된다. 관료 힘만으로 추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고, 국민적 동의와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동산 버블을 해소하고 가계부채를 억제하는 정책은 경기를 위축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정치인들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경제위기를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당장 국민의 체감 경기를 악화할 수 있는 구조조정 정책을 선뜻 택하리라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빚으로 부푼 경제는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게 언제인지가 확실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경제위기가 국민에게 끼치는 고통의 크기나 그 기간 역시 외환위기 때보다 더 크고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당장의 어려움을 감내하더라도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정책을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세월호 사고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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