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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월동 특명! 남극 기후 변화를 체크하라

남극 대륙 연구 두 번째 ‘장보고기지’ 본격 운영… 운석 탐사·빙하 시추 등 탐사 임무 수행

  • 오가희 과학동아 기자 solea@donga.com

월동 특명! 남극 기후 변화를 체크하라

월동 특명! 남극 기후 변화를 체크하라

남극 대륙 본토에 지은 우리나라 장보고과학기지 전경.

동경 164.2도, 남위 74.37도.

남극 대륙 본토에 국내 최초의 과학기지가 완성됐다. 1988년 남극 연안에 세종과학기지(세종기지)를 건설한 지 26년 만이다. 동남극 테라노바 만 장보고과학기지(장보고기지)는 2월 12일 준공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기자는 이에 맞춰 남극에 다녀왔다.

우리나라에서 정남쪽으로 1만km 넘게 달리다 보면 호주를 지나 거대한 대륙을 만난다. 이곳이 바로 지구 최남단 남극이다. 지상에서 가장 추운 대륙이라는 별명과 함께 ‘남극’이라는 두 글자는 온갖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누가 뭐래도 펭귄이다. 짧은 두 다리로 종종 걷는 까만 펭귄은 존재 자체가 매력적이다. 기자가 남극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먼저 보인 반응도 “펭귄 잡아다 줘”였다(물론 불가능하다). 그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흰 눈과 추위. 그렇다. 남극은 지상에서 가장 추운 대륙이다. 바다에 있는 북극보다 대륙인 남극이 더 춥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1년 평균기온이 영하 수십 도 정도다.

펭귄이 사는 가장 추운 대륙



남극 대륙 전체의 평균기온을 내기 어려운 이유는 땅덩어리가 거대하기 때문이다. 1400만km2인데, 미국 넓이와 비슷하다. 바다와 인접한지, 내륙에 있는지에 따라 편차가 큰 데다, 아직 제대로 관측되지 않은 곳이 많아 정확한 평균기온을 내긴 어렵다(대략 영하 49.3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칠레 방향 위도 62도에 있는 세종기지의 1년 평균기온은 영하 1.7도에 불과한데, 뉴질랜드 방향 위도 74도에 있는 장보고기지는 영하 14.13도가 된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평균기온은 더 떨어진다.

이 때문에 남극에서는 수십만 년 동안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고스란히 쌓여 빙하를 만든다. 남극 하면 희다 못해 푸르게 보이는 눈 덮인 산을 떠올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눈이라고 만만히 보면 큰코다친다. 수십만 년 동안 쌓인 눈은 다져져 단단한 얼음 상태가 되는데, 이 빙하가 흘러내려 바다로 퍼지면 평평하게 다시 얼어붙어 빙붕이 된다. 빙붕은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단단하다.

월동 특명! 남극 기후 변화를 체크하라

장보고기지가 있는 동남극 풍경. 세종기지가 있는 서남극에 비해 평균기온이 낮다.

한반도 60배에 달하는 거대한 땅덩어리 전체가 눈으로 덮인 남극은 강수량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남극은 사막이다. 기온이 지나치게 낮아 물이 될 만한 것들이 모두 얼어서 공기 중으로 증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교적 수증기가 잘 생기는 해안가도 연평균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하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지면서 온도가 낮아지는 내륙으로 들어가면 강수량은 0에 가깝다.

기온은 낮고 물이 적은 혹독한 환경은 남극을 ‘하얀 사막’이라고 부르기 손색없게 만든다. 이 때문에 인류사에서 남극은 오랫동안 외면당했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초기 인류가 유라시아로, 동남아시아로, 아메리카로, 호주로 가는 동안에도 남극은 여전히 인간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대륙이었다.

남극 대륙이 처음으로 사람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 바다표범(해표) 가죽이 모피로 쓰이기 시작할 때였다. 바다표범 가죽 소비량이 많아지자 새로운 공급처를 찾던 이들이 남극 대륙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엔 대륙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해안가에 누워 있는 수많은 바다표범을 보고 바다표범 잡이 배들이 남극에 도전했다.

기자가 남극에서 만난 바다표범들은 오랫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아 천적이라고 생각지 않는 듯, 가까이 가도 달아나지 않았다. 바다표범사냥꾼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사냥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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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강수량 200mm ‘하얀 사막’

남극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탐험가 사이에서도 새로운 대륙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수많은 탐험가가 도전했고, 아직 주인이 없는 대륙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먼저 밟은 사람이 임자라는 식으로 남극 초기 탐험가를 보유한 프랑스, 영국, 호주, 노르웨이, 아르헨티나, 칠레, 뉴질랜드 등이 남극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인류 공공재’라는 인식하에 1959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요청에 따라 남극조약이 체결됐다. 그 결과 위 7개국의 영토권은 동결됐고, 이후 남극은 평화적 목적이나 과학연구만 가능한 대륙으로 남게 됐다. 우리나라는 86년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이후 세종기지를 지어 남극에 대한 연구를 직접적으로 수행함으로써 89년 협의당사국 지위를 획득했다.

남극조약은 2048년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이 조약은 언제 협정이 깨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영토권을 주장하던 7개 나라가 영토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주장을 멈춘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극대륙 깊은 곳에 잠들어 있을 천연자원도 각 나라가 탐낼 만한 보물이다. 수억 년 전 유라시아와 붙어 있던 남극은 판 이동에 따라 지금 위치로 움직였다. 당시 남극에 살던 생물이 석유나 석탄 같은 자원으로 변해 있을 공산이 크다. 아직 수천m나 되는 얼음층과 그 아래 지층을 뚫고 자원을 캐는 것이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척 덮고 있을 뿐이다. 다른 대륙의 자원 사정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 ‘평화적 목적’이나 ‘과학 연구’는 뒤로 밀린 채 이권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극 자원과 영토권 문제는 먼 미래 일이다. 에너지 관련 학자들은 석유나 석탄, 셰일가스 등 남극을 제외한 다른 대륙에 묻힌 자원이 향후 200년간은 문제없다고 말한다. 현재 남극에서 진행되는 ‘핫’한 연구는 기후 변화와 관련 있다. 남극 얼음은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워낙 멀기 때문에 남극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극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여름철 북극 해빙이 많이 녹으면 겨울에 한파가 찾아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더 큰 시야로 볼 때 남극 변화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남극에는 지구 담수의 90%가 빙하와 빙붕 형태로 저장돼 있다. 1400만km2 크기의 대륙 98%가 평균 두께가 2160m나 되는 얼음으로 덮여 있다. 가장 두꺼운 곳은 4800m에 이른다. 이 얼음이 녹거나 어는 정도에 따라 해수면 높이가 달라진다. 만약 전부 녹는다면 해수면은 60~70m나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cm가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남극 빙하가 녹을 경우, 지구온난화가 오히려 가속될 수 있다. 지구 기온은 전적으로 태양에너지가 지구로 유입되거나 반사되는 양에 달렸다. 일반적으로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에너지 중 70%는 흡수되고 30%는 다시 우주로 반사된다고 알려졌다. 이 때 태양에너지를 우주로 반사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 흰색을 띠는 빙하다. 빙하 넓이가 줄어들면 반사량도 줄어들고, 지구에 더 많은 태양에너지가 흡수돼 기온이 올라갈 수 있다.

월동 특명! 남극 기후 변화를 체크하라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 풍경.

물론 반론도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 수증기가 많이 생기고 구름도 많아져, 구름으로 인한 태양에너지 반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빙하가 녹는 것과 구름양에 따라 지구 기후가 얼마나 바뀌는지 알려고 극지과학자들은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있다. 오랜 기간 누적될수록 결과가 정확한 기후 연구 특성상 10년 이상 자료를 모아야 뚜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극에서 시작하는 심층수 또한 지구 기후를 만드는 주요 요소다. 극지방 온도가 낮은 이유는 적도 지방에 비해 태양 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기 때문이다.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내리쬐는 정오에 기온이 올라가는 것처럼, 태양이 곧게 들어오는 적도는 온도가 높고 극지방은 온도가 낮다. 남극 대륙 주변에서 식은 차가운 해수는 밀도가 높아져 수천m 해저 면으로 내려가고, 그 빈자리는 적도 근처에서 온 따뜻한 해수가 메운다. 지구 전체 열을 고르게 퍼뜨리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남극 해수나 빙하가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기정 사실화됐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연구할 것이냐다.

남극 지형은 남극 횡단산맥을 기준으로 남극반도가 있는 서남극과 남극점이 있는 동남극으로 나뉜다. 세종기지는 남극반도 끝자락인 서남극에 있고, 2월 12일 준공식이 열린 장보고기지는 동남극에 있다. 세계 대부분 나라는 칠레에서 이동하기 좋은 서남극에 기지를 짓는다.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반도까지 비행기로 3~4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킹조지 섬에 있는 세종기지 근처에도 월동기지 8개가 있다.

월동대 17명 첫 겨울나기

월동 특명! 남극 기후 변화를 체크하라

남극에 사는 도둑갈매기 스쿠아와 장보고기지에서 본격적으로 연구할 운석, 이번 기지 건설에 큰 공을 세운 우리나라 유일의 쇄빙선 아라온(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반면 동남극은 접근이 어렵다. 뉴질랜드나 호주에서 거대한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장보고기지까지 가는 데는 배를 타고 약 8일이 걸린다.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6~8시간이 걸리는데, 이 정도 거리를 운행할 수 있는 크기의 비행기가 내려앉을 만한 활주로는 미국 맥머도 기지에만 있다. 일단 기지를 해안에 지어 각 나라 배로 이동할 수는 있지만 내륙으로 깊게 들어갈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런 지형적 차이 때문에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는 연구 대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지역상 세종기지는 남극 경계인 아남극권에 위치한다. 상대적으로 기후가 온화하며 다양한 생물이 산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남극이지만 세종기지 근처에는 꽃 피는 식물인 남극좀새풀과 남극개미자리가 분포한다. 이 때문에 세종기지에서는 주로 남극 육상 및 해양 생태계를 중심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반응이나 생명체 극지 적응 기작을 연구한다.

반면 장보고기지가 주력할 것은 기후 변화 관련 연구다. 남극에서는 세계기상기구에서 주관하는 지구대기감시(Global Atmosphere Watch·GAW)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꾸준한 관측을 통해 기후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인데, 세종기지의 경우 GAW 지역급 관측소로 활동하고 있다. 장보고기지는 이를 확대해 GAW 지구급 관측소로 운영할 예정이다. 남극에 GAW 지구급 관측소는 서남극의 독일 노이마이어 기지, 남극점의 미국 아문센·스콧 기지가 전부다. 여기에 우리나라 장보고기지가 합쳐지면 남극 전역에서의 기후 변화를 추적할 수 있게 된다.

그 밖에도 장보고기지는 세종기지에서 하기 힘들었던 운석 탐사를 진행하고,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남극 대륙에 지은 기지인 만큼 남극 대륙의 생태와 환경에 대해 조사할 계획도 갖고 있다. 또 빙하 시추를 통해 기후와 환경 변화를 정밀하게 복원하고, 남극 대륙의 새로운 미생물도 찾을 예정이다.

남극은 이제 겨울이 시작된다. 기자가 준공식에 참석하려고 기지를 방문했을 때는 벌써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고 바람도 거세지기 시작했다. 북반구에 있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따뜻해지는 만큼 남극은 추워진다. 진동민 대장을 필두로 월동대 17명이 장보고기지에서 첫 겨울을 맞이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무사히 겨울을 나고 돌아오길 기원한다.



주간동아 927호 (p54~56)

오가희 과학동아 기자 sol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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